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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身보다 이웃 삶 풍요롭게 하는 게 價値있는 人生”-國民日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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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身보다 이웃 삶 풍요롭게 하는 게 價値있는 人生”

윤영관 前 外交通商部 長官 인터뷰

入力 : 2024-05-21 19:22 / 修正 : 2024-05-22 07:49
윤영관 前 外交通商部 長官이 지난 20日 서울 종로구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이 時代 靑年들을 向해 應援의 메시지를 傳하고 있다. 신석현 捕討그래퍼

“한 番밖에 없는 아까운 人生을 어떻게 무엇을 위해 살지 꼭 苦悶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돈 名譽 權力 快樂 昇進 等을 追求합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의 奴隸로 살다보면 몹쓸 짓하는 境遇가 많습니다. 이웃들의 삶이 풍요롭게 되도록 하는 게 價値있는 人生입니다.”

김병연 서울대학교 經濟學部 碩座敎授의 推薦을 받아 갓플렉스 챌린지 릴레이 인터뷰 열番째 走者로 나선 윤영관(72· 寫眞 ) 前 外交通商部 長官은 20日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靑年들에게 眞正어린 助言을 건넸다. 尹 前 長官은 서울대에서 學士와 碩士 學位를 取得한 뒤 美國 존스홉킨스대 國際大學院에서 國際政治學 博士學位를 받았다. 第32代 外交通商部 長官을 지냈고 現在 峨山政策硏究院 理事長과 서울대 名譽敎授로 在職하고 있다.

華麗한 履歷과 달리 尹 前 長官은 어린 時節 經濟的으로 힘든 삶을 살았다. 父親이 初等學校 敎師였지만 5男妹 家族을 건사하기엔 力不足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큰 꿈을 품었다. 韓半島 統一에 對한 비전을 가졌고 이를 위해 外交學을 專門的으로 工夫해보기로 決心했다. 이에 서울대 外交學科에 進學하는 데 成功했다.

그러나 尹 前 長官은 大學 進學 後 激甚한 混亂期를 겪었다. 獨裁와 社會的 矛盾, 不條理에 눈을 떴고 學生運動의 길로 나아갔다. 그는 “5·18 民主化 運動이 터졌고 그것을 殘忍하게 武力 鎭壓하는 權力의 行態에 큰 衝擊과 絶望感을 느꼈다”며 “그때까지 내 삶을 支撐해주던 基本 前提, 卽 나의 理性과 道德 基準이라는 게 無力하기 짝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吐露했다.

尹 前 長官은 軍 除隊 後 只今과는 다른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社會的 問題 意識을 갖고 사는 삶은 重要했지만 언제까지 混亂 속에서 있을 수만은 없었다. 마침 이 時期에 敎人인 아내를 만났다. 結婚한 뒤 美國으로 留學을 가서 信仰까지 갖게 됐다. 尹 前 長官은 “信仰을 가진 後 나로 하여금 分斷된 韓國에서 태어나 國際政治學者로 살게 하신 뜻은 ‘和平케 하는 者’로 살라는 것으로 알고 그 뜻대로 살려고 努力했다”고 말했다.

尹 前 長官은 自身의 專攻을 살려 活動을 이어갔다. 1990年代 初, 敎界가 聯合해 만든 ‘南北나눔운동’ 內의 硏究委員會에 韓半島 平和와 統一問題를 硏究하고 討論하는 定期모임을 만들었다. 많은 敎授와 專門家들이 同參했다. 10年 後에는 이를 基督싱크탱크인 ‘韓半島平和硏究院’으로 發展시켰다.

그는 서울대에서 勤務할 當時 社會科學大學 基督學生會 指導敎授도 맡았다. 그는 “退任 前 7年 程度 大學院生들과 함께 每週 聖書工夫 모임을 한 게 記憶에 남는다”며 “工夫와 未來에 對한 不安感으로 極甚한 精神的 壓迫感을 느끼던 學生들이 모임을 통해 慰安과 힘을 얻도록 도왔다”고 傳했다.

現在 尹 前 長官은 外交安保 分野의 民間 싱크탱크인 ‘峨山政策硏究院’ 理事長으로 일하고 있다. 硏究 著述 講演 學術會議를 비롯해 外國 人士 面談 等으로 바쁜 나날을 보낸다. 그는 “2017年頃부터 國際情勢가 激變하고 있기 때문에 이 같은 狀況 속에서 韓國이 어떠한 外交를 펼쳐나가야 平和와 繁榮을 누릴 수 있을지에 對해 苦悶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경식 記者 kscho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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