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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스]바람의 언덕 박석영, 2019

by. 남다은(영화평론가) 2020-05-12 照會 7,876
領分( 鄭銀敬 )은 같이 살던 男子가 病으로 죽은 뒤, 故鄕 太白으로 돌아와 모텔에서 淸掃 일을 하며 지낸다. 필라테스 講師로 일하는 한희( 장선 )는 이 寂寞한 마을에서 受講生을 모으는 일에 어려움을 느낀다. 어느 날 밤, 한희는 講習所 앞에서 기웃거리는 領分과 마주하고 둘은 곧 講師와 受講生으로 만나는 사이가 된다. 혼자 사는 領分과 孤兒인 한희는 어쩐지 母女 關係처럼 서로에게 애틋하고 多情해 보인다. 映畫는 領分이 오래前 버린 딸이 한희라는 事實을 우리에게 숨길 생각이 없다. 한희 또한 어느새 홀로 그 事實을 깨닫는다. 그러나 한희는 緊張感 때문인지 領分과의 講習時間에 숨이 차올라 꺽꺽대며 괴로워하는데, 그 모습에 衝擊을 받은 領分은 자리를 뜨고 만다. 이제 領分은 故鄕마저 떠나려 하고 한희는 그런 領分을 붙잡으려 한다. 그리고 둘은 領分이 한희를 위해 필라테스 學院 廣告紙를 잔뜩 붙여놓은 다리 위에서 엄마와 딸로 대면한다. 바로 이 한 場面의 힘에 이끌려 이 글을 쓴다. 

“네가 미워. 너 때문에 나는 훨훨 날아다니며 다 할 수 있었는데 못했어. 아, 끔찍해. 아, 갑갑해”라고 領分은 소리치고 “난 한 番도 안 미웠어. 어떻게 미워하는지도 모르겠어. 나 낳을 때 어렸잖아. 난 어른이야”라고 한희는 說得한다. 이 場面은 딸을 버린 엄마와 버려진 딸이 몇十 年 만에 眞實을 대면하는 瞬間이지만, 여기에 우리가 떠올릴 법한 感情, 表情, 臺詞는 나오지 않는다. 容恕를 비는 엄마와 怨望하는 딸의 常套的인 形象은 여기 없다. 이 場面에서 映畫의 目的은 單 하나처럼 보인다. 그것은 謝過와 和解, 或은 自己辨明과 自己憐憫의 劇的인 再現이 아니라, ‘나’를 否定하지 않는 두 얼굴의 交叉, 두 얼굴의 서로에 對한 리액션 뿐이다. 映畫는 다른 裝置 없이 오직 領分과 한희의 얼굴 클로즈업만을 투박하고 簡潔하게 오가면서 이들의 지난 歲月이 꾹꾹 눌러 담긴 목소리와 눈빛을 통해 둘의 過去와 現在, 甚至於 不透明한 未來까지 한 場面에 凝縮시킨다. “나도 살고 싶다”는 엄마와 “나는 잘 살아왔다”는 딸. 通念的인 母性 敍事의 構圖를 뼈대로 삼으면서도 이 映畫가 그 틀 안에서 保存하려는 건 엄마와 딸의 구구절절한 事緣이 아니다. 엄마와 딸의 關係에 앞선 한 人間의 個別性을 이 場面은 注視하고 尊重한다.   
 

박석영 의 前作인 < 들꽃 >(2014), < 스틸 플라워 >(2015), < 再꽃 >(2016)은 버려진 少女들에게 舛錯한 世界였다. <들꽃>에서 세 親舊는 危殆롭게 길 위를 彷徨하다 모텔에 監禁됐고, <스틸 플라워>에서 이들 中 한 少女는 親舊마저 사라진 낯선 곳에서 남들이 버린 飮食物을 주워 담으며 延命했으며, <再꽃>에서 그 少女는 살아남지만, 이番에는 父母를 찾아온 어린아이가 少女 周邊을 맴돌았다. 박석영은 3部作을 통해 生存과 自立의 過程을 거친 少女를 慰勞하고 싶었다고 말했고 <再꽃>은 確實히 앞의 두 映畫와는 差別化된 世界로 보였다. 하지만 한便으로는 이 3部作이 家族으로부터, 社會로부터 孤立된 어린 女子들을 每番 苛酷한 窮地로 밀어 넣어 이들의 生存力을 試驗하며 이들의 버려진 狀態를 얼마間 對象化하고 있다는 印象 또한 지우긴 어려웠다. 하지만 마침내 <바람의 언덕>에서 박석영은 버려짐의 狀態를 展示하는 代身 그것을 남겨짐의 敍事로, 남겨진 者의 視線으로 轉換한다. 무엇보다도 그는 이제 버려지고 放置된 少女의 狀況이 아니라 떠난 女人의 心情 또한 헤아린다. 無事히 어른이 되어야만 하는, 安全한 어른이 되고 싶어 하는 世界가 아니라, 이미 어른인 世界. 그 世界는 如前히 險難하지만 적어도 率直하고 成熟하다. <바람의 언덕>은 그렇게 다가온다. 
 

다리 위에서 領分은 울먹이는 딸을 내버려 두고 떠난다. 그러나 영분이 딸에게 쏟아낸 거친 말들과 캐리어를 끌고 돌아서는 뒷모습이 僞惡的으로 느껴지지 않는 理由는 앞서 映畫가 領分에게 膳賜한 한 場面에 對한 記憶이 우리에게 남아 있기 때문인 것 같다. 領分은 偶然히 알게 된 택시技士 潤飾( 김준배 )과 막걸리를 마시는 場面에서 술에 醉해 自身의 人生을 되돌리고 싶다는 告白을 한다. 男子는 그런 領分을 바라보다 淡淡하게 말한다. “抑鬱하긴 뭐가 抑鬱해. 그 나이 때에도 다 眞實이 있어요.” 허름한 酒店의 고요함은 以內 領分이 부르는 노래로 깨어나고 카메라는 그 모습을 領分의 뒤에 서서 가만히 지켜본다. 이 場面의 깊이를 經驗한 우리로서는 딸을 또다시 버려두고 “나도 살고 싶다”며 떠나는 領分의 발걸음을 無責任하다고 탓하지도, 멈춰 세우지도 못한다. 

그러니 領分과 한희가 再會하는 에필로그가 이들에게 實際로 일어난 일이라고 確信하기는 어렵다. 바람 부는 荒凉한 겨울의 自然 속에서 마침내 둘이 나란히 앉은 모습, 그럼에도 不拘하고 서로를 바라보며 두려움을 告白하는 목소리는 이들의 解決되지 않은, 矛盾과 葛藤이 進行 中인 內面의 狀態인지 모른다. 이 映畫의 포스터에는 겨울의 痕跡이 사라진 따스한 風景을 背景으로 英分科 歡喜가 꼭 끌어안은 모습이 담겨있다. 그 風景의 平和로운 溫氣는 ‘바람의 언덕’에 아직 到着하지 않은 것 같다.

聯關映畫 : 바람의 언덕 ( 박석영 , 2019 )

聯關映畫인 : 박석영 1973 ~

聯關映畫인 : 鄭銀敬 俳優 1970 ~

聯關映畫인 : 장선 俳優 1988 ~

初期畵面 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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