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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MDb - 韓國映畫데이터베이스
박남옥
Park Nam-ok / 朴南玉 / 1923  ~  2017
代表分野
監督
活動年代
1940, 1950, 2000, 2010
DB 修正要請

主要經歷

1939~41年 慶北女子高等學校 在學 中 投砲丸 選手로 活動하며 3年間 第2, 3, 4回 全國體典에서 韓國新記錄 樹立
1944年 이화여전을 中退하고 大邱매일신문사 記者로 入社
1945年 上京하여 朝鮮映畫社 撮影所 스탭으로 入社
1950年 韓國戰爭 勃發 後 國防部 撮影臺에 入隊
1953年 從軍映畫를 만들다 만난 劇作家 이보라와 結婚 後 釜山에 定着
1954年 박남옥 프로덕션 設立, <未亡人> 演出
1959~60年 月刊映畫雜誌 <시네마 팬> 創刊 및 發行人으로 活動
1957~79年 둘째 兄夫가 社長으로 있는 東亞出版社 管理 課長으로 在職
1980年 딸의 儒學과 더불어 都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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映畫人 情報調査

出處 : 韓國映畫人 情報調査
1923年 慶尙北道 하양에서 出生하여 이화여전 家政科를 中退했다. 韓國 最初의 女子 監督이다. 이화여전 中退 後 大邱에서 新聞記者로 活動하던 그는 朝鮮映畫社撮影所에서 編輯과 스크립터 일로 映畫界에 進入하였다(한국영화감독사전). 그의 監督 데뷔作은 1955年 <미망인>이다. 前後 未亡人들의 現實과 葛藤들은 女性監督의 視線으로 그린 作品으로, “女性監督이 아니면 着眼하기 어려운 앵글 角度와 事件의 템포 리듬 等이 明快”하고 “生活感情을 銳利하게 融和하여 親近感”을 자아낸 作品이라는 評을 받기도 했다(동아일보). 그女는 이 作品 製作을 위해 언니에게 돈을 빌리면서 資金을 대었다 하며, 또한 갓 태어난 딸을 봐줄 사람이 없고 맡길 때도 없어서 등에 업고 다니며 映畫를 만들었다는 逸話가 傳해지기도 한다(여성영화인사전).

* 參考文獻
東亞日報 1955年 2月 27日子 4面
김종원 外, 『韓國映畫監督事前』, 국학자료원, 2004.
주진숙 外, 『女性映畫人 事前』, 소도, 2001.

[作成: 김한상]
出處 : 女性映畫人事前
박남옥 朴南玉

-監督, 1923年 慶北 하양 出生, 이화여전 家庭과 中退.

1997年 第1回 서울女性映畫祭 以後 박남옥은 女性映畫人들에게는 이제 낯설지 않은 存在가 되었다, 비록 映畫 마지막 部分이 流失되었지만 그는 <미망인>이라는 이 한 篇의 映畫로 韓國映畫史에서 決코 지나칠 수 없는 存在가 된 것이다.
박남옥이 <미망인>을 만든 過程은 그야말로 至難한 것이었다. 慶北 하양 出身으로 어려서부터 映畫를 엄청나게 좋아했으며 映畫俳優 김신재의 熱烈한 팬이었던 박남옥은 學生時節 文學과 美術, 特히 運動에 뛰어난 素質을 보여 39年에서 41年까지 投砲丸部門의 韓國記錄 保有者이기도 하였다. 以外에 短距離와 높이뛰기에서도 全國大會에서 入賞한 經歷이 있었고 이런 體力은 映畫를 만들 때 대단한 資産이 되었다. 이화여전 家政科에 進學해서도 學校 工夫 以外에 文學과 美術, 映畫에 心醉해 있었다. 結婚을 强要하는 집안 雰圍氣에 맞서 學校를 自退한 後 大邱에서 新聞記者로 일하던 박남옥은 解放 以後 마침내 바라마지 않던 映畫의 世界에 뛰어든다. 親舊의 男便이었던 윤용규 監督의 紹介로 朝鮮映畫社 撮影所에서 일하게 된 것이다. 그곳에서 오랫동안 憧憬해오던 俳優 김신재와 최인규 監督 等을 만나 編輯과 스크립터 일을 하며 映畫를 배웠다. 韓國戰爭 中에는 釜山에서 國防部 撮影部 所屬으로 從軍映畫를 만들었고 이 때 劇作家 이보라와 만나 結婚했다. 54年 6月 딸을 出産한 박남옥은 몸을 추스르기도 前에 이러나 映畫를 만들기 始作했다 男便인 이보라가 시나리오를 쓰고 박남옥과 個人的으로 讚한 俳優였던 移民者가 主演, 유계선이 助演을 맡았으며 그 外의 主要 스태프와 俳優들도 大部分 親分이 있는 사람들로 構成되었다. 이택균이 男子主人公을 맡았고 當時 新人이었던 나애심度 配役을 맡았다. 박남옥의 同僚인 全昌根, 전경준, 홍은원의 도움도 컸다. 16mm니까 돈이 그리 많이 들지 않을 거라는 計算에 박남옥은 언니에게 돈을 빌리고 집안에서 돈을 얻고 해서 映畫撮影을 始作했다. <미망인>의 크레딧에 나오는 姊妹프로덕션은 여기서 비롯되었고 製作 全昌根, 總進行 전경준이라는 크레딧은 함께 苦生하고 걱정해준 것에 對한 答禮의 性格이 더 强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장마철이라 일을 못하고 그에 比例해서 돈만 들어가기 始作했다. 갓 태어난 딸은 봐줄 사람이 없고 맡길 때도 없어 등에 업고다니며 映畫를 만들었다.
스태프들에게 밥을 해먹여가면서 만든 映畫, 中央廳에 있는 錄音室을 아이를 업고 드나들며 만든 映畫  <미망인>은 興行에는 成功하지 못했지만 50年代 映畫로서 示唆하는 點이 많다. 當時 社會的 問題로까지 提起 되던 戰爭寡婦 問題를 다루면서도 이 映畫는 傳統과 近代의 갈림길에 선 女性들의 性的 欲望을 尖銳하게 다르고 있었다. 主人公 ‘新’李 女性으로서의 欲望과 딸에 對한 母性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이라든지 或은 男便 親舊로부터 經濟的 도움은 받지만 그와의 關係에서 卑屈하거나 些少한 感情을 개입시키지 않는 點이라든지 하는 것은 主人公 神을 近代的 女性主體로서 자리매김하게 한다. 當時 大部分의 映畫에서 보이는 過剩이나 課長이 보이지 않는 이 映畫는 速度를 調節하면서 차분하고 淡淡하게 이야기를 展開하고 있다. 또 하나 이 映畫에서 特徵的인 것은 흔히 男性을 中心으로 性愛가 벌어지는 大部分의 映畫와 달리 女性 登場人物들의 關係를 中心으로 하고 있다는 點이다. 이 映畫가 但只 最初의 女性監督의 映畫가 아니라 女性映畫로도 遜色이 없는 理由는 바로 이처럼 女性들 사이의 關係와 女性들 內面의 葛藤과 欲望을 銳利하게 捕捉해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映畫 한 篇으로 映畫 演出을 접을 수밖에 없었던 박남옥의 當時 現實이 至極히 안타깝게 여겨지며 同時에 當時의 劣惡했던 映畫界 現實과 女性으로서의 位置라는 二重的인 어려움을 다시 한番 想起하게 되는 것이다.(변재란)

監督
-55 未亡人
出處 : 韓國映畫監督事前
1923年生. 慶尙北道 하양 出身으로 韓國 最初의 女性 映畫監督이다. 學生 時節 文學,美術,運動 等 多方面에 才能을 보였던 그는 이화여전 家政科에 다닐 때에도 文學,美術,映畫에 빠져있었다. 中退 後 大邱에서 新聞記者로 生活하던 그는 親舊 男便인 윤영규 監督의 紹介로 朝鮮 映畫史 撮影所에서 編輯과 스크립터 일을 한 것이 映畫 活動의 始作이었다. 以後 그女는 韓國戰爭 中에 國防部 撮影部 所屬으로 從軍映畫를 만들었는데, 이때 劇作家 이보라를 만나 結婚하게 되었다. 그의 映畫 데뷔는 1955年 <미망인>이었다. <미망인>의 시나리오는 男便 이보라가 썼고, 主演에는 親分이 있던 移民者와 유계선이 맡았다. 映畫 內容은, 題目 그대로 戰爭 未亡人에 關한 것이다. 未亡人이 男便 親舊의 도움을 받지만, 그의 聯政은 뿌리친다. 그러나 그의 夫人이 疑心하게 되면서 問題에 부딪히고 結局 그女는 偶然히 만난 男子와 같이 살게 되지만 그 男子와 딸이 갈등하게 되고, 結局 옛 戀人을 잊지 못하는 男子가 떠나간다는 內容이다. 當時 이 映畫는 興行에 成功하지는 못했지만, 若干의 好意的인 評價를 받기도 했다. 박남옥은 平生 한 篇의 映畫만 演出했을 뿐이지만, 뿌리 깊은 男性 中心主義 社會에서 女性 監督이 迂餘曲折을 겪으면서(실제로 그女는 아이를 업고 現場에서 演出을 했다) 演出했다는 點에서 決코 그 意義가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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