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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MDb - 韓國映畫데이터베이스
강수연
Kang Soo-yeon / 姜受延 / 1966  ~  2022
代表分野
俳優
데뷔作品
핏줄 1976
活動年代
1970, 1980, 1990, 2000, 201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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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모그래피 ( 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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俳優 :
情이 (연상호, 2022) 서현
주리 (김동호, 2012) 수연
映畫판 (허철,정지영, 2011)
써니 (강형철, 2011)
달빛 길어올리기 (임권택, 2010) 支援
검은 땅의 少女와 (전수일, 2007) 特別出演
韓半島 (강우석, 2006) 명성황후
써클 (박승배, 2003) 오현주 檢事/山興1
第8回 春史 羅雲奎 映畫 藝術制 (, 2000) 進行
松魚 (박종원, 1999) 淨化

主要經歷

1969年 네 살 때 兒役俳優로 映畫 入門
1971年 TBC 드라마 <똘똘이의 冒險>으로 TV 活動 始作
1987年 獄官文化勳章 敍勳
1991年 모스크바 映畫祭 審査委員
1998年 7月 第3回 釜山國際映畫祭 執行委員
1998年 東京映畫祭 審査委員
1999年 第3回 富川國際판타스틱映畫祭 審査委員
2000年 6月 스크린쿼터守護天使團 副團長
2000年 8月 第5回 釜山國際映畫祭 審査委員
2007年 7月 第9回 서울國際靑少年映畫祭 審査委員
2007年 8月 몬트리올 國際映畫祭 審査委員
2009年 10月 釜山國際映畫祭 플래시포워드上 審査委員會 委員長
2011年 第9回 아시아나國際短篇映畫祭 競爭部門 審査委員長
2013年 시드니國際映畫祭 審査委員
2015年 釜山國際映畫祭 共同執行委員長

其他情報

映畫界 入門背景
偶然히 映畫關係者의 눈에 띄여 4살때 처음 映畫를 찍었고 繼續 映畫,演劇,TV,CF에 出演했다. 아주 어려서부터 여러가지를 했고 雰圍氣는 다 익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中에서 映畫가 磁場 재미있었기 때문에 高2때 本格的으로 映畫에 對해 工夫를 해보고 싶어서 쭉 映畫만 찍었다.
主要 映畫作品
핏줄(1976,이혁수)
씨받이(1986,임권택)
미미와 철수의 靑春스케치(1987,李揆亨)
연산군(1987,이혁수)
우리는 只今 제네바로 간다(1987,송영수)
감자(1987,변장호)
業(1988,이두영)
아제아제 바라아제(1989,임권택)
墜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1989,장길수)
베를린 리포트(1991,박광수)
競馬場 가는 길(1991,장선우)
그대안의 블루(1992,이현승)
웨스턴 애비뉴(1992,장길수)
그 女子 그 男子(1993,김의석)
薔薇의 나날(1994,곽지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1995,오병철)
블랙잭(1997,정지영)
處女들의 저녁食事(1998,임상수)
松魚(1999,박종원)
主要其他作品
■ 主要作品(TV)
1976年 TBC <똘똘이의 冒險>
1979年 TBC 어린이날 特輯 드라마 <하늘에서 온 便紙>
1981年 KBS2 <달무리>
1982年 KBS1 <風雲>
1983~86年 KBS1 <高校生 日記>
1985年 MBC <엄마의 房>
2001~02年 SBS <女人天下>
愛着作品 및 事由
本人이 찍은 作品은 다 愛着이 가기 때문에 얘기가 힘들다.또 많은 作品을 잇달아 찍기 때문에 지난 것에 執着할 必要가 없다는 생각을 한다.
하고싶은 말
延期作 되고 싶은 사람들에게 한마디....
延期는 짧은 時間에 되는 것이 아니다. 延期는 平生 成熟해나가는 過程에서 開發해 가는 것이다. 젊고 예쁠 때 映畫를 찍을 수 있지만 젊음은 짧으니 끊임없이 開發하는 努力이 必要하다. 演技하는 것은 끈질긴 自己와의 싸움이기 때문에 演技를 始作하려면 그것을 覺悟하고 始作했으면 좋겠다. 演技에 對한 工夫도 重要하지만 무엇을 배우고 살든 演技에 도움은 되지만 自己 開發을 熱心히 하고 健康하게 사는 것이 重要하다고 생각한다. 演技를 始作했다가 今方 抛棄해 버리는 사람이 많은 것이 아쉽다.
映畫속 名所
名所로 꼽을 곳이 많다. 映畫를 찍으러 여러 곳을 다녀봤는데 그때마다 우리나라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들이 알지 못해서 가지 않는 奧地가 참 많은데 그런 곳을 사람들이 많이가서 봤으면 하는 마음도 있지만 사람들이 안가서 그대로 保存되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無分別한 開發이 問題라고 말하고싶다. 映畫를 찍었던 곳에 나중에 다시 가 보면 많이 바뀌어서 참 아쉬웠다. 開發은 開發대로 하고 保存할 것은 保存했으면 좋겠다는 本人의 생각이다. 사람들이 映畫 찍을 곳이 없다는 말을 많이한다. 우리나라 어느 都市를 가도 다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問題라고 指摘한다. '깊은 슬픔'에서 옛 故鄕마을로 삼았던 海南의 골목 안 草家지붕 마을이 참 예뻤다고 記憶한다.'씨받이'와 '감자'를 찍었던 褓쌈마을은 車가 다니지 않는 奧地마을으로 直接 보면 더 感歎할 만한 곳이다. '아제아제 바라아제'에서 나온 腺癌道士는 季節마다 獨特한 맛이 느껴지는 곳이라며 같은 場所가 이토록 다른가 싶을 程度였다고 映畫에서 山이 別로 나오지 않은 것은 아쉽다.
追求하는 스타일/配役
延期는 틀을 定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映畫에도 다른 것들처럼 流行이 있어서 時代를 理解하고 觀客이 어떤 要求를 하나 빨리 把握해서 時代가 要求하는 表現을 하는 것이 重要하다고 생각한다. 꼭 어떤 스타일에 얽매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여태까지 안 해본 驛이 없을 程度로 自己 나이 때의 驛까지 다 해봤다. 어떤 作品인가가 重要하지 驛이 重要하지 않다. 미운 驛이나 예쁜역이나 좋은 사람 驛이나 나쁜역이나 作品 속에서는 다 똑같다는 것이다. 다만 剛한 驛이든 日常을 延期하는 驛이든 作品의 完成度나 主題에 얼마나 다가 가느냐가 重要하다고 생각한다.
自己紹介 및 趣味
映畫만 찍기 때문에 空白期가 많은 便이다. 熱心히 사는 것이 演技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쉴 때는 그저 便하게 一般 사람들이 집에 있을때 하는 여러가지 趣味(冊 읽기,음악듣기,운동)를 즐기고 푹 쉬는 便이다. 映畫를 찍을때는 規則的으로 生活하지 못했기 때문에 運動을 꼭 한다. 運動은 골프를 치고 一週日에 半 넘게 헬스場에 가서 鍛鍊을 한다. 그리고 作品이 決定되면 그때는 그驛에 맞는 準備를 한다.

映畫人 情報調査

出處 : 女性映畫人事前
강수연 姜受延

- 俳優. 1966年 8月 18日 서울 出生. 同名女高 卒業. 고려대 言論大學院 最高位課程 修了.

初等學校 1學年때 雜誌 「어때동무」에 寫眞이 실리면서 映畫俳優 강수연의 기나긴 旅程은 始作되었다. 76年 <핏줄>(이혁수), TV드라마 <똘똘이의 모험="">으로 演技生活을 始作한 강수연은 어려운 家庭環境에서도 꿋꿋하게 자라나는 어린이를 깜찍하게 演技하며 많은 이들을 울렸다. 兒役時節 강수연의 代表作인 <별 삼형제="">(77,김기), <어딘가에 엄마가="">(78, 정회철), <하늘나라에서 온="" 편지="">(79, 김준식) 等은 <미워도 다시="" 한번="">(68, 정소영) 같은 母性 멜로드라마의 뒤를 이어 觀客의 눈물샘을 刺戟한 映畫들이다.
85年 (김수형)에서 演技 志望生으로 出演하여 兒役 이미지에서 벗어났고 이어서 <고래사낭2>(85, 배창호)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87, 李揆亨)에 出演하며 청춘스타 강수연으로 變身하였다. <고래사녕2>의 배창호 監督은 “아직 어린 배우지만 깡다구가 있고 무척 熱誠的이다. 本人이 選擇한 作品을 위해서 다른 計劃을 모두 保留한 채 물불을 가리지 않고 演技에 專念하는 眞摯한 姿勢는 높이 사줄 만하다”고 강수연의 潛在力을 認定하였고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의 이규형 監督 亦是 “執念이 强한 演技者이다. 自身이 생각하는 段階에 다다르지 못한 演技를 할 땐 周圍의 評價와는 關係없이 다시 해야 直星이 풀린다”라며 그의 프로 意識을 높이 샀다.
潑剌한 女大生으로 出捐한 <미미…>가 興行에 成功하고 <됴화>(87, 유지형) <연산군>(87, 이혁수) <감자>(87, 변장호) 等에 잇달아 出演하며 成人演技者로서 變身하는데 成功한 강수연은 <씨받이>(86, 임권택)로 87年 베니스映畫祭 女優主演賞을 受賞하며 새로운 跳躍을 하게 된다. 國內 最初로 主要한 國際映畫祭에서 女優主演賞을 받은 그는 이어서 <아제 아제="" 바라아제="">로 모스크바映畫祭 女優主演賞을 受賞하며 “월드 스타”로 불리면서 韓國을 代表하는 女俳優로 脚光받았다. 기나긴 沈滯期를 거쳐 韓國映畫가 海外에 進出하여 認定받고 90年代의 中興期를 準備하는 時點에 강수연이 있었다, 그 自身 兒役俳優 時節을 넘어 成人演技者로 탈바꿈하는 時節 韓國映畫도 變化의 채비를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役割은 다양하다. <미미…>의 潑剌한 女大生, 誤放殺이 낀 恨많은 女人을 다룬 <됴화>, 장녹수로 扮한 <연산군>, 雜草같은 接待婦 役割을 맡은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87, 송영수), 가난한 農村 아낙으로 나오는 <감자> 等. <씨받이>같은 時代물에서 男子들에 依해 運命이 휘둘리는 가냘픈 女人네로,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89, 장길수)나 <베를린 리포트="">(91, 박광수)에서는 混沌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젊은 女性으로 登場한다. 그의 作品들에서는 土俗的인 濃艶함과 挑發的인 現代的 感覺이 共存하면서 삶의 어지러움과 絶望이 吐해진다. <그대 안의="" 블루="">(92, 이현승)에서 結婚式場을 뛰쳐나와 드레스를 끌면서 아스팔트를 헤매는 女性의 가쁜 숨소리를 강수연이 當代 高學歷 女性이 갖고 있던 結婚制度에 對한 葛藤과 苦悶을 보여준 代表的인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80年代 中盤 원미경, 이미숙, 이보희 等의 트로이카 體制가 俳優들의 結婚 等의 理由로 주춤한 以後 90年代 새로운 女俳優 스타들이 몰려 올 때까지 강수연은 ‘映畫만을 지키는 獨步的인 存在’로 映畫界의 中心에 있었다. 徹底한 自己管理와 豐富한 演技經驗으로 恒常 새로운 演技를 보이는 그는 “天賦的인 끼를 타고난 스타”의 人生을 꾸준히 밟고 있다. 스크린쿼터 守護天使團 副團長을 맡는 等 韓國映畫를 위한 일들을 서슴지 않는 그는 自身과 함께 커온 韓國映畫 中興期의 受惠者인 同時에 功勞者이기도 하다.(김수미)
出演
-76 나는 告白한다, 핏줄. -77 別 三兄弟. -78 비둘기의 合唱, 슬픔은 이제 그만, 어딘가에 엄마가. -79 하늘나라에서 온 便紙. -80 마지막 밀애. -82 깨소금과 옥떨메. -83 約束한 女子. -85 고래사냥2, W의 悲劇. -86 씨받이. -87 감자, 됴화, 미미와 철수의 靑春스케치, 연산군, 우리는 只今 제네바로 간다. -88 미리 마리 우리 두리, 業. -89 그 後로도 오랫동안, 阿弟 阿弟 바라아제, 墜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91 競馬場 가는 길, 駱山風(臺灣製作), 베를린 리포트. -92 그대안의 블루. -93 그 女子 그 男子, 웨스턴 애비뉴. -94 薔薇의 나날. -95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96 至毒한 사랑. -97 깊은 슬픔, 블랙잭. -98 處女들의 저녁食事. -99 松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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