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의소리 최성일 교수 존로스 선교사
(왼쪽부터) 賢淑 폴리 代表, 최성일 敎授, 에릭 폴리 CEO ©노형구 記者

韓國 殉敎者의소리(한국VOM, CEO 에릭 폴리, 代表 賢淑 폴리)는 7日 서울 정릉 事務室에서 崔성일 한신대 名譽敎授가 著述한 冊 ‘最初의 韓國語 聖書와 韓國 改新敎의 起源’ 出刊 記念 記者會見을 열었다. 이 冊은 韓國VOM이 舊韓末부터 朝鮮 基督敎 宣敎師로 活動한 스코트랜드聯合長老敎會 所屬 존 로스의 宣敎 歷史를 硏究한 崔 敎授의 博士學位 英語論文을 韓國語로 飜譯해 出刊한 것이다.

韓國VOM에 따르면, 존 로스 宣敎師는 北韓 地下敎人의 뿌리가 될 수 있다. CEO 에릭 폴리 牧師는 “韓國敎會가 成長하려면 韓國 基督敎의 初期 歷史를 알아야 한다”고 했다.

이어 “韓國 改新敎의 起源은 두 그룹으로 分類된다. 아펜젤러, 언더우드, 알렌 等 西洋 宣敎師들이 세운 敎會에서 出發한 基督敎다. 이들이 當時 朝鮮 사람들을 顚倒 方法이 病院, 學校 等 文化나 生活方式의 潤澤함을 提供하면서 基督敎의 魅力을 呼訴하는 것으로 基督敎를 傳하는 것”이라며 “朝鮮 사람들이 外國 宣敎師들이 세운 病院이나 學校, 또는 이들의 舍宅을 訪問하면서 基督敎에 魅力을 느꼈다”고 했다.

그러면서 “또 다른 그룹은 앞선 西洋 宣敎師들보다 먼저 온 스코틀랜드 出身 존 로스 宣敎師를 中心으로 한 基督敎 電波 方法이다. 이들은 病院이나 學校 等을 세우는 것보다, 聖經 飜譯本을 朝鮮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方式으로 顚倒했다”며 “이 聖經 飜譯을 했던 朝鮮人들은 처음엔 基督敎人이 아니었으나 聖經을 飜譯하는 過程에서 基督敎人이 됐다”고 했다.

그는 “飜譯된 聖經 1萬 5千 卷이 아펜젤러 等 앞서 紹介한 宣敎師들이 朝鮮에 到着했을 때보다 이미 朝鮮 땅에 配布된 狀態였다”며 “그의 宣敎 方法論은 宣敎師가 宣敎地에 먼저 派遣되기보다, 聖經을 먼저 그 宣敎地에 配布하는 것”이라고 했다.

에릭 폴리 牧師는 “朝鮮에 宣敎한 두 部類의 宣敎師들은 서로의 다름을 尊重하고 理解했다. 존 로스가 聖經으로만 傳道하는 宣敎 戰略은 1930年代까지 效果的으로 이뤄졌고, 오늘날 北韓 地下敎人들에게 莫大한 影響力을 미치고 있다”며 “1989年부터 南韓 基督敎는 每年 敎勢 減少勢를 直面하고 있다. 特히 코로나19 팬데믹 以後 敎勢는 以前 對備 全體 敎會의 30%가 사라졌다”고 했다.

에릭 폴리 牧師는 “一角에선 이 問題를 政治的으로 解決하려는 傾向이 있다. 假令 基督敎를 選好하는 政治家를 選出하면 된다는 것”이라며 “하지만 다른 戰略이 있다. 존 로스에서 始作된 宣敎 方法論”이라고 했다.

그는 “이는 아펜젤러 等 西洋 宣敎師들이 病院, 學校 等 生活의 潤澤함을 提供하면서 傳播하는 基督敎 方式과 달리,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傳導하는 方式”이라며 “존 로스의 宣敎 方法論으로 인해 北韓 地下敎會가 成長했다. 이 方法論은 北韓 地下敎會의 胎動 以來 現在까지 持續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오늘날 南韓과 北韓 敎會의 成長勢를 比較하면, 强한 政治的 迫害를 經驗하고 있음에도 不拘하고 北韓 敎會의 成長勢가 南韓보다 앞서고 있다”고 했다.

에릭 폴리 牧師는 “이러한 北韓 敎會의 强力한 成長勢를 牽引한 존 로스의 宣敎 方法論은 敎會가 存在하려면 하나님 말씀에 對한 確信이 强烈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우리는 존 로스의 宣敎 方法論을 平凡한 基督敎人들에게 널리 알리고 싶어, 존 로스 宣敎師 專門家인 최성일 한신대 名譽敎授에게 그가 著述한 존 로스 關聯 論文의 出刊을 提案했고, 그의 承諾에 따라 殉敎者의 소리에서 冊을 出刊하게 됐다”고 했다.

에릭 폴리 牧師는 “이는 존 로스 宣敎 方法論에 關해 說明하는 最高의 冊”이라며 “아울러 이 冊은 韓國 基督敎의 傳統인 ‘聖經 사랑’을 回復하는 지름길을 提示한다. 韓國 基督敎를 부흥시킬 唯一한 方法은 聖經 말씀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冊의 著者 최성일 한신대 名譽敎授는 “존 로스가 朝鮮人을 만난 건 하나님의 攝理였다. 제가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大學으로 留學할 當時 指導 敎授는 내게 ‘존 로스가 韓國 基督敎에서 매우 重要한 人物’이라며 博士學位 論文 著述을 提案했다”며 “안수받은 宣敎師로서 中國 滿洲에 派遣됐던 존 로스가 어떻게 朝鮮 宣敎를 決心했을까. 그는 朝鮮人 몇 名을 雇用해 한글 聖經 飜譯 作業에 突入했고, 1882年 누가복음을 始作으로 1887年 新約聖經 完譯을 完遂하기에 이르렀다”고 했다.

崔 敎授는 “韓國 基督敎 初期 歷史는 美國 宣敎師로부터 始作했다고 州로 著述되지만, 實質的인 始作은 존 로스 宣敎師에게서 始作됐다”고 했다.

그는 “3000年 前 宣布된 하나님의 말씀이 韓國語로 飜譯되지 않았다면 韓國敎會가 發生하지 않았을 것이다. 結局 飜譯은 會心의 歷史”라고 했다.

그러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成肉身 事件에 이어 우리 基督敎人들이 말씀을 받아들여 삶이 바뀌는 歷史가 두 番째 事件이라면, 聖書는 宣敎의 道具가 아니라 本質”이라며 “말씀이 없다면 宣敎가 이뤄질 수 없다. 어떤 形態로든 말씀이 飜譯되고 宣布돼야 宣敎가 完遂된다”고 했다.

崔 敎授는 “존 로스는 하나님의 말씀을 傳播해야 하는 熱情밖에 없었다. 그는 飜譯된 하나님의 말씀을 권서인을 통해 朝鮮에 傳播했고, 結局 韓國基督敎가 發展된 것”이라며 “그러나 韓國敎會의 衰退는 1980年代부터 하나님의 말씀보다 外的인 部分에 集中한 탓이라고 본다”고 했다.

崔 敎授는 “1882年 존 로스가 누가복음을 飜譯할 當時엔 口傳 文化로서, 一般 百姓들은 읽을거리가 없던 그 時節에 聖經을 暗誦하는데 卓越했다. 그러나 只今은 외우는 것이 쉽지 않은 時代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외워야 살아 움직여 우리에게 役事한다”고 했다.

그는 “當時 商人 김청송이 滿洲에서 韓藥 장사를 마치고 존 로스의 聖經 飜譯 作業을 위해 採用됐고 이 作業 過程에서 누가복음 聖經 모두를 외워버렸다. 그리고 그는 鴨綠江 近處 自身의 故鄕으로 내려가 1年 半 동안 家庭 75곳에 누가복음을 傳播하고 洗禮를 줬다”며 “존 로스의 聖經 飜譯本은 韓國 새門안 敎會 創立에 影響을 줬다. 이처럼 존 로스는 韓國 改新敎의 기틀을 잡은 人物”이라고 했다.

崔 敎授는 一角에서 알려진 존 로스 일화에 關해 誤解가 있다며 “존 로스가 韓國語 聖經 飜譯 作業에 直接 參與하지 않았고, 다만 資金 調達 等 出版 責任 役割을 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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