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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祖上과 동양척식회사(東洋拓殖會社)
어리석은 祖上과 동양척식회사(東洋拓殖會社)

엄상익(辯護士)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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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銀行長을 지냈던 분한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우리銀行이라고 우리 것인 줄로 아는데 그렇지 않아.”
  
  그는 우리나라 큰 會社 株式들의 많은 持分이 外國人 所有란 말을 하다가 比喩로 그렇게 말했다. 金融資本主義 新自由主義가 되면서 뉴욕에서 株式으로 아프리카의 구석까지 世界를 知能的으로 컨트롤한다는 것 같았다.
  
  美國의 펜타곤에서 오랫동안 公務員으로 勤務한 韓國 女性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女가 이런 말을 했다.
  
  “韓美聯合訓鍊을 할 때 美國의 펜타곤 公務員 資格으로 作戰會議에 參席한 적이 있어요. 美國의 作戰將校가 發表를 하는 重要한 자리에 韓國軍 將校들이 제대로 參席을 하지 않는 걸 目擊했어요. 自己 나라를 지키는 重要한 內容들인데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無識해서 휘둘리는 게 안타깝더라구요.”
  
  그런 말을 들으면서 뜬금없이 日本의 동양척식회사가 머리에 떠올랐다. 동양척식회사란 그냥 우리나라의 땅을 빼앗기 위한 日帝의 機構라고만 배웠다. 그러다가 親日關係의 訴訟을 하는 過程에서 그 會社의 設立過程과 當時의 時代狀況에 關한 資料들을 읽었다. 내가 漠然히 배웠던 것 같이 單純한 게 아니었다. 그냥 나만 알고 끝내는 것이 아까와 核心을 이렇게 整理해 둔다.
  
  1908年 第24回 日本 議會에서 ‘동양척식회사法案’이 通過됐다. 日本과 朝鮮의 合作會社였다. 1909年 8月26日 日本政府는 法律制63號로 朝鮮政府는 法律制22號로 그 法案을 同時에 公布했다. 日本政府와 朝鮮政府가 임명한 委員들로 構成된 設立委員會가 만들어졌다. 委員會에서 日本政府의 代表가 會社設立의 內容을 이렇게 說明했다.
  
  “동양척식회사의 주는 20萬 主로 하고 1週의 金額을 50원으로 하기로 했습니다. 日本과 朝鮮의 共同投資인데 朝鮮側은 논 5萬7千 情報 밭 5千7百 情報를 現物로 投資하기로 했습니다. 價格으로 치면 3百萬 원으로 計算했습니다. 그에 따라 朝鮮 政府에는 6萬 株를 配定할 豫定입니다.
  
  任員構成에 있어 2名의 副總裁中 한 名은 朝鮮人으로 하기로 定款 草案을 잡았습니다. 萬若의 事態가 發生해서 總裁 有故時 朝鮮人 副總裁가 經營權을 掌握하는 것은 危險하다고 생각합니다. 朝鮮人 副總裁가 會社法에 對한 知識이나 經營에 對한 經驗이 없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엄청난 日本人 資本이 投資되는데 經營에 對한 經驗이 全혀 없는 朝鮮人 副總裁가 經營에 影響力을 미친다고 하면 株式公募에서부터 支障이 있을 것으로 봅니다. 앞으로 이 會社는 朝鮮뿐 아니라 滿洲와 中國 시베리아 開發을 위한 會社입니다. 이 會社의 經營이 본 軌道에 오를 때까지 日本 政府는 補助金을 支給하기로 關係部處間 合意가 되어 있습니다. 每年 30萬 원씩 8年間 支給하겠습니다.”
  
  東京에서 만들어진 定款이 朝鮮政府에서 字句修正조차 없이 通過됐다. 會社法이나 經營을 아는 大臣이나 實務者는 없었다. 日本과 朝鮮에서 株式公募가 있었다. 株式 總數 20萬 週中 13萬1700週가 公募에 부쳐졌다. 日本에서는 公募株를 申請하려고 全國的으로 亂離였다. 申請한 株式數가 公募한 株式의 35倍가 넘었다. 교토 도쿄 나고야 等地에서 公募株 申請이 殺到했다. 오사카가 應募競爭이 가장 熾烈했다. 反面 朝鮮에서는 政府나 國民들이 公募에 對한 槪念조차 없었다. 株式에 對한 1回 拂入金 納入이 끝나고 會社가 正式으로 設立되고 任員들이 任命됐다. 日本側 理事들은 모두 東京帝國大學을 나온 日本의 最高 엘리트들이었다.
  
  그 무렵 朝鮮 땅에서는 妙한 얘기들이 나돌기 始作했다. 張差 6百萬 名의 日本人들이 朝鮮 땅으로 移住해 온다는 內容이었다. 淸日戰爭 盧日戰爭에 놀란 朝鮮人들은 모이면 이렇게 수근거렸다.
  
  “倭놈들이 배를 타고 와서 바닷가 아무데로나 올라온다더군. 江을 따라 배가 갈 수 있는 데는 어디건 올라와 자리를 定한다는 거야.”
  “그러면 우리 農土나 집터를 다 빼앗기겠군.”
  
  “그렇지 俄羅斯 甁程度 當해내지 못한 日本인데.”
  “우리가 깊은 山 속으로 들어가 살아야 해.”
  
  나는 그 當時의 資料를 보면서 定款 作成에 異議를 提起하고 싸움닭 같은 朝鮮人 理事를 몇名이라도 넣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想像을 해보았다. 남을 탓하기 以前에 自身의 모습을 바라보고 個人이나 國家나 좀 더 똑똑해져야 하는 게 아닐까. 自尊感이 없으면 모든 걸 남의 탓으로 돌리기 마련이다.
  
  
  
  
[ 2024-06-13, 10:4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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