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謀陷에 빠지다

謀陷에 빠지다

安重根 콤플렉스 힐링 17篇

▲ 洪範圖將軍의 義兵部隊인 抛連帶(捕捐隊)가 組織되었고, 當時에 義兵은 火繩銃火繩銃으로 武裝했고, 4人1組로 射擊하였다. 日帝가 1908年 9月에는 ‘銃砲 및 火藥類 團束法’을 公布했고 銃砲類를 押收하였다.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東學黨들의 一部가 除暴救民除暴救民의 擧兵理念과 距離가 먼 도둑의 무리로 轉落한 點에 哀惜함을 禁할 수 없었다. 그들은 싸움이 拙劣했고 防備도 허술했다.    
                                                       
이때 安重根은 아버지가 일으킨 義兵部隊에 參加하여 侵入하는 難黨을 射殺하는 等 크게 活躍하였다. 그때 戰利品戰利品으로 鹵獲한 軍糧米 1千餘 포가 後日에 말썽이 되었다.
 
1895年 여름이 되자, 度支部代身度支部大臣 어윤중魚允中과 前 宣惠堂上宣惠堂上 민영준閔泳駿이 軍糧米 返還을 要求해 온 것이다. 折半은 魚允中의 所有이고, 나머지 折半은 민영준의 農作物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안태훈의 생각은 달랐다. 그것은 東學黨의 陣中에 있었던 것으로 返還해야 할 義務가 없다는 要旨의 答辯書를 보냈다.
 
“어魚?민閔 梁氏의 쌀은 自身들이 알고 있는 것과 다릅니다. 그것은 東學의 陣中에 있었던 것으로 案 等이 鹵獲한 것이니 返還할 理由가 없습니다.”
 
이 答辯書 提出로 後日에 어?민 梁氏로부터 謀陷을 當하게 되었다. 後日에 前 判書判書 김종한金宗漢으로부터, 
 
“只今 度支部代身 魚允中과 민영준 洋人은 曲浦穀包에 對하여 皇帝陛下에게 상주했지만, 그 內容은 安某가 國庫金을 納付하지 않고 손에 넣어 圖式盜食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시켜 探知하도록 했는데, 그 米穀으로 數千의 兵力을 키워 바로 反逆할 陰謀를 劃策하고 있습니다.”

하고 謀陷했다는 內容의 書信이 왔다. 태훈은 直接 上京하여 法官에 呼訴하여, 法部法部가 3審 裁判을 하였지만 決定을 審議하지 않았다.

“安某는 盜賊이 아니고, 東學黨이 도둑입니다. 스스로 義兵을 일으켜 擧兵한 것이고, 盜賊은 東學黨입니다. 國家에 一帶功臣一大功臣입니다. 그의 功勳을 表彰해야 합니다. 다른 不當한 말을 믿고 謀陷에 빠져서는 아니 됩니다.”
 
김종한이 辨明해 주었지만 政府는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當時 『朝鮮王朝實錄』은 안태훈 事件을 다음과 같이 記錄하였다.

안태훈安泰勳은 청계동淸溪洞 窩主窩主라는 이름을 가진 者로서 黃海道의 頭目이라는 指目을 받고 있는데 아직도 逮捕하지 못하고 있으니 끝내 관대히 容恕하기는 어렵습니다. 장사호는 法部法部에서 法에 따라 嚴히 다스리게 하고  안태훈度 法部法部에서 期必코 逮捕하여 一切 嚴히 다스리게 해야 할 것입니다.

조병길趙秉吉 等 11名은 다음 가는 法에 適用해야 마땅할 것이고, 金秉浩金炳浩 等 7名은 別途로 嚴히 다스려야 마땅할 것이며, 황두성黃斗星 等 7名은 마땅히 懲戒하여야 할 것입니다. 김창근金昌根 等 10名이 官廳에 抗拒하고 百姓들에게 暴虐하게 한 罪狀은 軍郡의 報告와 百姓들이 올린 글에 여러 番 올랐습니다. 최제우崔濟愚 等 20名은 모두 이미 멀리 달아나 버렸습니다. 本島의 裁判所裁判所로 하여금 特別히 譏察譏察하여 逮捕하고 罪에 따라 參酌하여 處理하도록 할 것입니다.

이른바 洪 敎師洪敎師라는 者는 프랑스 사람인데 청계동淸溪洞에서 살고 있습니다. 8, 9個 郡邑郡邑이 모두 그의 巢窟로 되고 6, 7名의 敎師敎士가 그의 右翼羽翼이 되고 있습니다. 顚倒傳道를 稱託하여 因緣을 맺고 弊端이 자라나며 行政에 干與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訴訟을 스스로 裁判하고 손을 묶고 발에 刑틀을 채워 매달거나 무릎을 꿇리는 刑罰을 平民에게 僭濫되이 施行했습니다. 이는 天下의 法律을 濫用하는 것일 뿐 아니라 兩國 間의 條約에도 실려 있지 않는 일입니다. 또 郭 敎師郭敎士라는 者는 그 못된 짓을 模倣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萬若 그대로 두면 憂患이 생길까 두렵습니다. 外部外部로 하여금 프랑스 公使館公使館에 公文을 보내 두 사람을 잡아다 調査하고 그 나라의 法의 前例에 따라 審理하고 判決하게 하는 것이 眞實로 辭意事宜에 合當할 것입니다.

輦路 樹齡守令들의 治績 評價 같은 데에 이르러서도 內部로 하여금 奏稟奏稟하게 하여 施行하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高宗皇帝가 允許하였다.

魚允中은 裁判에 나가지 않았다. 親러派의 勢力이 剛해져 1896年 高宗이 親日派 몰래 러시아 公使館에 옮겨가는 事件이 일어났는데, 이 事件을 俄館播遷俄館播遷이라 하였다.

이 事件으로 親日派 金弘集 等이 殺害당했다. 魚允中은 親日派가 아니었으나, 지레 怯을 먹고 故鄕으로 몸을 避하기 위하여 京畿道 龍仁에 到着했을 때, 何必 以前에 山訟山訟 問題로 다툰 바 있는 被害 當事者 庭園로 等에게 怨恨을 샀는데, 百姓들이 魚允中을 襲擊하였다. 魚允中은 庭園로의 머슴이 던진 돌에 맞아 죽었다.
 
혼자 남은 민영준은 안태훈에게 危害를 加하려 하였다. 政府가 안태훈을 逮捕하려 했으므로 몇 달 동안 政府에서 좋게 보지 않는 天主敎 敎堂에 避身하였다. 안태훈은 이 동안 講論을 듣고, 聖經을 읽고, 그리스도교에 入敎하였다. 그 後 故鄕으로 돌아왔다.

“나에게 씌워진 나라 反逆者란 굴레를 벗겨 주게.”
 
안태훈의 英이 보름달 무당에게 말하였다.
 
“벗겨 드리겠습니다.”
 
보름달 무당이 내게 말하였다. 그러나 안태훈에게 말한 것이었다. 보름달 무당이 請陪한 天安 무당은 안태훈에게 씌워진 살과 고를 풀어주려고 춤을 추며 社說을 읊었다.

“安 先生을 내가 보니 나라 亡하게 한 官鬼官鬼가 씌여 있구려. 내가 官鬼를 벗겨주면 되겠소?”
 
느닷없이 보름달 무당이 亡者에게 한마디 한다.
 
“내게서 官鬼를 벗겨 주시오.”
“煞풀이와 고풀이를 해야 해.”
“해 주시구려.”
“그렇게 하십시다.”

보름달 무당이 천천히 흐느적거리듯 몸놀림을 하더니 딱 멈추어 선다. 高度의 集中力이 생긴다. 그가 氣를 모아 확 뿌린다. 亡者가 휘청거린다. 亡者를 그물처럼 감싸고 있던 鬼氣가 걸려든 것이다.
 
그의 몸이 느리게 부채질을 하듯 흐느적거린다. 그러다가 멈추고 亡者를 노려본다. 재빨리 맴돌고 팔을 높이 뒤로 들어 힘차게 뿌린다. 그러자 亡者에게 붙은 官鬼가 떨어져 나가고 亡者의 寧殷 앞으로 쓰러진다. 보름달 무당이 手巾을 떨어뜨렸다가 줍는다. 그의 이 動作이 亡者를 일으켜 세운다.
 
“이제 始作이야.”
 
보름달 무당이 가볍게 말한다. 차가운 기운이 亡者에게서 빠져나가기 始作한다.

正月이라 大보름날 滿月살 막아주고
移越이라 寒食날은 韓食살 막아주고
三月이라 삼짓날은 年自殺 막아주고
四月이라 初八日은 官廳살 막아주고
五月이라 단오날은 駐千살 막아주고
六月이라 流頭날은 유옥간醬 막아요
七月이라 七夕날은 烏鵲橋烏鵲橋 머리를 막아주고
八月이라 보름날은 집안 가신家神을 모시고
九月이라 九日날은 九日製九日祭를 모시자
冬至섣달 西安風에 망고살亡姑煞을 다 막아주자
막아주자 막아주자 火災살禍災煞을 막아주자
막아주자 막아주자 棺材살官災煞을 막아주자
막아주자 막아주자 손재살損財煞을 막아주자
一年하고는 열두달 可燃하고는 열석달
三百하고는 六十일 하루같이 넘어가소
에~ 그 집 좋다 에~ 그 집 좋다 에루화 신아, 신아

 
煞풀이가 끝나고 이어서 고풀이로 들어갔다. 고는 心理學的으로 말하면 콤플렉스이다. 歷史를 따져 올라가면 人間이 마고에게 抗命하여 일으킨 오미五味의 叛亂, 五色五色의 叛亂, 오토五土의 叛亂에서 始作되었다. 叛亂으로 마고를 묶어 버린 것이 고이다. 맛에서는 쓴맛이다. 그래서 마고를 뜻하는 高姑라고 하거나 마고에게서 쫓겨나 人間이 當하게 된 고苦라고 한다. 姑는 마고가 人間에게 當한다는 뜻이고, 苦는 人間이 마고에게 當한다는 뜻이다. 이들 高는 人間들이 가지고 있는 集團無意識 안에 들어있는 고이다. 人間이 고를 向해 가는 길을 저승길이라 한다. 人間은 죽으면 그의 靈魂이 저승길로 들어서 그가 가지고 있는 原始元始 集團無意識人 遠視 遺傳因子 안으로 들어가서 安着한다.

불쌍한 亡者餘 어느 苦에 맺었는가 성주고에 맺었는가 七星高에 맺었는가
지고에 맺었는가
忍苦에 맺었는가 어느 高에 맺힌 고든 설서리나 풀어보세 성주고에 맺었으면 성주님이 感動下士 설서리나 풀어주실 것이요 七星高에 맺혔으면 七星님께서 풀어주실 것이요
지고에 맺혔으면 地神님이 풀어주실 것이요
忍苦에 맺혔으면 王儉님이 풀어주실 것이니 

보름달 무당이 고풀이의 서두를 私設하고 나서 마고의 고를 풀기 始作한다.

묶어라 묶어라
마고代身麻姑大神을 묶어라
고를 다섯 個를 묶으면 오고五苦가 되니
오고를 풀어내면
마고大臣이 풀리리라
그러면 마고大臣이 네게 와서
누군가 너를 묶은 忍苦人苦를 풀어 주리라  
너는 人間의 온갖 風霜을 다 겪다가
苦難의 길로 들어섰으니
이 길은 저승길이라
마고大臣이 네가 지은 고를 풀어주지 않으면
하늘에 지은 千古天苦
땅에 지은 지고地苦
사람에 지은 忍苦
어떤 高度 풀리지 않을 것이니
人間들이여 銘心하라
온갖 高價 다 풀려야
저승길이 닦여
마고代身 앞에 가서 설 수 있을 것이니
풀어라 풀어라
마고代身을 풀어라
마고代身을 풀으면
마고大臣이 너를 풀어주리라
 
누군가 말했다. 屍身을 묶는 것을 고라고. 또한 이승에서 풀지 못한 怨恨을 고라고. 그래서 亡者가 當하는 괴로움이 高架 된다고.
 
보름달 무당이 마고代身 고풀이 社說을 읊으며 高價 줄줄이 이어진 한 끝을 잡고 위로 올렸다가 아래로 내리치며 당겨 풀어내자 高架 풀리기 始作하였다. 나는 문득 마고 콤플렉스라는 單語가 떠올랐다. 마고의 콤플렉스를 내가 풀어주면 마고도 내가 陳 마고 콤플렉스를 풀어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보름달 무당은 高價 다 풀린 베를 한 아름 들어 올려 亡者에게 보여주었다. 高價 다 풀렸다는 뜻으로 안태훈에게 보여준 것이다. 
 
“보름달, 主賓을 불러 주게.”
 
老産 先生이 말하였다. 그러자, 내 몸에 들어와 있던 영이 사라지고 다른 靈이 나타나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마치 小便을 보기 始作할 때 瞬間的으로 느끼는 몸 떨림이나 몸서리치는 느낌과 類似한 느낌이었다. 그것은 내 몸의 깊숙한 곳에서 무엇인가가 나오는 느낌과 같은 것이었다.
 
“只今 내가 거리檢 先生의 몸 안에서 영 한 분이 밖으로 나오도록 해 드렸습니다. 그분이 말하게 해 보세요,”
 
보름달 무당이 내게 말하였다.
 
“나는 안응칠이야. 안자 太子 훈자 姓銜을 가진 분의 아들이지.”
 
내가 少年의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안응칠이가 누구요?”
 
내가 물었다.
 
“安重根이지.”
“그런데 왜 내게 안응칠로 나타난 것입니까?”
“事實 그대에게 請이 있다. 內淸을 들어주면 安重根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안응칠이 深刻한 音聲으로 말했다.
 
“무엇인지 말씀하시오.”
“내가 어려서부터 사냥을 좋아했기에 새와 짐승을 사냥하였소. 水陸製水陸祭를 지내어 내가 사냥한 새와 짐승의 靈을 慰勞해 주시오. 그러면 내가 當身의 請을 들어주겠소.”
 
나는 안응칠이 하는 말을 그대로 내입을 통하여 뱉어내었다.
 
“水陸製 지내기를 願하시니 해 드려야지요.”
 
보름달 무당이 말하였다. 나는 水陸製에 차려야 할 祭物이 걱정이 되었다. 돈이 없었던 것이다. 水陸製는 보름달 무당의 집 앞을 흘러가는 냇가에서 行하기로 하였다. 내가 걱정했던 祭物은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작은 床 하나에 올려놓을 만큼만 차렸기 때문이다.
 
보름달 무당은 안응칠이 쏘아 죽인 짐승의 靈을 하나하나 불러서 흐르는 물을 떠서 씻겨 주었다. 처음엔 노루가 나왔고, 다음엔 토끼가 나왔고, 새들이 나왔다. 그들도 모두 흐르는 물을 떠서 씻겨주자 답답했던 나의 가슴이 뚫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들은 모두 내 周邊에서 날개를 달고 떠나가듯이 떠나갔다.
 
“이제 當身이 잡은 짐승들이 當身을 괴롭히지 않을 것입니다. 賢臣이 可能할 것입니다.”
 
보름달 무당이 말했다. 안응칠이 그가 가지고 다니던 사냥銃을 내게 주었다. 그것은 日帝 舊式 斷髮 獵銃이었다. 나는 그 銃을 받아서 祭物을 차린 床 앞에 놓았다. 그러자 銃이 사라졌고 안응칠度 사라졌다. 보름달 무당은 이番에도 사라진 짐승들의 살을 풀어주고 고를 풀어 주었다.

“내가 已往 그대가 불러 當身 앞에 나왔으니 請을 하나 더 들어주시오.”
 
다시 나타난 안응칠이 말하였다.
 
“말씀하세요. 내가 무슨 請인들 못 도와드리겠습니까?”
 
보름달 무당이 말하였다.(계속)

 

 
▲ 小說家 노중평

 
1985年 한국문인협회 ‘月刊文學’에 短篇小說 <旌善아리랑>이 當選되면서 作品 活動을 始作했다. <天地神明>, <사라진 歷史 1萬年>, <마고의 世界> 等 30餘 卷을 著述했다. 國家로부터 玉條勤政勳章, 勤政褒章, 大統領 表彰狀 等을 받았다. 現在 한국문인협회원, 韓民族團體聯合 共同顧問, 韓民族元老會員으로 活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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