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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藝術 受容 그래서 文化强國|週刊東亞

週刊東亞 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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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藝術 受容 그래서 文化强國

  • pisong@donga.com

    入力 2007-11-14 13: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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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한 예술 수용 그래서 문화강국

    아프리카 ‘베냉展’이 열리고 있는 브랑리 博物館의 2006年 開館 當時 모습.

    프랑스는 世界 거의 모든 나라의 것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飮食만 해도 모로코 레바논 터키 포르투갈 等 온갖 나라의 料理가 다 있다. 藝術도 그렇다. 파리에서 프랑스 것, 西歐的인 것만 찾는다면 이 都市의 折半은 抛棄하는 셈이다. 파리 브랑리 博物館에서 열리고 있는 아프리카 ‘베냉展’과 루브르 博物館에서 開催 中인 이슬람 ‘사파비展’도 文化的 多樣性의 事例들이다. 아프리카와 이슬람 藝術에 門外漢인 사람도 쉽게 그 文化의 깊이를 느끼게 하는 展示會들이다.

    19世紀 以前 베냉 王國의 彫刻은 西歐의 彫刻처럼 人體를 事實的으로 表現해내는 能力은 不足했다. 마치 몸과 얼굴에 비해 팔다리를 턱없이 가늘게 그리는 어린아이의 그림 같았다. 그러나 뱀 鰐魚 닭 豹범 等을 때로는 事實的으로, 때로는 特徵만 單純化해 表現하는 能力은 놀라웠다. 人間의 頭像 조각에도 生動感이 넘쳤다. 다만 그 表現力이 人體 全般에까지 미치지 못했는데, 그건 世界觀의 制約이지 本來 西歐와 技術的 差異가 있었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아프리카·이슬람 展示會 큰 反響

    지난해 門을 연 브랑리 博物館은 論難이 많은 곳이다. 自稱 原始美術 愛好家인 자크 시라크 前 大統領이 自身도 미테랑 前 大統領처럼 퐁피두 現代美術館 같은 걸 지어야겠다고 밀어붙여 세워진 博物館이다. 勿論 그곳 所藏品은 피카소에게 影響을 끼쳤을 程度로 淵源이 깊다. 피카소는 西區 視覺藝術의 規範을 깬 ‘아비뇽의 處女들’의 靈感을 트로카데로 民俗博物館에 展示된 아프리카 彫刻에서 얻었다. 그 博物館의 所藏品이 1937年 샤이오宮의 人類博物館에 옮겨지고 그것이 다시 지난해 이곳으로 옮겨졌다. 그럼에도 30萬餘 點의 所藏品에서 單 3500點을 가려내 展示해놓은 眼目은 늘 意欲만 앞세우고 成果는 不實한 시라크 前 大統領을 닮았다.

    그러나 ‘베냉展’은 달랐다. 아프리카 美術에도 깊이가 있다는 걸 보여줬다. 事實 베냉展에 브랑리 博物館은 場所만 提供했을 뿐이다. 本來 이 展示는 오스트리아 빈 民俗博物館의 것이다. 이런 展示가 많아질 때 ‘黑人은 白人보다 遺傳的으로 知的 能力이 떨어진다’고 말한 노벨賞 受賞者 제임슨 왓슨 博士 같은 이들의 설 자리가 없어질 것이다.



    루브르 博物館의 이슬람 美術展은 이란 사파비 王朝(1501~1736)의 美術을 보여준다. 이슬람 美術은 한눈에도 西區보다는 儒敎圈 美術 쪽에 가까웠다. 이슬람 陶瓷器는 儒敎圈 陶瓷器 水準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구리 그릇에 細工된 彫刻을 보면 혀를 내두를 程度로 精巧하다. 儒敎 文化圈과는 技術이 具現되는 材料의 差異가 있을 뿐 경지는 비슷했다.

    다양한 예술 수용 그래서 문화강국

    現在 루브르 博物館에서 開催 中인 이슬람 ‘사파비展’에서는 이란의 人物畫度 鑑賞할 수 있다.

    儒敎 文化圈에서처럼 이슬람 美術에서도 書藝가 큰 部分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들은 코란을 아름답게 새기기 위해 글字를 裝飾 文樣의 境地로 끌어올렸다. 이슬람 書藝는 글字로서의 意味가 남아 있으면서도 美術이자 문학인 獨特한 장르다. 또 이란의 人物畫는 高麗 佛畫처럼 精巧해 이슬람圈이 모든 肖像을 拒否했다는 一般的 認識을 되돌아보게 했다.

    얼마 前 프랑스 外務長官 베르나르 쿠슈네르는 이란 核을 沮止하기 위해 戰爭도 可能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프랑스의 다른 한구석에서는 原理主義와는 또 다른 이란의 傳統을 理解하려는 努力이 反響을 얻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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