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쪽방村' 出勤하는 박용만..."3年前 腦卒中, 내 삶 바꿨다" [속엣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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修正 2022.07.05. 午後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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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記者의 속엣팅
속엣팅
한 사람의 紹介로 만나 속엣말을 들어봅니다. 그 因緣을 통해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요. 因緣 따라 無酌定 만나보는 豫測不許 릴레이 인터뷰를 이어갑니다.
[프롤로그] “제가 도울 方法이 있을까요?” 박용만 前 會長이 成殯이 記事를 보고 記者에게 電話를 걸어왔습니다. 美國人 夫婦가 生母의 要請을 받고 新生兒 때부터 키운 成殯이를 入養하려는데, 法에 가로막힌 事緣입니다. 그 뒷이야기를 듣고는 “허 참, 답답하네”라는 혼잣말을 數次例 하는 그를 보며 인터뷰를 통해 性빈이를 도우면 되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事實 몇 달 前 누군가 속엣팅 走者로 그를 推薦했지만 그땐 “부담스럽다”며 固辭했던 朴 前 會長. 不時에 다시 들어온 인터뷰 要請에 “낚였다”고 웃으며 受諾했습니다.
지난달 27日 午後 서울 中區 같이걷는길 財團 事務室에서 박용만 前 두산그룹 會長이 포즈를 取했다. 그의 冊床엔 膳物로 받았다는 '自由人 박용만' 名牌가 놓여 있다. 우상조 記者

“社會事業家? 自由인? 난 뭔가로 規定되는 게 싫어요.”

大企業(斗山인프라코어, 두산그룹 等) 총수에서 大韓民國의 大企業부터 小商工人까지 아우르는 公益法人 經濟團體(大韓商工會議所) 首長까지. 15年 가까이 ‘會長님’으로 살아온 박용만(67) 前 會長은 더 以上의 呼稱을 拒否했다. “67살에야 처음 自由를 누리고 있다”면서다. 지난달 27日 서울 中區에 그가 私財를 털어 만든 ‘같이걷는길’ 財團 事務室에서 朴 前 會長을 만났다.

朴 前 會長은 每週 月曜日과 木曜日 아침 일찍 東大門區 쪽방村 廚房으로 出勤한다. 大韓商議 會長 退任을 앞둔 지난 2020年 11月 그가 建物을 사들여 세운 일터다. 이곳에서 直接 飯饌을 만들어 어르신들에게 配達한다. 金曜日은 鍾路 老人給食所에서 給食 代身 나눠줄 代替食品을 包裝하는 날이다.

박용만 前 會長을 만든 源泉은 '好奇心'과 '信仰'이다. 復活節 프로젝트로 壁에 걸린 東大門 市場 손수레로 만든 十字架를 비롯해 修女服으로 만든 '治癒의 베개', DMZ 鐵條網 十字架를 製作했다. 우상조 記者

Q : 奉仕는 어떻게 始作했나.
A : “나에게 重要한 源泉은 사람에 對한 好奇心이다. 奉仕도 好奇心에 始作했다. 2004年 親舊가 다니는 保育院에 따라갔는데, 아이들이 달려와 손을 잡았을 때 衝擊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내가 잘사는 것만 생각하다가 남을 돕는 기쁨을 알게 됐다. 그러다 2015年 天主敎 段中毒司牧委員會를 통해 서울驛 알코올 中毒者들을 위한 도시락 奉仕를 나가면서부터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Q : 어떤 생각인가.
A : “事實 술이란 選擇을 한 어른보다는 選擇肢가 없는 아이들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大部分 IMF 때 밀려나 再起하지 못한 분들이었다. 選擇肢가 많은 내 立場에서 본 驕慢이더라. 우리나라 國民所得이 3萬弗인데 社會安全網 投資는 經濟協力開發機構(OECD) 36個國 中 꼴찌다. 國民所得이 높아져도 兩極化가 甚해지니 極限의 狀況에 苦痛받는 사람은 恒常 있다. 社會安全網이 不足하면 構成員끼리 도와야지.”


Q : 쪽방村 廚房을 만든 契機는.
A : “2019年 北유럽 巡訪 出國 날 飛行機가 1時間 延着됐다. 2時 20分에 空港에 到着하자마자 腦卒中이 왔다. 豫定대로 2時에 離陸했다면 病院에도 못 가보고 죽었겠지. 當時 聖地巡禮도 다녀오고 새벽 미사까지 다녔는데 病院에선 異常하게 信仰을 完全히 잊었다. 6日 만에 찾은 携帶電話로 처음 電話限 相對가 廚房 建物 購入을 맡긴 親舊였다. ‘이런 일 하라고 살려주셨구나’ 싶었다.”

平生 꿈꾼 ‘自由人’
박용만 前 會長은 時間이 날 때마다 카메라를 들고 길을 나선다. 寫眞家가 되고 싶어 眞摯하게 退社를 苦悶했을 程度로 寫眞에 對한 그의 愛情은 깊다. 우상조 記者
朴 前 會長은 늘 自由人을 꿈꿨다. 大學 卒業 後 父親인 朴斗秉 斗山그룹 初代會長의 勸誘로 銀行을 다녔지만, 適性에 맞지 않아 美國 留學길에 올랐다. 經營學碩士(MBA) 過程을 마치고 하버드大 建築과 入學을 準備하던 中 兄님의 呼出로 斗山建設 뉴욕支社에 入社했다. 寫眞家가 되고 싶어 35살 두산飮料 營業常務 時節 眞摯하게 會社를 그만두려고도 했지만 “너무 늦었다”는 생각에 抛棄했다. 그는 다만 “熱心히 살았고, 많은 일을 할 수 있었으니 後悔하진 않는다”고 했다.


Q : 政治權에선 下馬評이 끊이지 않는데.
A : “자유로운 靈魂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하고 싶지도 않았지만, 道理상으로도 안 됐다. 苦悶해보고 2014年쯤 完全히 結論을 냈다. 生産性과 效率이 體質化된 企業人이 政治하면 危險하다. 내가 4萬名 넘는 組織의 리더도 했고 經濟團體長度 했지만, 私的인 理解가 相當 部分 作用했다. 政治는 生産 論理로 한쪽을 抛棄할 수 없다.”


Q : 大韓商議 會長 時節 ‘規制 샌드박스’ 事業을 成果로 꼽았다.
A : “우리 世代는 1人當 國民所得 100불부터 3萬弗까지 다 겪었다. 自負心도 있지만, 태어날 때부터 先進國 國民인 젊은 世代와는 到底히 좁힐 수 없는 間隙이 있다. 只今의 法 規制는 어른들의 必要로 만든 거다. 그런데 젊은이들이 規制 때문에 事業을 못하는 게 너무 안타까웠다. 時代가 바뀌면 옛날 思考를 버려야 한다. 샌드박스는 旣存 法은 바꾸기가 너무 어려우니 차라리 迂廻해서 길을 열어준 거였다.”

5年 키운 아이 "保育施設 보내라"...'美천사가족' 울린 韓國法
에이브라함슨 夫婦는 生母의 同意에도 新生兒 때부터 키운 막내 聖貧(5)이의 入養을 番番이 거절당하고 있다.

Q : 成殯이 問題도 그런 次元이라고 보나.
A : “우리 社會가 直面한 ‘法과 規範’이라는 가장 큰 問題를 成殯이가 代辯하고 있다. 우리 社會는 모든 問題를 法으로 解決하려고 하는 게 問題다. 法은 最小限의 範圍만 規定하고, 細部 問題는 規範 안에서 定性的 評價로 풀어야 하는데 法의 잣대로만 判斷하려고 한다. 當事者인 아이와는 상관없는 어른들의 基準으로 判斷하는 게 맞나? 그게 아이를 위한 일인가? ”
박용만 前 會長은 코로나19 以後 經濟 狀況에 對해 "올해와 來年까지는 相當히 注意해야 한다"며 不動産 急騰 問題에 對해선 "憤怒를 걷어내고 冷徹하게 봐야 한다"고 했다. 우상조 記者


Q : 經濟 狀況이 尋常치 않다.
A : “지난해 3月 商議 會長 退任 當時 이미 ‘올해 相當히 어려워질 테니 來年을 操心하라’고 이야기했다. 코로나19 期間 各國 政府가 經濟를 支撐하려고 量的 膨脹을 많이 했고 이젠 正常化하지 않겠나. 1~2年은 걸릴 거다. 올해와 來年까지는 相當히 注意해야 할 것 같다.”


Q : 不動産에 對한 剝奪感도 크다.
A : “當然히 憤怒할 수 있다. 不動産이나 株式市場이나 코로나로 쌓인 流動性이 불에 기름 부은 格이었다. 하지만 憤怒를 걷어내고 冷徹하게 봐야 한다. 供給은 어디에 얼마나 할지, 稅金은 어딜 손댈지 決定해야 하는데 憤怒가 너무 커지면 決定할 수가 없다. 大衆이 憤怒하면 政治人은 負擔을 느낀다.”


Q : 韓國이 未來 競爭力을 갖추려면.
A : “製造業 爲主의 우리 經濟는 中國, 베트남 等 新興國의 負傷으로 많은 變化를 겪었고 規制와 勞動 問題까지 過去의 패러다임을 完全히 바꿔야 할 狀況이 됐다. 未來 産業을 위한 土壤은 이미 갖췄다. 世界 最高의 모바일 네트워크와 變化를 두려워하지 않는 國民性이다. 特히 國民所得 2萬弗 時代에 자란 우리 젊은 世代는 先進國과 間隙이 없다. 全幅的으로 規制를 풀어 이들의 앞날을 열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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