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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수 駐美大使 內定者…'韓美 FTA 傳道師', '處世의 達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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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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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수 駐美大使 內定者…'韓美 FTA 傳道師', '處世의 達人'

DJ·노무현 政府서 繩繩自救…FTA 懸案 浮上하자 拔擢
한덕수(60) 前 總理가 駐美大使로 內定됨에 따라 세 政府에서 要職을 두루 涉獵하는 記錄을 남기게 됐다. 그는 김대중政府에서 靑瓦臺 政策企劃首席과 經濟首席, 노무현政府에선 經濟副總理와 國務總理를 지냈다.

한 前 總理는 卓越한 英語 實力을 갖춘 經濟, 特히 通商 分野 實力者로 認定받아 駐美大使로 內定된 것으로 보인다. 버락 오바마 政府가 出帆하면 韓美 自由貿易協定(FTA)의 再協商 또는 追加 協商이 兩國 懸案으로 떠오를 것으로 豫想됨에 따라 過去 韓美 FTA 締結支援委員長을 맡아 ‘韓美 FTA 傳道師’ 役割을 했던 그가 必要하다고 判斷한 것이다.

한 前 總理는 1970年(行試 8回) 經濟企劃院 豫算室에서 公職에 발을 담갔다. 1982年 商工部 米酒通常課長으로 자리를 옮겼다. 1995年 通商貿易室長을 맡아 韓美 自動車協商 代表로서 協商을 妥結시켰다.

金大中政府 들어 初代 通商交涉本部長에 就任해 一絲不亂한 通商業務 體系를 樹立했다. 2001年 靑瓦臺 經濟首席 當時 韓中 마늘 波紋이 불거지자 責任을 지고 公職生活을 떠났으나, 노무현政府 들어 國務調整室長으로 復歸했고 2005年 3月 經濟副總理에 올랐다.

經濟副總理 時節 開放과 競爭을 통해 競爭力을 强化한다는 原則에 따라 다양한 政策을 내놨다. 2007年 4月 38代 國務總理로 任命돼 2008年 2月까지 일했다.

午前 4時면 일어나 뉴스와 業務를 챙기는 等 그에게 일은 곧 ‘趣味’라는 게 周邊 사람들의 說明이다. 하지만 權力 向方에 敏感한 ‘處世의 達人’이란 否定的인 評價도 없지 않다.

▲全北 全州(60) ▲경기고, 서울대 經濟學과 卒業, 美國 하버드대 經濟學博士 ▲經濟企劃院 政策調停局 調整3課長 ▲商工部 米酒通常課長 ▲通商産業部 通商貿易室長 ▲通商産業部 次官 ▲通商交涉本部長 ▲經濟協力開發機構(OECD) 大使 ▲靑瓦臺 政策企劃, 經濟首席祕書官 ▲國務調整室長 ▲副總理 兼 財政經濟部 長官 ▲國務總理

이상혁 記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