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數字로 되돌아 본 ‘大祚榮’ - PD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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數字로 되돌아 본 ‘大祚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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數字로 되돌아 본 ‘大祚榮’
  • 오마이뉴스
  • 承認 2007.12.24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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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日, 오랜 期間 동안 視聽者의 사랑을 듬뿍 받아왔던 大河드라마 <大祚榮>(演出 김종선, 劇本 장영철)李 大長程을 끝내고 幕을 내렸다. 많은 史劇이 汎濫하는 가운데서도 作品性과 興行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며 成功을 거둔 드라마이기에 <大祚榮>의 終映은 많은 이들에게 아쉬움이 남을 것이다.

이제 視聽者들 곁을 떠난 <大祚榮>을 數字를 통해 되돌아보도록 하자.

1 : <大祚榮>의 1回 放送일은 2006年 9月 16日이었다. <大祚榮>의 첫 回 視聽率은 TNS 미디어 코리아에서는 11.9%, AGB닐슨 미디어리서치에서는 12.6%로 調査되었다. 이는 放映 前부터 네티즌들의 期待를 한 몸에 받았던 것에 비하면 多少 낮은 數値였다.

5 : <大祚榮>은 AGB닐슨 미디어리서치에 따르면 지난 9月 5週 동안 視聽率 1位에 올랐다. 그리고 TNS 미디어 코리아에서도 지난 9月24日부터 5週間 週刊視聽率 1位를 固守해왔다. 그래서 ‘國民史劇'이라는 소리도 듣게 되었지만 以後 다른 드라마에 頂上의 자리를 내주다가 終映 무렵에 다시 頂上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10 : <大祚榮>은 처음 始作할 때는 土, 日曜日 午後 9時 30分으로 編成되었다. 그러나 이 曖昧한 編成 時間은 <大祚榮>이 好評을 받으면서도 좋은 視聽率이 나오지 않는 한 가지 要因으로 作用하였다.

그 理由는 <大祚榮>보다 먼저 電波를 탄 SBS의 <연개소문>(演出 이종한, 劇本 이환경)과 時間이 多少 겹쳤기 때문이다. 結局 <大祚榮>은 지난 4月 放映을 10分 늦추었고 以後부터는 視聽率이 安定圈에 접어들게 되었다.

15 : <大祚榮>은 지난해 9月 첫 放送을 始作한 以來 1年 3個月 間 放映되었다. 이를 個月 數로 換算하면 15個月이다. 이는 最近 史劇에서 찾아보기 힘든 긴 放映 期間이었지만 그만큼 오래 사랑을 받아온 作品이기도 하다. <大祚榮>의 放映이 이렇게 길다 보니 먼저 始作한 高句麗 史劇인 <연개소문>이나 <太王四神旗>>(演出 김종학 윤상호, 劇本 송지나 박경수)보다도 늦게 終映하는 將帥 史劇이 되었다.

30 : <大祚榮>은 作品性이 뛰어나다는 評價 속에서도 좀처럼 興行드라마의 基準이라고 할 수 있는 視聽率 30%를 넘기지 못하였다. 그래서 한때는 作品性만 뛰어난 마니아 드라마로 남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말까지 나올 程度였다. 그러나 <大祚榮>은 무서운 뒷심을 發揮하며 放映 7個月이 지난 時點에서 視聽率 30%를 突破하였고 以後 興行을 이어왔다.

40 : 뒷심을 發揮하던 <大祚榮>도 끝내 視聽率 40%의 壁은 突破하지 못했다. <大祚榮>의 自體 最高 視聽率은 지난 12月 9日 130回 放映分에서 記錄한 36.8%(TNS 미디어 코리아 基準)이었다. 그러나 最近 40%를 넘는 視聽率 記錄한 드라마가 全無한 狀況에서 이는 대단히 높은 數値가 아닐 수 없다.

54 : 大祚榮의 태어난 해에 對해서는 正確한 記錄이 없다. 學界에서는 大略的으로 볼 때 663年에 大祚榮이 태어났을 것으로 推定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드라마 <大祚榮>에서는 大祚榮이 645年 安市城 大捷 때 태어난 것으로 描寫하였다. 古堂戰爭에서 大祚榮이 活躍하는 모습을 그리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드라마대로라면 大祚榮이 渤海를 建國한 나이는 54歲였다.

하지만 實際로 大祚榮이 古堂戰爭에서 모습을 보였다는 記錄은 어디에도 없다. 劇의 재미를 높이기 위한 製作陣의 設定인 것이다. 이것 때문에 많은 批判도 받긴 했지만 그래도 興行에는 分明 도움이 될 만한 要素였고 正確한 記錄이 어디에도 없다는 點에서는 크게 問題될 것은 아니었다.

134 : <大祚榮>은 134部作으로 幕을 내렸다. 이는 當初 計劃보다 34部가 延長된 것이었다. 元來 <大祚榮>은 100部作으로 企劃되었는데 高句麗 復興 運動 部分에서 時間이 多少 遲滯되면서 延長이 不可避하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多少 질질 끈다는 批判도 있었지만 大體로 自然스러운 延長이었던 것으로 評價된다.


* 이 記事는 <오마이뉴스>( http://www.ohmynews.com )에서 제공하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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