民世 安在鴻 生家는 1995年 京畿道 記念物 第 135號에 指定되었고 2003年 國家報勳處 顯忠施設物로 指定된 建物이다. 民世 安在鴻은 日帝强占期부터 解放 前後까지 獨立運動家이자 言論人으로 活動했다. 여러 番 獄苦를 치르기도 했으나 日帝의 植民史觀을 克服하고자 10餘 年의 硏究 끝에 조선통사, 朝鮮上古史鑑을 著述했다. 解放直後에는 美軍政의 民政長官을 歷任했고 1950年에는 平澤에서 第2代 國會議員에 當選되었고 1989年 大韓民國 建國訓長 大統領章을 받았다. 지은 지 100年 程度 된 安在烘 生家는 緩慢한 傾斜地에 南向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1994∼1995年 안채, 舍廊채, 담牆, 化粧室, 大門 等이 保守되어 現在의 모습을 形成하였다. 20世紀 들어 傳統家屋들이 生活의 便宜를 受容하여 變化하게 되는데 이 집의 境遇가 이러한 變化된 京畿地域 살림집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現在 안마당을 사이에 두고 안채와 舍廊채가 마주보고 配置되어 있으나 元來는 大門채까지 있었던 집이다. 안채는 京畿道地方의 典型的인 ‘ㄱ’字形 平面의 7칸 前退집이다. 大廳을 中心으로 오른쪽에 건넌房이 있고 왼쪽에는 안房이 자리 잡고 있으며, 그 앞으로 부엌과 부엌狂, 나무肝이 連結되어 있다. 舍廊채는 ‘ㅡ’字形 平面으로 五樑救助(五梁構造), 八作지붕集이다. 가운데에 大廳을 두고 오른쪽에 溫突房, 왼쪽에는 大廳보다 한 段 높여 만든 樓마루가 連結되어 있으며, 大廳과 溫突房 前面에는 退마루가 있으며, 잘 다듬은 方形 礎石을 놓고 角기둥을 세웠으며, 樓마루 下部는 長礎石을 使用하였으며 함실아궁이가 設置되어 있다. 부엌과 大廳사이의 連結通路를 통해서 1900年代 初盤의 生活相의 變化를 엿볼 수 있다. 民世 先生이 아끼던 150年 된 香나무와 1920年代 後半 造成되어 使用하던 우물, 民世 先生의 夫人이 심은 감나무 等 民世 關聯 痕跡이 남아있다. 現在는 民世 先生의 큰며느리인 金巡警 女史가 起居하며 管理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