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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朽의 名作 ①] 1996~1997 KBS2 ‘첫사랑’ - 中央日報 演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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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朽의 名作 ①] 1996~1997 KBS2 ‘첫사랑’

[不朽의 名作 ①] 1996~1997 KBS2 ‘첫사랑’

[ 일간스포츠 ] 入力 2009.07.03 06:50 / 修正 2009.07.03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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視聽率 30%를 넘는 드라마는 흔히 社會 現象이라고 한다. 大略 千萬 觀客을 動員한 映畫와 비슷한 波及力人 셈이지만, 最少 2個月間 每週 放送되는 드라마의 波及力은 비슷한 觀客을 動員한 映畫의 몇 倍라고 봐도 좋다.

그만큼 드라마는 韓國 大衆文化에서 빠질 수 없는 絶對的인 位置를 차지해왔다. 每週 30餘篇씩 放送되는 드라마. 그 中에서도 몇 篇은 10年 以上의 歲月이 흐른 뒤에도 大衆의 記憶 속에 살아 숨쉬지만 體系的으로 整理된 資料는 거의 찾아 보기 힘든게 現實이다.

IS는 '不朽의 名作' 企劃을 통해 歲月을 克服한 드라마의 傑作들, 當代의 스타들과 對 作家, 名 演出者들을 再照明해 韓國 드라마社의 體系를 整理할 豫定이다.


줄거리

한 시골 마을. 아버지(金仁問)과 찬옥(송채환), 贊革(최수종), 찬우(배용준) 세 男妹는 가난하지만 서로 아껴가며 오손도손 살고 있다. 贊革은 孝經(이승연)과 서로 사랑하는 사이지만 洞네 有志인 孝經의 아버지(조경환)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贊革과의 關係를 妨害한다. 結局 孝經 집안의 陰謀로 贊革은 깡牌들로부터 도망치다 交通事故를 當해 木발을 짚게 된다.

復讐를 決心한 찬우는 서울로 進學하고 學校에서 석희(최지우)를 만난다. 한便 孝經의 집안에서는 석희의 오빠 석진(박상원)과 孝經이 맺어지기를 期待한다. 찬우는 孝經의 아버지를 沒落시키기 위해 어둠의 勢力과도 손을 잡는다.

이들 外에도 贊혁에게 끝까지 純情을 다하는 洞네 아가씨 信者(이혜영), 또 贊革·찬우 兄弟를 끝까지 믿고 따르는 義理의 사나이 동팔(배도환), 찬옥의 男便이며 無名 歌手인 正南(손현주) 等 다양한 周邊 人物들이 드라마의 재미를 더했다.


視聽率 65.8%…찬우 걱정에 “그럼 안 된다”
1997年 겨울, 어느 추운 週末. 歸家한 아들은 집안에 人기척이 없는 걸 疑訝해 하다 TV 앞에 말없이 앉은 어머니를 發見했다. 말을 걸려는 瞬間 아들의 눈에 띈 것은 어머니의 눈가에 맺힌 눈물. 大體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려는 瞬間 어머니는 말했다.

"아이고. 배용준이가 끝내 깡牌가 되려나 보다. 이를 어쩌면 좋으냐."

大韓民國에서 視聽率 調査가 제대로 이뤄진 以後, 가장 높은 視聽率을 記錄한 드라마는 지난 1996年 9月 7日부터 1997年 4月 20日까지 總 66回에 걸쳐 放送된 KBS 2TV 週末드라마 '첫사랑(劇本 조소혜, 演出 이응진)'이다.

첫 放送부터 33.3%, 마지막回는 65.8%를 記錄했다. 1000萬 臺가 넘는 TV 앞에서 온 國民이 숨을 죽이고 結末을 지켜본 것이다.

최수종-李丞涓이라는 當代 最高의 스타가 主役을 맡은 이 드라마의 가장 큰 受惠者는 바로 '욘사마' 裵勇浚이었다.

當時 演出을 맡았던 이응진 KBS 드라마局長에겐 "너무 가슴이 아파 못 보겠다. 贊혁이가 그렇게 됐는데 찬우까지 깡牌를 만들 셈이냐. 當身들 그러면 안 된다. 텔레비전 다 부숴버리겠다"는 視聽者들의 脅迫 아닌 泣訴가 只今도 생생하다. 全國의 어머니들이 自己 일처럼 배용준의 앞날을 걱정했던 것이다.

이 드라마는 大體 왜 그렇게 人氣였을까. 當時 조소혜 作家(作故)와 이 PD는 남들의 눈에 "사귀냐"는 얘기를 들을 程度로 붙어 다니며 스토리를 構想했다.

製作陣이 꼽는 人氣 要素는 두 가지. 當時의 家族 드라마 치고는 드물게 故鄕과 서울을 오가는 큰 스케일의 이야기가 먹혀들었고 세 男妹의 가난하지만 따뜻한 友愛가 視聽者들의 눈물을 자아냈다. 特히 누나 찬옥 役의 송채환이 밥을 안 먹고도 먹은 척하며 동생들에게 밥을 차려주는 場面은 두고두고 名場面으로 膾炙됐다.


反面, 이응진 局長이 가장 個人的으로 未安해하는 俳優는 李丞涓. 贊혁과 석진(박상원) 사이를 繼續 오가는 孝經 役의 李丞涓에게 視聽者들은 "왜 兩다리를 걸치느냐"고 非難을 퍼부었다. 罪 없는 이승연은 내내 마음 苦生을 했고 結局 '첫사랑' 팀이 휩쓴 그해 年末 延期對象에서도 빈손으로 돌아가야 했다.

비슷한 負擔은 男子 俳優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찬옥의 男便 正南 役을 맡은 손현주는 臺本에 贊혁이 숨어 있는 곳을 漏泄하는 場面을 演技하는 場面이 나오자 "못하겠다"고 버텼다. "이런 內容이 나가고 나면 돌팔매를 맞을 것 같다"는 게 理由였다.

事實 손현주로선 그 程度인 게 多幸이었다. 當初의 構想대로라면 정남은 찬옥을 虐待하는 男便이 될 運命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視聽者들의 關心이 너무 뜨거워지자 登場人物들을 너무 불쌍하게 하지 말자는 쪽으로 大大的인 修正이 이뤄졌고, 정남은 좋은 사람으로 남을 수 있었다. 贊革도 本來 事故로 植物人間이 되는 設定이었지만 事故의 强度가 많이 낮춰졌다.


마지막回. 찬우는 孝經의 집안에 容恕 아닌 容恕를 하고 돌아선다. 마지막 新. 故鄕의 江邊을 거니는 饌혁의 앞에 孝經이 나타난다. 두 사람은 달려가 껴안지도 않고 그저 바라볼 뿐이다.

果然 이 場面은 贊혁의 꿈일까, 아니면 現實일까. "첫사랑은 맺어지지 않을 때 더 아름답다. 하지만 이 마지막 場面의 意味는 '어떤 結末도 可能하다'는 열린 結末로 보았으면 한다"는 것이 이 PD의 마무리였다.

演出者 이응진 “作家와 붙어 다녀 ‘사귄다’ 弄談 들어”
當時 조소혜 作家와 함께 熱心히 스토리를 構想하느라 늘 붙어 다녔다. 周圍 사람들이 '둘이 사귀는 것 아니냐'고 弄談을 건네던 記憶이 只今도 생생하다.

얼마 前 '첫사랑' 關聯 取材를 온 日本 取材陣이 '어떻게 한 드라마를 66回나 放送할 수 있었느냐'며 놀랍다고 말하는 걸 들었다. 이런 長篇을 만들기 爲해선 내러티브 構成 能力이 重要하다. 이런 長篇 드라마들을 통해 育成된 作家들의 力量이 오늘날 韓流의 基本이 됐다고 생각한다.

家族에 對한 사랑, 復讐가 아닌 容恕. 이 드라마를 통해 傳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이 두 가지다. 그리고 이 메시지가 視聽者들에게 제대로 傳達된 것 같아 滿足한다. 리메이크? 全혀 생각 없다. 이런 앙상블과 臺本은 다시 可能하지도 않을 것이다.

>> 2篇에 繼續

송원섭 記者 [fiv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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