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만   중국   일본 
[윤양섭 專門記者의 바둑人]<18> 北韓 바둑 프로그램 ‘은별’ 몇 段인지 아시나요? : 뉴스 : 東亞닷컴
The Wayback Machine - https://web.archive.org/web/20140826185531/http://news.donga.com/East/3/all/20140826/66016371/1



뉴스 > 文化 > 바둑 >  윤양섭 專門記者의 바둑人

[윤양섭 專門記者의 바둑人]<18> 北韓 바둑 프로그램 ‘은별’ 몇 段인지 아시나요?

윤양섭 專門記者

入力 2014-08-26 14:51:00 修正 2014-08-26 15:29:27

프로棋士 김찬우 6段은 요즘 모바일 게임을 開發하느라 바쁘다. 職員들과 한 컷.
프로棋士 김찬우 6段(42)은 바둑界에서는 드문 情報技術(IT) 專門家다. 特히 人工知能(AI·Artificial Intelligence)에 밝은 便이다. 인터넷 大國에 쓰이는 집數計算, 形勢判斷 프로그램이 그가 開發한 소프트웨어다.

그는 10年 前 北韓과 接觸해 바둑大國 프로그램인 '은별'을 輸入해 國內에 販賣하기도 했다. 北韓과 바둑大國 프로그램도 開發하려 했으나 얼어붙은 南北關係 때문에 모두 中斷된 狀態다. 最近 열린 서울世界數學者大會에서는 錚錚한 數學者들을 相對로 講演도 했다. 22日 서울 성동구 성수동 工場地帶의 한 事務室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요즘 모바일 게임 開發을 끝내고 마무리 作業을 하느라 餘念이 없었다. 게임이름은 '三國志 無限爭鬪'. 三國志를 스토리로 깔고 將帥들을 起用해 싸우는 戰略시뮬레이션 게임이다. 위나라, 蜀나라, 吳나라가 나오고 劉備 關羽 裝備 曹操 旅抱 等 장수들의 모습이 보였다. '모비릭스'라는 會社와 共同 開發했다. 秋夕 前 出市를 目標로 開發 職員 等 6名과 함께 버그를 잡아내느라 막바지 피치를 올리고 있었다.

金 6段이 바둑과 多少 멀어 보이는 게임을 開發하게 된 것은 지난해 봄부터. 元來 2011年 겨울 한 인터넷 業體와 氣力診斷 서비스 프로그램을 商用化하는 것을 目標로 契約을 締結했으나 그게 어그러지면서 開發人力을 게임開發로 돌린 것. 그에게 게임 쪽이 쉽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生疏한 分野도 아니었다. 어려서부터 갤러그 테트리스 스타크래프트 게임의 高手였던 데다 프로가 된 뒤에는 AI에도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그는 "이番에 出市하는 게임이 어느 程度 成功하면 本業인 바둑普及 프로그램에 沒頭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世界數學者 大會에서는 어떤 內容으로 講義를 했나. AI 分野인가.

"本來는 人工知能 바둑對局프로그램에 對해 講義하려 했으나 너무 專門的인 內容이어서 級數體系의 問題點으로 主題를 바꿨다. 現在 氣力測定 시스템은 下向式인데 上向式으로 바꿔야 한다는 게 講義 줄거리다. 예컨대 現在 시스템은 프로와 4點 程度 깔고 둘만하면 아마 4段으로 認證하는 式이다. 하지만 이런 方式은 時間도 오래 걸리고 금세 興味를 잃어 바둑을 抛棄하는 境遇가 많다. 그래서 바둑에도 게임의 要素를 導入하자는 것이 내 主張이다. 예컨대 게임처럼 레벨1에서 레벨2로, 다시 레벨3으로 올라가는 上向式으로 氣力測定시스템을 만들면 배우는 사람들이 興味를 느낄 수 있다. 바둑 問題를 푸는 時間과 行馬의 能力, 큰 자리를 차지하는 能力 等을 數値化하면 數十 段階의 레벨로 差別化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어렵지 않다. 우리도 氣力測定 方法이 다양해져야 한다. 中國 바둑 포털의 境遇 機能은 우리보다 떨어지지만 入門者들끼리 서로 바둑을 둘 수 있어 우리보다 바둑의 接近性이 높다."

金 6段은 現在의 바둑 危機를 內部가 아니라 外部環境에서 찾았다. 只今 젊은이들이 즐길 수 있는 各種 게임 等이 쏟아지면서 바둑이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는 것. 코닥필름이 全 世界를 制霸하다 沒落한 것은 現實에 安住했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只今은 젊은이들이 찾지 않고 있는 바둑에 하루빨리 게임的 要素, 卽 재미를 더해야 살아날 수 있다"고 거듭 强調했다.

그는 바둑大國 프로그램 開發에도 如前히 關心이 많다. 現在 바둑大國 프로그램 中 가장 센 것은 日本의 '젠' 프로그램이다. 올해 3月 日本에서 열린 第2回 전성전(電聖戰)에서 優勝한 소프트웨어다. 2位는 프랑스의 '크레이지 스톤'. 日本에서 韓國 킬러로 有名했던 프로棋士 饒多 노리모토(依田紀基) 9段은 젠과 크레이지 스톤에 各各 4點을 깔아주고 접바둑을 둬 젠에는 이겼으나 크레이지 스톤에는 졌다. 프로와 4點 程度면 아마 5段 水準.

北韓 바둑프로그램 銀別途 2010年에는 日本의 한 大會에서 優勝을 차지한 소프트웨어다. 金 6段은 2006年 은별을 輸入해와 國內에 販賣했다. 이를 위해 平壤을 訪問해 朝鮮컴퓨터센터와 接觸했고, 開城工團도 여러 次例 訪問했다. 그는 北韓 側과 은별 外에 새 프로그램을 開發하자는 데 意氣投合했으나 南北關係가 얼어붙으며 遲遲不進해졌다. 은별 亦是 國內에서 하루 10個 以上씩 팔릴 때도 있었으나 只今은 업그레이드가 되질 않아 開店 休業狀態. 現在 日本에서 販賣되는 은별은 젠과 2點 以內의 치數라는 게 그의 說明. 그는 "南北關係가 좋으면 大國 프로그램이 相當히 進陟됐을 텐데…"라며 아쉬움을 表示했다.

그는 人工知能 바둑프로그램이 머지않아 프로 棋士를 이길 것이라는 展望에 對해서는 否定的이다. 컴퓨터가 체스챔피언을 이겼지만 바둑과는 다르다는 것. 그는 "將棋와 체스는 器物이 줄어드는 게임이지만 바둑은 旣存의 돌들까지 考慮해야 하는 複雜하고 어려운 게임인데다 몬테카를로법을 바탕으로 한 바둑對局 소프트웨어가 넘을 수 없는 限界가 있다"고 말했다.

그가 本格的으로 바둑을 배운 것은 中 3때. 어깨너머로 배워 7, 8級 程度를 뒀을 때다. 그는 當時 서울 광진구 중곡동으로 移徙했는데 下校길에 방앗間 옆 亭子에서 바둑을 두는 일이 많았다. 土曜日에는 點心도 거르고 밤늦게까지 바둑을 두기도 했다. 그해 겨울 한 達程度 한국기원 바둑講座를 들었고, 고 1이 되던 2月부터 권갑용 바둑道場을 다녔다. 當時 박성수 師範(現 프로 4段)에게 8點을 깔고 뒀다. 2, 3級水準. 그러다 그해 말 KBS바둑祝祭 高等部에서 準優勝을 할 程度로 實力이 늘었다. 프로에 2點을 놓으면 지지 않을 程度의 實力이 됐다. 권갑용 事犯으로부터 "류시훈 말고는 가장 빨리 늘었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는 바둑에 沒頭하기 위해 대원고 2學年 때 自退한 뒤 1年間 韓國棋院 硏究生으로 지냈다. 그리고 高 3때 入團 門턱까지 갔었다. 入團大會에서 안관욱 이관철 金起炫 그리고 김찬우가 7勝 2敗 4字 同率로 再對局을 했으나 3位에 머무는 바람에 안관욱과 이관철만 入團했다.

그 뒤부터 그에게 入團의 門은 10年이나 열리지 않았다. 苦生이 많았다. 권갑용 道場에서 事犯으로 바둑을 가르쳤다. 陽川對日 바둑道場에서도 事犯으로 지냈다. 當時 弟子였던 李世乭 최철한은 이미 프로가 됐다.

그러다 그에게 機會가 찾아왔다. 1997年 아마國手戰에서 優勝을 차지하면서 1998年 世界아마추어바둑選手權 大會에 韓國 代表로 出戰한 것. 그는 20回 世界아마大會에서 韓國 아마추어로서는 처음으로 優勝을 차지했다. 當時 아마추어 先輩들이 '國威를 宣揚한 만큼 프로로 入團시켜야 한다'며 署名 運動을 펼친 德에 그는 1999年 特別 入團할 수 있었다. 아마추어 때는 1位 實力이었지만 프로의 世界는 碌碌지 않았다. 1年 동안 술도 먹지 않고 바둑工夫만 했으나 잘 풀리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눈을 돌린 것이 바둑 普及 쪽, 特히 成人 普及에 關心을 갖게 됐다. 그때까지 바둑을 가르치는 것은 主로 어린이들 對象이었으나 "남들이 안 가는 길을 가야 勝算이 있다"고 본 것. 當時 네오스톤이라는 컴퓨터 바둑프로그램에서 成人들에게 한 판에 1萬 원 程度를 받고 實戰바둑을 두기 始作했다. 復棋를 아주 꼼꼼히 해줘 有名 講師가 됐다. 講義料는 1萬 원에서 5倍로 올랐다. 1000板 程度의 講義 資料를 남겼다. 只今은 네오스톤이 合倂되는 바람에 그 資料가 사라졌다.

바둑을 가르치다 보니 講義에도 體系가 잡혔다.

"바둑의 數라는 것은 結局 領域을 擴張하거나 領域을 牽制하거나, 自身을 補强하거나, 攻擊하는 네 가지 中 하나다. 하지만 어떤 한 手를 둘 때 攻擊만이 아니라 補强도 한다면 더 좋다. 그게 바로 實力이다. 그러기에 한 數의 퀄리티를 높이는데 努力해야 한다. 그러려면 死活工夫가 무엇보다 重要하다."

金 6段이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바둑 普及이다. 그는 "韓國 바둑이 잘되려면 새로 바둑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어디 가서 어떤 過程을 工夫하면 바둑을 즐길 수 있다'라고 말할 수 있을 程度가 돼야 한다"며 "그리 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 一環으로 누구나 쉽게 배우고 接近할 수 있는 바둑게임 앱을 開發할 생각도 있다. 재미있게 바둑을 배우고 가르쳐야 한다는 게 그의 持論이다. 普通은 아들에게 바둑을 가르치는 게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그는 初等學校 5學年인 아들과 놀이式으로 바둑을 가르쳤다. 現在 타이젬 7段(아마추어 5段 程度)의 實力.

윤양섭 專門記者laila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재테크 정보




많이 본 뉴스

綜合

政治

國際

社會

스포츠

演藝

댓글이 핫한 뉴스

오늘의 dongA.com

핀터레스트 트위터 페이스북 마이뉴스 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