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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沙汰에 묻힌 單짝 찾아… 體育服 입고 삽 든 日女高生들 : 뉴스 : 東亞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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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沙汰에 묻힌 單짝 찾아… 體育服 입고 삽 든 日女高生들

朴亨埈 特派員

入力 2014-08-27 03:00:00 修正 2014-08-27 09:35:04

히로시마 水害現場서 搜索 도와… 死體 發見된 뒤에도 奉仕 繼續

日本 히로시마 詩 山沙汰 被害地에서 사토 사쿠라 量(왼쪽)李 土沙를 치우며 自願奉仕를 하고 있다. 26日 現在 死亡者는 60名을 넘어섰다. 아사히신문 提供
‘설마?’

20日 午前 日本 히로시마(廣島) 時 餓死미나미(安佐南) 區에 사는 사토 사쿠라(佐藤さくら·17) 量은 트위터에 뜬 글을 보고 깜짝 놀랐다. 初等學校 時節 單짝이었던 期하라 미리(木原未理·17·女)가 그날 새벽 山事態 以後 行方不明됐다는 內容이었다.

사토는 곧바로 携帶電話를 꺼내 기하라에게 文字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答狀이 오지 않았다. 그때 土沙에 깔려 무너지는 기하라의 집이 TV 畵面에 비쳤다. 期하라는 아빠와 함께 行方不明됐다고 했다.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아사히新聞은 25日 이렇게 傳하며 高校 親舊들의 ‘期하라 救하기’ 活動을 報道했다.

사토는 事故 當日 곧바로 期하라 집으로 向했다. 벌써 半 親舊들이 모여 있었다. 期하라 집으로 난 길을 막고 있는 돌과 흙을 치웠다. 重裝備가 進入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탰다. 學生들은 그날 以後로도 每日 午前 8時頃 體育服 차림으로 모였다. 적을 때는 10名, 많을 때는 20名이 왔다.

사토는 25日 午後 3時頃 淸掃 途中 “기하라의 屍體가 發見됐다”는 말을 들었다. 믿을 수 없었다.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날 기하라가 다니던 히로시마 현립 야스後루이치(安古市)高校의 開學式이 있었다. 校長은 全校生 約 950名 앞에서 “기하라의 몫까지 學校生活을 熱心히 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여기저기서 學生들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사토는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기하라와 함께 자란 故鄕을 예전 모습으로 되돌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도 繼續 體育服과 長靴 차림에 삽을 들고 被害地를 찾을 計劃이라고 밝혔다.

도쿄=朴亨埈 特派員 lovesong@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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