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충식 汎銀奬學財團 理事長..祈禱의 힘으로 '壓力' 이겨냈어요

2006. 3. 17.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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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祈禱는 奇跡의 門을 여는 첫番째 關門입니다."

홀가분한 表情으로 카메라 앞에 선 단국대 장충식(汎銀奬學財團·소망교회) 理事長의 첫 告白이다. 張 理事長은 지난 15日 이른 아침에 汝矣島純福音敎會에서 조용기 牧師의 祈禱를 받고 '眞實이 가져다준 勝利의 눈물'을 흘렸다.

檢察이 最近 지난 10餘年 동안 中斷됐던 檀國大 移轉事業(一名 '한남동 단국대 敷地 開發事業')과 關聯,'稀代의 事業 施行 브로커' 김선용(51) 前 세경진흥 代表를 拘束함에 따라 그동안 世間에 亂舞했던 學校에 對한 各種 非理 疑惑의 眞實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張 理事長의 苦難은 1993年 김영삼 政權 時節로 거슬러올라 간다.

"93年 當時 政府는 現 漢南洞 學校敷地를 모두 天安으로 옮기라는 最後 通牒을 했습니다."

當時 서울 한남동과 天安 캠퍼스에는 各各 學生 1萬名밖에 受容할 수 없었다. 따라서 한남동을 天安으로 移轉하라는 政府의 指示는 學校를 抛棄하라는 意味나 다름없었다는 것이 張 理事長의 回顧다. 88서울올림픽 스포츠科學學術大會 組織委員長과 南北體育會談 韓國 首席代表,그리고 第1次 南北離散家族 相逢團 團長 等을 맡아 體育界와 南北關係의 巨物로 認識됐던 周邊의 關心이 그를 더욱 煩悶케 했다. 이런 最後 通牒에 앞서 한 大權 라인에서 選擧資金과 協助 等을 要求해왔다고 回想했다. 하지만 그의 態度는 斷乎했다.

"大學이 政治에 줄을 대면 그 大學은 어떤 어떤 形態로든 迂餘曲折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나의 敎育哲學이니까요" 大權 라인에 서 있던 一部 敎授들까지 "萬若 그분이 當選되면 어떻게 하시려고…"라며 壓力을 加했다. 그러던 渦中에 그를 아끼던 한 知人이 해준 말이 只今도 귓가에 생생하기만 하다.

"그 어떤 힘으로도 國家 權力의 不當한 壓力을 막을 수 없습니다. 그것을 對敵할 수 있는 것은 오직 靈的 힘밖에는 없습니다. 서둘러 조용기 牧師를 찾아가 祈禱를 付託하세요."

조 牧師를 한番도 만난 적이 없었지만 多急한 心情에 그것을 따질 餘裕조차 없었다. 急히 찾아가 조 牧師에게 事情을 大略 털어놓은 後 祈禱를 要請했다. 두손을 꼭 잡고 祈禱는 30餘分 동안 이어졌다.

"큰 江둑이 무너진 것처럼 눈물샘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祈禱가 끝난 後 執務室로 돌아올 때까지 눈물이 繼續 쏟아졌으니까요."

눈물을 隨伴한 祈禱는 奇跡을 孕胎했다. 4萬坪의 漢南洞 學校 敷地를 팔아 龍仁市 收支地區 敷地 34萬坪을 買入하는 契約이 祈禱를 받은 後 不過 며칠만에 締結됐기 때문이다. 작은 땅을 비싸게 팔아 넓은 땅을 歇값에 買入한 것이다. 수지의 學校 敷地는 祈禱로 이뤄진 것이었기 때문에 檀國大 開校 50年 史上 처음으로 敷地에 旗발을 꽂고 感謝한 이른바 '旗발禮拜'가 드려졌다. 그 前에는 다른 大學에서 흔히 지내던 '돼지머리 告祀'를 지냈었다.

"旗발禮拜를 드린 것은 示唆하는 바가 컸습니다. 오늘 조 牧師님께서 祈禱해주셨으니 分明 學校에 좋은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남병곤 編輯委員 nambg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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