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뛰었던 쟈스민, 選手서 指導者로 韓國 復歸

박상경 2011. 4. 27.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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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城南 逸話에서 뛰었던 미드필더 쟈스민(36)李 江原FC 피지컬 코치로 9年만에 韓國땅을 밟았다. 寫眞提供=講院FC

K-리그에서 活躍했던 크로아티아 出身 外國人 選手 쟈스민(36)李 9年만에 韓國에 復歸했다. 이番에는 選手가 아닌 코치 身分이다.

쟈스민은 26日 江原FC 選手團에 合流, 첫 體力 테스트를 實施했다. 1, 2軍 前 選手를 對象으로 活動量에 따른 심박수를 체크하면서 基本 體力 및 向後 進行 프로그램을 構想했다. 오랫만에 찾은 韓國인지라 語塞함이 있을 듯 했지만, 스스럼 없이 弄談을 주고 받으면서 日程을 消化했다.

쟈스민의 本名은 야스민 無이쟈. 1996年 크로아티아리그 NK私募보르를 통해 프로舞臺를 밟았고, 自國 名文 下吏讀크 스플리트를 거쳐 2002年 城南 일화에 入團했다. 契約金 20萬 달러, 月俸 8000萬 달러에 1年 契約을 했다. 國籍 變更 前 보스니아國家代表로 A매치에 15回 出戰했던만큼, 期待가 컸다. 쟈스민은 K-리그 16競技를 뛰면서 팀의 리그 優勝에 一助했지만, 이듬해까지인 契約 期間을 채우지 못한채 歸國길에 올라야 했다. 以後 NK자그레브 等을 거친 쟈스민은 2007年 現役에서 隱退, 指導者 授業에 들어갔다.

이런 쟈스민이 講院에 오게 된 것은 金 監督과의 因緣 때문이다. 올 初 外國人 選手 物色을 위해 크로아티아로 건너갔던 金 監督은 韓國에서 活躍하다 에이전트로 變身한 이싸빅의 推薦으로 쟈스민과 만났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격의없는 對話로 親分을 쌓았다. 江原은 當時 外國人 選手 外에도 피지컬 코치도 物色하던 次였기에 金 監督은 그에게 韓國行을 勸했지만 쟈스민은 '남은 工夫가 있다'면서 鄭重하게 辭讓했다. 當時 首席코치 身分이었던 金 監督도 아쉬움 속에 그와 作別을 告해야 했다.

하지만, 不過 석달餘 만에 狀況이 바뀌었다. 최순호 前 監督의 바통을 이어받은 金 監督은 連敗가 거듭되자 選手團 體力 補强 問題를 切感하게 됐다. 때마침 쟈스민이 떠올랐다. 쟈스민은 金 監督의 電話를 받고 苦心 끝에 韓國行을 決定했다. 이로써 金 監督은 體力 補强을 통해 7連霸 수렁에서 벗어나겠다는 計劃을 實現할 수 있게 됐다. 金 監督은 "쟈스민이 오랫만에 韓國에 왔는데도 經驗이 있어서인지 飮食도 잘 먹고 韓國말도 곧잘 한다"면서 웃었다.박상경 記者 kazu11@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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