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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민 사위 Mr.Q 정윤회 “박근혜 幕後人物설 追跡”|新東亞

최태민 사위 Mr.Q 정윤회 “박근혜 幕後人物설 追跡”

  • 허만섭 記者 | mshue@donga.com

    入力 2012-09-18 11: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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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朴 議員室 祕書室長 ‘門고리 權力’
    • 2004年 朴 黨代表 된 뒤 자취 감춰
    • “幕後에서 公薦 等 政治 介入” 所聞 茂盛
    • “박근혜-정윤회, 訣別 理由 없다”
    최태민 사위 Mr.Q 정윤회 “박근혜 막후인물설 추적”

    최태민

    政治權에서 膾炙되는 가장 미스터리한 男子.

    바로 故(故) 최태민 牧師의 사위 정윤회 氏다. 새누리당 大選 候補인 박근혜 議員의 前(前) 補佐官으로 알려진 鄭 氏는 2004年 以後 蹤跡을 감췄다. 박근혜 候補 陣營은 “2004年 以後 朴 候補와 정윤회 氏 사이에 接觸은 一切 없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聯合뉴스, 조선일보, 京鄕新聞 等 여러 媒體는 ‘只今도 朴槿惠의 숨은 實勢?’ ‘公薦에도 關與한다?’는 各種 설을 活字化한다. “박근혜가 執權하면 정윤회는?”이라는 궁금症이 따라 나오는 게 現實이다.

    政治權의 ‘選手들’ 사이에서 정윤회는 이미 焦眉의 關心事가 되어 있다. 그러나 정작 그가 어떠한 사람인지, 박근혜와 어떠한 關係를 맺어왔는지에 對해선 한 줄기의 빛도, 情報도 새어나오지 않는다. 새누리당에선 ‘정윤회’를 言及하는 것을 禁忌처럼 여긴다. ‘신동아’는 그와 接觸했던 人士들의 陳述 等을 통해 이 男子를 스케치해봤다.

    다른 證言을 紹介하기 前에 于先 記者가 2000年代 初 정윤회 씨를 몇 番 만난 經驗부터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若干 검고 湖南型인 얼굴, 호리호리한 體型, 愛煙家, 부드러운 말套…. 國會 議員會館 박근혜 議員室에서 만난 그의 外形的 印象이었다. 그는 獨逸에서 留學했다고 했다. 博士 課程까지 거쳤다는 것으로 들었는데 確實치는 않다. 그의 집안, 故鄕, 學歷은 朴槿惠 側 外에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座長驛 ‘비선(秘線) 祕書室長’

    現在 여러 言論에 “박근혜 議員의 前 補佐官”으로 報道되는 것과 달리 當時 그는 “박근혜 議員의 祕書室長”이라고 自身을 記者에게 紹介했다. 그래서 그를 “室長”으로 불렀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는 朴 議員室에서 풀타임으로 勤務했지만 登錄된 補佐官은 아니었던 것 같다. 박근혜 議員의 補佐官-祕書官은 朴 議員의 政界 入門 以來로 只今까지 變함없이 채워져왔다. 朴 候補는 2007年 大選 競選 때 정윤회 氏를 “前職 立法補助員”이라고 說明했다. 이 發言 亦是 鄭 氏가 公式 補佐官이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證據일 것이다.

    鄭 氏와 자주 만났다는 A氏는 記者에게 “박근혜의 立法補助員을 只今의 인턴職員 程度로 생각하면 誤算”이라고 말했다. 이어 鄭 氏에 對해 “‘박근혜 保佐陣의 座長 役割을 해온 秘線 祕書室長’으로 보는 것이 合當하다”고 했다. 議員室 內에 비선을 두는 것은 只今의 視角으로 보자면 例外的인 運營體系이지만 그렇다고 法律이나 倫理에 抵觸될 만한 事案은 아니었다고 한다. 이어지는 A氏의 證言은 當時 박근혜에게서 정윤회의 役割과 位相이 어느 程度였는지를 가늠케 한다.

    최태민 사위 Mr.Q 정윤회 “박근혜 막후인물설 추적”

    정윤회

    “1998年 박근혜 議員이 大邱 達城郡 補闕選擧로 政界에 첫발을 내디딜 때부터 정윤회 室長이 朴 議員을 도왔다. 2012年 現在까지 그대로 이어져오는 朴 議員의 保佐陣 세팅에도 鄭 室長이 어느 程度 關與한 것으로 안다. 1998年부터 2004年까지 鄭 室長은 公式 職銜 없이 祕書室長으로, 그러니까 當然히 月給이 안 나오는 無報酬로, 박근혜 議員室에서 일했다. 그렇지만 朴 議員室 內部를 綜合的으로 컨트롤했다. 普通 補佐官이 議員 房에 門을 열고 들어갈 때 조심스러워하고 禮儀를 갖추는 便인데 鄭 室長이 隔意 없이 들어가는 것을 봤다. 그만큼 박근혜 議員과의 信賴關係가 敦篤했다.

    朴 議員이 對政府質疑 같은 議政活動을 할 때 鄭 室長이 가끔 諮問 敎授團으로 알려진 外部 싱크탱크 같은 곳에서 資料를 만들어와 朴 議員에게 提供해온 것으로 안다. 이런 緣由로 鄭 室長이 議員室에서 나간 以後에도 ‘論峴洞팀’‘三成洞팀’ ‘江南팀’ 等 類似한 外郭組織을 運營하면서 朴 議員을 돕고 있다는 所聞이 끊임없이 돌고 있는 것이다. 鄭 室長의 居住地는 主로 江南이었다.

    또한 鄭 室長은 朴 議員室에 있을 때 朴 議員과 만나기를 希望하는 外部人들을 함부로 朴 議員에게 連結해주지 않았다. 鄭 室長에게 섭섭해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이로 인해 鄭 室長은 所謂 朴槿惠의 ‘門고리 權力’으로 알려졌다.”

    정윤회와의 술자리

    정윤회 氏와 여러 番 술자리를 가졌다는 B氏는 “박근혜 候補가 가장 믿는 사람은 家族 外에는 정윤회 室長과 이상렬 前 EG會長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지는 B氏의 말이다.

    “朴正熙 大統領 時節 靑瓦臺 警護室에서 勤務한 이상렬 氏는 以後 朴 大統領의 아들인 지만 氏가 오너로 있는 EG그룹의 會長으로 在任했다. EG그룹의 이광형 副會長은 朴 大統領 때 靑瓦臺 祕書室에서 일했다. 고 최태민 牧師의 사위인 정윤회, 아버지의 部下인 이상렬, 이광형을 박근혜 議員이 꽤 信賴한 것으로 안다.

    정윤회 室長은 담배는 좋아하지만 술은 잘 안 마시는데 이상렬 會長과는 많이 마시는 便이었다. 논현동 카페에서 만나면 나를 包含해 셋이서 洋酒 두 甁을 비웠다. 李 會長이 가끔 自己 車 트렁크에서 洋酒를 꺼내오는 境遇가 있었지만 술값은 大部分 鄭 室長이 냈다. 鄭 室長은 江南 等地에 不動産을 많이 갖고 있어서인지 負擔 없이 냈다.”

    정윤회-최순실 夫婦는 서울 江南區 新沙洞 640-1 美僧빌딩을 保有하고 있다. 2008年엔 保有하던 江南區 新沙洞 639-11 빌딩을 85億 원 程度에 賣却했다. 2002年까진 江南區 驛三洞 689-25 빌라를 所有했다. 2004年엔 江原 平昌郡 땅 18萬㎡를 사들이기도 했다. 美僧빌딩 5層엔 鄭 氏가 代表理事로 되어 있는 ㈜얀슨이 入住해 있다. 그러나 營業活動을 거의 하지 않고 있고 鄭 氏도 出入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候補가 2002年 한나라당을 脫黨해 한국미래연합을 創黨한 뒤 總裁로 就任하자 鄭 氏는 總裁祕書室長으로 活動했다. 政治權 事情을 잘 아는 다른 關係者는 當時 鄭 氏의 影響力이 컸다고 回想했다.

    “한국미래연합 創黨 資金을 대어온 某 氏가 黨務에 자주 干涉했다고 한다. 無理한 側面이 있었지만 누구도 나서지 못하고 있는데 정윤회 室長이 그를 制止했다. 激忿한 某 氏가 鄭 室長을 除外할 것을 要求했으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 某 氏는 資金을 回收해 가버렸다.”

    또 다른 政治權 人事는 “當時 鄭 室長이 박근혜 議員 곁에서 創黨 作業을 實質的으로 主導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여러 사람은 정윤회 氏가 박근혜 議員의 祕書室長日 때도 隱忍自重(隱忍自重)해왔다고 말한다. 다음은 A氏의 說明이다.

    “나, 療養 가야 할 것 같다”

    “정윤회 室長은 議員室 일을 實質的으로 主導하면서도 少數의 사람과만 親하게 지냈다. 이들에게도 自身에 對해선 거의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의 故鄕, 學歷, 甚至於 나이조차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와 술을 마시다 내가 궁금해 ‘서로 民症(住民登錄證) 까보자’고 했다. 그때 그가 1954年生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周邊 사람들의 視線을 꽤 의식했다. 저녁 約束을 잡을 때도 ‘國會에서 가까운 汝矣島에서 보는 건 어떤가’라고 하면 늘 ‘江南으로 가지’라고 했다. 또한 朴 議員이나 本人과 關聯해 質問 받는 것을 싫어했다. 그런 質問을 받으면 ‘에이, 뭐 그런 걸 물어보나’라고 했다.”

    박근혜 候補는 2004年 3月 한나라당 代表가 됐다. 以後 정윤회 氏는 박근혜 議員室을 떠나 蹤跡을 完全히 감춘다. 이 狀況을 某 人士는 이렇게 述懷했다.

    “더위가 채 가시기 前인 2004年 어느 날, 정윤회 室長이 ‘나 몸이 안 좋다. 療養가야 할 것 같다. 앞으로 한동안 못 보게 될 거다’라고 말했다. 얼마 뒤 그는 사라졌다. 그를 만나온 거의 모든 사람이 그와의 連絡이 杜絶됐다. 2007年 大選을 앞두고 스스로 身邊을 整理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최태민 牧師의 사위가 곁에 있으면 아무래도 박근혜 議員에게 負擔이 될 터였다. 以後 ‘정윤회가 뒤에서 박근혜를 돕는다’는 이야기만 나왔다. 그러나 그를 接觸했다는 사람을 볼 수는 없었다. 그와 通話했다는 사람이 있기에 찾아가서 ‘正말이냐’고 물어보니 ‘아니다’라고 하더라.”

    정윤회 氏와 關聯되는 疑問은, 單刀直入的으로 이야기하자면, 크게 두 가지다. 첫째 疑問은 ‘박근혜에게 있어 정윤회가 水平關係로 보인다’는 點이다. 이 水平關係에 對해 政治權에선 推測이 茂盛하다.

    이에 對해 2004年까지 鄭 氏를 만나본 사람들은 “核心側近은 맞지만 멘토라는 主張은 臆測”이라고 말한다. “朴槿惠보다 나이가 어리고 박근혜를 깍듯하게 모셨다” “오랫동안 觀察한 바로는 스마트한 스타일이라기보다는 愚直한 스타일이었다” “박근혜의 워딩을 만들어줄 만한 人物이 아니었다” “박근혜의 周邊을 管理하는 데에 注力했다”는 이야기였다.

    둘째 疑問은 ‘최태민 攻勢 遮斷 以外에 박근혜가 정윤회와 訣別할 理由가 없어 보인다’는 點이다. 이 點에 對해선 정윤회 氏를 만나본 이들은 大體로 首肯했다. 이들은 “정윤회가 上官인 박근혜에 對한 義理가 대단하고 일을 신중하게 處理한다”고 했다. 朴槿惠의 觀點에서 정윤회에게 內在的으로 接近하는 境遇 “최태민 牧師와의 因緣도 있는데다 忠誠心과 能力을 갖춘 정윤회를 멀리할 理由가 없다”는 것이다.

    實際로 박근혜 候補는 2007年 大選 競選 檢證聽聞會에서 “大統領이 돼도 崔 牧師 家族과 繼續 關係를 가질 것인가”라는 質問에 “정윤회 祕書가 能力이 있어 實務 도움을 받았다. 法的으로 罪를 지은 것도 아니고 實力이 있는 사람이면 쓸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정윤회, 水面 위로 나와야

    이러한 情況上 같은 江南에 居住하면서 2004年 以後 박근혜와 정윤회가 한 番도 본 적 없다는 現實이 오히려 非正常일 수 있다. 많은 사람이 정윤회에 對해 궁금해하지만 言論을 비롯해 누구도 정윤회를 만나지 못하는 點 또한 異常하다고 하겠다.

    이는 무엇인가 人爲的이고 强力한 統制가 作動하고 있다는 反證으로 보인다. 왜 그래야 하는 걸까? 그의 蒸發이 더 不吉해 보이는 理由다. 萬若 朴槿惠 政權의 樹立을 假定해본다면 말이다.

    열린 社會에서 豫測不可能性보다 더 나쁜 것은 없다. 앞으로의 政權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公的(公的) 시스템’에 依해서만 作動되어야 한다. “정윤회가 ‘朴槿惠 政權의 블랙홀’이 될 수 있다”는 政治權 一角의 視線에 當事者들이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정윤회 氏가 睡眠으로 登場해 할 말을 하는 게 낫다고 본다.

    최태민과 朴槿惠

    고(故) 최태민 牧師는 陸英修 女史 死亡 이듬해인 1975年 퍼스트레이디 代理를 한 박근혜 候補에게 慰勞 便紙를 보냈다. 이를 契機로 두 사람은 만남을 가졌다. 朴 候補는 2007年 大選 競選 檢證聽聞會에서 “마음에 와 닿고 만나보고 싶어 만난 분 中 하나”라고 했다.

    以後 崔 牧師는 牧師 按手를 받았고 1975年 5月 開催한 救國祈禱會에서 朴 候補를 大寒救國宣敎團 名譽總裁로 推戴했다. 救國宣敎團은 救國奉仕團, 새마음奉仕團으로 이름을 바꿨다.

    그런데 當時 中央情報部가 作成한 것으로 알려진 ‘최태민 關聯’ 報告書에 따르면 崔 牧師에 對해 利權 介入, 橫領, 詐欺, 融資 斡旋 等의 權力型 非理와 女子關係 疑惑이 提起됐다. 朴正熙 大統領 公報祕書官을 지냈던 선우련 氏는 備忘錄에서 “1977年 朴 前 大統領이 崔 牧師를 親鞠했다”고 썼다. 1979年 10·26事態 以後 崔 牧師는 전두환 合同搜査部에 依해 江原道로 보내졌다. 그러나 以後 朴 候補가 理事長을 맡은 育英財團의 顧問을 지내는 等 朴 候補와 因緣을 維持해오다 1994年 世上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2007年 大選 當時 ‘신동아’ 6月號는 中央情報部의 최태민 關聯 報告書를 最初로 公開하면서 報告書 內容의 寫實性을 함께 檢證했다. 1980年 保安司令部 處長으로서 崔 牧師를 搜査한 이학봉 前 議員은 2007年 ‘신동아’ 인터뷰에서 “최태민 牧師가 企業體로부터 돈을 뜯어낸 것으로 確認된 게 얼마나 되는지…별로 없었던 것 같다. 朴槿惠 前 代表는 최태민 疑惑과 關係가 없었다”고 했다. 1970年代 末 中央情報部 派遣 檢事로서 崔 牧師를 搜査한 백광현 前 內務部 長官은 ‘신동아’에 “김재규 中央情報部長이 최태민 問題를 억지로 갖다 붙였다. 최태민 非理가 事實인지 말하기 어렵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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