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만   중국   일본 
執念의 ‘經濟 勝負師’ 李完九 忠南知事|新東亞

執念의 ‘經濟 勝負師’ 李完九 忠南知事

“두바이·푸둥은 忠南의 未來, 投資誘致로 開發社 새로 쓴다”

  • 지명훈 동아일보 社會部 次長 mhjee@donga.com

    入力 2008-02-12 11:57:00

  • 글字크기 설정 닫기
    • 全國 廣域自治團體 外資誘致 1位, 地域內 總生産(GRDP) 1位, 國際收支 黑字 1位, 企業誘致 增加率 1位…. 李完九 忠南知事가 지난해 이룩한 忠南의 ‘經濟 成績表’다. 그는 黃海經濟自由區域 指定을 이끌어냄으로써 忠南에 6萬7000個의 일자리와 4兆원의 附加價値를 創出했다. 忠南을 ‘名品 經濟區域’으로 만들겠다는 이 知事의 ‘그물 外資誘致론’.
    집념의 ‘경제 승부사’ 이완구  충남지사
    李完九(李完九·57) 忠南知事는 忠南을 ‘大韓民國 代表 브랜드’로 育成하기 위해선 于先 經濟부터 다져야 한다는 信念을 갖고 있다. 그가 2006年 7月 就任 直後부터 經濟에 ‘올인’한 理由도 그 때문이다. 지난해 12月에는 김문수 京畿知事와 忠南-競技의 黃海經濟自由區域 指定을 이끌어내 經濟成果를 보다 탄탄하게 뒷받침할 基盤을 마련했다. 그가 當時 보여준 特有의 積極的 業務 스타일이 官家에 話題가 되기도 했다.

    지난해 11月11日 韓國消費者院에서 財政經濟部 主管으로 열린 ‘經濟自由區域指定을 위한 開發計劃 說明會’. 各 自治團體의 說明을 듣기 위해 參席한 敎授 等 15名의 專門家 評價團은 한동안 어리둥절했다. 충남도가 黃海經濟自由區域에 對해 說明할 次例가 됐는데 該當 失·局長이 자리를 빠져나가버렸기 때문이다. 李完九 知事는 실·局長 없이 直接 프리젠테이션에 나섰고 홀로 質疑에 應答했다. 충남도 關係者는 “이 知事가 1時間30分間 進行된 說明과 質疑應答을 위해 며칠 밤을 새우며 工夫했다”며 “自治團體長의 이런 積極的인 모습에 評價團이 깊은 印象을 받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知事가 지난 한 해 이뤄놓은 충남도의 ‘經濟 成績表’는 華麗하다. 全國 廣域自治團體 外資誘致 1位, 地域內 總生産(GRDP) 1位, 國際收支 黑字 1位, 企業誘致 增加率 1位…. 그는 一連의 宿願事業 解決 過程에서 自身의 슬로건인 ‘强한 忠南’의 面貌를 遺憾없이 發揮하고 있다. 國防大 論山 移轉計劃 確定과 百濟歷史再現團地 民資誘致, 保寧∼安眠島(泰安郡) 連陸橋 建設 確定, 舒川郡의 內包文化圈 編入 等 그동안 遲遲不進했던 충남도의 宿願 事業이 지난해 一擧에 解決됐다. 이 가운데는 처음부터 無理한 試圖라는 事業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 “支社를 아프리카에 보냈더니 酋長이 되고, 沙漠에 보냈더니 물동이를 들고 나타났다”는 弄談도 나왔다.

    暴發的 企業 誘致

    “正말 精神없이 달려왔네요. 긴 터널을 막 빠져나온 느낌도 들고요.”



    1月14日 저녁 大田 中區 선화동 忠南道廳 隣近의 한 飮食店에서 이 知事를 만났다. 이 知事는 다음날 16個 市·郡 巡訪을 앞두고 있었다. 그는 過去를 踏襲하지 않으려는 所信이 있다. 이番 市郡 巡訪은 郡廳이나 傘下機關을 訪問해 業務報告를 받는 旣存 形態에서 벗어날 豫定. 民間의 雰圍氣가 느껴지는 文藝會館에서 市·郡民과 自由 主題로 對話를 하고 住民의 意見을 收斂한다는 計劃이다. 公館에서 손님이 기다리고 있어 隨行祕書가 坐不安席이었지만 道政(道政)李 話題에 오르자 그는 다음 日程을 모두 잊은 듯 對話에 沒入했다.

    ▼ 就任 以後 經濟 成績表가 前에 없이 좋아졌네요.

    “事實 충남도의 經濟 與件이 그리 나쁜 便이 아닙니다. 外國 企業들이 選好하는 首都圈만큼은 아니지만 忠南은 首都圈의 背後라는 點이 强點이에요. 高速鐵道, 首都圈 電鐵, 西海岸 및 대진고속도로의 잇따른 開通으로 交通 與件이 前에 없이 좋아졌죠. 그런데 땅값은 首都圈에 비해 훨씬 쌉니다. 더욱이 中國의 成長은 西海岸의 重要性을 크게 浮刻시켰어요. 特히 忠南 西北部地域에는 디스플레이, 鐵鋼, 石油化學, 自動車 等 核心 産業이 集中돼 있고요. 自治團體長에게 經濟를 살리려는 意志가 얼마나 있느냐가 가장 重要합니다. 그 意志에 따라 所重한 資源과 與件이 蘇生하기도 하고 死藏될 수도 있어요.”

    忠南道는 2006年 7月 民選 4期 支社 就任 後 지난해 11月末까지 26億1000萬달러의 外資를 誘致했다. 이 知事가 在任 4年 동안 目標로 세운 外資誘致額은 60億달러. 不過 1年6個月 만에 全體 目標額의 43.5%를 達成한 셈이다. 就任 以後 誘致한 企業도 1160餘 個에 達해 暴發的인 增加勢를 보였다.

    집념의 ‘경제 승부사’ 이완구  충남지사

    忠南 泰安郡 만리포海水浴場에서 이명박 當選者와 함께 기름除去 現場을 둘러보는 李完九 忠南知事.

    ▼ 警察 出身이라 經濟 政策을 펼치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 같기도 한데요.

    “忠南地方警察廳長(治安監)으로 公務員 生活을 마감했지만 出發은 經濟官僚였습니다. 財經職으로 考試에 合格해 經濟企劃院에서 일했죠. 國會議員 時節 財政經濟위와 農林海洋水産위에서 일하면서 ‘國民經濟’에 對해 많은 苦悶을 했습니다. 經濟活性化를 使命처럼 생각했죠. 노무현 政府 後半期에 忠南知事가 됐어요. 只今도 事情이 달라진 게 아니지만 當時에는 經濟 活性化가 話頭였지요. 地方選擧를 치르면서 經濟를 회복시켜달라는 有權者들의 하소연을 숱하게 들었어요.”

    團體長 意志가 關鍵

    ▼ 外資誘致의 祕訣이라면.

    “支社 就任 直後 내세운 슬로건이 바로 外資誘致였어요. 外資誘致는 忠南道뿐 아니라 國家的으로 經濟를 活性化하는 일이기 때문이죠. 外資誘致를 위해 必要하다면 支社가 時間과 場所에 拘礙하지 않고 뛰어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하지만 혼자서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죠. 시스템이 돌아가야 일이 보다 效率的으로 됩니다. 그래서 지난해 1月 專擔組織인 投資誘致擔當官室(4팀 16名)을 新設했어요. 投資誘致擔當官을 專門家로 交替하고 經濟部知事도 外資誘致專門家로 起用했지요.”

    2006年 9月7日 네덜란드 半導體 部品 生産業體인 ASM社와 2000萬달러 外資誘致 契約에 合意할 때는 이런 일도 있었다. 直接 現地를 訪問한 李 知事는 協商에 進展이 없자 “내가 道知事로 있는 한 용수와 가스, 道路 等 인프라 構築에 必要한 그 무엇이든 다 해주겠다”고 約束했다. 싱가포르와 臺灣, 韓國을 投資地域으로 놓고 저울질하던 ASM社는 自治團體長의 積極的인 提案에 마침내 韓國行을 決定했다.

    하지만 原則은 반드시 지켰다. 協商過程에서 ASM社가 半導體 工場에 必須的인 클린 룸을 設置해달라고 要求하자 “클린 룸은 인프라가 아니지 않으냐”며 斷乎히 拒絶했다. 當場의 投資誘致를 위해 이를 許諾한다면 先例가 되어 앞으로의 投資誘致에도 걸림돌이 된다는 判斷에서였다.

    ▼ ASM社가 投資를 決定한 것은 諸般 與件이 맞아서이지 自治團體長이 나선 때문은 아니라는 視角도 있습니다.

    “그 말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합니다. 企業에 가장 重要한 것은 投資與件이에요. 돈 될 곳에 자리를 잡아 利潤을 남겨야 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비슷한 條件일 때에는 自治團體長의 意志가 宏壯히 重要합니다. 韓國의 境遇 外國에서 規制가 剛하기로 所聞이 나 있어요. 하지만 自治團體長이 規制緩和를 確約하면 企業들이 安堵해요. 他國에 投資하려는 企業에 인프라 保障 等의 約束은 큰 所得이 아닐 수 없죠. 인프라를 構築하는 데 天文學的인 돈이 들어가지 않습니까.”

    이 知事는 外資誘致와 國內 企業의 投資에는 行政規制가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본다. 그가 最近 職員들에게 企業에 對한 行政規制의 實相을 있는 그대로 把握해 報告토록 한 理由도 그 때문이다. 이 知事는 “政府는 規制가 甚하다고만 알지, 實相이 어떤지는 제대로 把握하지 못하고 있다”며 “그 結果를 李明博 政府에 보여 주고 經濟活性化를 위해 어떤 措置가 必要한지 把握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 忠南이 黃海經濟自由區域으로 指定됐는데 이것이 어떤 效果를 나타내리라 보십니까.

    “黃海經濟自由區域에는 京畿道 平澤과 火星, 忠南 牙山과 唐津, 瑞山이 包含돼 있습니다. 外資誘致에 있어 各種 規制가 풀리는 것은 勿論, 政府가 이룬 投資誘致의 效果를 地域 經濟에 直接 連結시킬 수 있죠. 충남도와 京畿道는 2025年까지 3段階에 걸쳐 이들 地域에 尖端産業團地와 國際物流, 觀光, 硏究 團地를 造成합니다. 올해 7月까지 이를 위한 黃海經濟自由區域廳을 設立할 豫定이고요. 黃海經濟自由區域 指定으로 忠南道는 6萬7000個의 일자리와 4兆원의 附加價値를 創出할 것으로 期待됩니다. 우리는 이 經濟自由區域을 아랍에미리트(UAE)의 두바이와 中國의 푸둥(捕東) 같은 名品 經濟區域으로 만들려고 해요. 충남도의 開發社를 새로 쓸 만한 超大型 프로젝트 事業이죠. 그동안 外資誘致를 낚시로 했다면 앞으로는 그물로 할 수 있는 與件이 마련된 셈입니다.”

    “기름 퍼내며 쇼하지 말라!”

    집념의 ‘경제 승부사’ 이완구  충남지사

    지난해 10月11日 忠南 公州에서 열린 ‘백제文化祭’.

    이 知事 特有의 積極性은 國防大 論山 以前과 保寧~安眠島 海底터널 承認에서도 그 빛을 發했다. 그는 國防對 論山 移轉을 위해 大統領을 세 次例나 面談했고 이를 決定하는 國家均衡委員 42名을 一一이 찾아다니며 하루 800㎞를 달렸다. 保寧과 安眠島를 잇는 連陸橋 事業이 豫算 때문에 壁에 부딪히자 一部 區間을 海底터널로 代替해 2000億원假量의 豫算을 節減했다.

    ▼ 忠南의 代表 祝祭인 백제文化祭가 前에 없이 活性化하고 있습니다.

    “百濟는 古代 東北亞 海上을 號令했고 燦爛한 文化의 꽃을 피웠습니다. 遺物 遺跡이 不足해서 그런지 新羅文化圈에 비해 忽待를 받아온 側面이 있지요. 우리는 백제文化祭를 ‘名品 祝祭’로 만들어 백제의 魂을 깨우려 합니다. 지난해 10月 백제文化祭가 華麗하게 열렸습니다. 지난해부터 백제文化祭를 공주시와 扶餘郡에서 同時에 開催하기 始作했어요. 專門的인 知識과 經驗을 갖춘 總監督을 迎入하고 分野別 專門家를 委囑해 住民과 觀光客이 參與하는 體驗型 祝祭로 탈바꿈시켰죠.”

    忠南道는 백제와 交流한 歷史를 갖고 있는 日本의 구마모토(熊本)縣과 나라(奈良)縣, 中國 장쑤(江蘇)成果 3角 네트워크를 形成해 ‘잃어버린 百濟 찾기’에도 나설 方針이다. 이와 함께 공주시와 扶餘郡의 遺跡地를 大幅 整備해 2010年 末 世界文化遺産에도 登載할 計劃이다.

    ▼ 史上 最惡의 海洋汚染 思考가 泰安에서 發生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解決해나갈 건가요.

    “漁業과 觀光이 어우러진 泰安郡이 消費者와 觀光客의 信賴를 回復하는 것이 가장 重要합니다. 被害와 復元의 程度를 國民에게 眞實하게 밝히고 設令 速度가 늦더라도 確實하게 復元한 뒤 淸淨地域으로 宣布하겠습니다. 原油流出事故가 난 지 한 달餘 만에 泰安郡을 찾은 自願奉仕者가 50餘 萬名을 넘었어요. 危機일수록 成熟함을 보이는 우리 國民의 偉大함을 그대로 보여준 事例입니다. 너무 고마워요. 이를 世界的으로 알리기 위해 展示館과 記念館, 自願奉仕館 等을 세우는 方案을 積極 推進하겠습니다. 現在는 補償이 問題인데요. 于先 緊急 生計費를 支援하고 補償이 徹底하게 되도록 最善을 다하겠습니다. 于先 亂立한 補償對策위 窓口를 單一化해 한목소리를 내는 게 重要합니다.”

    이 知事는 政治權이 泰安 問題를 解決하기 위해 實質的인 努力을 傾注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지난해 12月27日 한나라당 最高委員會에 參席한 이 知事가 完全復舊와 充分한 補償을 위한 特別法 制定을 促求하며 “國會議員이 기름이나 퍼내며 쇼맨십을 하는 時代는 지났다”고 쏘아붙인 것도 이 같은 背景에서다. 前날인 12月26日 한나라당과 大統合民主新黨 議員들은 泰安을 訪問해 防除作業을 벌였다. 이 知事는 “모두 氣分이 나빴겠지만 國會議員은 法律과 制度의 整備로 돕는 것이 本分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日本의 原油流出 地域을 訪問해 關聯 對策을 벤치마킹하기도 했다.

    ‘來日은 없다’

    ▼ 李 知事께서 忠淸 政治權의 盟主로 浮上하고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옵니다. 李明博 大統領 當選者가 總選 等 向後 政治 日程을 앞두고 이 知事의 役割에 期待를 건다는 얘기도 있고요.

    “김종필 前 자민련 總裁가 政治 一線에서 後退하고 심대평 前 忠南知事가 한나라당과 政治 路線을 달리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으로 봅니다. 또 李明博 政府로서는 當場 코앞으로 다가온 總選이 重要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저는 政黨人인 同時에 自治團體長입니다. 懸案을 解決하기에도 바빠요.”

    個人的인 政治 日程이 있느냐는 물음에 이 知事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나에겐 來日이 없다’는 말을 座右銘처럼 삼고 있어요. 來日을 생각하면 步幅이 좁아집니다. 道知事의 賢明한 處身은 島民의 利益을 最高의 價値로 생각하고 온몸을 던져 일하는 것뿐입니다.”



    댓글 0
    닫기

    매거진東亞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推薦記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