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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祚榮 섹시 無事 金襴 심은진|新東亞

大祚榮 섹시 無事 金襴 심은진

“막대기 하나만 쥐어주면 누구와 맞붙어도 自信있어요”

  • 최호열 동아일보 新東亞 記者 honeypapa@donga.com

    入力 2008-02-12 10: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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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大河史劇 ‘大祚榮’에서 처음엔 唐나라 將帥 薛仁貴를 暗殺하려는 愛妾으로, 中盤 以後엔 女將軍으로 熱演하며 눈길을 끈 ‘金襴’ 심은진. 女性 댄스그룹 베이비복스 出身으로 섹시한 美貌를 지닌 그는 多少 차가운 첫印象과는 달리 새하얀 눈처럼 부드러우면서도 화끈한 女人이었다.
    대조영  섹시 무사 금란 심은진
    모처럼 서울에 大雪注意報가 내렸다. 아침에 窓門을 여니 聯立住宅 屋上에, 아스팔트 위에, 멀리 北韓産 소나무 가지 위에 눈이 수북이 쌓여 있다. 새하얀 눈은 아름답다. 그러나 차갑다. 뺨과 손등에 떨어져 녹아내리는 눈은 사랑이 식어버린 女人의 마음 같다. 길을 걷다 쪼그려 앉아 눈을 뭉쳐 보았다. 意外로 부드럽다. 그러고는 피를 뜨겁게 달군다.

    지난해 숱한 話題를 모은 大河史劇 ‘大祚榮’에서 男性 視聽者의 눈길을 끈 俳優가 있다. 男子 俳優 中心의 史劇에서 女將軍 ‘金襴’을 延期한 심은진(27)이다. 처음엔 唐나라 武裝 薛仁貴의 愛妾이 되어 그를 暗殺하려는 舞姬로 登場했고, 中盤부터는 渤海의 女將軍으로 變身해 男子 俳優들 못지않은 武術實力을 보여줬다. 金襴을 보고 있으면 눈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름답지만 차갑게 느껴지는, 그러나 實際로는 부드러우면서도 뜨거운.

    約束場所에 나타난 그에게서 금란의 餘韻은 찾을 수 없었다. 過去 5人組 女性 댄스그룹으로 人氣를 끈 베이비복스 時節의 섹시한 美女로 돌아와 있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만나기로 한 터라 옷차림에도 神經 쓰지 않고 메이크업도 짙지 않았지만 늘씬한 몸매(168cm, 48kg)와 커다란 눈이 단박에 視線을 固定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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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도 마시고, 클럽도 가고…”

    “좀 쉬었어요. 前에는 쉴 때면 旅行을 가곤 했는데, 이番엔 오늘처럼 中間 中間 스케줄이 잡혀 있어 그냥 집에서 푹 쉬었어요. 그러다 施賞式에도 가고, 年末엔 親舊들 만나 수다 떨고, 술 마시고, 클럽도 가고…. 이 生活도 이제 끝이에요. 새로 始作하는 娛樂 프로그램 進行을 맡았거든요.”



    ▼ 집에선 뭘 하면서 쉬나요.

    “뭐든지 集中하면 끝장을 보는 性格이에요. 香水를 모으기 始作하면 왕창 모으고, 그러다 질리면 또 다른 걸 모으고…. 이番엔 冊에 ‘必’이 꽂혀 冊을 잔뜩 사서 읽었어요. 日本 小說을 좋아해요. 요시모토 바나나, 무라카미 류, 무라카미 하루키…. 日本 小說은 읽을 땐 참 슬픈데 읽고 나면 뭔가를 생각하게 해요. 마음속에 ‘짠’한 게 남아 좋아요.”

    ▼ 國內 作家들 作品은 안 읽나요.

    “읽긴 했는데, 좀 어렵다는 느낌이 들어요. 너무 어렵게 돌려서 얘기하는 게, 作家가 잘난 척하는 것 같아 맘에 안 들어요. 저는 感性的으로 가슴에 다가오는 小說이 좋아요.”

    率直하고 거침이 없다. 남의 눈치를 보거나 미리 計算하지 않는다.

    “小說말고는 그림冊을 많이 봐요. 高等學校 때 디자인科를 擇해서 그런지 그림에 關心이 많거든요. ‘美術散策’流의 冊들은 作家의 感性을 잘 드러내기 때문에 그 作家에 對해 한 番 더 생각해볼 수 있어서 좋아요.”

    ▼ 高等學校 디자인과?

    “商業高等學校를 나왔는데, 産業디자인科가 있어요.”

    지난해 末, 심은진이 남몰래 泰安에 내려가 自願奉仕를 하고 온 事實이 뒤늦게 알려지기도 했다.

    ▼ 어떻게 그런 착한 생각을 하게 됐죠?

    “그 事件을 모르는 國民은 없잖아요. 저도 傳해듣긴 했지만 皮膚에 와 닿지않았어요. 그런데 ‘이경규 金龍萬의 라인업’ 프로그램에서 出演者들이 自願奉仕하는 걸 보고서 正말 深刻한 狀況이란 걸 알았고, 작으나마 내 힘도 보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放送을 보고 저처럼 決心한 분 많을 거예요. ‘라인업’에서 참 좋은 일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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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 하나라도 더 닦고 가는 게 幸福”

    지난 12月27日, 두 親舊와 함께 無作定 泰安으로 내려갔다고 한다. 내려가던 날 現地 모텔에서 자고 다음날 아침부터 일손을 도왔다.

    ▼ 추운 겨울날 온終日 차가운 바닷바람 맞으며 일하는 게 쉽진 않았을 텐데요.

    “大祚榮 撮影할 때는 더 힘든 일도 많았는걸요. 하루 終日 웅크린 채 돌을 닦다 보니 나중엔 어깨가 저리고 팔도 아팠어요. 特히 손가락 끝이 甚하게 아리더군요. 일을 끝내고 나서 서울까지 제가 運轉하고 올라왔는데 온몸이 쑤시고 손가락이 부어서 혼났죠.”

    ▼ 사람들이 알아볼까봐 不便하지 않았나요.

    “金襴 演技할 때와 딴판으로 스타일을 확 바꿔서인지 금세 알아보지는 못하던데요. 제 옆에서 돌을 닦던 아저씨가 저를 한참 보시더니 ‘거, 날마다 칼 들고 싸우는 妻子 아니냐’고 해요. ‘그렇다’고 하니까 ‘만날 싸움질만 하는 女子가 여기서 돌 닦고 있을 줄은 몰랐다’고 하시더군요. 함께 간 親舊가 돌을 닦으면서 ‘辱이 나온다’고 했어요. 都大體 배를 어떻게 管理했기에 自然을 이토록 悽慘하게 망쳐놓을 수 있느냐고, 왜 責任지는 사람이 아무도 없느냐고 憤痛을 터뜨렸죠. 그랬더니 그 아저씨가 ‘已往 좋은 일 하러 왔으면 氣分 좋게 돌 하나라도 더 닦고 가야 幸福해진다. 이게 돌이 아니라 엄마의 얼굴, 조카의 얼굴이라 생각하고 精誠껏 닦으라’고 하셨어요. 正말 마음에 와 닿는 말이었어요.”

    ▼ 平素에도 奉仕活動에 關心이 많은가요.

    “저보다도 베이비복스 멤버였던 (肝)미연이가 正말 많이 해요. 미연이네 洞네에 保育院이 있어요. 버려진 아이, 虐待받던 아이, 障礙 있는 아이들이 있는 곳인데, 몇 年째 그곳에 가서 沐浴도 시켜주고 놀아주고 그래요. 저도 年末에 같이 갔어요. 奉仕란 게 뭐 그리 대단한 게 아니에요. 演藝人은 팬들로부터 人形 膳物을 많이 받는데, 그 人形들을 집에 陳列한다고 무슨 業績으로 인정받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걸 더 必要로 하는 곳에 나눠주는 것도 奉仕죠.

    대조영  섹시 무사 금란 심은진

    드라마 ‘大祚榮’에서 金襴(심은진 分)은 乞士비우(최철우 분)와 애틋한 사랑을 나눴다.

    演藝活動을 하다보면 가끔 ‘사랑의 리퀘스트’ 같은 프로그램에 出演해 疏外된 이웃들을 만날 機會가 생겨요. 그런데 撮影을 위해 갔다가 그 뒤로 안 찾으면 그분들께 傷處를 줄 수 있잖아요. 그래서 한番 찾은 곳은 꼭 다시 찾으려 해요.”

    ▼ 履歷을 보니 弘報大使를 많이 했더군요.

    “집에 있는 弘報大使 敗만 15個쯤 돼요. 뭔지 모르고 한 것도 있어요. 그런데 弘報大使 牌를 보면 ‘나쁘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뭐 하나 잘못하면 열다섯 곳이 辱을 먹게 되잖아요. 그래서 나쁜 짓은 하고 싶어도 못해요(웃음). 2004年에 서울市 健康엑스포 弘報大使度 했는데, 그때 서울市長이 李明博 大統領 當選者였어요. 그때 함께 茶 마시고 視聽 구경하던 생각이 나네요.”

    ▼ 지난 大選 때 演藝人들의 大選候補 支持宣言이 줄을 이었는데, 或是 이명박 候補 側에서 連絡은 없었나요.

    “그럴 나이가 아니잖아요. 그런데는 關心도 없고요.”

    變身의 鬼才?

    심은진에겐 ‘大祚榮’의 金襴 驛이 첫 演技였다. 처음엔 演技가 語塞하다는 非難도 많았지만 時間이 지나면서 好評하는 목소리가 더 커졌다. 사랑하는 乞士비우를 위해 온몸으로 화살을 代身 맞으며 죽어가는 마지막 場面은 特히 印象的이었다.

    “敵에게 包圍당한다. 金襴 ‘將軍, 날 업어주십시오. 그게 더 빠를 것 같습니다.’ 乞士비우, 金襴을 업고 달려간다. 금란의 등 뒤로 無數히 날아와 꽂히는 唐나라軍의 화살들. 徐徐히 죽어가는 金襴…. 臺本에는 이게 全部인데, 이걸 찍느라 꼬박 이틀이 걸렸어요. 최철우 先輩(乞士비우 驛)는 이틀 동안 저를 업고 뛰었으니 죽을 뻔했죠. 未安한 마음에 조금이라도 體重을 줄이려고 밥도 안 먹으려 했는데, 눈앞에 먹을 게 있으면 저절로 입으로 들어가니….”

    ▼ 演技者들은 作品이 끝난 後에도 한동안 配役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던데, 몸과 마음이 如前히 金襴으로 남아 있진 않나요.

    “저는 훌훌 잘 털어버리는 스타일이에요. ‘이제 금란이는 안녕!’ 하면 그때부터 제게 金襴은 없어요. 歌手, 特히 댄스歌手는 이 曲에선 이런 모습을 보여줬다가 다른 曲에선 또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해요. 빨리 變身할 수 있어야지요. 10年 동안 그런 일을 反復했잖아요. 털 건 빨리 털고 가져갈 건 빨리 가져가자는 注意죠. 그래서 마지막 撮影이 끝나자마자 심은진으로 돌아오기 위해 헤어스타일부터 바꿨어요. 옷 스타일도 바꾸고, 손톱도 붙이고….”

    ▼ 지난 年末에 演技大賞 新人賞을 期待했을 텐데요.

    “周圍에서 그런 말을 많이 들었는데, 昨年엔 主演級 新人이 많았잖아요. 저는 助演이었고. 그래도 同僚 演技者들이나 監督님들이 ‘當然히 賞 받을 줄 알았는데 아쉽다’고 하셨을 땐 ‘아, 나를 認定해주는구나’ 싶어 고마웠어요.”

    나를 버리고…

    ▼ 드라마 出演은 어떤 契機로 하게 됐나요.

    “前에도 映畫나 드라마 出演 提議는 있었어요. 썩 끌리는 게 없어서 拒絶했죠. 솔로 2輯 앨범을 準備하고 있는데 ‘大祚榮’ 側에서 配役 하나가 비었다며 涉外가 왔어요. 처음엔 ‘웬 史劇?’ 했는데, 캐릭터가 워낙 좋아 오디션을 봤어요. 그런데 김종성 監督님은 史劇俳優만 固執하는 분이었어요. 저를 보시더니 ‘歌手 出身이잖아’ 하며 탐탁지 않아 하시는 것 같았어요. 아무튼 오디션을 봤는데, 다음날 다시 오라면서 ‘한番 해볼래? 覺悟는 돼 있어?’ 하셨어요. 周圍에서 歌手 出身이라고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듣고 自尊心이 傷해 ‘두고봐라’ 하는 마음으로 始作했어요. 나도 나름대로 10年 동안 베이비복스를 하면서 産前, 수전, 空中戰까지 다 겪었는데…하는 心情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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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이비복스’는 10年 동안 韓國과 中國에서 많은 人氣를 누렸다.

    ▼ 史劇, 特히 大河史劇은 女性 演技者에게 어려운 部分이 많을 텐데요. 더구나 無事 役割이었으니 아주 힘들었겠군요.

    “몸으로 때우는 役割이었죠. 戰鬪 場面이 많아 傷處를 많이 입어요. 칼싸움을 하다 손을 다치는 건 普通이고, 액션俳優가 演技를 하다 팔꿈치로 제 입술을 쳐 터진 일도 있었어요. 가장 힘든 건 한여름에 요동성 陷落시키는 場面을 찍을 때였어요. 唐나라 長壽와 싸우는 場面이 있었는데, 34℃를 오르내리는 무더운 날이었어요. 칼싸움은 힘들지 않았지만, 그늘 한 點 없는 곳에서 하루 終日 撮影하니까 津이 다 빠지더라고요. 나중엔 병든 닭 꼴이 됐죠.”

    ▼ 날씨만 좋으면 男子랑 맞붙어도 할 만하다는 건가요.

    “막대기 하나만 쥐어주면 이길 것 같아요. 武術監督님도 저더러 繼續 武術을 배우라고 하셨어요.”

    ▼ 武術練習은 얼마나 했죠?

    “撮影 들어가기 6個月 前부터 武術, 乘馬, 韓國舞踊을 배웠어요. 撮影하면서는 거문고도 배웠고요.”

    ▼ 初盤에 史劇치고는 섹시한 姿態를 보여줘 ‘눈療飢거리 캐스팅’이란 말도 있었잖아요. 演技에 對한 非難도 있었고. 마음苦生이 甚했겠어요.

    “아뇨, 마음苦生 안 했어요. 눈療飢거리라는 건 맞는 이야기니까요. 男性 視聽者의 눈길을 끌 섹시한 女子 役割이 必要했고, 그래서 節 넣은 거잖아요. 演技力도 그래요. 처음부터 稱讚받을 거란 생각 안 했어요. 제가 봐도 正말 語塞했어요. 演技를 繼續하면서 ‘내가 버려야 할 게 너무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잘해야 한다는 負擔感, 過去의 제 이미지, 모든 欲心과 생각을 버리니 어느 瞬間 ‘아, 이거구나’ 하는 感이 오고, 그때부터 演技가 便해지더라고요.”

    “惡性 리플은 愛嬌”

    지난해 드라마 ‘커피프린스’에서 中性的 魅力을 發散한 윤은혜度 베이비복스 멤버였다. 한 舞臺에 서다 只今은 演技者로서 競爭하는 사이가 됐다. 當場은 後輩인 윤은혜가 演技에서 한발 앞선 狀態. “윤은혜에게 競爭意識을 느끼느냐”고 묻자 깔깔깔 웃음을 터뜨린다.

    “웬 競爭意識? 恩惠는 우리 막내예요. 우린 다른 댄스그룹이랑 달라요. 10年 동안 正말 온갖 아픔을 함께 겪었거든요. 안티 팬들로부터 달걀 洗禮, 面刀칼, 血書도 받아보고 別別 일을 다 겪었죠. 演技를 始作하면서 받은 惡플(惡性 리플)은 愛嬌예요. 그래서 우리 사이엔 누구보다 끈끈한 情이 있어요. 서로 잘되길 바라는 마음뿐이에요.”

    ▼ 지난해 여름에도 스포츠 스타와 艶聞說이 나도는 等 種種 스캔들이 있었잖아요. 스캔들 大部分이 事實과 다르다고 解明했던데, 그 말이 事實이면 報道에 不滿이 많겠군요.

    “스캔들 때문에 抑鬱할 건 없어요. 事實인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는데, 아닌 境遇는 今方 사라지니까요. 스캔들이 난다는 건 그만큼 제게 關心이 있다는 거니까 고맙게도 생각해요. 그런데 間或 오버하는 記者들이 있어요. 最近에도 제가 1年 넘게 사귀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演藝人이 아니라고만 했거든요. 그 親舊는 一般人이라고 얘기하기도 曖昧해요. 그런데 제 男子親舊가 會社員이라는 記事가 나왔어요. 그래서 그 親舊로부터 ‘너, 兩다리 걸치고 있느냐’고 묻는 電話가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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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只今 사귀는 親舊가 演藝人도 아니고 一般人도 아니라면 演藝界 從事者나 財閥 2歲인가요.

    “둘 다 아니에요.”

    궁금症이 일었지만 그만 묻기로 했다.

    ▼ 어떤 사랑을 하고 싶은가요.

    “그냥 마음을 共有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演藝人이라는 특수한 職業을 理解해줬으면 좋겠고요. 예전에 親舊와 性格差로 헤어진 境遇도 있어요. 이제는 서로 親舊가 돼주는 그런 戀愛가 좋아요. 제가 힘들 때 袖手傍觀해도 안 되겠지만, 너무 깊게 苦悶해서 같이 힘들어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저 親舊처럼 ‘힘들지? 다 理解해. 한盞 마시고 털어’라고 말해줄 수 있는 사이가 좋아요. 只今, 그런 親舊여서 오래 가는 것 같아요.”

    平生 춤꾼으로 남고 싶어

    심은진은 高校 2學年이던 1998年 10代 댄스그룹인 베이비복스 멤버로 演藝界에 데뷔했다. 2006年 베이비복스가 解體된 後에도 솔로 앨범을 내며 歌手 活動을 繼續하고 있다.

    “初等學校 때부터 춤을 좋아했어요. 그러다 高等學校 1學年 때 奇劃社에 들어가면서 춤을 제대로 배우기 始作했죠. 奇劃社에서 5名의 女性 멤버를 뽑아 데뷔를 준비시켰는데 霧散되고 말았죠. 그래서 백댄서라도 하겠다며 親舊랑 여기저기 다니다 베이비복스에 들어가게 된 거예요.”

    ▼ 춤의 魅力은 어떤 건가요.

    “그저 춤출 때의 그 느낌이 좋아요. 말로 說明하기 참 힘든데, 춤출 때 爽快한 氣分, 幸福한 氣分을 느껴요. 노래를 하거나 演技를 하면서는 아직 한番도 그런 氣分을 느낀 적이 없어요. 다른 사람이 춤추는 걸 봐도 가슴이 뛰어요.”

    ▼ 歌手, 演技者보다 춤꾼으로 남고 싶겠네요.

    “그렇죠. 저는 그間 主로 섹시 댄스를 췄지만, 좋아하는 便은 아니에요. 元來는 男子들의 파워 있는 춤, 힙합, 팝핀댄스를 좋아하는데…. 이젠 나이가 있어 前처럼 추지는 못하겠지만 欲心은 있어요. 海外에서 춤을 더 배워서 힘닿는 대로 後輩들을 가르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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