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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땡과 萬苦땡|新東亞

에세이

망고땡과 萬苦땡

  • 엄주영 映畫製作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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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入力 2020-05-07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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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이 이렇듯 말짱한 봄날이 있었을까 싶을 만큼 오늘은 날씨가 快晴하다. 아이러니하게도 ‘날씨 話唱’은 코로나19로 사람들의 움직임이 줄어서라는 報道가 나왔다. 映畫 製作을 業으로 삼아서일까. 요즘에는 뉴스가 마치 映畫의 한 場面처럼 느껴진다. 

    世紀末이 이렇게 어이없게 始作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알지 못하는 未來가 强制的으로 앞당겨 다가온 느낌이 들기도 하다. 每年 같은 봄이 되돌아올 줄 알았는데 이番 봄은 너무나 非現實的이다. 이 봄이 지나고 이 狀況이 끝나면 나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을까. 얼마만큼 삶이 달라져 있을까. 


    1937年生 소띠 정영표 氏

    5年 前 딱 이맘때 봄이 떠오른다. 어떤 이에게는 特別할 거 하나 없는 봄이었겠으나 내겐 많은 것을 남긴 봄이었다. 媤아버님이 편찮으셨다. 肝硬化 末期로 2月부터 病院에 入院하셔서 家族 모두가 봄을 病院에서 보냈다. 男便의 아버지이자 아이들의 할아버지인 나의 媤아버님은 1937年生 소띠 정영표 氏다. 

    6·25戰爭 때 까까머리 中學生이셨다. 한 달이면 故鄕에 돌아갈 줄 알고 避難 온 南녘에서 結局 孑孑單身 孤兒가 됐다. 4名의 子息과 8名의 孫子·孫女를 얻으셔서 大家族을 이뤘다. 어떻게 보면 特別할 게 없는 人生이었다. 소와 닭을 기르시고 農事를 짓고 木手로 일하며 單 한 番도 當身을 위해 時間을 써보신 적 없는 日常이 나의 아버님 정영표 氏의 삶이다. 

    첫 人事 자리에서 아들의 女子親舊와 눈 맞추는 게 부끄러워 먼 곳을 바라보며 말씀하시던 分, 孫子들을 포대기로 업고 洞네 마실을 다니시던 분, 재취업한 며느리에게 물려줄 건 없어도 아이들은 봐주겠다고 하시던 分, ‘새벽 出勤’ ‘늦은 밤 退勤’하는 며느리를 골목 어귀에서 기다리셨다가 “밥은 먹고 다니냐”는 名臺詞를 던지신 분. 나물은 一一이 다듬고 마늘은 알알이 찧어서 보내주시던 分, 北녘에 계신 父母님을 생각하며 還甲과 七旬 잔치를 拒否하신 分, 特別히 말씀이 많지는 않아도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신 분. 아버님은 내겐 그런 분이셨다. 



    그런 아버님을 뵙는 게 어쩌면 마지막일지 몰라 온 家族이 交代로 病院에서 看病하던 때가 2015年 봄이다. 우리 家族 모두가 처음으로 아버님과 單둘이 時間을 보내는 經驗을 한 時期이기도 하다. 平生 힘든 일을 하시면서 勞動主人 막걸리를 놓지 않은 아버님의 病名은 알코올性 肝硬化였다. 

    그 病은 특별한 治療法도 特效藥도 없었다. 徐徐히 몸이 停止돼 가는 그런 病이었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排泄하는 것이 健康의 尺度임을 證明하듯 醫療陣의 質問도 “얼마를 먹었느냐?” “얼마를 輩出했느냐?” “얼마나 잤느냐?”가 大部分이었다. 아버님의 苦痛에 견주기에는 너무나도 當然하기만 한 質問들이었다. 지칠 만도 한 病院 生活 中에도 交代하며 看病하는 子息들에게 먼저 “고맙다, 苦生했다, 未安하다”란 人事말을 잊지 않으셨고, 各種 檢査와 注射로 바늘을 온몸에 꽂아대는 看護師들에게도 아프다는 소리보다 “수고하셨어요”를 잊지 않으셨다.

    “망고땡이다!”

    아버님의 狀態는 나아질 일이 아닌 나빠지는 일만 남아 있었다. 結局 排便이 힘들어 館長을 해야 했으며, 小便 줄도 着用해야 했다. 이런 아버님이 너무 안쓰러워 氣分 좋은 생각이라도 하시라고 “젊어지실 수 있으면 뭐가 第一 하고 싶으세요?”라고 여쭤보니 아버님의 答, “酒邪가 아프지 않으면 난 오늘이 第一 좋다!” 아버님이 많은 것을 하고 싶다고 하실 줄 알았는데, 요즘이 가장 힘들 줄 알았는데 오늘이 第一 좋으시다니. 限없이 모자란 맹추 같은 며느리였다. 힘든 오늘이 第一 좋을 만큼 아버님의 젊은 時節은 고단하셨던 거다. 맹추 같은 며느리는 그제야 아버님의 수고스러운 人生이 그려졌다. 

    肝性昏睡 症狀이 왔을 때도 아버님은 꿈속에서 繼續 일하고 계셨고, 일이 끝이 없다는 잠꼬대를 하시곤 했다. 마지막엔 飮食을 거의 드시지 못해 온 家族의 미션은 아버님이 드실 만한 것을 찾아 입에 넣어드리는 것이었다. 씹지도 못하시고 肝性昏睡로 精神을 차리는 時間이 漸漸 짧아져 부드러운 食感의 飮食을 求해 오는 것이 家族들이 할 수 있는 全部였다. 粥, 요구르트, 푸딩, 軟豆腐, 鷄卵찜 等 마치 理由式처럼 아기들이 먹을 수 있는 飮食만 겨우겨우 넘기고 계시던 어느 날, 잘 익은 망고를 救해 아버님에게 갔다. “아버님 망고예요, 잘 익었어요, 부드럽고 달아요”라고 얘기하고 숟가락으로 떠서 입에 넣어드렸다. 

    한 입, 두 입, 세 입 잘 드시더니 아버님이 갑자기 나를 부르시는 거다. “애미野~ 애미野~” 아버님은 무슨 말씀을 하실지 궁금해하는 내게 “망고땡이다!”라며 활짝 웃으셨다. “망고땡! 萬古땡!” 아버님에겐 그 瞬間 부드럽고 달콤한 망고가 ‘만 가지 苦痛의 멈춤-만고땡’과 같은 것이었다. 病室 안의 아버님과 나도 함께 땡!!! 그 瞬間이 내 가슴에 한 張의 스냅寫眞처럼 새겨져 있다. 웃어야 하는데 눈물이 났다. 끝까지 弄談을 놓지 않으신 멋진 瞬間이었다. 고통스러운 날을 지내면서도 맑은 微笑와 함께 길이 남을 弄談을 던지신 것이다. 

    그해 5月 11日 아버님은 淡淡하게 떠나셨다. 그즈음 가장 좋은 바이탈 사인을 보여주시고는 安心한 子息들이 잠깐 病室을 비운 사이 臨終하셨다. 아버님다우셨다. 요란스럽지 않게, 淡淡하게, 弄談하듯이 마지막 瞬間을 보내고 싶으셨던 걸까. 아버님은 2015年 봄을 통해 나와 우리 家族에게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온몸으로 傳해 주고 가신 듯하다.

    人生이란 問題紙의 正答

    그 무렵 내 삶은 가시 돋친 고슴도치 같았다. 映畫가 興行에 失敗해 고통스러웠다. ‘좀 더 독해져야 成功하는 거 아닌가?’ 하는 質問과 ‘手段과 方法을 가리지 않고 成功하고 싶다’는 欲望과 ‘그만할까?’ 하는 挫折과 ‘人生은 戰爭처럼 싸워 이겨야만 되는 過程’이란 毒氣로 內面이 소란스러웠다. 不平不滿으로 世上이 모두 미워 보이던 내게 아버님은 ‘얘야 그렇게 힘주면 너만 힘든 거란다. 힘을 풀고 손바닥을 펴보거라, 펴야지 움켜쥘 수도 있는 거지’라고 말씀하시는 듯했다. 

    人生의 精算은 마지막 한 坪의 寢牀에서 이뤄진다는 것, “고맙다”란 말로 마음을 傳하고, ‘오늘이 最高’라는 생각으로 後悔 없이 살고, 작은 것에 感謝하고, ‘萬古땡’ 할 수 있는 餘裕와 品位를 지키는 것. 이것이야 말로 잘 살아낸 人生임을 가르쳐주신 것이다. ‘人生이란 問題紙의 正答은 늘 簡單하고 쉽다’는 事實을 78歲로 人生의 마지막 門을 徐徐히 닫고 있는 아버님이 온몸으로 알려주신 것이다. 

    5年이 지난 2020年 또다시 내게 어려운 봄이 왔다. 豫測하지 못했고 計劃에 어긋나는 일들이 벌어진다. 이番엔 모두에게 힘겨운 봄날이다. 코로나19 事態가 第2次 世界大戰 以後 最高難度의 災難이라고 말한 이도 있다. 3次 世界大戰이나 核戰爭을 苦悶하던 人類의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하찮은 바이러스가 이 같은 騷動을 일으키다니. 마치 神이 人間에게 ‘이건 몰랐지?’ 하는 블랙 유머를 건넨 느낌이다. 

    온 地球가 힘든 時間을 보낸 이 봄이 지나면 우리는 얼마나 달라질까? 未來가 앞당겨 다가오는 것일까? 블랙 유머로 始作한 神의 弄談이 終末이라는 眞談으로 變하는 것일까? 이 巨創한 質問의 答은 모르겠지만 確實한 것은 日常의 所重함과 무심하게 進行되던 것들의 便安함을 다시금 알게 됐다는 點이다. 너무나 바쁘게, 바쁘게 돌아가는 地球의 人類에게 强制 멈춤의 이 時間이 省察의 봄이 됐으면 좋겠다. 

    不安은 두려움을 키울 뿐이고, 激勵와 應援은 非難보다 큰 힘이 될 것이다. 只今 이 瞬間 必要한 것은 模糊한 不安과 不平이 아닌 具體的 解決 方法과 實踐이다. 排斥과 差別보다는 連帶와 包容이 要求된다. 아버님이 알려주신 人生의 魔法을 2020年 코로나의 時代에 適用해 보려 한다. 餘裕를 가지고 유머러스하게 周邊에 내 마음을 傳하면서 잘 이겨내 보려 한다. 올해도 無事히 5月 11日 온 家族이 모여 아버님의 祭祀床에 망고를 올리고 할아버지 德分에 異國의 과일을 먹는다고 말할 수 있길 바란다. 우리 모두가 ‘萬古(萬苦) 땡’李 되는 그 時間을 기다려본다.


    엄주영
    ● 1969年 出生
    ● CJE&M 映畫 마케터
    ● 現 映畫社 ’氏네週‘ 代表
    ● 映畫 ‘媽媽’ ‘레드카펫’ ‘奇妙한 家族’ ‘반드시 잡는다’ 外 製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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