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單獨] 5.18 戒嚴司令官 이희성 死亡... 정호용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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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상 記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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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日 死亡 뒤늦게 確認... 5.18 關聯 新軍部 核心 5人 中 한名만 生存

 1988年 11月 18日 國會 光州 特委聽聞會 當時 이희성 前 戒嚴司令官
ⓒ mbc 뉴스데스크 갈무리

 

5·18民主化運動眞相糾明調査委員會가 調査 對象으로 選定한 新軍部 5人 中 정호용과 함께 生存했던 이희성이 지난 6日 死亡한 것으로 뒤늦게 確認됐다. 享年 98歲.

關係機關에 따르면 이희성은 지난 8日 서울聖母病院 葬禮式場에서 새벽 발인 後 慶南 固城 先塋에 묻혔다. 그는 12·12 軍事叛亂을 主導하고 5·18 光州 虐殺을 벌인 新軍部 核心 5人(全斗煥, 노태우, 이희성, 황영시, 정호용) 中 한 名이다.

그는 1924年 慶南 固城에서 出生해 陸軍士官學校(8期), 38師團長, 首都師團長, 1軍團長, 陸軍參謀次長을 歷任했다. 이어 12.12 軍事 叛亂으로 정승화 陸軍參謀總長이 二等兵으로 降等돼 强制 豫編되자, 뒤를 이어 陸軍參謀總長에 任命되며 陸軍 隊長으로 進級했다.
 
5.18 眞實 밝힐 生存者는 정호용뿐

特히 1980年 5.18 民主化運動 當時 戒嚴司令官을 맡아 鎭壓을 主導했다. 當時 戒嚴司令官은 軍 命令 公式 體系 內에서 가장 높은 位置다. 이 때문에 1997年 金永三 政府 當時 內亂罪 및 叛亂罪 首魁 嫌疑로 懲役 7年을 宣告받았다.

하지만 그는 5.18 關聯 裁判 當時 "아무런 責任이 없으며 모든 것은 전두환이 主導했다"고 主張했다. 以後 言論 인터뷰에서는 "전두환이 發砲 命令을 내렸다면 上官인 自身이 가만히 있었겠느냐"는 論理로 全斗煥의 潔白을 主張하기도 했다.

이희성의 死亡으로 新軍部 核心 5人 中 唯一한 生存者는 정호용 當時 特戰司令官 한 名으로 줄었다. 지난해 10月 26日 盧泰愚, 같은 해 11月 23日 전두환에 이어 해를 바꿔 지난 4月 23日 황영시가 死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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