公州市 7月 歷史人物에 '판소리 名唱' 박동진 先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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修正 2019.06.26. 午前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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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俊昊 記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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公州市 7月 歷史人物에 박동진 名唱[忠南 공주시 提供. 再販賣 및 DB 禁止]


(公主=聯合뉴스) 金俊昊 記者 = 忠南 공주시는 7月 歷史人物로 '판소리 名唱' 박동진 先生을 選定했다고 26日 밝혔다.

詩에 따르면 重要無形文化財 第5號 판소리 赤壁歌 藝能 保有者인 朴 先生은 1916年 陰曆 7月 12日 當時 公州郡 長鬐面 무릉리 365番地에서 出生했다.

그는 1933年 김창진 名唱에게 沈淸歌를 배운 것을 始作으로 1934年 정정렬 名唱에게 春香歌, 1935年 유성준 名唱에게 水宮歌, 1936年 조학진 名唱에게 赤壁歌, 1937年 박지홍 名唱에게 興甫歌를 各各 배워 판소리 다섯 마당 工夫를 完成했다.

朴 先生은 國內 판소리系 最初로 完唱을 한 人物로, 52歲이던 1968年 9月 30日 첫 完唱을 이뤄냈다.

1969年 8時間 부른 春香歌는 世界 기네스북에 오래 부른 노래로 登載되면서 外國에 韓國 판소리 存在를 알렸다.

그는 구수한 입담으로 地上波 TV에도 出演하는 等 판소리 大衆化에 寄與했으며, 廣告를 통해 "우리 것은 所重한 것이여"라는 流行語도 남겼다.

1998年 公州 무릉동 生家터에 '박동진 판소리 專修館'을 열어 全數 活動을 펼치던 中 2003年 7月 別世했다.

政府는 2003年 7月 9日 先生에게 大韓民國 金冠文化勳章을 追敍했다.

市 關係者는 "판소리 名人으로 一生을 살아온 先生의 뜻과 功績을 기리기 위해 이달의 歷史 人物로 選定했다"며 "第20回 公州 박동진 판소리 名唱·鳴鼓 大會와 連繫해 7月 12日 公州 韓屋마을에서 '公州市民意 1人 1樂器 배우기 體驗'을 進行할 豫定"이라고 說明했다.

kjun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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