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街의 아인슈타인’ 터크먼 “韓國 젊은이여, 포모에 投資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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修正 2024.05.15. 午後 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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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수 記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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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證市 寫眞의 단골인 피터 터크먼 트레이더(67)가 證市가 急落하던 날 落膽하는 모습. 뉴욕=AP뉴시스

“寫眞 한 番 찍을 수 있을까요?”

지난달 찾은 美 뉴욕 뉴욕證券去來所(NYSE). 낯익은 얼굴이 나타나자 客場을 찾은 開場 行事 參席者들이 一齊히 스마트폰 카메라를 들이댔다. 그는 ‘월街의 아인슈타인’으로 불리는 40年 플로어 트레이더 피터 터크먼(67)이었다. 美國 證市에 關心있는 사람이라면 한番쯤 봤을 법한 ‘表情富者’다. 株價에 따라 落膽,挫折, 興奮을 表情에 담아 월街에서 가장 寫眞이 많이 찍혀 言論에 실린 트레이더로 꼽힌다.

現場에서 마주친 터크먼 氏에게 인터뷰를 要請해 13日(現地時間) NYSE 앞에서 다시 만났다. 노란色 후드티, 스니커즈 차림의 터크먼 氏는 테크業界 엔지니어 느낌이었다.

13日(現地時間) 뉴욕證券去來所(NYSE) 앞에서 만난 40年 월街 트레이더 피터 터크먼(67). 뉴욕=김현수 特派員 kimhs@donga.com


●“다이어트 마지막 2kg 못빼듯…인플레 잡기 難航”

“오늘은 게임스탑이 아침부터 亂離고 聯邦準備制度(Fed·聯準) 人士가 追加 緊縮을 言及했네요.”

이날은 ‘밈 株式’인 게임스탑이 75% 오른 날이었다. 그는 市場 狀況에 對한 對話를 이어가다 “이番週 美國 消費者物價(CPI)가 실망스럽게 나오면 金利가 引上될 可能性이 살아날 수 있다. 내 直感으론 (物價) 指標만 좋으면 연준이 한番 或은 두 番 引下할 것”이라고 말했다.

‘언제 연준이 金利를 내릴 것 같느냐’고 묻자 고개를 흔들었다. 이어 “나는 株價 豫測에 對해서도 絶對 助言하지 않는다. 市場은 하루에도 한 瞬間에 바뀔 수 있고 내가 틀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特히 儒家에 影響을 미치는 두 個의 戰爭이 있다. 一般的으로 市場에 影響을 미치지는 않지만 若干 影響을 줄 수 있는 大選도 있다”며 요즘과 같은 市場은 40年 베테랑도 豫測하기 어렵다는 點을 强調했다.

그는 聯準의 인플레이션 戰爭을 다이어트에 比喩하기도 했다. 터크먼 氏는 “35파운드(16kg)를 減量하기로 決心하고 키토와 같은 嚴格한 食餌療法으로 30파운드(14kg)는 쉽게 뺄 수 있다. 하지만 마지막 5파운드(2kg) 減量은 매우 어렵다”며 “物價上昇率을 마지막 1%포인트 떨어뜨리는 것은 힘든 過程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人工知能(AI)와 關聯해선 버블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내가 아인슈타인을 닮았다고들 하지만 그만큼 똑똑하지 않아 월街에서 가장 뛰어난 애널리스트들에게 助言을 求한다”고 웃으며 “마이크로소프트(MS)等 企業들은 數兆 원을 投資하고 있고, 來年이면 집에 로봇을 들이는 時代가 올 것이다. AI는 實際로 빠르게 다가오고 있고, 거품이 아닌 眞짜다”라고 强調했다.

뉴욕證券去來所(NYSE) 플로어를 40餘 年을 지켜온 베테랑 트레이더 피터 터크먼 氏(67). 뉴욕=김현수 特派員 kimhs@donga.com


●1985年 월街에…“위기 4番 겪어”

터먼 氏가 월街에 入門한 것은 28歲였던 1985年이다. 去來所에 컴퓨터가 없던 時節 트레이더들이 종이를 들고 서로 高喊을 지르며 株式을 去來하던 時期다. 소리 치는 트레이더 사이에서 電報를 作成하는 ‘텔레타이피스트’로 始作했다.

메사추세츠 大學에서 經濟學科 農業을 專攻한 그는 卒業後 뉴욕에서 레코드 가게를 運營해봤지만 딱히 願하는 일을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뭘 해야할지 모르던 그에게 結局 當時 成功한 醫師였던 아버지가 월街에서 브로커리지를 運營하던 患者에게 아들의 일거리를 付託한 것이다. 터크먼 氏는 “처음 발을 디딘 瞬間 去來所의 아드레날린을 느꼈다. 이 곳이 내가 있어야 할 곳임을 알았다”고 말했다.

40年 동안 숱한 市場의 危機도 봐 왔다. 그는 “株價는 오르락내리락 하기 때문에 늘 幸福한 날이라고 생각하면 된다”며 “내가 危機라고 붙이는 것은 딱 4 番뿐이다. 1987年 검은 月曜日, 2000年 닷컴 버블, 2007年 金融危機, 그리고 新種코로나바이러스感染症(코로나19)”라고 說明했다. 1987年 10月 19日, 다우指數가 하루에 22.9% 暴落했던 當時 트레이더를 支援하는 社員이었던 그는 “그날 많은 會社가 破産했다. 트레이더드의 스트레스와 苦惱 를 느낄 수 있었다”고 回想했다.

2007年 리먼 브라더스 破産 무렵에는 트레이더로서 乘勝長驅하던 그에게도 危機가 찾아왔다. 計座에 돈이 마르고 顧客도 잃었다. 株式去來 시스템이 漸漸 컴퓨터로 代替되며 ‘올드스쿨’李 適應하기 어려운 張이 펼쳐졌다. 하지만 活潑히 去來를 하는 ‘尺’ 하며 每日 NYSE로 出勤했다. 그는 “어렵다고 이불 속에 있으면 絶對 機會가 오지 않는다”며 “내가 잘하는 일이고, 좋아하는 일이니 언젠가 機會가 올 거라고 생각했다”고 强調했다. 實際로 偶然히 出勤 길에 마침 브로커를 求하고 있던 월街 人士를 만나 意氣投合해 새로운 去來 모델을 導入하는 事業을 構想하게 됐다. 機會가 온 것이다.

유대人인 터먼 氏는 “나치 홀로코스트 生存者인 父母님으로부터 ‘늘 살아남아야 한다’고 가르침을 받았다. 살아남아 우리의 이야기를 後代에 傳하라고 하셨다”며 “이를 위해선 아무리 하기 싫고 힘들어도 늘 해야할 일과 場所로 가야한다”고 덧붙였다.  

最近 아내를 잃었다는 그는 “어머니날인 어제는 내 人生 最惡의 날이었다. 나의 어머니도 돌아가셨고, 子女들은 어머니가 없는 첫 어머니날이었다”며 “하지만 苦痛스럽다고 멈추면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없다”고 말했다.

●“韓國 젊은이들이여, 포모에 投資말라”

美 나스닥指數가 史上 最高値를 更新한 14日(現地時間), ‘월街의 아인슈타인’으로 불리는 피터 터크먼 氏(67)가 自身의 페이스북에 올린 寫眞.
그가 世界 各國 新聞에 登場하는 ‘월街의 얼굴’李 된 것도 金融危機 무렵이었다. 2007年 證市暴落에 落膽한 얼굴이 뉴욕데일리 1面에 실리며 話題가 됐다. ‘表情富者’인 德에 거의 모든 言論社가 그의 表情을 통해 롤러코스터 證市를 담았다. 처음 월街에 入門할 때만 해도 想像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얼굴이 알려진 德에 다른 사람들에게 肯定的인 影響을 미치고, 기쁨을 줄 수 있었어요. 事實 삶은 그것으로 充分합니다.”

40年 동안 월街도 많이 變했다. 1980年代 NYSE 플로어에서 일하던 트레이더는 約 1300餘 名이었지만 現在는 300餘 名으로 줄었다. 아무도 서로 고함치며 去來하지 않는다. 現場에서도 各自의 컴퓨터를 통해 株式을 去來한다. 그럼에도 그는 現場에서 사람을 통하는 仲介의 重要性을 믿고 있다. ‘언제까지 NYSE 플로어에 있을 것인지’를 묻자 “아마도 내가 죽어야 NYSE를 떠날 것”이라며 웃었다.

터먼 氏는 새로운 技術을 工夫하고, 適應하며 새로운 ‘職業’을 더하고 있다. 소셜미디어 인플루언서로, 월街 스타 애널리스트 댄 아이브스와 함께하는 팟캐스트度 進行者로, 트레이딩 아카데미 ‘先生님’으로 活動 中이다.

이날 인터뷰에서도 韓國의 젊은 投資者들에게도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그는 “팬데믹에 풀린 돈과 로빈후드와 같은 株式去來 테크놀로지의 登場은 4, 5000萬 投資者에게 보낸  ‘證市 파티’ 招待狀이었다”며 “問題는 파티의 룰을 모르고 包모(FOMO·fear of missing out)나 流行(hype)에 휘둘리는 이들이 많다. 꼭 規則이 적힌 ‘플레이北’을 먼저 工夫하라고 싶다”고 했다. 特히 感情에 휩싸여 포모에 投資하지 말라는 것을 再次 强調했다.

物件에 돈을 쓰느니 株式을 사라는 助言도 덧붙였다. 그는 “요즘은 무엇이든 사는데 熱中한다. 하지만 좋아하는 物件을 만드는 會社의 株主가 될 생각을 해보라”며 “스타벅스 커피가 좋으면 커피를덜 마시고, 아이폰이 좋다면 新製品 代身 애플 株式을 사보라”고 助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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