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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의 마들렌 그날의 콩브레…잃어버린 애틋한 時間·場所로 靈魂의 冒險, 只今 出發~[정여울의 힐링 스페이스]

그곳의 마들렌 그날의 콩브레…잃어버린 애틋한 時間·場所로 靈魂의 冒險, 只今 出發~[정여울의 힐링 스페이스]

업데이트 2024-05-13 00:43
入力 2024-05-12 18:06

프루스트의 마들렌, 紅茶, 그리고 사랑이 숨쉬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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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 소설 속 모델이 된 레오니 이모의 집은 현재 프루스트 박물관으로 바뀌었다.  이승원 작가 제공
프루스트 小說 속 모델이 된 레오니 姨母의 집은 現在 프루스트 博物館으로 바뀌었다.
이승원 作家 提供
아주 些少한 追憶의 瞬間이 나도 모르는 瞬間에 커다란 기쁨을 줄 때가 있다. 이 난데없는 기쁨의 起源은 어디일까. 엄청난 幸運 같은 것이 따르지 않아도 그저 그 素朴한 追憶의 힘으로 힘겨운 나날들을 버티는 瞬間이 있다.

●再現할 수 없는, 난데없는 追憶의 맛

가장 最近에 떠오르는 記憶은 달콤쌉싸름한 와인의 맛으로부터 始作되었다. 先輩의 집들이 모임에서 누군가 膳物로 와인을 가져왔는데, 내가 苦心 끝에 選擇해 가져간 와인보다 그 와인이 훨씬 맛있었다. ‘맛있다’는 말로는 到底히 表現되지 않는 强烈함이 그 와인 속에 깃들어 있었다. 너무 强烈해서 普通의 와인과는 아예 다른, 와인이 아닌 全혀 다른 次元의 술인 것 같았다.

時間이 흐른 뒤 나는 그와 똑같은 와인을 어렵사리 求해서 ‘그때 그 瞬間의 기쁨’을 다시 再現해 보고자 애썼다. 勿論 그 와인은 如前히 華奢하고 상큼한 香氣로 코끝을 刺戟했다. 그런데 아무리 여러 番 吟味해 보아도 ‘그때 그 瞬間 그 맛’을 똑같이 느낄 수는 없었다.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追憶의 香氣가 깃들어 있어서 그 어떤 레시피로도 再現해 낼 수 없는 單 한 番뿐인 追憶의 맛이었던 걸까. 우리가 함께한 모든 나날의 슬픔과 기쁨이 한꺼번에 그 와인을 向해 블랙홀처럼 빨려드는 氣分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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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의 마들렌과 홍차를 재현한 모습.  이승원 작가 제공
프루스트의 마들렌과 紅茶를 再現한 모습.
이승원 作家 提供
생각해 보니 그날 모인 멤버들의 組合은 매우 特異했다. A先輩는 B先輩가 바빠서 갑작스레 代打로 불려 나온 것이고, 와인을 가져온 C先輩는 내가 먼저 連絡하지 않으면 決코 먼저 連絡하는 法이 없는 사람이었으며, 집主人 D先輩는 人生 第2幕을 設計하는 博士論文 準備로 精神없이 바빴고, 나 또한 모든 種類의 모임을 엄청나게 두려워하는 극내향인이었기 때문이다.

그 와인이 그토록 强烈한 香氣로 나를 刺戟했던 理由는 내가 ‘이제 우리 헤어지면 언제 다시 만날까’라는 생각에 빠져 그 와인을 한 모금조차 아까워하며 마셨기 때문이었다. 나에게 所重한 그 사람들을 언제 또 볼지 몰랐기 때문에 그날의 그 와인 맛이 그토록 强烈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오랫동안 苦生하다가 마침내 보금자리를 마련한 先輩의 집들이를 祝賀하는 그날의 따스한 雰圍氣, 그날의 짧았던 만남, 그날을 마지막으로 아직도 先輩들을 다시 만나지 못하고 있는 서글픔, 우리가 알고 지낸 無慮 20餘年의 因緣과 追憶이 녹아 있는 그날의 만남이 그 와인 맛을 그토록 單 한 番뿐인 특별함으로 물들였던 것이다. 나에게 그 와인은 마치 프루스트의 마들렌처럼, 너무 오랫동안 차곡차곡 접혀 있던 過去의 記憶을 아코디언처럼 화르르 펼쳐 주며 아름다운 追憶의 멜로디를 연주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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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에 콩브레에 있는 프루스트 기념 동상.  이승원 작가 제공
一理에 콩브레에 있는 프루스트 記念 銅像.
이승원 作家 提供
내 追憶 속 향기로운 와인을 생각하다 보니 프루스트에게 있어 마들렌의 意味가 더욱 强烈하게 다가온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時間을 찾아서’에 登場하는 저 달콤한 마들렌은 ‘콩브레’라는 마을에서 어린 時節을 보내던 主人公 마르셀의 追憶 속 飮食이다. 바로 이 콩브레의 모델이 된 場所가 ‘一理에 콩브레’(Illiers-Combray)다. 이 마을의 이름은 元來 ‘一理에’였는데 ‘잃어버린 時間을 찾아서’의 紀念碑的 成功으로 인해 마을 이름 自體가 一理에 콩브레로 바뀌었다고 한다.

마을 이름까지 바꾼 偉大한 文學作品의 班列에 오른 ‘잃어버린 時間을 찾아서’였건만 처음 世上에 나왔을 때의 反應은 실망스럽기 이를 데 없었다. 프루스트의 原稿는 數없이 거절당했다. 甚至於 노벨文學賞 受賞者이자 프랑스 文化部 長官까지 歷任했던 앙드레 지드도 이 作品의 出刊을 一言之下에 拒絶했고, 먼 後날 自身의 選擇을 크게 後悔했을 程度였다. 傷處 입은 프루스트는 어쩔 수 없이 自費를 들여 初版을 出刊했고, 讀者들은 多幸히도 이 作品의 眞價를 알아보았으며, 이제 그의 作品은 全 世界 讀者들의 熱狂的인 사랑을 받게 되었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와 함께 20世紀 最高의 傑作으로 稱頌받은 ‘잃어버린 時間을 찾아서’에서 콩브레는 어린 時節의 追憶을 가득 담고 있는 아련한 노스탤지어의 代名詞가 되었다. 一理에 콩브레는 이제 마르셀 프루스트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貴重한 文學의 聖地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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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의 책들을 출간하고 판매하는 프루스트 박물관 내부 모습.  이승원 작가 제공
프루스트의 冊들을 出刊하고 販賣하는 프루스트 博物館 內部 모습.
이승원 作家 提供
●‘콩브레’는 讀者들의 마음속에

果然 一理에 콩브레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時間을 찾아서’ 속 描寫처럼 燦爛하게 아름다운 追憶의 瞬間들로 반짝일까. 나는 커다란 설렘을 안고 그곳으로 떠났다. 나는 一理에 콩브레에서 뭔가 엄청나게 아름다운 風景을 發見할 것으로 想像했는데, 막상 그곳에 가 보니 너무도 平凡하고 素朴한 마을이라 살짝 失望한 것이 事實이었다. 그동안 너무도 華麗한 場所들의 스펙터클에 익숙해져 버린 것일까. 스펙터클은 말 그대로 구경거리, 눈을 剛하게 刺戟하는 볼거리이니 말이다. 그런데 이곳의 眞짜 스펙터클은 멋들어진 겉모습이 아니었다. 그것은 ‘잃어버린 時間을 찾아서’ 속 追憶의 時間에 반짝이는 人物들, 文章들, 描寫들이었다. 卽 一理에 콩브레의 魅力은 그 自體의 겉모습이 아니라 冊을 읽은 讀者들의 ‘마음속’에 있었던 것이다.

그토록 平凡한 마을을 그토록 아름답고 燦爛한 奇跡의 場所로 描寫한 것이야말로 프루스트의 天才性이었다. 프루스트의 作品을 읽다 보면 때로는 人間이 時間을 記憶하는 것이 아니라 事物과 場所가 人間을 記憶한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意志가 記憶하기보다는 그 場所나 事物이 우리를 ‘非意志的’으로 흔들어 깨우는 것이다. 처음에는 마들렌을 별로 먹고 싶어하지 않았던 小說 속 主人公 마르셀이 마음을 바꾸어 ‘마들렌과 紅茶를 먹겠다’고 決心하는 것도, 紅茶에 적신 마들렌을 한입 베어 무는 瞬間의 驚異로운 感情도, 모두 主人公 自身이 일부러 記憶한 것이 아니라 自身도 모르게 暴發하듯 터져 나온 ‘非意志的 記憶’ 때문이다. 어떤 事物이나 場所를 보면 自身도 모르게 無意識의 刺戟을 받아 그 事物이나 場所에 關聯된 어떤 記憶들이 도미노처럼 暴發的인 速度로 떠오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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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 소설 속 모델이 된 콩브레의 방.  이승원 작가 제공
프루스트 小說 속 모델이 된 콩브레의 房.
이승원 作家 提供
그리하여 뒤늦게 떠오르는 잘못된 選擇을 後悔하며 가슴을 칠 때가 있다. 그 사람에게 좀더 잘했어야 했는데, 그 機會를 놓치지 말았어야 했는데, 아무리 힘들어도 그때 거기 꼭 갔어야 했는데…. 수많은 後悔가 가슴을 뒤늦게 후려친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 보면 ‘意識的 選擇’李 아닐 때도 우리의 無意識은 恒常 무언가를 熱心히 選擇하고 있었다. 그때 그 時節 그곳에 가지 않은 것, 그 사람에게 親切하지 못했던 것, 唯獨 그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슬픔만은 外面할 수 없었던 것. 그런 마음의 向方은 우리가 論理的으로 選擇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를 살게 하는 ‘靈魂 火덕’ 永遠하길

無意識의 選擇은 意識의 努力으로는 統制 不可能하다. 그 代表的인 無意識의 選擇이 바로 ‘사랑’이다. 프루스트의 小說 속 主人公들은 그들이 結局 사랑 때문에 엄청나게 傷處받을 것을 알면서도 그 사람을 사랑하고, 그 사람에게 執着하고, 그 사람의 一擧手一投足에 어처구니없이 魅了된다. 사랑은 本質的으로 우리 靈魂의 脆弱性에서 비롯된다. 나에게 分明히 傷處를 줄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나의 無意識的 選擇에서 사랑은 비로소 始作된다. 프루스트의 小說 속 主人公들은 바로 그 悲劇을 알고 있으면서도 고치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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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 소설이 모델로 삼은 레오니 이모의 집 내부에는 스테인드글라스로 된 창문이 있다.  이승원 작가 제공
프루스트 小說이 모델로 삼은 레오니 姨母의 집 內部에는 스테인드글라스로 된 窓門이 있다.
이승원 作家 提供
紅茶에 적신 달콤한 마들렌이 마르셀의 입天障에 닿는 瞬間, 콩브레에서 겪었던 모든 일들이 이를테면 죽기 直前 自己 人生의 決定的인 場面들이 엄청나게 빠른 速度로 再生되듯 한꺼번에 되살아난다. 어린 마르셀을 울고 웃게 하던 모든 追憶이 마들렌의 폭신폭신한 質感과 쌉싸름한 紅茶와의 어우러짐을 통해 마치 아주 작게 접힌 종이꽃이 따뜻한 물 속에서 豐滿하게 피어오르듯이 한꺼번에 되살아난 것이다. 이 追憶의 再生 速度는 너무 갑작스럽고 빨라서 마치 24時間을 1分 안에 超高速 再生해 보여 주듯이 마르셀의 가슴속에서 온갖 이야기의 씨앗이 피어나는 瞬間으로 壓縮된다. 우리에게도 그런 時間이 있지 않았던가.

나에게 난데없는 기쁨은 ‘나만의 삶이라는 이야기가 피어나던 時間’의 熱狂的인 歡喜였다. 些少하고 平凡해 보이지만 그런데도 ‘나에게는 나만의 이야기가 있고, 나만의 文章이 있고, 나만이 世上을 向해 외칠 수 있는 메시지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瞬間의 바로 그 기쁨이 내 삶의 源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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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서 오른쪽은 레오니 이모의 집, 왼쪽은 어린 마르셀의 방이다. 이승원 작가 제공
寫眞에서 오른쪽은 레오니 姨母의 집, 왼쪽은 어린 마르셀의 房이다.
이승원 作家 提供
當身의 마음속에는 어떤 마들렌이, 어떤 콩브레가 숨쉬고 있을까. 부디 우리가 小說 속 마르셀처럼 잃어버린 모든 애틋한 時間과 場所를 끝내 되찾는 靈魂의 冒險을 멈추지 말기를 꿈꾼다. 나의 마들렌은, 나만의 이야기꽃이 피어나는 瞬間의 뜨거운 歡喜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내 삶을 밀어 가는 가장 뜨거운 熱情의 수레바퀴, 그것은 바로 ‘나만의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懇切한 所願이다. 몸속 心臟처럼, 내 靈魂 中心部에도 이야기의 불꽃이 타오르는 靈魂의 火덕이 있어 내가 아무리 힘들고 지친 瞬間에도 그 이야기의 火덕만은 絶對 꺼지지 않는다.

文學評論家·作家
2024-05-13 19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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