렙티스 마그나는 都市 計劃 領域에서 獨特한 藝術的 아름다움을 具現한 都市이다. 키레네와 함께, 고대로 다시 돌아가려는 運動으로 精巧한 新古典主義 美學을 完成시키는 데 큰 役割을 하였다. 紀元前 1000年에 페니키아(Phoenicia)의 港口 都市로 建設되어 카르타고(Carthago) 領土의 一部였던 이 都市는 暫時 동안 누미디아(Numidia)의 王 마시니사(Massinissa)의 支配下에 있었다. 누미디아의 王 유구르타(Jugurtha)와 戰爭을 치르는 동안 그곳에 駐屯을 하고 있던 로마인들이 紀元前 46年에 이 都市를 아프리카의 한 地方으로 統合하면서, 同時에 어느 程度의 自治를 許容하였다.
렙티스(Leptis, 페니키아의 이름을 라틴語로 表記한 이름)는 시르티안(Syrtian) 海岸의 사브라타(Sabratha)와 같은 다른 페니키아의 貿易 中心地와 匹敵할 만했지만, 셉티미우스 세베루스가 193年에 로마 皇帝가 되면서 相當히 繁昌하였다. 세베루스 時節, 새롭게 丹粧된 렙티스는 로마 世界에서 가장 아름다운 都市 中의 하나였다. 아직도 세베란(Severan)의 都市 計劃은 最高의 例로 손꼽힌다.
그 以後 렙티스는 아프리카의 大部分 海岸 都市들처럼 盛衰를 겪었다. 4世紀부터 掠奪에 시달리다가 비잔틴제국에 다시 征服되어 中心地로 變貌하였으나, 11世紀 들어 다시 밀려드는 아랍의 侵略을 견디지 못했으며, 結局 힐랄 族(Banu Hilal)의 侵略 때 確實히 무릎을 꿇고 말았다.
모래沙漠 아래에 묻혀 있던 이 都市는 오랜 고고 發掘을 통해 徐徐히 모습을 드러냈다. 이 都市는 아우구스투스(Augustus) 皇帝와 티베리우스(Tiberius) 皇帝 時節에 建設되었지만, 세베루스의 野心찬 計劃에 따라 完全히 새롭게 丹粧을 하였기 때문에, 그 當時의 主要 建築 要素들을 모두 包含하고 있다. 포럼, 바실리카, 세베루스 아치 構造物은 새로운 로마 藝術의 最高의 事例에 屬하며, 아프리카와 東洋 傳統에 剛하게 影響을 받았다.
아직 元來의 位置에 그대로 있는 세베루스 바실리카와 세베루스 아치 構造物, 트리폴리의 博物館에 있는 彫刻들은 明確한 直線 形態가 革新的이며, 雄壯한 크기의 輪廓과 直角 設計가 參神하여 아프리카의 太陽을 가려 주는 役割을 하도록 구상된 綜合 美學이라고 할 수 있다.
102,000㎢의 人工 碇泊地를 가진 古代의 港口에는 아직도 埠頭와 防波堤, 要塞, 倉庫, 神殿이 남아 있다. 地中海 西쪽의 危險한 急流로 흘러드는 와디 레브다(Wadi Lebda)의 흐름을 調節하도록 만든 댐과 水路는 로마 技術의 傑作이다. 이 댐과 水路는 네로 皇帝 當時에 發掘되어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時節에 整備하였다.
큰 商業 中心地의 日常生活에 必須 要素인 市場에는 奉獻 아치(votive arch)와 列柱 및 商店들이 들어서 있으며, 大部分이 保存되어 있다. 아우구스투스 皇帝 時節부터 내려오는 建築物은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皇帝 時節에 變形되고 整備되었다. 倉庫와 作業場들 또한 이곳이 商業과 工業이 活潑했던 都市였음을 말해 주는데, 名聲이 높은 記念 建築物들과 아치와 文, 元來의 포럼과 세베루스 時節의 포럼, 神殿, 公衆沐浴湯, 劇場, 原形 劇場은 全 地域의 아주 一部에 지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