本來 高句麗의 매곡현(買谷縣)이었는데, 新羅가 이 地域을 차지한 뒤 景德王 때 選曲(善谷)으로 고쳐 內領軍(奈靈郡: 只今의 榮州)의 영현으로 하였다. 高麗 太祖 때 星州 이능선(李能宣)李 歸順하였으므로 瘞安으로 고쳐 軍으로 昇格시켰다.
1018年(玄宗 9) 吉州(吉州: 只今의 安東)의 任內(任內)로 하였다가 禑王 때 軍으로 獨立하였다. 恭讓王 때 監務를 設置하였으며, 1413年(太宗 13) 縣監을 두었다.
1895年(高宗 32) 예안군 읍내면이 되었다가 1914年 行政區域 改編 때 安東郡과 예안군이 倂合되면서 예안면으로 편입시켰다. 1995年 安東郡과 안동시가 統合되어 안동시가 되었다.
瘞安은 洛東江 上流의 盆地 地域으로 領地産(靈芝山)ㆍ倒産(陶山) 等에 둘러싸여 있었으며, 洛東江의 支流인 分强(?江)이 흐르고 있었다. 이 地域은 新羅 때 交通上ㆍ軍事上 매우 重要한 곳이었다.
東쪽으로는 義人(宜仁)을 지나 靑旗(靑杞)ㆍ營養(英陽)에 이르는 道路가, 北쪽으로는 榮州ㆍ奉化ㆍ財産(才山) 等을 連結하는 道路가 發達하였으며, 西쪽과 南쪽의 道路를 따라 安東과 醴泉에 갈 수 있었다.
高麗 때 倭寇의 잦은 侵入으로 被害가 컸으며, 鎭山인 領地産에는 酸性이, 그리고 西北쪽의 祿電算(祿轉山)에는 봉수施設이 있었다. 東쪽 10里 地點에는 退溪(退溪)골짜기와 도산書院이 있다.
瘞安의 地名由來는 예(禮)가 땅을 뜻하므로 ‘살기 좋은 便安한 곳’ 또는 ‘기름진 땅’이라는 뜻을 가진다. 예로부터 各種 農産物이 豐富하고 三災(三災)를 當하지 않는 곳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