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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 버마 : 네이버 圖書
1983 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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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 버마

  • 著者
    강진욱
  • 出版
    박종철출판사
  • 發行
    2017.06.10.
冊 紹介
『1983 버마』는 ‘버마 아웅 산 墓所 테러 事件’을 다루고 있다. 1983年 10月 9日, 버마(現 미얀마) 首都 랭군(現 양곤)에 있는 ‘아웅 산 墓所’에서 爆彈이 터져 전두환 大統領을 遂行하던 外交使節을 包含한 韓國人 17名과 버마人 4名이 死亡하고 數十 名이 負傷을 當했다. 6個國 巡訪길에 나섰다가 첫 訪問地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전두환 大統領과 장세동 警護室長 等은 宿所에서 늦게 出發해 事件 當時 現場에 없어 火를 면했다. 전두환 大統領은 事件 直後 이 事件이 “北傀의 所行”임을 主張했고, 남은 日程을 모두 取消하고 歸國한 뒤 非常警戒態勢를 發動했다. 全國的으로 ‘北傀 蠻行 糾彈大會’가 열렸고 報復과 膺懲 雰圍氣가 高調됐다. 버마 政府는 事件 發生 後 3週가 지나도록 ‘北韓’을 특정하지 않은 채 ‘코리언’李 犯人이라는 立場이었다. 犯人으로 指目되어 逮捕된 ‘강민철’은 처음에는 自身이 서울에서 자라고 서울에서 왔다고 했으나, 南韓 政府 關係者들과 만난 뒤인 11月 3日 自身이 北韓에서 왔다고 陳述을 飜覆했고, 버마 政府는 그 다음 날 바로 北韓 外交官에게 出國을 命令했고 北韓과의 外交 關係 斷絶을 宣言했다. ‘강민철’에게는 死刑이 宣告되었지만 搜査에 協助했다는 理由로 無期로 減刑됐다. ‘강민철’은 2008年 獄中에서 死亡한 것으로 돼 있으나 事實 與否는 確認되지 않았다. 이 冊은 버마 事件과 關聯하여 이제까지 韓國 政府가 發表하고 여러 言論이 報道한 內容에 疑問을 提起하는데서 비롯되었다.

冊 情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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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테고리
    各國政治
  • 쪽數/무게/크기
    368 534 g 154*225*21 mm
  • ISBN
    9788985022811

冊 紹介

『1983 버마』는 ‘버마 아웅 산 墓所 테러 事件’을 다루고 있다. 1983年 10月 9日, 버마(現 미얀마) 首都 랭군(現 양곤)에 있는 ‘아웅 산 墓所’에서 爆彈이 터져 전두환 大統領을 遂行하던 外交使節을 包含한 韓國人 17名과 버마人 4名이 死亡하고 數十 名이 負傷을 當했다. 6個國 巡訪길에 나섰다가 첫 訪問地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전두환 大統領과 장세동 警護室長 等은 宿所에서 늦게 出發해 事件 當時 現場에 없어 火를 면했다. 전두환 大統領은 事件 直後 이 事件이 “北傀의 所行”임을 主張했고, 남은 日程을 모두 取消하고 歸國한 뒤 非常警戒態勢를 發動했다.

全國的으로 ‘北傀 蠻行 糾彈大會’가 열렸고 報復과 膺懲 雰圍氣가 高調됐다. 버마 政府는 事件 發生 後 3週가 지나도록 ‘北韓’을 특정하지 않은 채 ‘코리언’李 犯人이라는 立場이었다. 犯人으로 指目되어 逮捕된 ‘강민철’은 처음에는 自身이 서울에서 자라고 서울에서 왔다고 했으나, 南韓 政府 關係者들과 만난 뒤인 11月 3日 自身이 北韓에서 왔다고 陳述을 飜覆했고, 버마 政府는 그 다음 날 바로 北韓 外交官에게 出國을 命令했고 北韓과의 外交 關係 斷絶을 宣言했다. ‘강민철’에게는 死刑이 宣告되었지만 搜査에 協助했다는 理由로 無期로 減刑됐다. ‘강민철’은 2008年 獄中에서 死亡한 것으로 돼 있으나 事實 與否는 確認되지 않았다. 이 冊은 버마 事件과 關聯하여 이제까지 韓國 政府가 發表하고 여러 言論이 報道한 內容에 疑問을 提起하는데서 비롯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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出版社 書評

1983年 10月 9日, 버마(現 미얀마) 首都 랭군(現 양곤)에 있는 ‘아웅 산 墓所’에서 爆彈이 터져 전두환 大統領을 遂行하던 外交使節을 包含한 韓國人 17名과 버마人 4名이 死亡하고 數十 名이 負傷을 當했다. 6個國 巡訪길에 나섰다가 첫 訪問地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전두환 大統領과 장세동 警護室長 等은 宿所에서 늦게 出發해 事件 當時 現場에 없어 火를 면했다. 전두환 大統領은 事件 直後 이 事件이 “北傀의 所行”임을 主張했고, 남은 日程을 모두 取消하고 歸國한 뒤 非常警戒態勢를 發動했다. 全國的으로 ‘北傀 蠻行 糾彈大會’가 열렸고 報復과 膺懲 雰圍氣가 高調됐다.

버마 政府는 事件 發生 後 3週가 지나도록 ‘北韓’을 특정하지 않은 채 ‘코리언’李 犯人이라는 立場이었다. 犯人으로 指目되어 逮捕된 ‘강민철’은 처음에는 自身이 서울에서 자라고 서울에서 왔다고 했으나, 南韓 政府 關係者들과 만난 뒤인 11月 3日 自身이 北韓에서 왔다고 陳述을 飜覆했고, 버마 政府는 그 다음 날 바로 北韓 外交官에게 出國을 命令했고 北韓과의 外交 關係 斷絶을 宣言했다.

‘강민철’에게는 死刑이 宣告되었지만 搜査에 協助했다는 理由로 無期로 減刑됐다. ‘강민철’은 2008年 獄中에서 死亡한 것으로 돼 있으나 事實 與否는 確認되지 않았다.



이 冊이 다루고 있는 ‘버마 아웅 산 墓所 테러 事件’과 關聯된 槪略的인 內容은 위와 같다. (흔히 ‘아웅 산 테러 事件’이라고 하지만, ‘아웅 산’은 버마의 英雄的인 獨立運動家이며 事件이 벌어진 곳은 그를 기리는 ‘아웅 산 墓所’였다.)

이 冊은 위의 事件과 關聯하여 이제까지 韓國 政府가 發表하고 여러 言論이 報道한 內容에 疑問을 提起한다.

筆者는 事件이 벌어지고 오랜 歲月이 흐른 뒤에 出版된 冊子들, 特히 當時 大統領 警護室長이었으며 大統領과 함께 爆破 當時 現場에 到着하지 않아 목숨을 건진 장세동, 現場에 있었던 外信 記者, 巡訪 日程을 企劃하던 外務部長官이었다가 事件 當時 故事에도 不拘하고 뜻밖으로 安企部長 자리에 있었던 盧信永, 그리고 김대중 政府 時節 國家安全企劃部와 그 後身인 國家情報院에서 1次葬을 지낸 라종일 等의 冊을 꼼꼼하게 읽으며, ‘合理的 疑心’을 굳혀 갔다.

筆者는 當時 韓國 言論의 報道 內容을 細心하게 檢討했고, 美國-南韓, 美國-北韓, 南韓-北韓, 美國-버마, 南韓-버마, 北韓-버마 等의 外交와 關聯된 政府 文書들과 硏究書들을 追跡했다. 韓國과 美國의 政府 文書 가운데는 얼마 前에야 一般人에게 公開된 文書도 包含되어 있다. 그리하여 1980年代 初盤, 美國과 韓國의 政權이 北韓을 國際的으로 고립시키기 위한 計劃을 세우고 作戰을 推進하고 있었음을 밝혔다.

아울러 테러犯으로 指目된 ‘강민철’이라는 人物에 對해 南韓 政府 關係者들이 보인 意外의 憐憫과 愛情에 注目했다. 그리고 北韓의 工作員이라는 ‘강민철’에 對한 여러 描寫가 南韓의 북파工作員이 回顧한 것과 너무도 一致함을 밝혀냈다. 現職 記者인 筆者는 ‘강민철’李 收監되어 있었다는 미얀마의 矯導所에서 勤務했다 退職한 矯導官과 通話하여 證言을 듣는 努力도 기울였다.

그리하여 筆者는 1983年 버마 아웅 산 墓所에서의 爆發이 全斗煥 政權 初期 3年 내내 일어났다는 ‘北韓에 依한 南韓 大統領 弑害 祈禱’ 事件 가운데 하나라는 結論에 到達한다. 아웅 산 墓所에서의 爆發은 北韓을 外交的으로 고립시키기 위한 ‘工作’이었다는 것이다.

北韓과 버마는 美國에 反旗를 들고 있던 非同盟運動을 主導하던 두 축이었다. 버마에서 北韓이 南韓 國家元首를 殺害할 意圖로 테러를 벌인 듯 事件을 일으켜 北韓을 非同盟運動에서 孤立시키고 나아가 國際社會에서 고립시키려는 것이 當時 政權의 意圖였다는 것이다. 勿論 全斗煥 政權만의 計劃이 아닌 美國과의 協調 속에서 이루어진 作戰이라는 것이 筆者의 생각이다.



第1部에서는 全斗煥 政權이 1983年 以前부터 北韓이 南韓의 大統領을 弑害하려 ‘大統領 弑害 謀議 事件’을 꾸며 왔음을 밝힌다. 그리고 弑害 祈禱 理由는 番番이 ‘光州에서의 虐殺을 膺懲한다’라는 것으로 發表되어 왔는데, 전두환 政府는 버마에서의 테러도 같은 理由로 說明했다.

第2部에서는 1983年 事件이 벌어지기 直前에 韓國과 버마에서 벌어진 일들을 昭詳히 紹介하면서 ‘아웅 산 墓所 事件’이 企劃되고 準備되어 왔음을 밝힌다. 事件 當日을 전후하여 벌어진 일들, 偶然으로 돌리기에는 너무도 奇怪한 여러 情況들(第3部)도 筆者의 ‘合理的 疑心’을 뒷받침한다. 아울러 처음에는 서울에서 왔다던 ‘강민철’李 北韓 工作員임을 是認하는 過程에 安企部 職員이 干與한 情況도 밝힌다(제4부).

筆者는 버마에서의 爆發 事件 以後 多大浦에서 ‘間諜’을 生捕한 일이나 여러 國家를 北韓과의 關係 程度에 따라 分類하여 外交 關係를 다시 定立한 日(“늑대 사냥”)李 모두 버마에서의 事件을 마무리하는 作業으로 본다(제5부).

아울러 筆者는 전두환 時節에 推進했던 南北會談이 北韓으로 하여금 아웅 산 墓所 테러 事件을 저질렀다고 認定케 하기 위한 속셈에서 始作되었기에 失敗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힌다(제6부).

‘강민철’李 北韓의 工作員이 아닌 북파工作員이라는 疑心은 버마에 收監되어 있던 강민철을 韓國 政府에서 管理한 事實(第7部)로 인해 더욱 깊어진다. 第8部는 강민철에 對한 政府 關係者의 描寫와 說明이 북파工作員 스스로 證言하는 訓鍊 過程과 一致함을 보여 준다.

第9部는 當時 버마와 美國의 關係, 버마와 北韓의 關係를 槪括하고, 버마와 韓國이 CIA의 同時作戰區域이었음도 說明한다.

第10部는 1983年 버마에서 일어난 事件에 견줄 수 있는 여러 事件을 紹介하고 그에 對한 疑惑도 提起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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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次

● 推薦辭 (김종철 自由言論實踐財團 理事長)
● 冊 머리에
● 第1部 1981∼1982年 전두환 大統領 弑害 謀議 事件들
● 第2部 아웅 산 墓所 爆破 事件의 前兆
● 第3部 全斗煥 政權의 自作劇 疑惑
● 第4部 강민철의 말 한마디로 北韓 所行임이 밝혀졌다?
● 第5部 버마 事件의 마무리를 위한 ‘多大浦 工作’, 이어지는 ‘늑대 사냥’
● 第6部 全斗煥 政權의 南北會談 속셈과 ‘間諜船 工作’
● 第7部 버마 監獄에 갇힌 강민철, 韓國이 管理했다
● 第8部 강민철은 북파工作員이란 말인가?
● 第9部 네 윈의 버마와 美國, 北韓
● 第10部 餘錄
● 버마 아웅 산 墓所 테러 事件 日誌
● 後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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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욱
글作家
著者 강진욱은『연합뉴스』에 民族뉴스取材本部가 있던 好時節에 北韓部와 南北關係部에서 7年 程度 勤務했고, 그 前後 몇 年 外信部에서 勤務하면서 分斷 體制의 矛盾을 제대로 깨달았다. 大學에 入學하던 1983年 버마 아웅 산 墓所 테러 事件이 일어나고 大學을 卒業한 1987年 김현희 事件이 일어난 것 亦是 이 땅의 矛盾에 눈뜨는 契機가 됐을 것이다. 어쩌면 이들 事件을 통해 깨달은 이 땅과 世界의 矛盾에 對한 苦悶은 遺傳子처럼 肉身을 支配했는지도 모른다. 아웅 산 墓所 事件 現場에서 카메라를 들었던 言論界 大先輩를 北韓部 記者 時節 찾아간 것이나, 30餘 年이 지나 이 事件에 對해 冊을 내게 된 것도 바로 그 때문이 아닐까? 2015年 5月 忠南 洪城 駐在 記者로 發令을 받았고 6個月 뒤인 그해 11月부터 安養 駐在 記者로 있다가 2017年 6月 1日 月刊部로 發令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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著者 강진욱은『연합뉴스』에 民族뉴스取材本部가 있던 好時節에 北韓部와 南北關係部에서 7年 程度 勤務했고, 그 前後 몇 年 外信部에서 勤務하면서 分斷 體制의 矛盾을 제대로 깨달았다. 大學에 入學하던 1983年 버마 아웅 산 墓所 테러 事件이 일어나고 大學을 卒業한 1987年 김현희 事件이 일어난 것 亦是 이 땅의 矛盾에 눈뜨는 契機가 됐을 것이다. 어쩌면 이들 事件을 통해 깨달은 이 땅과 世界의 矛盾에 對한 苦悶은 遺傳子처럼 肉身을 支配했는지도 모른다. 아웅 산 墓所 事件 現場에서 카메라를 들었던 言論界 大先輩를 北韓部 記者 時節 찾아간 것이나, 30餘 年이 지나 이 事件에 對해 冊을 내게 된 것도 바로 그 때문이 아닐까? 2015年 5月 忠南 洪城 駐在 記者로 發令을 받았고 6個月 뒤인 그해 11月부터 安養 駐在 記者로 있다가 2017年 6月 1日 月刊部로 發令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