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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식 先生 家門 遺物 234點 寄贈 | 서울P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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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식 先生 家門 遺物 234點 寄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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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集 等 水原華城博物館에

1884年 朝鮮의 自主獨立과 近代化를 目標로 일으킨 甲申政變의 主役 홍영식(1855~84) 先生 家門의 遺物들이 競技 수원시에 모였다.

홍영식 先生 曾孫子인 홍석호(왼쪽) 前 友情博物館長이 24日 廉泰英 水原市長에게 家門의 遺物 234點을 寄贈한 뒤 感謝牌를 받고 있다.
水原市 提供

홍영식 先生 曾孫子인 홍석호(67·서울市 城北區 정릉동) 前 友情博物館長은 24日 水原市廳 狀況室에서 廉泰英 水原市長을 통해 家門의 遺物 234點을 水原華城博物館에 寄贈했다. 朝鮮末期와 大韓帝國時代의 文集과 敎旨, 簡札 等으로 當時 政治狀況과 激動期의 家族史를 한눈에 確認할 수 있는 貴重한 遺物들이다.

홍영식 先生의 父親으로 高宗 때 領議政을 지낸 홍순목(1816~18 84)의 文集인 ‘基當高’와 洪英植이 江華島條約 以後부터 甲申政變 以前까지 만난 日本 使臣과의 對話記錄을 整理해 둔 倭紗空間錄이 代表的이다.

이 遺物들은 朝鮮末期와 大韓帝國期 政治狀況을 알 수 있는 記錄으로, 基當高 等 一部는 只今까지 한番도 公開되지 않았던 所重한 遺物로 評價된다. 1910年 6月 順從이 홍영식에게 ‘忠民’이란 諡號를 내린 敎旨 ‘洪英植 시호 勅命’을 비롯한 大韓帝國期 皇帝의 命을 내린 勅命度 눈길을 끈다.

寄贈된 遺物은 홍석호氏가 1965年 遞信部 公務員으로 立部한 以後 遞信記念館長과 友情博物館腸 等으로 勤務하면서 흩어져 있던 것들을 40餘年에 걸쳐 蒐集한 것이다. 1884年 甲申政變이 ‘3日 天下’로 끝난 뒤 當時 領議政이던 父親 홍순목은 며느리와 어린 孫子를 안고 自決했고 兄 홍만식마저 1905年 乙巳條約 締結을 悲痛하게 여겨 自決하면서 집안은 風飛雹散났기 때문이다.

洪氏 亦是 6·25 때 아버지가 失踪된 뒤 忠南 唐津의 外할아버지 밑에서 자랐고 高校 3年 때 처음으로 家門의 履歷을 알았다고 한다.

洪氏는 “1965年 서울에 올라오니 姑母의 媤아버님이 이게 너희 집 家寶라며 箱子 2個를 주셨는데 열어 보니 1910年 純宗皇帝가 할아버지들(홍순목, 홍만식, 홍영식 三父子)에게 내린 시호校誌였다.”고 말했다.

金炳哲記者 kbchul@seoul.co.kr
2011-02-25 15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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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料 提供 : 政策브리핑 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