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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軍政期 大學 設立 洑물 
解放 後 美 軍政을 거쳐 大韓民國 政府가 樹立되는 3年間 國內 高等敎育界는 많은 變化가 일어났다. 서울大는 論難 끝에 安定化의 길로 접어들었고 私立 專門學校들의 大學 昇格과 新規 大學의 設立도 잇따랐다.

연희전문, 보성전문, 이화여전 等이 모두 綜合大學으로 昇格된 것을 筆頭로, 國立釜山大, 國立海洋臺 等 國立大와 淸州商科大學, 檀國大, 國民大, 造船臺 等 私立大學들이 새로 設立되거나 設立 認可書를 提出하는 等 美軍政 3年을 거쳐 新生 政府가 樹立되기까지 大學 昇格이나 設立 움직임이 洑물을 이루었다. <票 參照>


유억겸 當時 文敎部長은 後날 한 言論과의 인터뷰에서 “光復이 되자 雨後竹筍 같이 大學 設立認可 要請書가 문교부에 殺到하였다”며 “(이는)일제의 壓迫 아래 35年間 우리 말도 우리 글도 쓰지 못하고, 우리 歷史도 배우지 못하다가 이제 우리 마음대로 自由롭게 敎育할 수 있고 敎育을 받을 수 있다는 感激이었으며, 또 日本 强占 下에서 온갖 壓迫과 搾取를 當하면서 푼푼이 蓄財한 尊貴한 現金과 土地를 光復된 祖國의 民族敎育을 위해 投擲하는 그 성스러운 心情에 對한 感激이었다”고 말했다.

設立認可 要請書 문교부에 殺到

特히 1946年 9月 新學期制 實施와 專門學校의 昇格을 앞두고 문교부 高等敎育委員會가 6月 8日 發表한 ‘高等敎育制度의 臨時措置’는 大學을 設立하려는 敎育界 人士들에게 큰 刺戟劑가 되어 以後 3年餘에 걸쳐 全國 各地에서 大學 設立과 昇格 準備 作業이 붐을 이루었다.

文敎月報에 따르면 1948年 當時 高等敎育機關의 數는 總 42個校로, 綜合大學 4個校, 單科大學 23個校, 初級大學 4個校, 大學 學歷을 認定해 주는 各種 學校가 11個校에 이르렀다.

이 期間 中 敎員數는 1千2百56名, 在籍 學生數는 2萬4千餘名으로 이는 解放 當時 學校數 21個校, 敎員數 7百53名, 學生數 7千1百10名과 比較할 때 두 倍 以上의 成長을 나타냈다.

그러나 施行 初期에는 大部分의 公立學校와 一部 私立 專門學校가 문교부의 국대안 計劃에 따라 國立 서울대학교로 吸收 倂合되고, 歷史가 깊은 연희전문이나 이화여전, 보성전문 等이 綜合大學으로 昇格하는데 그치는 等 施設이나 設備, 敎授陣의 未洽 等으로 大學 設立 認可가 一部에 局限됐다.

이 過程에서 一部 專門學校는 單科大學 昇格에 滿足해야 했으며 地域住民과 土着 地主들을 中心으로 한 大學 設立이나 前 段階로 導入된 ‘學館’, ‘各種學校’ 設立이 잇따랐다.

日帝를 거쳐 美 軍政과 政府가 樹立되기까지 解放 空間에서의 高等敎育은 學生들의 높은 向學熱과 敎育 關聯 從事者들의 使命 意識이 結合되면서 量的 擴大가 두드러졌으며, 이렇게 輩出된 人材가 社會 各 分野에서 活躍하면서 社會 發展에 寄與했다.

그리고 이 過程에서 때로는 設立者와 敎育 從事者들의 눈물과 哀歡, 刻苦의 努力이 大學 發展에 礎石으로 作用했으며, 때로는 苦痛과 憤怒가 明滅하면서 오늘날의 象牙塔이 定着됐다. 
入力 : 2004.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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