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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니’같은 作品을 만들고 싶다” 오큘러스 藝術家 발타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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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니’같은 作品을 만들고 싶다” 오큘러스 藝術家 발타자르

假想現實 藝術作品 만드는 프랑스 藝術家 발타자르와의 인터뷰

김승현(多美롱) 2014-04-25 10:45:48
假想現實 헤드셋 ‘오큘러스 리프트’가 開發者들에게 公開된 지 1年. 各種 게임과 시뮬레이션 等이 開發되고 있는 가운데 한 가지 獨特한 試圖가 登場했다. 短篇映畫를 主로 製作하던 한 藝術家가 오큘러스 리프트를 利用한 藝術作品을 公開한 것이다. 

프랑스의 藝術家 ‘발타자르 옥시틀’(Balthazar Auxietre)은 2012年 오큘러스 리프트를 利用한 첫 作品 <歡迎>(Eidolon)을 公開했고, 只今은 두 番째 作品인 <다섯番째 잠>(The Fifth Sleep)을 만들고 있다. 그가 本業(?)을 暫時 내려놓고 假想現實에 빠져든 理由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는 假想現實을 통해 어떤 것을 表現하고자 하는 것일까? 韓國을 訪問한 발타자르를 만나보았다. /디스이즈게임 김승현 記者.

 

프랑스에서 온 ‘발타자르 옥시틀’ 作家

 

 

現代의 모든 文化와 技術이 곧 藝術이다


발타자르가 假想現實을 利用한 藝術 作品을 構想한 것은 大學을 마치고 ‘프레勞와’(Le Fresnoy)에 入學하면서부터였다. 프레勞와는 現代 技術과 藝術의 結合을 試圖하는 프랑스의 敎育機關이다. 平素 게임을 즐겼던 발타자르는 이곳에서 (3D 어드벤처나 FPS 等의) 게임 文法과 假想現實이라는 플랫폼, 그리고 藝術의 結合 可能性을 發見했다.

“<둠>이나 <모던워페어> 시리즈 等과 같은 以前부터 게임은 즐겨왔지만, 이러한 게임의 文法을 제 作品에 適用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은 프레露臥에서 假想現實을 接하면서 부터였습니다. 그동안 즐겨 만들었던 映畫와 달리, 假想現實은 觀客을 제가 表現하고자 하는 메시지 속으로 招待할 수 있고 이를 經驗하게 할 수 있죠. 假想現實만 可能한 이것이 正말 魅力的이었어요.”

그가 생각하는 藝術은 一般人들이 흔히 생각하는 藝術의 基準보다 훨씬 더 包括的이고 廣範圍하다. 드라마나 映畫, 게임과 같은 歷史가 짧은 文化 콘텐츠도 藝術이 될 수 있고, 프로그래밍이나 假想現實과 같은 最新 技術도 곧 藝術로 連結된다. 어떤 것이든 사람의 마음을 表現할 수 있는데다가, 最近에 나온 콘텐츠나 技術일수록 여러 사람들에게 더 자유롭게 接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굳이 藝術을 어려운 것, 高尙한 것으로 定義해야 할까요? 저는 오히려 觀客이 定해지거나 限定된 藝術은 죽은 것이라 생각해요. 反對로 大衆音樂을 즐기는 이들이든, 비디오 게임을 즐기는 이들이든 누구나 자유롭게 즐기고 느낄 수 있는 것이 眞짜 藝術 아닐까요?”


現實과 꿈, 假想의 境界를 허물고 質問을 던진다


발타자르의 作品을 簡單히 定義하자면 ‘選擇肢가 있는 映畫’, ‘假想現實로 具現된 비주얼 노벨’에 가깝다. 

觀客은 오큘러스 리프트를 통해 作品 속 世界로 들어간다. <歡迎>에서는 죽은 科學者의 記憶을 더듬어 가게 되고, 作業 中인 <다섯番째 잠>에서는 昏睡狀態에 빠진 患者의 머릿속에 들어가는 式이다. 觀客은 이 안에서 다양한 經驗을 보게 되며, 特定 區間에서는 自身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選擇하며 經驗에 直接 關與하기도 한다.

<다섯 番째 잠>의 트레일러 映像



例를 들어 昏睡狀態에 빠진 患者의 精神 속을 探險하는 <다섯 番째 잠>에서 觀客은 다양한 基準의 幸福을 맞닥뜨리게 된다. 患者가 어떤 經驗을 해왔는지, 그리고 어떤 理由에서 昏睡狀態에 빠져있는지, 患者는 어떤 것을 願하고 있는지. 이러한 '經驗'들은 觀客의 選擇에 依해 제各其 再生된다. 그리고 終局에 이르러서는 觀客에게 患者를 昏睡狀態에서 깨울지, 아니면 그가 滿足하는 대로 놔둘지에 對한 選擇肢가 주어진다.

발타자르가 이러한 假想現實을 통해 追求하고자 하는 것은 現實과 꿈, 그리고 假想의 境界를 허무는 것이다. 그가 만드는 作品의 大部分은 現實에서 오큘러스 리프트를 쓰는 空間과, 假想世界 안에서 旅行을 始作하는 空間이 同一하다. 

一例로 <歡迎>의 境遇, 觀客은 鐵製 構造物 안에 놓인 오큘러스 리프트를 씀으로써 觀覽을 始作하게 되는데, 디스플레이를 쓰고 나면 自身이 오큘러스 리프트를 쓴 그 空間이 눈에 보인다. ‘精神이 든’ 觀客은 이곳에서부터 죽은 科學者의 記憶을 엿보기 始作한다. <歡迎>은 以外에도 크라이엔진으로 製作된 實際와 恰似한 모델링, 直徑 2km에 達하는 假想의 섬 等으로 現實感을 더했다.

그가 이러한 構成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現實과 假想의 境界를 허물고, 이를 통해 逆으로 現實의 自身에 對한 물음을 던지는 것이다. 

“저는 헬멧(오큘러스 리프트)를 쓰는 行爲가 周邊을 잊고 觀客 自身의 內面으로 가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어요. 周邊을 잊고 自身을 알려면 먼저 沒入할 수 있는 對象이 있어야 하죠. <歡迎>이나 <다섯番째 꿈>이 提供하는 環境과 이야기는 비록 假想의 것이지만 觀客 自身이 共感할 수 있는 素材이죠. 그리고 이러한 經驗과 共感을 바탕으로 現實을 보다 客觀的이고 明確하게 認識할 수 있기를 꿈꾸는 거죠.”


<歡迎>을 觀覽하기 위한 鐵製 構造物. 作品 속으로 들어가면 이와 똑같은 構造物이 觀客을 맞이한다.


“’저니’와 같은 作品을 만들고 싶다”


발타자르가 最近 沒頭하고 있는 主題는 ‘相互作用’이다. 觀客, 或은 유저가 이야기의 흐름에 關與할 수 있는 '相互作用'은 그가 以前에 作業하던 短篇 映畫에는 없는 假想現實의 特徵 中 하나다. 實際로 그는 이러한 相互作用을 '選擇'의 形態로 <歡迎>에 導入했고, <다섯 番째 잠>에서도 類似한 形態의 相互作用이 存在한다.

問題는 이러한 相互作用이 얼마나 그가 表現하려는 메시지와 密接한 關聯이 있는가 이다. 觀客의 모든 相互作用을 받아주는 作品은 技術的으로나 物理的으로나 不可能에 가깝다. 하지만 選擇의 形態로만 相互作用을 남겨두면 假想現實이라는 플랫폼의 强點을 살릴 수 없다. 그렇다고 억지고 相互作用 要素를 늘리면 相互作用 自體가 메시지와 無關한 ‘裝飾品’이 되어 버린다.

“게임을 즐기시는 분들이라면 잘 알 거에요. 게임은 유저가 이야기에 關與할 수 있는 相互作用 要素를 가진 代表的인 分野고, 最近에는 적지 않은 作品이 '相互作用'을 내세우며 自身들을 弘報하죠. 하지만 그 가운데 眞正한 相互作用이 있는 作品은 많지 않죠. 大部分 메인 스토리와 상관없는 部分에서 相互作用이 惡世署理처럼 들어갈 뿐이죠.”

그래서 그가 꿈꾸는 假想現實 藝術의 모습은 2012年 PS3로 出市된 게임 <저니>처럼 觀客(或은 유저)의 行動 하나하나가 意味가 되고 이야기가 되는 作品이다.

“<저니>는 宏壯히 멋진 作品입니다. 簡單한 이야기 構造를 가지고 있지만, 유저가 스스로 意味를 찾고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게끔 相互作用 要素를 잘 만들었어요. 正말 이야기의 틀 안에서, 그리고 비디오게임이라는 틀 안에서 딱 必要한 相互作用 要素만 配置한 結果죠. 제가 만드는 作品도 <저니>같이 군더더기가 없었으면서도, 眞正한 相互作用이 있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