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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絶叫’의 始作을 만나다… 뭉크, 그 以上을 남기다[조현석 記者의 투어노트] | 서울新聞

‘絶叫’의 始作을 만나다… 뭉크, 그 以上을 남기다[조현석 記者의 투어노트]

‘絶叫’의 始作을 만나다… 뭉크, 그 以上을 남기다[조현석 記者의 투어노트]

조현석 기자
조현석 記者
入力 2024-05-23 23:59
업데이트 2024-05-27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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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의 都市’ 노르웨이 오슬로

노르웨이 오슬로는 表現主義 創始者인 에드바르 뭉크(1863~1944)의 都市다. 뭉크가 藝術家로 成長한 都市이자 삶의 마지막을 함께한 都市다. 그가 作品으로 表現했던 삶과 죽음, 孤獨, 사랑, 嫉妬, 憂鬱, 不安 等 실존적 主題의 中心에는 오슬로라는 藝術 空間이 있었다.뭉크는 ‘아버지로부터 狂氣의 遺産을 물려받았다’고 말할 程度로 情緖的인 不安과 孤獨이 平生을 따라다녔지만 이를 그림으로 細密하게 승화시켰다. 서울신문사는 올해 創刊 120周年을 맞아 記念事業의 一環으로 展示 ‘에드바르 뭉크: 비욘드 더 스크림’을 지난 22日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開幕했다. 展示會는 9月 19日까지 이어진다. 올해는 뭉크 死亡 80周忌가 되는 해다. 뭉크의 痕跡을 따라 오슬로를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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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가 ‘절규’의 영감을 떠올린 에케베르크 언덕에서 바라본 오슬로 시내 전경. 지난 12일 언덕에서 바라본 석양은 뭉크의 절규처럼 핏빛 하늘로 붉게 물들었다.  오슬로 조현석 기자
뭉크가 ‘絶叫’의 靈感을 떠올린 에케베르크 언덕에서 바라본 오슬로 市內 前景. 지난 12日 언덕에서 바라본 夕陽은 뭉크의 絶叫처럼 핏빛 하늘로 붉게 물들었다.
오슬로 조현석 記者
實存의 苦痛을 形象化한 그의 代表作 ‘絶叫’는 오슬로 市內와 피오르가 내려다보이는 에케베르그 언덕을 散策하며 靈感을 얻은 作品이다. 그림 속에서 괴로워하는 얼굴은 人間의 不安定한 狀態를 表現하는 象徵的인 이미지가 됐고, 世代와 國境을 넘어 全 世界에서 가장 有名하고 친숙한 作品이 됐다.

‘絶叫’는 現在 進行形이다. ‘絶叫’를 모티브로 만든 映畫와 드라마, 앨범 表紙는 勿論 이모티콘 等에도 活用되면서 現代 大衆文化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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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 미술관에서 지난 12일 관람객들이 ‘벌목지’ 그림을 돌아보고 있다. 이 작품은 뭉크가 오슬로 외곽에 있는 에켈리에 거주할 때 그린 그림으로 급격한 원근법을 통해 벌목으로 파괴된 자연을 형상화했다.  오슬로 조현석 기자
뭉크 美術館에서 지난 12日 觀覽客들이 ‘伐木地’ 그림을 돌아보고 있다. 이 作品은 뭉크가 오슬로 外郭에 있는 에켈리에 居住할 때 그린 그림으로 急激한 遠近法을 통해 伐木으로 破壞된 自然을 形象化했다.
오슬로 조현석 記者
●뭉크의 삶과 藝術이 함께한 都市

오슬로 곳곳에는 뭉크의 痕跡이 남아 있다. 그가 살던 아파트, 畫室, 그가 屬해 있던 藝術 그룹 會員들과 다니던 카페 等을 只今도 볼 수 있다. 그가 永眠에 들어간 ‘우리 救世主 共同墓地’도 오슬로에 있다.

뭉크가 平生 어두운 그림만을 그린 것은 아니다. 나이가 들면서 좀더 樂天的으로 變했고, 風景과 人物을 그렸다. 노르웨이 옛 貨幣인 1000크로네(NOK) 紙幣에 나오는 ‘太陽’은 밝고 雄壯한 作品으로 노르웨이 國民들이 ‘絶叫’와 함께 가장 사랑하는 그림이다.

平生 獨身으로 살았던 그는 油畫 1100餘點, 版畫 1萬 8000餘點, 드로잉·水彩畫 4500餘點, 조각 6點과 92卷의 스케치북, 便紙, 多量의 石板 等을 남겼다. 그는 죽기 前 作品 2萬 8000餘點을 오슬로時에 寄贈했다. ‘絶叫’와 ‘마돈나’ 等 相當數 作品들은 宥和, 파스텔, 版畫 等 다양한 技法으로 製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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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가 1912년 그린 또 다른 버전의 ‘벌목지’는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에드바르 뭉크: 비욘더 스크림’에서 볼 수 있다.  오슬로 조현석 기자
뭉크가 1912年 그린 또 다른 버전의 ‘伐木地’는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에드바르 뭉크: 비욘더 스크림’에서 볼 수 있다.
오슬로 조현석 記者
●‘絶叫’ 靈感 떠올린 에케베르그 언덕

뭉크의 그림 속 風景을 볼 수 있는 代表的인 場所는 ‘絶叫’의 靈感을 떠올린 에케베르그 언덕이다. 뭉크는 1892年 1月 22日 쓴 日記에서 ‘어느 날 저녁 나는 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길 한쪽에 都市가 있었고 아래에는 피오르가 있었다. 나는 疲困함과 아픔을 느꼈다. 나는 멈춰 서서 피오르 너머를 바라보았다. 해는 지고 있었고, 구름은 피처럼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나는 自然을 貫通하는 悲鳴을 느꼈다. 悲鳴을 들었던 것 같다. 나는 이 場面을 그렸다. 구름을 實際 피로 그렸다. 그 色들이 悲鳴을 질렀다. 이것이 ‘絶叫’가 되었다’고 적었다.

絶叫에는 크리스티아나(오슬로의 옛 이름) 피오르의 짙고 붉은 하늘을 背景으로 일그러진 風景에 動搖하는 人物이 登場하는데 이는 뭉크가 에케베르그 언덕에서 하이킹을 하다 靈感을 얻었다고 한다. 實際 언덕에서는 뭉크가 ‘絶叫’에 담았던 핏빛 하늘의 夕陽을 鑑賞할 수 있다. 中央驛에서 19番 트램을 타고 에케베르그 公園에 내린 뒤 展望臺를 지나 숲길을 따라 10分쯤 걸어 들어가면 뭉크가 散策했던 場所를 만날 수 있다.

뭉크가 畫幅에 담은 곳은 에케베르그 언덕 外에도 오슬로의 메인 거리인 카를요한 距離다. 카를요한 거리는 오슬로 最大 繁華街로 노르웨이 王宮까지 이어지며 뭉크의 삶에서 重要한 여러 場所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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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 미술관에서 지난 12일 한 관람객이 뭉크가 사랑과 고통, 입맞춤과 죽음을 형상화한 작품 ‘뱀파이어’를 감상하고 있다.  오슬로 조현석 기자
뭉크 美術館에서 지난 12日 한 觀覽客이 뭉크가 사랑과 苦痛, 입맞춤과 죽음을 形象化한 作品 ‘뱀파이어’를 鑑賞하고 있다.
오슬로 조현석 記者
●아파트·畫室·카페 等 痕跡 가득 남아

뭉크가 첫 스튜디오를 賃貸한 곳은 議會 建物 바로 건너便에 있다. 또 1800年代 後半 藝術家들의 人氣 場所였던 그랜드 카페와 뭉크가 많은 展示會를 열었던 美術館도 近處에 있다. 또 뭉크가 1904年 그의 大作 ‘生의 프리즈’를 展示한 空間도 만날 수 있다.

뭉크는 카를요한 거리를 모티브로 時期와 季節에 따라 다양한 거리 모습을 그렸다. 1890年 作品 ‘카를요한 거리의 봄날’은 印象主義的 畫風으로 그렸지만, 1891年 그린 ‘카를요한 거리의 저녁’이라는 作品은 不安한 內面을 表現하고 있다.

오슬로에는 뭉크가 살았던 아파트와 墓地가 남아 있다. 뭉크는 노르웨이 北쪽 農家 마을인 오달스브루크 뢰텐에서 태어났지만 삶의 大部分은 오슬로에서 보냈다. 當時 오슬로는 ‘크리스티아니아’로 불리던 곳이었다.

뭉크는 軍醫官인 아버지 크리스티안 뭉크(1817~1889)와 어머니 라우라 카테리네 비욀스타(1838~1868) 사이에 5男妹 中 둘째로 태어났다. 누나 요한 소피와 男동생 페테르 안드레아스, 女同生 라우라와 잉게르 等 3名의 동생이 있었다.

오슬로의 삶은 뭉크가 한 살 때인 1864年 아버지가 亞케르스후스 要塞의 醫療 責任者로 任命돼 오슬로로 移住하면서 始作됐다.

當時 軍醫官인 아버지의 俸給은 매우 낮았고, 個人 事業을 하려는 試圖는 失敗했다. 그의 家族은 늘 貧困에 시달렸다. 그들은 값싼 아파트를 찾아 移徙다니며 市內 여러 곳에서 살았다.

처음 居住한 집은 오슬로 네드레 瑟로츠게이트9에 있는 아파트로 5살 때까지 살았다. 이 집은 아버지의 職場人 亞케르스후스 요새와는 徒步로 10分(700m) 떨어진 카를요한 거리 隣近으로 只今은 海外 有名 名品 브랜드가 入店해 있는 距離로 變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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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는 회화, 드로잉, 판화 등 여러 버전으로 존재하는데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에드바르 뭉크: 비욘더 스크림’에서는 ‘뱀파이어’ 채색판화 버전과 아주 희귀한 파스텔 작품을 함께 전시하고 있다. 오슬로 조현석 기자
‘뱀파이어’는 會話, 드로잉, 版畫 等 여러 버전으로 存在하는데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에드바르 뭉크: 비욘더 스크림’에서는 ‘뱀파이어’ 彩色版畫 버전과 아주 稀貴한 파스텔 作品을 함께 展示하고 있다.
오슬로 조현석 記者
●가난과 죽음의 恐怖 畫幅에 담아내

以後 그는 필레스트레데트 30, 토르발트 마이어스 게이트 48, 포스베이엔 7, 올라프 라이스 4番街, 슈우스 廣場1 等 1889年 프랑스 파리로 留學을 떠나기 前까지 오슬로에서 살았다.

뭉크는 以後 프랑스와 獨逸 等을 오가며 活動하다 末年에는 다시 오슬로 外郭에 있는 에켈리(1916~1944)에 作業室을 만들어 놓고 外部와 孤立된 채 그림을 그리며 살다가 生을 마감했다.

필레스트레데트 30에 살던 1869年 肺結核을 앓던 어머니가 30歲의 나이로 世上을 떠났다. 이로 因해 뭉크는 늘 죽음에 對한 恐怖를 느끼며 살아가게 된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한 衝擊을 담은 그림이 1897~1899年 그린 ‘죽은 어머니와 아이’다.

포스바이엔 7에 살던 1877年에는 누나 所避가 어머니와 같은 肺結核으로 死亡했다. 어머니가 죽은 뒤 依支하던 누나의 죽음은 1893年 作品 ‘病室에서의 죽음’에 잘 나타나 있다.

어머니와 누나의 죽음으로 인해 肺 疾患에 對한 恐怖가 平生 執拗하게 掩襲해 孤獨하고 날카로운 性格을 지니게 된다. 이런 性品은 그의 作品과 思想에도 커다란 影響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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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 미술관에서 관람객들이 뭉크의 대표작 ‘절규’ 앞에서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인간의 실존과 고통을 형상화한 ‘절규’는 세대와 국경을 넘어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친숙한 작품이다. 절규를 모티브로 만든 영화와 드라마는 물론 이모티콘 등에도 활용되면서 현대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 자리를 잡았다.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에드바르 뭉크: 비욘더 스크림’에서는 전 세계에 2점밖에 없는 뭉크의 ‘절규’(1895) 채색판화를 감상할 수 있다.  오슬로 조현석 기자
뭉크 美術館에서 觀覽客들이 뭉크의 代表作 ‘絶叫’ 앞에서 作品을 鑑賞하고 있다. 人間의 實存과 苦痛을 形象化한 ‘絶叫’는 世代와 國境을 넘어 全 世界에서 가장 有名하고 친숙한 作品이다. 絶叫를 모티브로 만든 映畫와 드라마는 勿論 이모티콘 等에도 活用되면서 現代 大衆文化의 아이콘으로 자리를 잡았다.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에드바르 뭉크: 비욘더 스크림’에서는 全 世界에 2點밖에 없는 뭉크의 ‘絶叫’(1895) 彩色版畫를 鑑賞할 수 있다.
오슬로 조현석 記者
●歲 버전의 ‘絶叫’ 품은 뭉크 美術館

뭉크는 죽은 뒤 ‘우리 救世主 共同墓地’에 安葬됐다. 墓地에 가려면 中央驛에서 37番 버스를 타면 된다. 墓地에는 노르웨이 有名 人士들이 함께 묻혀 있는데 뭉크 墓地 隣近에는 노르웨이 代表 劇作家인 헨리크 입센(1828~ 1906)의 墓地가 있다.

오슬로에서는 뭉크가 寄贈한 作品들을 볼 수 있다. 뭉크 美術館과 노르웨이 國立美術館뿐만 아니라 오슬로 市廳 뭉크의 房, 호텔 콘티넨털 바보만, 오슬로대 訝鬱라 캠퍼스 等에서도 그의 그림을 볼 수 있다.

代表的인 곳은 뭉크 美術館이다. 美術館에서는 뭉크가 使用하던 그림 道具 等도 볼 수 있다. 美術館은 1963年 市 外郭에 있었으나 展示室이 좁아 뭉크의 作品을 모두 展示할 수 없게 되자 오슬로市에서 2016年 새로운 뭉크 美術館을 세우기로 했다. 오페라 하우스 옆에 있는 現在 뭉크 美術館은 2021年 10月 새로 門을 연 곳이다. 뭉크 美術館은 現代式으로 지어진 13層 建物로 11個의 展示室이 있다. 美術館 總面積은 約 2萬 1367㎡로 옛 뭉크 美術館보다 展示 面積이 5倍 늘었다.

美術館에서는 3點의 ‘絶叫’를 만날 수 있다. 絶叫는 4點의 油畫·파스텔 그림과 46點의 石版畫 프린트로 製作됐다. 1893年 파스텔과 油畫로 1點씩 그렸고 1895年 石版畫가 製作됐다. 1895年 파스텔로 1點을 더 그렸고 1910年에도 템페라 作品을 남겼다. 別途의 獨立 展示空間에 展示되고 있는 3點의 ‘絶叫’는 30分 間隔으로 1點씩 觀覽客들에게 선보인다.

美術館에는 오슬로대 訝鬱라 캠퍼스에 그렸던 壁畫 ‘太陽’을 展示한 空間도 마련돼 있다. 이 밖에도 ‘마돈나’, ‘아픈 아이’, ‘마리의 죽음’, ‘病室에서의 죽음’, ‘자화상’ 等 많은 作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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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독신으로 산 뭉크는 오슬로 ‘우리의 구세주 공동묘지’에 안장됐다. 오슬로 조현석 기자
平生 獨身으로 산 뭉크는 오슬로 ‘우리의 救世主 共同墓地’에 安葬됐다.
오슬로 조현석 記者
●國立博物館엔 ‘生의 프리즈’ 聯作

美術館은 中央驛에서 徒步로 8分(600m) 距離에 있는 오슬로 랜드마크인 오페라 하우스와 나란히 位置해 있다. 運營時間은 每日 午前 10時부터 午後 6時(水~일 午後 9時)다. 入場料는 160크로네다.

노르웨이 國立博物館에는 뭉크의 ‘生의 프리즈’ 聯作을 別途 空間에 展示하고 있다. 博物館에서는 뭉크의 作品 58點을 所藏하고 있는데 4點의 ‘絶叫’ 作品 가운데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1893年 油畫 作品을 볼 수 있다. 또 ‘病室에서의 죽음’, ‘思春期’, ‘財’ 等 初期 作品부터 1920年까지의 作品이 있다. 特히 노르웨이 브륀율프 불스 廣場에 있는 국립미술관은 1891年 뭉크의 作品 ‘니차의 밤’을 사들인 最初의 公共 美術館이다.

國立博物館은 1837年 세워진 노르웨이 最初의 公共 博物館이다. 2003年 國立美術館, 建築 博物館, 裝飾 藝術 디자인 博物館, 現代 美術館 等이 하나로 統合되면서 노르웨이 國立博物館이란 이름을 갖게 됐다. 2022年 새로 지어진 國立博物館은 獨逸 建築家 클라우스 슈베르크가 設計했다. 博物館의 全體 面積은 5萬 4600㎡에 達하며 90餘個의 展示室이 있다. 博物館에는 그림은 勿論 19~20世紀 유럽 作家들의 作品이 展示돼 있다.

뭉크 作品 外에도 노르웨이 畫家 라르스 헤르테르費와 파블로 피카소의 作品 等도 所藏하고 있다. 國立博物館은 브륀율프 불스 廣場에 있으며 運營時間은 每日 午前 10時부터 午後 5時(月曜日 休務)다. 入場料는 200크로네다.

오슬로대 訝鬱라 캠퍼스에 있는 壁畫 ‘太陽’은 노르웨이人들이 가장 사랑하는 紀念碑的인 作品 中 하나다. 오슬로대 100周年 記念式에 지어진 새 홀을 裝飾하기 위해 1916年 現場에서 完成된 作品이다. 當時 이 大型 그림들은 實驗的이고 表現主義的인 스타일로 因해 論難의 餘地가 있었다. 作品은 土曜日 特定時間에만 制限的으로 開放한다.

●視聽·大學·호텔 곳곳에도 뭉크 作品

오슬로 市廳의 뭉크 房에는 ‘人生’이라는 題目의 큰 그림이 있다. 이 房은 市廳의 正規 開場 時間 동안 利用할 수 있다. 호텔 콘티넨털 바 보만에도 뭉크의 그림이 걸려있다. 1932年 호텔 所有主 아르네 보만 한센이 오슬로 美術賞에서 뭉크의 그림 12點을 사들인 것이다.

뭉크의 삶의 痕跡을 엿볼 수 있는 意味 있는 場所들도 많이 남아 있다. 오슬로에는 뭉크가 屬한 藝術 그룹 크리스티나 보헴의 아지트였던 그랑카페와 잉에브레트 카페 等이 남아 있다.

뭉크의 아지트인 그랑카페는 카를요한 거리의 랜드마크와 같은 그랜드호텔 1層에 있는 카페로 많은 藝術家가 令監을 떠올린 곳이다. 內部에는 1874年 門을 연 以來 간직해 온 고풍스러운 인테리어가 그대로 남아 있다.

이곳은 劇作家 헨리크 입센도 每日같이 訪問했다고 한다. 메뉴板에는 입센의 글이 적혀 있고, 甚至於 그의 이름을 딴 메뉴가 있을 程度로 그와 깊은 因緣이 있는 레스토랑이다. 그랜드호텔은 노벨 平和賞 受賞者가 宿泊하는 公式的인 호텔로 뭉크를 비롯한 많은 藝術家의 作品을 볼 수 있다.

1857年에 門을 연 잉에브레트 카페는 뭉크가 數十 年間 자주 찾던 곳이다. 뭉크는 크리스티아니아 보헤미안의 會員인 크리스티안 크로흐, 한스 例擧, 오다 라손과 함께 구석진 房에 主로 앉았다고 한다. 레스토랑 入口에는 뭉크가 오슬로 藝術家協會 會員 資格을 取消하는 便紙가 담긴 額子가 展示돼 있다. 뭉크는 잉에브레트에서 긴 밤 파티를 즐긴 後 이 便紙를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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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旅行手帖]

→航空 : 오슬로까지는 特定 時期에 運航하는 傳貰機를 除外하고는 直航便이 없다. 파리, 암스테르담, 뮌헨 等 유럽 都市나 中東의 두바이, 카타르 等을 經由해야 한다. 料金은 出發日에 따라 큰 差異가 있는데 120萬~180萬원(一般席 基準) 程度다.

→호텔 : 오슬로는 유럽 都市들 中에서도 物價가 비싼 便이다. 오슬로 中央驛 近處 2~3星級 호텔이 1泊에 20萬~40萬원 程度다. 중앙역 隣近에 宿泊하면 오슬로 가르데르모엔 空港(Oslo Lufthavn)이나 市內 移動이 便利하다. 중앙역에서는 뭉크 美術館이나 카를요한 距離를 徒步로 갈 수 있다.

→交通 : 오슬로 空港에서 空港 快速 列車인 플뤼토게를 利用하면 中央驛까지 20分 程度 걸린다. 料金은 240크로네다. 오슬로 패스를 購入하면 오슬로 市內의 버스, 트램, 地下鐵, 페리 等을 無料로 利用할 수 있고 뭉크 美術館, 노르웨이 國立博物館, 노벨平和센터 等 主要 觀光地 30餘곳을 無料 入場할 수 있다. 料金은 24時間 520크로네, 48時間 760크로네, 72時間 895크로네 等 3種類를 販賣한다. 플뤼토게나 오슬로 패스는 앱을 깔아 購入하면 便利하다. 5月 現在 1크로네는 127원이다.
조현석 記者
2024-05-24 14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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