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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빈 “角 잡힌 正祖, 다시 海兵으로 돌아간 것 같았죠” | 演藝 | 映畫

除隊 後 復歸作 ‘逆鱗’ 開封 11日 만에 300萬 突破

3年 만에 만난 현빈(32)은 如前히 眞摯했고 餘裕가 느껴졌다. 2011年 2月 드라마 ‘시크릿 가든’으로 最高의 人氣를 누리던 當時 電擊 軍入隊했던 그는 除隊 後 첫 復歸作 ‘逆鱗’으로 開封 11日 만에 300萬 觀客을 動員하며 俳優로서의 健在를 誇示했다. 12日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현빈을 만났다.
군 제대 후 3년 만에 스크린에 돌아온 현빈. “영화의 첫 촬영 장면이 잘 걷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는데도 긴장이 바짝 되더라”며 “그래도 군대보다는 촬영장의 공기가 훨씬 따뜻했다”고 웃었다.<br>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軍入隊 當時 20臺를 되돌아본 後 다시 自身의 모습을 찾아 돌아오겠다고 했는데.

-郡 服務를 하면서 視野가 좁았다는 事實을 깨달았다. 作品을 選擇하거나 사람들을 對할 때 視角이 바뀐 것 같다. 그러다 보니 映畫 속 大使도 20代 때와는 다르게 느껴지는 것 같다.

→復歸作으로 史劇을 選擇한 理由는. 데뷔 後 첫 史劇 出演인데.

-처음에 正祖 役割이 눈에 들어왔는데, 다른 캐릭터들도 눈에 잘 들어오는 시나리오가 마음에 들었다. 鬚髥을 붙이고 머리를 만지는 데 番番이 두 時間이 걸렸고 韓服도 4~5벌씩 갈아입어야 했다. 2個月 동안 乘馬 練習을 했지만 말을 타면서 臺詞를 하는 것도 어려웠다. 馬場馬術龍 말을 탔는데 말이 덩치도 크고 소리에 敏感해 말에서 떨어진 적도 있었다. 王 役割이다 보니까 行動이나 말, 제스처에도 制約이 컸다. 特히 當時 正祖는 늘 緊張하고 있다 보니 主로 角진 狀態로 앉아 있었다. 다시 二兵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웃음).

→1月 豫告篇 公開 때부터 등筋肉이 큰 話題를 모았는데.

-시나리오에 쓰인 ‘등筋肉이 細密하다’는 指紋 한마디에 3~4個月 運動을 했다. 나도 歷史 속 王들은 筋肉보다는 살집이 있을 것 같은 固定觀念이 있었기 때문에 괜한 拒否感을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걱정도 됐다. 하지만 正祖가 존현각에서 殺害 威脅 속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斷片的으로 보여주는 場面을 表現하고 싶었다.

→言論 試寫會 直後 評價가 좋지만은 않았다. 失望하지는 않았나.

-(내가)영화를 보지 못한 狀態에서 言論의 쓴소리가 쏟아졌고, 周邊에서 속상해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內容 自體가 가볍고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失望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映畫에 對한 期待値도 높았던 것 같다. 하지만 힘든 狀況 속에서도 悽絶하게 살았던 人間 正祖의 모습을 그려보고 싶었고, 旣存의 貞操와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는 評價를 받고 싶었다. 俳優로서 史劇 장르도 어울린다는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劇中 正祖가 重用 23張을 引用해 “작은 일도 無視하지 않고 最善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最善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는 臺詞가 話題인데.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말인데 요즘 狀況에 더 와닿게 들으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些少한 것들 하나씩만 바꿔도 나중에 그게 쌓이면 世上을 變하게 할 수 있다는 말이 나도 印象 깊었다. 나 亦是 하루에 20次例가 넘는 舞臺 人事를 强行軍하면서도 그 句節을 생각하면 힘을 얻게 된다. 언제 어느 狀況에서도 늘 맞는 말인 것 같다.

→空白期에도 不拘하고 出演作 中 最高 스코어로 티켓 파워를 立證했다. 30代에는 어떤 俳優이고 싶나.

-舞臺 人事를 갔더니 많은 분들이 반가워해 주시더라. ‘逆鱗’을 열番이나 봤다는 분들도 계시는데 난 아직도 목마르다(웃음). 於此彼 演技는 내 宿題이기 때문에 復歸에 따른 負擔感은 크게 없었다. 앞으로 조바심 갖지 않고 映畫든 드라마든 시나리오가 좋은 作品이면 出演할 것이다. 보면 氣分 좋아지고 便해지는 俳優가 되고 싶다.

이은주 記者 er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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