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만   중국   일본 
한·日關係 意識 ‘憂慮타령’만… | 서울新聞

한·日關係 意識 ‘憂慮타령’만…

한·日關係 意識 ‘憂慮타령’만…

김미경 記者
入力 2008-07-21 00:00
업데이트 2008-07-21 00:00
  • 글씨 크기 調節
  • 프린트
  • 共有하기
  • 댓글
    14
日本 文部科學性이 지난 14日 日本 中學校 社會課 學習指導要領 解說書에 獨島 領有權 明氣를 發表하면서 그동안 緻密하게 準備돼 온 日本의 獨島 領有權 野慾이 다시 한番 確認됐다. 日本의 이番 獨島 領有權 명기는 獨島의 領土紛爭火 試圖의 延長線上일 뿐 아니라 右派 勢力을 달래려는 政治的 意圖에 따른 것이지만 3年 前부터 豫見됐다는 點에서 우리 政府의 外交的 對應이 未洽했다는 指摘이다.

參與政府, 强勁對應에 協商 斷絶

이미지 擴大
日本의 獨島 領有權 明記 試圖는 2005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3月 시마네縣의 ‘獨島의 날’ 制定 條例案이 通過됐으며 나카야마 文部科學商이 參議院 文敎科學위에서 “다음(2008年) 指導要領에 獨島 領有權을 써야 한다.”고 밝히면서 本格化했다.

參與政府는 盧武鉉 大統領이 就任 後 밝힌 ‘韓·日 新(新)독트린’에 발목이 잡혀 右往左往했다. 盧 大統領이 그해 3月23日 對日 非難·强勁策을 담은 ‘國民에게 드리는 글’을 政府와 相議 없이 發表하면서 强勁 드라이브를 걸어야 했다.

같은 해 4月5日 日本 후소샤 歷史敎科書 等이 獨島를 自國 領土로 技術瑕疵, 外交部는 抗議 聲明을 發表하고 駐韓日本大使를 招致하는 等 韓·日 外交는 最大 危機를 맞게 됐다.

參與政府에서 對日 外交에 參與했던 한 消息通은 “獨島·敎科書 問題가 터질 때마다 强勁 對應 原則만 있을 뿐 長期 對策은 없었다.”며 “個別 事案마다 大統領이 나서 輿論을 달래기 汲汲했기 때문에 結局 獨島 領有權 明記 問題도 막을 수 없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MB政府, 安易한 對應으로 뒤통수

지난 4月 서둘러 訪日에 나섰던 李明博 大統領이 闡明한 ‘未來志向的 韓·日 關係’는 日本의 獨島 明記 發表로 2個月餘 만에 무너졌다. 參與政府 때 冷却된 韓·日 關係 復元에 汲汲한 나머지 獨島 領有權 明記 問題가 도사리고 있었지만 새 政府 出帆 後 兩國間 信賴가 形成됐다고 믿고 安逸하게 對應, 다시 뒤통수를 맞은 것이다.

政府는 2005年 以後 徹底히 準備돼 온 日本의 獨島 領有權 明記 推進에 對해 별다른 對策이 없었다. 學習指導要領 및 解說書가 10年마다 바뀐다는 것을 알면서도 언제 어떻게 進行되는지에 對한 正確한 情報도 없었다. 最近 一時 歸國한 권철현 駐日大使는 “어떤 때는 4年마다,11년,12년마다 고쳐진 것도 있어 10年마다 바뀌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公館長會議 後 지난 5月 日本으로 돌아간 뒤 미리 準備를 해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 3月 告示된 學習指導要領에 獨島 領有權 關聯 內容이 들어가지 않자 內心 安心하고 있었다는 것이 政府 消息通들의 說明이다. 그러다가 지난 5月18日 日本의 獨島 領有權 明記 推進에 對한 요미우리新聞 報道가 나오자 뒤늦게 百方으로 뛰었지만 손을 쓸 수 없었다. 政府는 6月부터 한·日 次官級 戰略對話와 外交長官會談, 頂上會談에서 憂慮를 提起했지만 日本側은 “아직 決定된 바 없다.”는 對答만 되풀이했다.

日本은 올해 末까지 高等學校 學習指導要領을, 來年 4月까지 解說書를 確定할 豫定이다. 政府 當局者는 “中學 解說書에 獨島 領有權이 明記된 만큼 高校 過程도 不可避하다.”며 憂慮했다. 그러나 憂慮만 있을 뿐, 對策은 없다는 것이 政府의 對日 外交 實相이다.

김미경記者 chaplin7@seoul.co.kr
2008-07-21 6面
많이 본 뉴스
最低賃金 差等 適用, 當身의 생각은?
來年度 最低賃金 決定을 위한 審議가 5月 21日 始作된 가운데 經營界와 勞動界의 攻防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올해 最大 話頭는 ‘業種別 最低賃金 差等 適用’입니다. 經營界는 一部 業種 最低賃金 差等 適用을 要求한 反面, 勞動界는 差別을 助長하는 行爲라며 反對하고 있습니다. 當身의 생각은?
贊成
反對
모르겠다
慰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