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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權力 參與 知識人이 '失敗'하지 않으려면…"

윤평중 敎授, 康俊晩-조기숙 論爭에 加勢

조기숙 靑瓦臺 弘報首席祕書官에 對한 知識人들의 批判이 이어지고 있다. 강준만 전북대 敎授에 이어 이番엔 윤평중 한신대 敎授가 '知識人의 權力 參與'라는 側面에서 조기숙 靑瓦臺 弘報首席에 批判의 날을 세웠다.

尹 敎授는 29日子 <中央日報>에 실린 '知識人과 權力'이라는 칼럼에서 조 首席을 "權力 意志에 불타는 志士的 參與 知識人"으로 規定하면서 "이런 知識人의 致命的 問題는 極度로 自己中心的이라는 것"이라고 批判했다.

***"志士的 參與 知識人, 極端的 權力中毒 現象 드러내"**

尹 敎授는 "元來 知識人은 理論으로 世界를 裁斷하면서 自己 잘난 맛에 사는 사람이 大部分"이라며 "志士的 權力 參與 知識人들의 境遇 그 症狀이 너무 甚해 自身을 世界의 中心으로 보는 極端的 權力中毒 現象을 드러내기도 한다"고 主張했다.

尹 敎授는 이런 知識人들이 "苦言을 참지 못하며 批判을 惡意와 陰謀의 所産으로 본다"며 "이는 省察과 批判이라는 知識人의 存在 理由를 거역하고 있다는 點에서 自己 背反的"이라고 批判했다.

尹 敎授는 이어 "元來 批判과 省察을 싫어하는 權力과, 權力 參與 知識人들의 權力 中毒 現象이 서로 上昇作用을 일으켜 國家 大系를 크게 그르칠 수 있다는 點에서 이는 重大한 公的 問題가 아닐 수 없다"며 "銳利한 政治 現實 診斷으로 聲價를 날리던 政治學 敎授에서 志士的 權力 參與 知識人으로 變身하더니 左衝右突하는 靑瓦臺 弘報首席의 行步를 보면서 드는 斷想"이라고 밝혔다.

앞서 강준만 敎授는 28日子 <韓國日報>에 '조기숙 靑瓦臺 弘報首席께'라는 便紙글 形式의 칼럼을 통해 '知識人의 政治參與 倫理' 問題를 提起하면서 조 首席에게 "學問的 所信을 버리지 말라"고 助言했다. 이에 對해 조 首席은 이날 午後 바로 <靑瓦臺브리핑>에 反論을 싣고 "저는 제 哲學과 學問的 所信을 목숨보다도 重要하게 생각한다"며 姜 敎授에게 公開 謝過를 要求했다.

다음은 尹 敎授의 칼럼 專門.

***知識人과 權力**

열암 박종홍(1903~76)은 韓國 哲學界 1世代의 代父였다. 西洋 思想에 開放的이면서도 主體的으로 學問하고자 했던 그의 熱情은 韓國 思想史 硏究에 對한 先驅的 業績으로 이어졌다. 一生을 學問에 바친 敬虔에 가까운 그의 삶의 方式과 篤實한 人品을 수많은 弟子가 尊敬했다. 이런 열암이 朴正熙 軍事獨裁 時代의 理念指標였던 國民敎育憲章을 기초하고 70年에 大統領 敎育文化特報 자리를 받아들였을 때 後學들은 驚愕했다. 열암은 朴正熙의 指導力을 讚揚하고 維新을 肯定함으로써, 히틀러를 게르만 中興의 象徵으로 看做해 나치 政權에 附逆한 獨逸 思想家 하이데거와 比較되곤 한다.

불구덩이 같은 權力에 接近하는 理由가 知識人이라고 해서 普通사람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權力 意志를 갖기 때문이다. 他人들을 制御할 수 있고 名譽와 特權을 同伴하며 公共政策에 影響力을 行使할 수 있는 權力의 誘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열암은 出世나 恥部, 名譽를 위해 權力에 投身하지는 않았다. 그의 境遇는 理論과 實踐을 結合해 國家 大系에 奉仕하려 했다는 點에서 儒敎的 知識人의 한 失敗限 모델로 看做될 수 있다.

政治的 判斷 自體는 致命的 誤謬였지만 自身의 名譽보다 國家 共同體의 비전을 앞세운 謙虛하고 溫厚한 선비였던 박종홍 같은 境遇는 매우 드물었다. 敎授나 言論人 出身의 수많은 知識人이 權力 獲得을 위해 온몸 바쳐 뛰고, 權力도 知識人을 一回用 絆創膏로 使用해온 風土가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曲學阿世하여 個人의 榮達을 노리는 行態가 壓倒的이었던 것이다.

權力에 自進 吸收되기 前에는 똑똑하고 바른말 하던 知識人들이 社會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소용돌이의 政治' 속에서 形便없이 망가지는 것을 우리는 數도 없이 보아 왔다. 여기에는 知識 自體가 政治 權力으로 가는 捷徑이고 官職을 한 자리 해야 알아주는 우리 社會의 儒敎 政治的 傳統도 한몫했다.

그러나 知識人의 權力 參與에 對해 道德主義的이고 名分論的인 立場에서 冷笑하거나 홀로 高尙한 척하는 것은 現實 理解에 別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分化된 現代社會에서 知識人이 過去처럼 象牙塔 속에 孤立돼 특별한 待接을 받아야 할 理由가 없기 때문이다. 自身의 權力 意志를 達成하기 위해 知識人으로서의 聲價를 利用하는 것을 變形된 商去來 行爲로 봐줄 餘地가 全혀 없는 것도 아니다. 私利私慾적 權力 獲得을 위해 自身의 專門性을 기꺼이 賣買하는 해바라기 知識人의 存在나 그에 對한 批判은 當然하지만 그만큼 陳腐한 것이다.

知識人과 權力의 關係에서 새롭게 照明돼야 하는 現象은 國家 政策이나 公的 事案에 影響을 미친다는 意味에서의 權力 意志에 불타는 志士的 參與 知識人의 境遇다. 이들은 强力한 專門家的 自負心과 道德的 優越感을 가지고서 한갓된 知識 商人임을 斷乎히 拒否한다. 이들은 새로운 歷史에 對한 先知者的 비전과 熱情을 갖추고 있으며 自身의 個人的인 삶에 對해서도 自信滿滿하다. 自身이 아이디어를 提供한 政策에 派黨的 策略이 介入해 있지 않으냐라는 質問을 받을 때 "나는 그렇게 살지 않았다"고 이들이 抗辯하는 理由는 이 때문이다.

이런 知識人의 致命的 問題는 極度로 自己中心的이라는 것이다. 元來 知識人은 理論으로 世界를 裁斷하면서 自己 잘난 맛에 사는 사람이 大部分이다. 그러나 志士的 權力 參與 知識人들의 境遇 그 症狀이 너무 甚해 自身을 世界의 中心으로 보는 極端的 權力 中毒 現象을 드러내기도 한다. 苦言을 참지 못하며 批判을 惡意와 陰謀의 所産으로 보는 것이다.

우리 社會의 民主化가 進行되면서 續續 權力에 合流한 志士的 參與 知識人들이 이런 行態를 보인다면 이는 省察과 批判이라는 知識人의 存在 理由를 거역하고 있다는 點에서 自己 背反的이다. 元來 批判과 省察을 싫어하는 權力과, 權力 參與 知識人들의 權力 中毒 現象이 서로 上昇作用을 일으켜 國家 大系를 크게 그르칠 수 있다는 點에서 이는 重大한 公的 問題가 아닐 수 없다. 銳利한 政治 現實 診斷으로 聲價를 날리던 政治學 敎授에서 志士的 權力 參與 知識人으로 變身하더니 左衝右突하는 靑瓦臺 弘報首席의 行步를 보면서 드는 斷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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