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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도 軍隊도 拒否한 그, 靑少年에 꽂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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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도 軍隊도 拒否한 그, 靑少年에 꽂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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定期後援

大學도 軍隊도 拒否한 그, 靑少年에 꽂히다

經濟成長率은 바닥을 向하고 不況의 기운이 蔓延한 가운데, 活潑히 치솟는 數値들은 다음과 같다. 考試 應試率, 大企業 入社 競爭率, 靑年 失業率, 靑年 負債率. 住居費를 비롯한 生活費는 나날이 오르는데, 제대로 된 社會 安全網은 未備하고 階層 上昇도 期待하기 어렵다. 現 世代의 不安은 윗世代의 欲望을 뛰어넘는 動力이 되어 靑年들로 하여금 安定的인 生活 基盤 先占을 위한 無限 競爭에 매달리게 한다.

靑年 世代의 삶의 條件 自體가 不安한 이때, 삶을 더 不安하게 만들 것만 같은 '活動'이니 '運動'이니 하는 길을 擇한 이들은 都大體 누구일까? 이들은 幸福한가? 아니 그보다 一旦 힘들지 않은가? 왜 始作했으며 왜 繼續하는가? 이들이 探索하는 世界의 眞實은 무엇이며, 이들이 일구어가는 活動의 質量은 世界의 慣性에 맞서 달리는 列車의 速力과 方向을 어디로 어떻게 움직이고 있을까?

基本所得靑'소'年네트워크(Basic Income Youth Network, 以下 BIYN)의 <2013 靑年 活動家 인터뷰 프로젝트>는 各 分野의 靑年 活動家들을 만나 지난 活動과 展望을 나누고, 基本所得과 交叉點을 살펴본 記錄이다. BIYN은 各 인터뷰이들이 걸어온 길의 價値를 믿고 이들의 敍事와 메시지가 同時代의 親舊들에게 傳해지기를 바라며 이 인터뷰를 企劃했다. 또한 이 인터뷰가 늘 活動으로만 說明되어왔던 이들의 固有한 얼굴을 좀 더 仔細히 그려내고, 더 나아가 곳곳에 흩어져 있는 活動들을 잇는 契機가 되기를 바란다.

(아래의 인터뷰는 <프레시안> 連載를 위한 編輯本입니다. 글 마지막의 링크에서 全文을 보실 수 있습니다.)


BIYN 靑年活動家 인터뷰 프로젝트, 只今까지의 인터뷰 모아서 보기

意圖한 것은 아니었으나 何必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은 11月 7日, 2013年 大學修學能力試驗 試驗날이었다. 하루 終日 포털 사이트 메인에는 試驗의 難易度와 受驗場에서 發生한 해프닝에 關한 글이 가득했고, 그 사이에 올해도 어김없이 受驗生의 自殺 消息이 끼어 있었다. 航空機 離着陸과 證市 開場 時間까지 바꾸는 國家的인 事件에 이 程度 '副作用'이 뒤따르는 건 자연스럽다는 듯이 이제 놀라는 사람도 많지 않다. 그리고 그 사이 또 하나의 記事가 있었다. '大學 入試 拒否로 삶을 바꾸는 透明 가방끈들의 모임'(透明 가방끈 모임)의 記者會見에 對한 것이었다.

마치 聖域처럼 여겨지는 大學 入試와 그를 둘러싼 흐름 가운데 다른 목소리를 내는 이들은 2校時 數學 試驗이 進行되고 있었을 午前 11時, 서울 鍾路區 청계광장에서 "줄 세우기로 無限 競爭을 부르는 現行 入試 制度를 廢止하라"고 促求하는 記者會見을 열었다. 2011年의 大學 拒否 宣言 以後 2年 만의 活動이었다. 처음 이 모임을 만들고 本人도 宣言에 同參했던 靑少年 人權 活動家 公現 氏는 以後 良心에 따른 兵役 拒否로 1年 4個月의 收監 生活을 마친 後 올해 8月 14日에 出所했다. 그를 '獄바라지'했다던 한 中堅 活動家의 提報에 따르면 公現 氏는 監獄에 있는 동안에도 漫畫冊 搬入, 環境호르몬이 나오지 않는 텀블러 使用 等을 要求하며 在所者 人權을 위해 애썼다고 한다. 지난 10月 末 영등포의 靑少年 團體 事務室에서 그를 만나 監獄에서도 繼續 생각했다던 靑少年 運動에 對한 計劃과 그間 깊어진 苦悶에 對해 들어보았다.


BIYN : 먼저 紹介를 付託드립니다.

公現 : 저는 公現이라고 하고, 只今 靑少年은 아니지만 靑少年 活動을 하고 있고요. 大學 拒否者, 兵役 拒否者 程度로 紹介를 하겠습니다.

BIYN : 活動하고 있는 團體를 紹介한다면요.

公現 : 저는 靑少年 人權行動 아수나로에서 宏壯히 오랫동안 活動을 하고 있습니다. 아수나로는 靑少年 人權을 위해서 活動하는 團體인데요. 되도록이면 靑少年 '當事者'들이 直接行動을 통해서 바꿔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나름대로 全國 組織이에요. 只今까지 學生 人權 問題, 頭髮 規制나 體罰 問題로 여러 活動을 해왔고 靑少年들의 政治的 權利나 敎育 政策에 對한 問題提起도 해왔습니다.

제가 屬해 있는 또 다른 團體가 靑少年 活動 氣象廳 '活氣'라는 곳인데요. 靑少年들이 活動을 하는 데 있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잖아요. 그런 것과 關聯해서 財政的으로나 理論的으로나 靑少年 活動家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여러 團體가 모여 있는 團體입니다. 活動 基盤을 줄여서 '活氣'라고도 해요.

그리고 2011年에 大學 拒否 宣言을 하면서 모인 透明 가방끈이라는 모임이 있어요. 大學 入試 拒否者, 大學 拒否者 그리고 그 움직임을 支持하는 사람들로 이뤄져 있어요. 2011年에 처음 大學 拒否 宣言을 하고 그 뒤로 活動이 없었는데, 이番 入試철을 맞아서 다시 살려보려고 모임을 굴리고 있어요.

▲ 靑少年 人權 活動家 公現. ⓒ基本所得靑'소'年네트워크

社會的으로 어떻게 解決할 것인가의 問題

BIYN : 公現 氏가 活動을 始作하게 된 契機는 무엇인가요?

公現 : '活動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契機는 딱히 없고요. 高等學生 때는 當事者였으니까 자연스럽게 運動에 參與하게 되었죠. 學校 안에서 實際로 頭髮 規制와 같은 不合理한 일들과 부딪히면 그게 옳지 않다고 생각하고 拒否하게 되는데, 單純히 拒否를 한다는 것보다 더 重要한 건 그것을 앞으로 어떻게 바꾸는가 하는 거예요. 혼자 拒否하는 것은 그 일로부터 列外가 될 뿐 그 일 自體를 없애지는 못하더라고요. 單純히 내가 滿足하는 方式으로 이 問題를 避해가거나 그것을 拒否하는 데서 나아가 全 社會的으로 이것을 어떻게 바꿀 건지가 더 重要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BIYN : 그때 아수나로에 들어가신 거예요?

公現 : 아뇨. 제가 電柱에서 學校를 나왔는데, 그때는 아수나로度 제대로 存在하지 않았고, 靑少年 運動 團體랄 게 거의 없었어요. 靑少年 運動이란 것을 인터넷이나 新聞을 통해 接하긴 接했는데 다 서울에 있더라고요. 그래서 全州에서는 學校 안에서 뜻이 맞는 사람들과 모임을 꾸려서 이것저것 活動하고 '誤答勝利의 希望'이라는 新聞도 냈어요. 그렇게 하다가 다른 地域의 아수나로 사람들이 接近을 했어요. "頭髮 自由 배지를 주겠다" 이러면서. (웃음) 그 뒤에 서울로 온 後에 아수나로 活動을 本格的으로 하게 되었죠.

BIYN : 非靑少年, 卽 成人이 되고 나서도 繼續 靑少年 運動을 하는 게 쉽지는 않다고 들었어요.

公現 : 나이를 먹었다고 靑少年 運動을 떠나는 건 좋지 않아 보여서 繼續 하는 게 있고요. (웃음) 제가 늘 하는 얘기가 있어요. 저한테 靑少年 運動을 왜 하느냐고 물으면 '내가 靑少年 活動가니까 한다'고 答하고요. 그럼 왜 靑少年 活動가냐고 물으면, '靑少年 運動을 하니까 靑少年 活動가지'라고 答해요. 이렇듯 慣性的으로 하는 게 第一 크고요. (웃음) 事實 慣性이 重要하죠.

그리고 저는 大學生 運動 같은 境遇를 좀 시시하다고 생각하는 게 있어요. 靑年이나 大學生들의 問題를 全部 다루는 運動이 存在하기보다는 各 大學 안에서 學生會 選擧를 해서 어느 政派가 學生會 權力을 잡네 마네가 主要하잖아요. 大字報는 온갖 게 다 붙는데 정작 實踐이라는 건 集會에 가는 것 程度밖에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靑少年 運動 같은 境遇는 設令 力量 不足으로 實踐이 微微해도 그게 바라보는 志向이나 社會的인 意味가 크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靑年 運動(2006年엔 靑年 運動이란 말도 잘 안 썼는데), 大學生 運動은 그런 게 別로 없어 보여요.

BIYN : 靑少年 運動이 志向하는 바는 뭔가요?

公現 : 요새는 딱 한마디로 '靑少年 解放'이라고 表現해요. 大學生 運動은 大學生 解放을 志向하진 않잖아요. 年齡을 基準으로 해서 未成年者, 成年者를 區別하고 未成年者에 對해서 權利를 猶豫하거나 制限하고 社會 再生産을 위해서 靑少年層을 家族이나 學校의 形態로 管理하는데 그런 制度와 構造 自體를 없애고 靑少年도 사람답게 사는 것이 靑少年 解放이겠죠. 靑少年에 加해지는 獨特한 抑壓의 形態가 사라지는 것.

흔히 靑少年 抑壓은 資本主義의 問題와 連結해서 많이 보는데, 저는 靑少年 抑壓이라는 게 女性 抑壓만큼이나 資本主義와 無關한 普遍的인 問題라고 생각해요. 高大에도 未成年者에게는 參政權을 안 줬던 것처럼, 兒童과 成年을 나누는 基準이 되는 나이는 繼續 變해 왔더라도 그 區別과 함께 兒童 集團에 對한 抑壓이나 規制 裝置는 繼續 있어온 것 같아요. 메소포타미아에서 發見된 古代 遺物에도 學校에 宿題를 안 해가서 體罰을 當했다는 記錄이 있다고 하잖아요. (웃음) 資本主義 社會에 들어서면서 學校 制度나 核家族과 같은 特定한 樣相이 登場한 것은 맞지만, 文明社會가 이루어진 後부터 이런 抑壓은 줄곧 있지 않았을까요. 家父長制와 좀 비슷하죠.

BIYN : 삶에서 重要하게 생각하는 價値와 只今 活動하는 것은 어떻게 連結되나요?

公現 : 저는 삶에 元來 價値가 없다고 생각하는 쪽이라 '그냥 재밌게 살면 되지' 하고 簡單하게 생각해요. 細部的으로 보면 그런 건 있어요. 나 혼자서 좋아하는 일 하면서 즐거울 수는 없고, 내가 재미있기 위해서는 周邊 사람들과 關係도 重要해요. 入試 같은 境遇를 例로 들면, 내가 成跡을 잘 받으면 單純히 氣分이 좋은 것이 아니라, 내가 成跡을 잘 받음으로써 누군가가 成跡을 못 받았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쳐버리는 거죠. 그런 게 다 없어져야 내가 마음 便하게 또 재밌게 살 것 같아요.

사람들이 最小限 幸福해질 機會는 있어야 하고, 내가 幸福함으로써 그만큼의 不幸을 堪當해야 할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程度의 原則은 가지고 있어요. 活動이랑 그게 連結되는 것 같아요.

BIYN : 活動이 재밌으세요?

公現 : 재밌죠. 特히 自己를 쥐어짜서 뭔가를 만들어낸다는 게 재밌는 거 아닐까요? (웃음) 저는 그래요. 게임도 널널하고 여유롭게 하기보다 集中하고 熾烈하게 해서 뭔가를 해냈을 때 재밌는 거잖아요. 뭔가를 追求하고, 거기에 내 삶의 全力을 다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아요. 그만큼 活動이 社會的으로 意味 있는 일을 만들어 내는 것도 같고요.

靑少年 運動의 딜레마와 展望

ⓒ基本所得靑'소'年네트워크
BIYN :
只今까지 活動하면서 特別히 힘들었던 것은 무엇인가요?

公現 : 靑少年 運動에서 힘든 것은 사람이 떠나는 問題에요. 人的인 交替가 宏壯히 빠른 運動이니까 스쳐 지나간 사람들이 數百 名이에요. 그들에게 저나 靑少年 運動이 어떻게 記憶될지 모르겠지만, 제 立場에선 한자리에 서서 사람들을 받았다가 떠나보내는 셈이 되죠. 또 새로 만나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이 사람들 中 한두 사람 빼면 몇 年 안에 안 볼 사람들이지'라는 생각을 하게 될 때 힘든 것 같아요.

어쩔 수 없는 點이긴 한데, 數的으로 이걸 줄일 수는 있다고 봐요. 제가 構想하는 것 中 하나는 靑少年 運動에 발을 들였던 스무 살이 넘은 사람들이 머물 수 있는 자리, 그런 네트워크를 하나 만드는 거예요. 若干 同窓會 느낌일 수 있는데, (웃음) 그렇게 해서 이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돈과 參與를 뽑아내자는 企劃을 하고 있어요. 꼭 내가 靑少年이어서 靑少年 運動을 한다기보다, 이게 意味 있는 거고 할 만한 거라서 한다는 價値가 많이 共有되어야 할 것 같아요.

BIYN : 一般的으로 學校를 다니고 있는 學生들에게 靑少年 運動의 位相은 어느 程度라고 생각하세요?

公現 : 一旦 存在 自體를 모르는 사람이 60~70%는 되지 않을까요? (웃음) 學生人權條例 制定했을 때에도 制定됐다는 事實은 알지만 그 過程에서 靑少年들이 어떻게 參與했고, 그것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努力했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고요. 甚至於 요새도 學生人權條例의 存在 自體도 모르는 學生들이 太半이니까요.

먼저 靑少年 多數에게 弘報하는 게 必要한데, 傳單紙 1萬 張씩 찍어서 뿌리는 水準이 아니라 持續的으로 알리고 組織하려면 두 가지가 받쳐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나는 言論. 靑少年들을 타깃으로 해서 인터넷 言論 말고 直接 손에 쥐어지는 式으로 配布되는 言論이 있어서 몇 萬 部씩이라도 나가줘야 하지 않을까. 그게 있으면 '옆에 얘가 神奇한 걸 보네' 하고 學校에서도 쉽게 接할 수 있는 거고요.

두 番째는 原論的인 問題인데, 結局 大衆 組織을 만들어야 할 것 같아요. 아수나로는 大衆 組織이라고 할 수 없으니까요. 大衆 組織을 꾸리게 되면 學校別로 靑少年 運動을 主題로 하는 동아리가 하나씩 생기는 거죠. 또는 洞네別로 그런 게 생겨서 그 地域 機構가 學校든 學院이든 일터든 各 現場에 弘報를 하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이걸 하려면 地域別로 求心點이 될 수 있는 活動家들이 最小限 一定 數 以上이 있어야 해요. 그리고 그 活動家들을 基盤으로 推進되어야 할 텐데, 아예 活動家들이 없는 地域도 많다는 問題가 있어요. 제가 監獄 안에서 대충 計算을 해본 걸로는, 적어도 그런 活動家가 300-400名 程度는 되어야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BIYN : 外國의 靑少年 運動 事例도 많이 參考하세요?

公現 : 關心은 많은데 外國語를 잘 못해서 다른 사람들한테 좀 알아봐 달라고 하는 程度죠. 事例는 꽤 있어요. 프랑스 같은 데도 高等學生 聯合이 있고, 칠레에서도 高等學生들이 몇 十萬 名씩 示威를 한 經驗이 있대요. 臺灣에도 頭髮 自由 運動이 있고요.

다른 곳들 보면 靑少年 運動이라는 分野 自體가 慇懃히 그렇게 强化되어 있지 않았더라고요. 大槪가 社會主義 運動이거나 政黨 運動의 一部로서 活性化되어 있어요. 노르웨이의 境遇는 政黨에 靑少年이 參與하니까 '어느 政黨 靑少年 黨員들이 宿題 廢止 運動을 始作했습니다.' 같은 內容이 박노자 氏 블로그에 올라오고 그러거든요. 議題는 靑少年 運動인데 組織 自體는 여러 運動들 內部에 있는 게 大部分이죠. 韓國의 靑少年 運動이 어떻게 될 수 있을까 바깥을 調査하다 보면 韓國 事例는 獨特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 때도 있고요.

BIYN : 그러면 韓國 靑少年 運動의 未來는 어떻게 展望하세요?

公現 : 最近에 다른 靑少年 活動家들이 學生人權條例 制定 事例를 UN에서 發表했었어요. 거기서 靑少年들이 自己 權利 問題를 提起하고 運動을 통해 制度를 만들어내는 事例 自體가 世界的으로 相當히 드물다는 얘기를 들었대요. 다른 社會 運動에 靑少年 運動이 參與하면서 問題가 提起되는 式이 아니라, 靑少年 人權이라는 問題만 갖고 運動 組織이 만들어져서 獨自的인 活動 領域을 만들어나가는 것 自體가 別로 없어서 獨特하다는 거예요. 韓國 政黨 構造와 韓國 社會가 靑少年들에 對해 워낙에 閉鎖的인 탓에 그렇게 된 것일 수도 있죠.

이것저것 構想한 건 있어요. 하나는 組織化가 優先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組織化 플랜이 있는 靑少年 運動이 別로 없어요. 關心 있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들어와서 活動하는 式으로 只今까지 커온 건데요. 캠프든 뭐든 積極的으로 組織化할 수 있는 企劃을 하고 그 力量으로 活動 會員들을 한 地域에 最小 10名씩은 늘려야겠다는 計劃이 있어요.

다른 하나는 아까 말했듯 靑少年 問題를 集中的으로 다루는, 靑少年을 讀者로 하는 言論을 一週日이나 2週日에 한 番씩이라도 낼 수 있으면 宏壯히 힘이 될 것 같아요. 다른 한 軸으로는 硏究所가 必要해요. 靑少年 運動을 主題로 主張하는 內容일 수도 있고 靑少年 運動 自體에 對한 硏究를 進行할 수도 있는 그룹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이 세 가지가 갖춰져서 力量이 쌓이면 大衆 組織으로 갈 수도 있다고 봐요.

ⓒ基本所得靑'소'年네트워크

少數者 排除 않는 基本所得을 위하여

BIYN : 基本所得에 對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公現 : 이番에 論難이 되는 스위스의 基本所得안도 그렇고, 靑少年을 排除하거나 靑少年한테는 적게 주는 基本所得 設計도 꽤 많아요. 基本所得의 元뜻은 모든 이에게 普遍的 所得을 保障한다는 거지만, 實際 導入 過程에서 靑少年에 對한 偏見 問題가 宏壯히 크게 걸리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고요. 基本所得이 導入되면 좋겠고 必要하다고 보는데, 靑少年 運動이 努力해서 導入시킬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아서 눈치를 보고 있을까 하고 있네요. (웃음)

假令 老人이나 障礙人한테 基本所得을 덜 주자는 얘기는 사람들이 못할 거거든요. 少數者 中에서 問題가 되는 건 靑少年이나 移住民에 對한 基本所得이 아닐까 해요. 移住民들은 '우리 社會 構成員이 아닌데 줘야 하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고, 靑少年들은 '未成熟한데 줘야 하냐'라는 問題提起가 있을 거고요. 經濟 活動에 參與하고 있지 않다는 理由도 들 거고요.

BIYN : 活動家로서 삶의 目標가 무엇인가요?

公現 : 一旦 頭髮 自由부터 해야 되고…. (웃음) 살면서 하나 程度는 바꾼 게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그게 頭髮 自由가 되었건 體罰 禁止가 되었건 뭐라도요. 勿論 可能하면 入試 廢止도 되면 좋겠지만요. 個人的인 野望 같은 건, 혼자 낸 冊 하나 있으면 좋겠다 程度? (웃음)

BIYN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 있으면 해주세요.

公現 : 靑少年 運動이 只今 한 줌밖에 안 되는데요. 제가 처음 始作했을 때는 한 줌도 아니고 한 톨밖에 안 됐던 것 같아요. 기껏해야 서너 톨 됐나? 그래서 한 줌이라는 말을 듣는 게 辱이 아니라 稱讚이라고 생각해요. 이 한 줌짜리 靑少年 運動에 많은 關心 付託드립니다.

끝으로 2011年에 公現 氏가 良心에 따른 兵役 拒否를 宣言하며 썼던 所見書 '가기 싫어도 가야만 한다는 現實을 바꾸고 싶습니다'를 引用하며 인터뷰를 마친다.

"저에게 兵役 拒否는 單純히 倫理的 決斷은 아닙니다. 저는 靑少年 人權 運動을 始作했던 以來로 恒常 저를 活動家로 생각해왔습니다. 活動家란 但只 個人의 倫理에 따라 사는 게 아니라 社會的인 活動, 政治的인 實踐을 하는 사람이지요. 兵役 拒否 亦是 뭐, 그걸 비록 靑少年 人權 運動으로 보는 것은 아니지만 마찬가지의 實踐으로 생각합니다."


(☞ 인터뷰 全文은 이곳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基本所得은 모든 社會 構成員에게 條件 없이 普遍的으로 支給되는 所得을 말합니다. 基本所得靑'소'年네트워크(Basic Income Youth Network, 以下 BIYN)는 基本所得이 實現된 社會를 만들어나가기 위해 모인 個人 및 團體들의 네트워크입니다. BIYN는 韓國社會에 基本所得의 必要性을 알리고, 新自由主義의 累積된 問題를 안고 살아가는 當事者인 靑'소'年(0歲~30代)李 먼저 그리고 같이 基本所得을 실현시킬 수 있도록 다양한 活動을 펼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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