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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年 정원식 前 總理와 05年 이건희는 달라야 한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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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三星그룹 會長의 高麗大學校 名譽哲學博士 學位授與式과 關聯한 적지않은 騷動을 보니, 只今으로부터 14年 前 일이 떠오른다.

91年 외대學生들에게 鷄卵洗禮 받은 當時 정원식 總理

지난 1991年 當時 國務總理였던 정원식氏에 對한 외대生들의 이른바 밀가루, 鷄卵 投擲 事件이 그것이다. 그 當時 새롭게 總理에 任命된 정원식氏는 외대 敎育大學院에서 講師 資格으로 講義를 하고 있었다.

鄭氏는 總理任命 以後 마지막 講義를 위해 외대를 찾았고, 當時 10餘名의 受講生들로부터 작은 膳物과 함께 激勵의 拍手를 받았다. 그러나 講義室 밖의 狀況은 달랐다. 鄭氏가 외대를 찾았다는 消息을 들은 一部 외대 學生들은 講義室 周邊으로 續續 모여들었다.

當時 雰圍氣를 잠깐 說明하자면, 當時로부터 2年 前 鄭氏는 敎育部 長官으로 있으면서 전교조 參與敎師를 解職하는 데 앞장섰으며, 總理로 就任되기 두 달 前에는 當時 명지대 1學年 강경대 學生이 示威 途中 全景에 맞아 숨졌을 때였다. 그리고 그 뒤 1週日에 한 名 꼴로 各 大學 學生들이 焚身하면서 每週 土曜日에는 政權 打倒를 위한 示威가 서울市內 한복판에서 열렸었고 及其也 當時 成均館大 4學年인 김귀정氏가 亦是 示威 途中 숨지는 事故가 發生, 學生들의 憤怒가 極에 達했던 時點이었다.

이에 노태우 大統領은 政局 轉換 次元에서 노재봉 總理를 更迭하고 鄭氏를 後任 總理로 임명하였던 것이다. 講義를 마친 丁氏는 憤怒한 學生들과 마주쳐야 했고, 이때 學生들로부터 밀가루와 鷄卵 洗禮를 받은 뒤 遑急히 學校를 빠져나갔다.

被害 當事者는 沈默한 채 社會 雰圍氣 一瞬間 反轉

그러나 그날 저녁부터 社會 雰圍氣는 一瞬間 反轉되었다. 總理의 외대 訪問에는 數十 名의 記者들이 同行하였고, 그날 學生들의 行動은 고스란히 新聞과 TV에 傳해졌다. 다음날 各 朝刊新聞에는 鷄卵과 밀가루 洗禮로 범벅된 정원식氏가 마치 集團毆打를 當한 뒤의 모습인양 精神을 차리지 못하는 寫眞이 大門짝만하게 1面 톱으로 실렸다.

事件 當日 저녁 청량리 警察署에는 數十 名의 외대生들이 鷄卵 投擲 與否에 關係 없이 連行되어 調査를 받아야 했다. 그리고 외대生들은 一瞬間 '스승도 알아보지 못하는 悖倫兒'가 되어야 했다. 學生들에 對한 社會의 視線도 싸늘하게 돌아서버렸다. 스승도 못 알아보는 學生들이 외치는 民主化 等의 口號가 무슨 意味가 있냐면서….

瞬息間에 大逆罪人이 돼버린 學生들에게는 어떠한 反論의 機會도 주어지지 않았고, 當時 鷄卵 投擲을 主導한 사람들은 學校當局으로부터 除籍 等의 懲戒를, 公安當局으로부터는 逮捕令狀이 發付되어 쫓기는 身世로 轉落했다.

그 以後 政局의 狀況은 急反轉 되었다. 거의 每週 土曜日 서울市內가 阿修羅場이 되던 示威가 거짓말처럼 사라졌고, 무엇보다도 2週 뒤 치러졌던 地自體 選擧에서 執權 민자당이 湖南을 除外한 全地域에서 勝利하면서 政局主導權을 굳건히 維持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안타까웠던 것은 강경대, 김귀정氏를 包含, 當時 示威 現場에서 抑鬱하게 숨지거나 焚身 自殺하였던 10餘名의 젊은이들이 어처구니 없이 사람들의 記憶 속에서 잊혀지고 만 것이다.

정원식 總理 한 사람이 외대 學生들에게 當한 逢變의 反作用은 이렇게 크게 그리고 빠르게 나타났다. 그러나 정작 當時 言論에 依해 '被害당한 스승'이었던 정원식 總理의 입에서 學生들에게 寬容을 베풀고 싶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았다.

被害 當事者인 정원식氏는 정작 아무런 言及도 하지 않은 채 一部 保守言論을 中心으로 學生들의 當時 行動은 勿論 過去 示威 等에 對한 모든 일들을 싸잡아 非難하기 始作하였고, 이것이 劇的으로 全體 社會의 輿論으로 發展한 것이다.

只今의 事例는 14年 前과는 다르다

이건희 三星 會長과 고대生들의 摩擦은 過去 외대에서 일어났던 일과 外形的인 部分, 一部 言論의 극성맞은 報道 等에서는 類似하지만 그 本質은 多少 差異가 있다.

勿論 當時의 정원식 總理와 只今의 李健熙 會長은 評判이나 影響力에서 比較할 수 없는 差異가 있다. 景氣가 多少 풀렸다고는 하지만 如前히 大學生들에게 就業은 쉽지 않은 關門이고, 三星은 學生들이 가장 就業하고 싶어 하는 會社이다. 그리고 우리 經濟에서 三星이 미치는 影響力이 絶對的이라는 事實을 否認하기란 힘들다.

그러나 이것만은 事實이라고 생각한다.

고대 學生들은 李健熙 會長의 存在를 否認한 것이 아니다. 우리 經濟 發展의 中心에 있는 三星의 役割을 否認한 것도 아니다. 다만, 現在까지도 勞組를 認定하지 않고, 一部 系列社에서 勞動者를 彈壓한 것에 對한, 一部 問題點에 對한 抗議의 表示일 뿐이며, 이러한 問題가 改善되지 않는 狀況에서 비록 名譽博士學位지만 經濟學徒, 經營學徒 아닌 哲學博士를 授與할 수 있는가에 對한 抗議였을 뿐이다.

三星과 같은 大企業에 對한 이 程度의 問題提起, 그것도 이재용 常務의 表現대로 '血氣旺盛한 젊은이들'에 依해 일어난 일을 이렇게까지 針小棒大할 必要가 있을까 하는 疑問도 든다.

비록 겹겹히 둘러싸인 警護員들에 依해 李健熙 會長에 對한 物理的 衝突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學生도 物理的인 危害를 加할 意思나 手段도 없었다. 적어도 오마이TV로 確認한 바에 따르면, 學生들의 反對意思 表現 自體를 封鎖하려 한 三星 關係者들과의 摩擦때문에 若干의 騷動이 벌어진 것일 뿐이었다.

오늘 아침 뉴스에는 이番 일에 對한 責任을 지고 10餘名의 大學 幹部가 물러날 意思를 밝혔다고 하는데 이 點 亦是 참으로 憂慮되는 部分이다. 學校 側에서 어렵게 모신 外部人士를 잘 待接하기는커녕, 큰 騷亂을 안겨준 데 따른 罪責感을 理解 못하는 건 아니지만 이것이 자칫 學位授與에 反對意思를 表示했던 學生들을 壓迫하는 手段으로 遁甲할 수 있기 때문이다.

學生들이 無條件 잘못했으니 非難받아 마땅하다는 雰圍氣가 이어진다면 14年 前 외대에서의 그 事件의 또 다시 再現될 수 있는 可能性도 排除할 수 없다. 우려스러운 일이다. 問題를 修正하기 위해서는 다른 手段이 講究되어야 한다.

三星이여, 열린 마음으로 對話를 하자

問題의 解決을 위한 열쇠는 굳이 잘못의 有無를 따졌을 때 被害 當事者일 수 있는 三星이 쥐고 있다. 一部 報道에 依하면 삼성그룹에서는 處長들이 辭退하는 等 事態가 커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는 意思表現을 했다고 한다. 대단히 바람직한 일이다.

아울러 三星그룹에도 하나의 建議를 해보고자 한다. 當時 示威에 參加했던 學生들을 招請해서 그들과 討論의 場을 마련해 봄이 어떠할까? 三星 立場에서는 우리 經濟에 絶對的인 影響을 미치고 있음에도 不拘하고 아직도 一部 곱지 않은 視線이 남아 있음이 抑鬱할 것이고, 學生들 亦是 外部에서 바라보는 財閥에 對한 否定的인 認識이 實際 當事者들과의 만남을 통해 어느 程度 理解할 수 있는 部分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려운 付託일 수 있겠지만 李健熙 會長이 直接 學生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여진다면 더 더욱 좋을 것이다. 적어도 이 問題는 當時 示威에 參加하고, 李 會長의 名譽博士學位 授與에 反對했던 學生들과 삼성그룹이 解決해야 할 問題라고 생각한다.

一部 言論의 報道처럼, 學生들에 對한 否定的인 認識이 比重있게 다뤄지거나, 憂慮에 가득찬 學校 當局者들의 목소리는 窮極的인 問題解決을 위한 方法은 아니라고 본다.

李健熙 會長의 名譽學位 授與에 財界 關係者보다 더 큰 拍手와 喊聲을 學生들로부터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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