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만   중국   일본 
烽下마을의 傳說은 繼續된다 - 오마이뉴스

메뉴 건너뛰기

close

歲月은 참으로 빨리 흘러갑니다. 제가 靑年時節 <한겨레> 新聞 創刊 맴버로 活動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한겨레신문 新聞 配達夫(光復地球)로서 일을 했습니다. 새벽에 新聞을 配達하고 낮에는 大學校 時間講師로 일하고, 저녁에는 學院講師로 일을 할 때 노무현 辯護士를 처음 만났습니다. 釜山支社 支社長은 文在寅 辯護士였고, 노무현 辯護士는 理事로 在職할 當時였습니다.

辯護士라기보다는 옆집 親切한 아저씨 그대로 였고, 文在寅 辯護士는 그 當時에도 대쪽 같은 저의 社長님이었습니다.

다들 辯護士라는 職銜을 가지고 있었지만 謙遜한 분들이었고, 新聞配達夫들과 함께 막걸리에 파煎按酒를 즐겨드시는 眞짜 慶尙道 아저씨들이었습니다. 전두환 時節 激變期에, 2~3年間의 葛藤과 煩惱의 生活 後에 저는 留學을 떠났고, 제가 돌아왔을 때 이분들은 靑瓦臺에 있었습니다.

그 以後는 여러분들이 더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저는 大統領 以前에 한 人間으로서 그를 記憶합니다. 人間! 특별하지도 뛰어나지도 않는, 하지만 누구보다도 庶民의 生活을 걱정하고, 불타는 正義感이 몸에서 뿜어져 나오지만, 懦弱한 政治人으로 느꼈습니다.

그가 退職한 以後에 烽下마을에서 더욱 더 眞正한 그의 人間味가 솟아나옴을 느꼈습니다. 맞습니다. 懦弱하고 바보같은 人間 노무현이었습니다. 故鄕에서 農夫처럼 살게 놓아 주면 안 되었나요!!!

權力도 名譽도 사라진 只今 수많은 人波가 비를 맞으며 걸어서 烽下마을로 向하고 있습니다. 追悼辭를 朗讀하는 大學生은 제2의 盧武鉉이 여기저기에서 나올 것이고, 自身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울먹입니다. 長男 根號氏는 하염 없이 울고만 있습니다. 女史는 모든 것을 超越한 분 같이 보입니다. 政治人이기 以前에 한 家庭의 男便으로서, 아버지로서도 自身의 役割을 다 못하고 간 것 같아 安打갑습니다.

우리의 歷史는 이렇게 피와 멍과 죽음을 통해서만이 發展 되어야만 하는지 痛歎스럽祈禱 합니다. 하늘은 하염없이 빗줄기를 뿌립니다. 2011마리의 나비가 비에 젖어서 겨우 날아갑니다. 하지만 숲을 向해, 人間 盧武鉉의 무덤가로 繼續 날아 가고 있습니다.


태그 : #社會 , #아름다운 世上
댓글
이 記事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記事 原稿料로 應援 하세요
原稿料로 應援하기


讀者意見

年度別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