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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帝 侵略戰爭에 動員된 流行歌, ‘軍國家요’ 다시 보기 (12)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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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帝時代 末期에는 流行歌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藝術 分野가 戰時體制 構築을 위해 總動員되고 있었다. 現在 資料가 많이 남아 있지 않아 덜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映畫 또한 例外가 아니었다.

1940年代에 들어서면 戰爭의 激化로 經濟狀況이 어려워진 理由 等으로 映畫 製作篇數가 크게 減少하게 되는데, 當時에 나온 映畫 大部分은 植民統治와 侵略戰爭에 對해 協調的인 內容을 어느 程度씩 담고 있었다. 1941年 11月에 日本에서 먼저 開封된 映畫 <그대와 나(원제="" 君と僕)="">는 그러한 御用映畫를 代表하는 作品이다.

朝鮮軍報道部(朝鮮軍報道部)에서 製作을 맡아 ‘內鮮一體(內鮮一體) 映畫’로 宣傳된 <그대와 나="">는 宣傳文句 그대로 韓國人과 日本人이 함께 參與해 만들었다.

監督 히나쓰 에이타로(日夏英太郞)는 本名이 虛榮(許泳)인 韓國人으로 3, 40年代에 日本에서 監督, 脚本 等으로 映畫界에 從事하던 사람이었다. 出演陣 가운데 나가타 겐지로(永田紘次郞)도 日本에서 손꼽히는 테너歌手로 活動하다가 1960年에 北送船을 타고 北韓으로 간 韓國人 김영길(金永吉)(1909-1973)이다. 그밖에 光復 以前에 朝鮮 最高의 女俳優로 人氣를 누리다가 1948年에 北韓으로 간 문예봉(文藝峰)(1917-1999) 亦是 <그대와 나="">에 主要 配役으로 出演했다.

朝鮮人 靑年과 日本人 處女의 사랑, 朝鮮人 靑年의 志願兵 出戰 等이 주된 內容인 <그대와 나="">는 政策的으로 만들어진 映畫인 만큼 言論을 통해 大大的으로 弘報되기도 했는데, 宣傳效果의 極大化를 위해서였음인지 主題歌까지 만들어져 音盤으로 發賣되었다.

1942年 1月 信保(音盤番號 31084)로 오케레코드에서 나온 <그대와 나="">(조명암(趙鳴岩) 作詞, 김해송(金海松) 作編曲, 남인수(南仁樹)·腸洗淨(張世貞) 노래)와 <낙화삼천(落花三千)>(조명암 作詞, 김해송 作編曲, 김정구(金貞九) 노래)이 바로 映畫 <그대와 나="">의 主題歌로 만들어진 作品이었다.

두 노래는 같은 映畫主題歌로 만들어졌고 作詞者와 作曲者도 같지만, 曲調 雰圍氣나 歌詞 內容은 뜻밖에도 全혀 딴판이다. 잔잔한 세拍子에 抒情的인 가락으로 백제 滅亡에 對한 回顧를 노래하는 <낙화삼천>에서는 映畫의 主題라고 할 수 있는 ‘內鮮一體’의 痕跡을 찾아 볼 수 없지만, <그대와 나="">는 映畫主題歌人 同時에 相當히 露骨的인 軍國歌謠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꽃 피는 고개 너머 하늘에는 새날이 밝는다/ 永遠한 길을 닦는 地平線에서/ 노래를 부르잔다 基미토보쿠(君と僕) 노래를 부르잔다 基미토보쿠

그대는 半도 남아 이내 몸은 야마토사쿠라(大和櫻)/ 建設의 해가 솟는 地平線에서/ 노래를 부릅시다 아이노우打(愛の唄) 노래를 부릅시다 아이노우打

여기는 亞細亞(亞細亞)다 우리들의 希望은 빛난다/ 깎듯이 손을 잡고 旗발 아래서/ 忠誠을 盟誓 짓는 基미토보쿠 忠誠을 盟誓 짓는 基미토보쿠

(留聲機 音盤에 실린 內容을 남인수 팬클럽에서 採錄한 것이다)


남인수가 맡은 第1節은 映畫의 男子主人公 立場에서 불렀고, 腸洗淨이 부른 제2절은 女子主人公을 表現했다. 때문에 ‘이내 몸은 야마토사쿠라’, 卽 日本의 벚꽃이라는 表現이 第2節에 登場하고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이 合唱으로 부른 제3절에는 ‘亞細亞’, ‘忠誠’ 같은 單語들이 보이는데, 이는 앞서 이미 보았듯이 當時 軍國歌謠에서 常套的으로 使用했던 典型的인 單語들이다.

1937年에 <연락선은 떠난다="">를 불러 데뷔한 以後 오케레코드의 看板級 歌手로 活躍했던 腸洗淨(1921-2003)은 1941年에 發表한 <역마차>가 크게 人氣를 끌면서 全盛期를 누리고 있었는데, 그러한 人氣 德에(?) 軍國家요 亦是 적지 않게 부를 수밖에 없었다.

이미 보았던 <지원병의 어머니=""> <그대와 나=""> 外에, 作品 內容을 正確히 알 수는 없지만 題目만으로도 軍國家遼임이 거의 틀림없어 보이는 <반도의 아내="">(조명암 作詞, 김해송 作曲, 1942年, 音盤番號 31092), <국민개로가>(남인수와 함께 노래, 1942年, 音盤番號 31101), <아가씨 위문="">(조명암 作詞, 이봉룡(李鳳龍) 作編曲, 1943年, 音盤番號 31158), <지원병의 집="">(조명암 作詞, 박시춘(朴是春) 作編曲, 1943年, 音盤番號 31211) 等이 모두 오케레코드를 通해 腸洗淨이 發表한 노래이다.

한便으로는 이렇게 戰時體制에 協調的인 軍國歌謠를 불러야 했지만, 다른 한便으로는 또 戰時體制에 맞지 않는다는 理由로 吹入한 音盤이 禁止 處分을 받기도 했다.

腸洗淨의 人氣曲 <역마차>의 人氣에 힘입어 만들어진 歌謠悲劇 <역마차>(1941年, 音盤番號 20107-20109)는 亦是 腸洗淨이 主題歌를 불러 發賣되었는데, 時局에 맞지 않는 것으로 判定을 받아 禁止가 되고 말았다. 必要에 따라 動員해 쓰면서도 조금만 입맛에 맞지 않으면 假借없이 彈壓을 加한 日帝 植民統治의 一面을 端的으로 볼 수 있는 例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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