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釜山 野球의 봄, '舟形光'을 떠올리다 - 오마이스타
1993年 8月 4日, 시카고 화이트삭스와의 競技에 先發 登板한 텍사스 레인저스의 投手 놀런 라이언. 自身의 全盛期보다 拘束이 10㎞나 떨어진 '느려터진 時速 150km 짜리 直球'에 엉덩이를 얻어맞고는 辱說을 지껄인 相對打者 로빈 벤츄라의 목을 휘어감은 채 주먹을 날려댔다. 그 해 그의 나이 46歲였고, 서울 올림픽에서 4割 代의 打率로 金메달을 목에 걸고 메이저리그로 入城한 슈퍼루키 벤츄라는 26歲였다.

라이언은 곧장 退場 當했고 그로부터 한 달 뒤에는 隱退를 하고 말았지만, 그날 그에게는 또 하나의 別名이 생겼다. '모든 사라져가는 것들의 偶像'. '텍사스 特級'이라는 往年의 別名에 따라붙던 熱狂的인 歡呼聲 代身, 그와 함께 人生길을 걸어온 흰머리 星星한 同伴者들이 보내는 따뜻한 友情의 拍手가 배어있는 別名이었다.

지난 4月 1日. 올 시즌 첫 滿員 觀衆을 記錄한 釜山 사직구장의 3萬 觀衆 앞에서 큰절을 하고 물러나와 눈물 밴 유니폼을 벗은 選手가 있었다. 舟形光. 90年代 中盤 以後 롯데 자이언츠가 걸어온 激情의 歲月을 고스란히 그 한 이름으로 품고 있는, 그러나 不過 서른세 살의 나이를 먹었을 뿐인 젊은이의 이름이다.

'威力的인 느린공', 모든 '最年少' 記錄 갈아치우다

주형광의 투구 주형광은 빠른 공도, 다양한 변화구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무기는 정교한 제구력을 밑천삼아 단순명료하게 덤벼드는 투지와 패기였다.

▲ 舟形光의 投球 舟形光은 빠른 공도, 다양한 變化構圖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武器는 精巧한 制球力을 밑천삼아 單純明瞭하게 덤벼드는 鬪志와 霸氣였다. ⓒ 롯데 자이언츠


2學年 時節부터 이미 팀의 거의 모든 競技를 책임지다시피 하며 양상문과 박동희를 잇는 부산고의 에이스로 이름을 날렸던 그는 高等學校를 卒業하던 1994年 곧바로 프로舞臺로 들어섰다. 그리고 데뷔 後 두 番째 先發登板이었던 1994年 4月 10日 大田 한화戰에서 完投勝(1失點, 非自責點)을, 같은 해 6月 8日 大邱 三星戰에서는 완봉승을 거두며 거침없이 내달리기 始作했다.

3月生이면서도 한 해 먼저 初等學校에 들어갔던 그의 열여덟 番째 生日이 얼마 지나지 않은 時點에 만들어낸 記錄들이었기에, 그것은 아직도 깨어지지 않은 채 歷代 最年少 勝利, 完投勝, 완봉승 記錄으로 남아있기도 하다.

데뷔 시즌이던 그 해 그가 記錄한 것이 11勝. 그리고 그 이듬해 거둔 것이 다시 10勝이었고, 3年次인 96年에는 216.2이닝을 던지며 18勝과 221個의 三振을 잡아내 多勝과 脫三振 두 個의 타이틀을 차지하는 頂點에 올라서기도 했다. 特히 221個의 脫三振은 1984年 최동원의 223個에 이어 歷代 2位에 該當하는 記錄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여느 '닥터 K'들과는 달리 빠른 공을 가진 投手도 아니었고, 다양한 變化球를 가지지도 못했다. 그의 直球 最高球速은 時速 140㎞에도 미치지 못했고, 强速球와 더불어 탈삼진王들의 必須毬種으로 꼽히는 '떨어지는 變化球(포크볼·커브)'도 가지고 있지 못했다. 甚至於 체인지업조차 能한 便은 아니었으니 '緩急調節'에 特技가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가 던지는 공은 時速 130㎞大 中盤의 直購(그것도 투심이 아닌 포심 패스트볼)와 슬라이더, 딱 두 가지에 不過하다시피 했다. 그 단조로운 공을 가지고 몸 쪽 가장 깊숙한 곳과 바깥쪽 가장 먼 곳의 스크라이크 존 境界線을 공 半의 半 個 間隔으로 들락거리며 他者의 머리 속 가장 느슨한 곳을 노리는 白兵戰. 말하자면 그 時節 이상군과 김용수에 버금가는 날카로운 制球力을 밑천삼아, 複雜한 計算으로 散漫해진 打者들의 눈앞에 正面으로 肉薄해가는 霸氣가 그의 武器였다.

結局 投手에 對한 이미지를 만드는 가장 決定的인 要素는 拘束이다. 그래서 投手들은 공하나 던질 때마다 '거울 보듯' 電光板에 찍히는 自身의 拘束을 確認한다는 것이고, 전병호는 實際로 絶對 投球間隔을 길게 끄는 投手가 아니면서도 '成俊의 後裔'로 公認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舟形光은 느린공을 던지면서도, 그리고 甚至於 조계현처럼 悲壯美와 鬪志로 暴發할 듯한 表情조차 없이 언제나 天眞爛漫한 웃음을 흘려대면서도 알 수 없이 후끈후끈 달아오르는 熱氣를 傳해주는 뜨거운 投手였다.  

1995年과 1999年 자이언츠의 歡呼, 그 中心에 선 舟形光

1999년 플레이오프 7차전 극적인 역전에 성공하고 맞이한 11회말, 세 타자 연속삼진을 잡아내 한국시리즈 진출을 확정한 주형광이 환호하고 있다.

▲ 1999年 플레이오프 7次戰 劇的인 逆轉에 成功하고 맞이한 11回末, 세 打者 連續三振을 잡아내 韓國시리즈 進出을 確定한 舟形光이 歡呼하고 있다. ⓒ 롯데 자이언츠


1995年과 1999年, 두 番의 플레이오프 最終戰(95年에는 6次戰, 99年에는 7次戰)은 1984年과 1992年 韓國시리즈 最終戰만큼이나 자이언츠 팬들의 가슴에 깊이 새겨져있다. 그리고 그 두 番의 決定的인 瞬間을 마무리한 것이 또한 舟形光이었다.

1995年에 540萬이 넘는, 歷代 最大 規模의 觀衆을 野球場에 모을 수 있었던 것은 巨大市場에 緣故地를 두고 있는 세 팀 트윈스와 베어스, 그리고 자이언츠가 서로 물고 물리며 霸權을 다투었기 때문이다. 그 해 韓國시리즈 直行圈은 시즌 最終戰까지 치른 뒤에야 正規시즌 1,2位 팀 間의 歷代 最小 隔差인 半競技差로 베어스에게 주어졌다.

그리고 눈앞에서 韓國시리즈 直行에 挫折한 트윈스와 만난 것은 4位 해태 타이거즈와 3競技 以上의 隔差(4.5競技差)가 벌어지는 바람에 準플레이오프를 省略하고 플레이오프로 直行한, 그러나 2位 트윈스와는 無慮 5.5競技差로 멀찍이 떨어져있던 3位 자이언츠였다. 

正規시즌의 競技差가 말해주는 '客觀電力'面에서도 比較가 되지 않았지만, 그 해 相對戰績에서도 트윈스는 자이언츠를 12勝 6敗로 壓倒하고 있었다. 그 해 자이언츠는 無慮 220個의 盜壘를 앞세워 機動力의 野球를 펼쳤지만, 1992年의 英雄인 염종석과 윤형배가 防衛 服務로 묶이면서 稼得念과 강상수를 先發陣에 넣어 버텨갔던 마운드가 虛弱했다. 더구나 短期戰에서라면, 이상훈과 金龍洙라는 트윈스의 確實한 兩 날개가 威力을 떨칠 것이라는 豫想이 支配的이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이 열리자 正規시즌 막바지에 20勝 達成을 위해 오버페이스를 했던 이상훈이 무너진 트윈스와 捕手 강성우가 空輸 兩面에서 想像 以上으로 暴發한 자이언츠가 莫上莫下의 熱戰을 벌였고, 結局 勝負는 6次戰까지 밀려가게 되었다. 그리고 10月 10日에 벌어졌던 6次戰. 各各 舟形光과 김기범을 내세웠던 그 날의 競技는, 歷史上 最高의 投手戰 中 하나로 꼽을만한 名勝負였다.

그 競技에서 트윈스의 김기범과 김용수는 各各 6이닝과 3이닝을 나누어 맡으며 6回初 전준호와 김종헌이 單 한 番 連續安打를 때려내며 뽑아낸 1點만을 許容하는 것으로 자이언츠 打線을 막아냈다. 그러나 反對便에서 혼자 9이닝을 責任진 자이언츠 舟形光이 許容한 것은 單打 한 個 뿐이었다. 1安打 완봉승.

그 날 마지막 打者 金東秀의 배트를 맞고 솟구친 공이 中堅手 전준호의 글러브에 빨려드는 瞬間, 그래서 팀의 韓國시리즈 進出이 確定되던 그 瞬間 마운드 위에서 하얗게 피어오르던 舟形光의 앳된 웃음을 나는 只今도 잊지 못한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 기쁨과 歡喜가 傳해져 새겨지던 그 歡呼.

자이언츠의 젊은 에이스 주형광은 프로무대에 들어선 1994년 역대 최연소 승리, 완투승, 완봉승 기록을 작성했고, 첫 여섯 시즌동안 다섯 번 두자릿수 승리를 기록하며 90년대 중후반 자이언츠의 '오늘이자 내일'로 떠올랐다.

▲ 자이언츠의 젊은 에이스 舟形光은 프로舞臺에 들어선 1994年 歷代 最年少 勝利, 完投勝, 완봉승 記錄을 作成했고, 첫 여섯 시즌동안 다섯 番 두자릿數 勝利를 記錄하며 90年代 中後半 자이언츠의 '오늘이자 來日'로 떠올랐다. ⓒ 롯데 자이언츠


4年 뒤, 자이언츠는 또 한 番 플레이오프에 進出했다. 이番에 만난 相對는 라이온즈였고, 亦是 客觀的 戰力 面에서는 밀린다는 것이 一般的인 評價였다. 그러나 1984年의 최동원, 992年의 염종석이 그랬듯, '客觀的인 劣勢'는 자이언츠 에이스들에게 새삼스런 짐이 아니었다. 그리고 每 瞬間 바로 그 客觀的 條件과 맞서, 이기건 至健 새겨질 때마다 사람을 달아오르게 만드는 傳說을 남기는 것이 바로 자이언츠라는 팀의 魅力이다.

<野球의 追憶>에서만 하더라도 박정태를 떠올릴 때, 임수혁을 떠올릴 때, 공필성을 떠올릴 때 거듭 되풀이해서 새겨졌던 바로 그 1999年 플레이오프 7次戰. 호세의 追擊홈런과 競技中斷 事態, 그리고 마해영의 同點홈런과 김종훈과 이승엽의 또다시 달아나는 홈런, 임수혁이 또다시 同點을 만들어내는 홈런으로 이어진 드라마의 마침標를 찍은 것은 舟形光이었다.

延長 10回末, 1死 滿壘. 꼭 安打가 아니라도 外野플라이나 어지간한 내야 땅볼만 나오더라도 그대로 競技가 끝나게 될 危機의 瞬間에 登場한 그는 三振과 遊擊手땅볼로 危機를 넘겨 11回로 勝負를 이어냈고, 김민재의 逆轉打로 한 點을 뽑고 돌아온 11回末에는 세 他者를 모두 三振으로 잡아내며 다시 한 番 韓國시리즈 進出을 確定짓고 말았다. 그리고 꼭 4年 前 그 瞬間과 꼭 같았던 벅찬 歡喜의 웃음.

이듬해부터는 舟形光과 자이언츠가 함께 길고 긴 내리막길을 걷기 始作했다. 다들 새千年이라고 들떠있던 2000年 봄 임수혁이 쓰러졌고, 2001年에는 마해영이 내보내졌다. 그리고 데뷔 以後 6年間 꾸준히 200이닝을 넘나드는 공을 던지며 팔꿈치 靭帶가 닳아 없어질 程度로 無理한 舟形光度 2001年 겨울 手術臺 위에 올라야 했다.

그리고 그리 어렵지 않다던 手術은 結果的으로 失敗였고, 2003年 돌아온 舟形光은 예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더 以上 200이닝을 던질 수도, 스트라이크존으로 줄타기를 하듯 했던 制球力을 뽐낼 수도 없었다. 共 끝에 힘이 떨어지며 長打를 許容하는 일이 많아졌고, 그런 일이 反復되며 더 以上 '舟形光'이라는 이름에서 壓迫感을 느끼지 못하는 相對打者들은 더욱 自信滿滿하게 덤벼들었다. 手術 以後 여섯 시즌동안 그가 거둔 勝利는 고작 10番이었다.

마해영과 임수혁, 그리고 舟形光의 빈자리를 채울 수 없었던 자이언츠도 墜落하기 始作했고, 2001年부터 2004年까지, 4年 連續 꼴찌로 주저앉았다. 그리고 2002年 10月 15日 147名, 16日 96名, 19日 69名. 3萬 名이 앉을 수 있는 사직구장은 같은 크기의 洞네 公園만도 못한 사람들만이 자리를 지키는 空터로 轉落하고 말았다.

釜山 野球의 봄, 舟形光을 떠올리다

은퇴식 2008년 4월 1일. 주형광은 사직구장을 가득 메운 3만 관중 앞에서 유니폼을 벗었다. 그가 팔꿈치수술에 실패하며 가라앉았던 2000년대 초반, 불과 백 명에도 못미치는 관중이 모였던 바로 그곳, 사직구장이었다.

▲ 隱退式 2008年 4月 1日. 舟形光은 사직구장을 가득 메운 3萬 觀衆 앞에서 유니폼을 벗었다. 그가 팔꿈치手術에 失敗하며 가라앉았던 2000年代 初盤, 不過 百 名에도 못미치는 觀衆이 모였던 바로 그곳, 사직구장이었다. ⓒ 롯데 자이언츠


어쨌든 뜨겁게 달아올랐던 1990年代 말과 차갑게 가라앉았던 2000年代 秒를 지나 2008年, 다시 釜山은 봄을 맞고 있다. 休日이면 다시 辭職球場 앞으로 暗票商들이 모여들고, 觀衆席에서 일어난 신바람은 連日 媒體들을 타고 全國으로 불어 번지고 있다.

그래서 釜山 野球의 봄에, 舟形光을 떠올린다. 그리고 決코 짧다고 할 수 없는, 그러나 마땅히 더 길고 더 굵었어야 했던 그의 選手生活을 생각한다. 決코 빠르지 않았던 공으로 천연덕스럽게 相對 他者를 윽박질렀던 그의 堂堂함과, 決코 順坦하지 않았던 길이었지만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시원해지는 짜릿한 歡呼聲을 記憶 속에 새겨준 그의 野球를 떠올린다. 그래서 너무 이른 나이지만, 이미 自身의 모든 것을 다 태워버린 그임을 너무나 잘 알기에, 고개 끄덕이며 拍手를 쳐줄 수 있다.

날마다 열리는 競技, 해마다 이어지는 시즌. 每瞬間 相對를, 競爭者를, 그리고 自身을 이겨내기 위해 숨 돌릴 틈도 없이 마주쳐 싸워야 했던 그 고단했던 歲月을 돌아보며 隱退式醬의 選手들은 흔히 눈물을 짓는다. 그리고 마치 하루하루 지치고 漠漠하되 돌아보면 그립기도 한 日常을 살아가며 우리 亦是 그의 눈물을 느낀다.

이젠 아무래도 예전 같지 않은 이종범·마해영의 이름을 連呼하다가 무뎌진 배트 質에 멋쩍게 웃음 지으며 생각한다. 같은 歲月을 함께 걸으며 같이 歡呼하고 같이 숨 차오름을 느끼다가 때론 푸근한 友情마저 느끼는 것이 해마다 나이를 먹는 프로野球의 魅力이라고….

수고 많았다, 舟形光.

덧붙이는 글 사람에 關한 여러가지 글을 쓰고 있다. 지은 冊으로 <야구의 추억,="" 그의="" 141구는="" 아직도="" 내="" 마음을="" 날고="" 있다="">(뿌리와이파리), <126, 팬과="" 함께="" 달리다="">, <돌아오지 않는="" 2루주자="">(以上 풀로엮은집) 等이 있다.
野球의 追憶 舟形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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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關한 여러가지 글을 쓰고 있다. 오마이뉴스에 連載했던 '맛있는 追憶'을 冊으로 엮은 <맛있는 追憶>(自認)을 비롯해서 靑少年用 傳記인 <장기려, 우리 곁에 살다 간 聖者>, 80,90年代 프로野球 스타들의 이야기 <野球의 追憶>等의 冊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