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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참치 낚던 感激 只今도 생생” :: 文化日報 munhwa

“첫 참치 낚던 感激 只今도 생생”

  • 文化日報
  • 入力 2007-06-27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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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茫茫大海에서 勞心焦思 끝에 참치가 처음 낚시에 걸려 水面위로 떠오르던 그날의 感激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나라 最初의 遠洋漁船인 지남호(250t) 船長 윤정구(80·前 오양水産 社長)氏는 “50年이 흘렀지만 그 날의 感激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고 말했다.

韓國遠洋漁業이 50周年을 맞았다.

27日 午後 釜山 海雲臺그랜드호텔에서는 강무현 海洋水産部 長官과 國內外 水産業界 從事者들이 參席해 國際심포지엄을 열고 遠洋漁業 發展史를 되새기는 뜻깊은 자리가 마련됐다. 이날 遠洋漁業 發展功勞로 感謝牌를 받은 尹氏는 50年史를 回顧했다.

“遠洋漁業은 戰爭의 廢墟속에서 經濟發展으로 이끄는 데 큰 役割을 했습니다. 政府 外交力이 미치지 않는 國家들과 民間外交를 통해 國交를 맺는 架橋役割을 하고 世界에 우리 文化와 歷史를 알리는 데 寄與했죠. 어려운 時節 雇傭創出은 勿論 먹을 것이 없던 國民들에게 動物性 蛋白質을 供給해 왔습니다. 이런 自負心으로 船員들은 異域萬里 외로운 곳에서 온갖 逆境을 이겨나갔습니다.”

1957年 6月26日. 釜山港 第1埠頭에서 政府 官僚와 水産業 從事者 等이 參席한 가운데 지남호의 첫 出港式이 있었다. 尹氏는 參席者들의 激勵에 “國家의 至上命令으로 알고 期必코 試驗操業에 成功하겠다”고 自身이 했던 말을 只今도 記憶한다. 國運을 어깨에 짊어진 悲壯한 心情이었다는 것.

尹氏는 그러나 “日本 시모노세키港에서 油類와 食品 等을 供給받고 印度洋을 向해 첫발을 내디뎠지만 冊에서 배운 것 外에 實際 참치連勝 操業은 經驗이 없어서 미끼나 낚시 狀態가 제대로 됐는지 걱정이 泰山같았다”고 말했다.

싱가포르 近海에서 기름까지 떨어져 오도가도 못하는 身世가 되는 等 迂餘曲折 끝에 같은 해 8月14日 印度洋 니코바르諸島 海域에서 出港 46日 만에 낚싯줄에 매달려 떠오르는 巨大한 生鮮을 구경할 수 있었다. 韓國 遠洋漁業社의 첫 페이지가 裝飾되는 瞬間이었다.

以後 總 10t의 漁獲高를 올린 지남호는 出漁한 지 108日 만인 10月4日 釜山으로 無事 歸還했고, 釜山港에 到着한 生鮮 中 一部는 李承晩 前 大統領의 指示로 곧장 景武臺로 옮겨지기도 했다. 지남호의 操業 成功은 마땅한 外貨벌이가 없었던 當時로서는 國家的인 자랑거리였다.

尹氏는 “船員들은 많은 施行錯誤를 겪으며 技術과 經驗을 쌓을 수 있었다”며 “그때의 經驗이 다음해 南太平洋으로 本格的인 商業操業을 나설 수 있게 하는 큰 原動力이 됐다”고 回顧했다.

1958年 1月 尹氏는 다시 지남호를 타고 南太平洋 사모아 近海로 나가 1年3個月間 100t의 다랑魚를 잡으며 遠洋漁業의 歷史를 開拓해 나갔다.

尹氏는 “高油價, 人力難, 輸入自由化 等으로 遠洋漁業이 갈수록 萎縮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單純히 經濟論理로만 接近할 것이 아니라 食糧資源 確保 次元에서 政府는 積極的인 遠洋漁業 育成支援策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釜山 = 金起炫記者 ant735@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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