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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文學으로의 初代] 최금희의 그림 읽기 (36)

[人文學으로의 初代] 최금희의 그림 읽기 (36)

루벤스의 ‘十字架를 세움’에서 主要 鑑賞 포인트는?

入力 2024-05-06 14:4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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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으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 (36)
페테르 파울 루벤스, 十字架를 세움, 1610~1, 패널에 油菜, 462x341cm(가운데 판넬) 462x150cm(側面 판넬), 벨기에 안트베르펜 노트르담 大聖堂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가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뒤, 1610年 안트베르펜의 性 曰부르(St. Walburga) 敎團으로부터 첫 祭壇畫 注文을 받았다.

그 地域의 富裕한 香辛料 商人이며 美術品 蒐集家인 헤에스트(Cornelis van des Geest)는 그에게 作品 依賴가 가도록 周旋했다. 이 세 幅 祭壇畫는 十字架를 세우는 場面을 그린 紀念碑的인 作品이다. 이는 펼치면 全體 幅이 6.4m이고, 높이는 4.6m로 겐트 祭壇畫보다 더 크다.?

‘十字架를 세움’은 十字架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軍人들이 밧줄로 땅에서 끌어올려 세우는 瞬間을 描寫하고 있다. 하느님을 바라보며 豫定된 運命을 淡淡히 맞는 그리스도가 마치 演劇 舞臺 위의 俳優처럼 對角線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이런 强烈한 빛의 效果에서, 明暗法의 멘토인 카라바조와 틴토레토의 影響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肉體의 다이내믹함을 바로크式의 曲線과 明暗法으로 루벤스만큼 잘 表現한 畫家는 없었다.?

루벤스를 修飾語처럼 따라다니는 ‘바로크(Baroque)’란 17世紀 初부터 18世紀 前半에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의 가톨릭 國家에서 發展한 美術 樣式이다. 本來 포르투갈語의 뜻은 ‘비뚤어진 模樣의 奇妙한 晋州’라는 뜻이다.

바로크 美術은 로마에서 畫家 카라바조에 依해 始作된 새로운 力動的이고 다이내믹한 思潮이다.?

그는 에너지를 捕捉한 빛과 어둠의 對比를 통해 誇張되고 歪曲되게 表現하여 本來의 價値에서 멀어졌다. 그래서 바로크 美術은 ‘그로테스크’하거나 ‘不規則하다’는 否定的인 意味를 內包한다.?

‘靜的이고 고요한 르네상스 그림의 登場人物을 꺼내다 激烈한 運動을 시킨 게 바로 바로크 美術’이라는 재미있는 表現이 두 美術 思潮의 特徵을 한 文章으로 말해준다.?

大部分 세 幅의 祭壇畫들은 各各 다른 內容이 그려지는 것이 普通인데, 이 패널들은 같은 主題를 다뤘다. 왼쪽 패널에는 ‘구경꾼과 哀悼하는 이들’을 그렸고, 오른쪽 패널은 ‘로마 軍人들과 예수 옆에서 처형당하는 두 名의 도둑’을 그렸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世界的인 歷史學者인 야콥 부르크하르트는 루벤스의 能力에 對해서 이렇게 記述한다.

“그는 精神的이고 激烈한 肉體的 動作을 한 空間 안에 便安한 對稱 配列로 덩어리로 表現한다. 그의 그림은 主로 빛과 生命이 中心에서 퍼진다. 훌륭한 色의 調和, 遠近의 거리, 빛과 그늘의 組成이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말해왔던 能力과 調和가 무르익으면 비로소 그때서야 그는 作業을 始作하였다.”

[인문학으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 (36)
‘十字架를 세움’ 가운데 패널.

이 그림에서 特히 注目해야 할 部分을 아래와 같이 하나하나 짚어 본다.?

1)十字가 위에 쓴 글

루벤스는 古典敎育을 받으며 ‘그리스語’와 ‘라틴語’를 배웠다. 아마도 B.C 500~A.D 600年 사이 메소포타미아 地域에서 使用하던 國際語인 ‘아람어’도 배웠을 것이다.

아람어는 예수가 活動하던 當時 유대人들이 쓰던 모어(Mother Tongue)로 舊約 一部는 그 言語로 쓰였다. 때문에 基督敎 文化圈에서 꽤 重要하게 여겨지는 言語다. 루벤스는 요한福音에 記錄된 대로 '유대人의 王, 나사렛 예수'를 위 세 言語로 써넣었다.?

루벤스는 트리엔트 公議會(Council of Trient)의 指針을 忠實히 따르며 聖經에 記錄된 事件을 再現하고 歷史的 正確性을 遵守하고 있었다. 이는 宗敎改革에 對備해 召集된 反宗敎改革(Conunter-Reformation)의 措置로, 빠르게 改新敎化 되는 유럽을 다시 가톨릭火 하려는 試圖로 내려진 指針이었다.

트리엔트 公議會의 指針은 祭壇畫 等에서 무엇보다도 華麗하고 莊重한 바로크 美術로 信者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가톨릭의 優位를 維持하려는 意圖에서 나온 것이다.?

2) 그리스도

苦惱하는 그리스도는 十地價에 매달려 세워진다. 예수의 얼굴은 가장 밝은 部分이다. 손에 못이 박혔으니 피가 팔 아래로 흘러내리고, 靑灰色을 띠는 皮膚는 漸次 蒼白해지고 있다. 핏氣 없는 입술이지만 內面의 强靭함을 담은 눈은 하늘을 凝視한다. 그리스도의 팔 아래에는 甲옷을 입은 한 男子의 얼굴이 보인다.

그는 罪責感을 느끼는 表情이지만, 그저 命令에 따를 뿐이다. 그리스도의 苦痛을 알아차리고 그를 바라보는 唯一한 軍人이다.?

十字架에서 매달린 채 세워지는 모습은 中世나 르네상스 時代에는 없던 構圖였다. 이는 反宗敎改革에 對한 勝利를 象徵한다. 十字架에 올려지는 苦痛받는 그리스도도 英雄的인 모습으로 再現되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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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字架를 세움’ 部分.

3) 軍人

‘十字架를 세움’은 十字架에 못 박힌 예수를 세우기 위해 힘을 쓰는 健壯한 헤라클레스 같은 超人的인 兵士들의 肉體美 饗宴으로 미켈란젤로의 影響이 가장 많이 묻어난다. 루벤스는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聖堂의 天井畫 ‘天地創造’를 로마에서 보았다.?

十字架를 세우는 이들은 그리스도의 苦痛은 外面한 채 自身의 일에만 沒頭하고 있다. 十字架에 매달린 그리스도가 畵面을 對角線으로 分割하며 力動的인 움직임을 담았다.?

르네상스 時代의 傳統的인 X字 構圖를 適用하여 그리스도의 몸이 畵面의 中心이 된다. 十字架를 한쪽 구석에 固定시키는 强烈한 斜線構圖는 이 事件이 觀覽者의 눈앞에서 일어나는 듯한 錯覺을 일으킨다.

이것이 바로크 時代 이탈리아 틴토레토의 影響을 받은 構圖이다. 잔뜩 힘을 주며 얼굴이 붉게 上氣된 채 파란色 옷을 허리에 질끈 두른 男子의 凝縮된 筋肉을 볼 수 있다. 맨발과 종아리도 激烈한 運動感이 느껴지는 瞬間을 잘 捕捉했다. ???

4) 빨간 옷의 男性

反對便의 黑白 터번을 쓰고 붉은 옷에 鬚髥이 난 異敎徒는 이집트人 듯하다. 十字架를 세우는 兵士들의 皮膚色은 더 짙게 表現하여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殉敎者를 强調하였다. 흰 천을 두른 그리스도와 對照하기 위해 周邊 人物들에게 빨간色, 파란色, 검은色을 더했다.

이는 X字 構圖에 三角形으로 무게重心을 잡아 安定感을 준다. 루벤스는 움직임의 極端的인 强調, 均衡, 對照로 瞬間的인 것을 나타내는 데 있어서 他의 追從을 不許하는 最高의 畫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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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字架를 세움’ 部分.

5) 개

왼便 구석에 털북숭이 개가 보인다. 곱슬거리는 털이 만져보고 싶을 만큼 實感난다. 어느 動物畫家보다 뛰어난 루벤스는 털에도 움직임을 담았다.

伴侶犬을 키우는 이들이라면 루벤스의 細密하고 自然스러운 描寫에 魅了될 수밖에 없다. 개는 主人에 對한 충직함의 象徵이니 오히려 개의 눈빛에 안타까움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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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패널: 구경꾼과 哀悼하는 이들

?이제 왼쪽 패널 ‘구경꾼과 哀悼하는 이들‘을 보자.?

6) 金髮 女人

아이에게 젖을 먹이며 上半身을 드러낸 女人에게 觀覽者의 눈이 가장 먼저 가는 건 人之常情이다. 强烈한 빨간色 衣裳, 글래머러스韓 몸매, 그리고 上半身 누드이니, 이 세 幅 祭壇畫가 놓인 位置를 勘案하면 루벤스가 그렇게 意圖的으로 配置했다고 斟酌할 수밖에 없다.?

豐滿한 女人의 官能的인 表現에 뛰어난 루벤스가 祭壇畫에서 누드를 그리기 위해 怜悧하게 授乳하는 場面으로 設定한 것이 아닐까? 라는 合理的인 疑心이 든다. 깜짝 놀라 왼팔을 하늘로 치켜 올리다 아이를 떨어뜨릴 地境이다. 아이는 벌써 危險을 認知했으니, 亦是 루벤스는 表情 描寫의 達人이다.?

金髮의 출렁임에 바람과 몸의 움직임도 느껴진다. 이 女人을 始作으로 老婆와 女人 그리고 使徒 요한과 聖母까지 지그재그로 視線을 誘導한다. 以前의 聖火와 달리 이 패널의 全體的인 雰圍氣는 樂天的이고 生動感이 넘친다.?

[인문학으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 (36)
‘十字架를 세움’ 部分.

7) 聖母의 낯빛

?다른 畫家들은 앉거나 쓰러져 痛哭하는 聖母로 描寫했다. 그러나 루벤스는 使徒 요한과 손을 잡고 서로 慰勞하며 서 있게 만들었다. 이젠 루벤스는 어떻게 聖母의 苦痛을 表現했는지 찾아보자.

죽음을 앞둔 아들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어머니는 이미 ‘十字架의 내림’에서 죽은 예수의 屍身과 같은 납色으로 安易 變했다. 그렇게 聖母의 感情을 呼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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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으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 (36)
그림을 仔細히 보면 老婆 뒤에 숨은 少年이 보인다.

?8) 老婆와 少年

平生 힘든 일로 굵고 깊은 주름, 성한 이는 거의 보이지 않는 老婆는 短縮法으로 까맣고 거친 커다란 손을 그렸다. 젊고 彈力 있는 周邊 女人들과 皮膚와 比較해 보자. 루벤스는 身分 差異에 依한 皮膚와 生氣를 描寫하는 데 있어서도 따를 이가 없었다.

골고다 언덕의 十字架에 세워지는 現場에서 老婆의 팔에 숨어 있는 少年을 어느 畫家도 그리지 않았다. 少年은 두렵지만 두 눈을 또렷이 뜨고 歷史의 한 場面을 지켜보고 證言하겠다는 意志가 엿보인다. 이 祭壇畫의 主人公은 바로 이 少年이다.

[인문학으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 (36)
오른쪽 패널: 로마 軍人들과 예수 옆에서 처형당하는 두 名의 도둑

10) 말

루벤스는 말의 上體와 다리를 對角線 構圖로 全面 配置하여 움직임을 極大化하였다. 말이 오히려 主人公 같다. 도둑 한 名은 兵士들에게 捕縛되고, 短縮法으로 또 다른 도둑은 바닥에 누워 있다.

‘短縮法’이란 人體를 그림 表面과 경사지게 또는 平面과 直角을 이루도록 配置하여 縮小되어 보이게 하는 技法이다.?

루벤스는 苦難과 救援의 聖經을 그림으로 具現했으며 人間의 사랑과 憎惡의 이야기를 말한다. ?

十字架의 세움’에는 그가 받은 令監, 想像力, 能力, 意圖가 모두 조화롭고도 생생하게 나타난다. 루벤스의 차분하고도 冷靜하게 메시지를 選別해 傳達하는 畫家로서의 能力이 경이롭게 表出된 祭壇畫이다.?

藝術은 모든 衝動의 表出이며, 藝術은 삶과 하나이다. 그리하여 藝術을 鑑賞하기 위해 삶에 對한 理解가 따라야 한다. 藝術 作品은 人類의 歷史와 함께 해왔다. 그 作品이 內包하고 있는 歷史를 읽어내는 일은 推理小說을 읽는 것보다 더 興味津津하다.?

◇최금희 作家
최금희는 美術에 對한 熱情과 指摘 목마름을 解消하기 위해 數次例 博物館大學을 修了하고, 서울대 苦戰人文學部 金炫 敎授에게서 그리스 로마 神話를, 藝術의 殿堂 美術 아카데미에서는 耳峴 先生에게서 르네상스 美術에 對하여, 代案硏究共同體에서 노성두 美術史學者로부터 西洋美術史를, 그리고 미셀 푸코를 專攻한 哲學博士 虛驚 先生에게서 1900年代 以後의 美術史를 師事했다. 그동안 全 世界 美術館과 博物館을 踏査하며 蒐集한 厖大한 資料와 直接 撮影한 寫眞을 통해 作家別로 그의 履歷과 美術 思潮, 同僚 畫家들, 그들의 사랑 等 숨겨진 이야기, 그리고 關聯된 小說과 映畫, 歷史 建築을 바탕으로 이야기 褓따리를 풀어 놓는다. 現在 서울市 50플러스센터 等에서 西洋美術史를 講義하고 있다. 쿠키뉴스=홍석원 記者 記事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