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일보[ ]

1961年 約 3個月 동안 서울에서 發行되었던 革新系 日刊新聞.

第2共和國 當時인 1961年 2月 日刊新聞으로 創刊되었다. 南北協商과 南北間의 經濟·書信 交流 實施 및 南北 學生會談 開催, 中立化 統一·民族自主統一의 推進 等 當時의 革新系가 내세우고 있던 主張을 積極 支持하는 論調를 폈다. 그러나 5·16軍事政變 後 反國家的·反革命的 新聞이라는 理由로 發行을 停止 當하여 92號를 마지막으로 1961年 5月 19日 强制 終刊되었다.

그 뒤에도 戒嚴司令部 는 이 新聞의 創刊 資金을 北韓에서 들여왔다는 嫌疑로 民族日報 發行人 조용수( )를 비롯한 幹部들을 革命裁判에 回附하였다. 感謝 안新規( )와 論說委員 송지영( )은 無期懲役刑을 宣告받고, 社長 조용수는 北韓과 連累되었다는 罪目으로 言論인 史上 처음으로 死刑에 處해졌다. 1990年 《민족일보》에서 일했던 同僚들에 依해 發行되었던 新聞의 影印本 事業의 必要性이 擧論되어 揚水井 前 編輯局長, 하일민( ) 4月革命 硏究所長, 《한겨레신문》 송건호( ) 社長 等 17名에 依해 影印版이 發刊되었다.

參照項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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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일보事件 1960年 4·19革命 後 革新勢力을 自處하며 《민족일보》를 통하여 公算思想을 腐蝕(扶植)韓 조용수(趙鏞壽)·안新規(安新圭)·송지영(宋志英) 等 言論人 및 關聯者가 處罰당한 韓國 最初의 筆禍事件.
송지영 韓國의 言論인·소설가. 1980年 立法會議 議員, 1981年 第11代 國會議員(全國區, 民政黨), 1983年 민정당 中央執行委員을 지내고, 1984年 한국방송공사 理事長과 光復會 副會長 等을 歷任하였다. 漢學과 中國 古典에 造詣가 깊어 中國 作品의 飜譯 著述을 많이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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