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안
時代로 알려진 紀元前 14世紀에 예루살렘은 "平和의 都市"라는 意味의 '우루살림(Urusalim)'으로 불렸다. 紀元前 935年 北쪽 이스라엘(Kindom of Israel)과 南쪽
유다王國
으로 分裂된 뒤 예루살렘은 유다王國의 宗敎的·政治的 首都로 기능했다. 紀元前 586年
新바빌로니아
의 侵略으로 捕虜로 抑留되었던 유대人들이 페르시아 王에 依해 釋放되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유대敎
의 神殿인 聖戰(
聖
殿
, temple)을 再建했다. 以後에도 로마의 支配를 받다가 紀元前 37年에
性電算
에 또다시 聖殿을 再建했지만, 70年에 로마의 攻擊으로 이 聖殿은 다시 破壞되었다. 유대人들은 當時 破壞된 聖戰 中 唯一하게 남은 西쪽 城壁(Western Wall)에 찾아와 痛歎하는 風習이 생겨나 '
痛哭의 壁
(Wailing Wall)'으로도 불리게 되었다.
콘스탄틴 大帝의 비잔틴 時代가 열리면서 예루살렘은 638年까지
비잔틴 帝國
의 支配를 받아 基督敎의 中心地가 되었다.
베들레헴
,
갈릴리
와 더불어 基督敎 聖地인 예루살렘에 성묘교회(The Church of the Holy Sepulcher)와 主祈禱文敎會(The Eleona Church), 性 시온 敎會(The Church of Holy Zion), 昇天敎會(The Church of the Ascenson) 等 敎會와 修道院이 建設되었다. 614年 페르시아가 예루살렘을 侵略하여 基督敎를 迫害할 때 當時 유대人들은 페르시아를 支援하고 예루살렘을 再奪還했지만 629年 비잔틴 軍隊의 再占領으로 다시 逐出되었다.
638年에는 아랍人에 依해 다시 陷落되어 4世紀가 넘게 이슬람의 支配를 받았다. 7世紀와 8世紀에 痛哭의 壁 近處에
바위 寺院
과
알아크사 모스크
가 建立되었다. 유대人 共同體는 '
딤美
(Dhimmi)'의 地位를 받아 自由를 保障받는 代身 特別
人頭稅
와 土地稅를 내야 했다. 以後 1099年에는 十字軍이 侵略하여 예루살렘을 占領하고 200餘 年間 支配했다. 이 時期에 예루살렘은 十字軍 國家인 基督敎 王國(Kingdom of Jerusalem)으로 存在했으며 예루살렘에 居住하던 非基督敎人들은 虐殺당하고 유대人들은 박해당했다. 1291年 十字軍이 當時
이집트
와 시리아 一帶를 統治하던 마물루크 술탄(Mamluk Sultanate) 軍隊에 敗함으로써 十字軍 支配氣는 終熄되었다.
1517年부터
오스만 帝國
의 統治가 始作되었다. 當時 이스라엘은 4區域으로 分轄되었고 行政區域上
다마스쿠스
所屬으로
이스탄불
의 支配를 받았다. 유대人의 流入으로 예루살렘의 人口密度가 높아지자 19世紀부터 城壁 밖에 유대人 居住地가 形成되기 始作했다. 올드시티의 痛哭의 壁이 再建되어 오늘날의 構造를 갖추게 되었으며 19世紀에 올드시티는 아르메니안, 크리스챤, 유대人, 무슬림 쿼터로 區分되었다. 19世紀에는 西歐 列强이 들어오기 始作한 때로, 1892年에는
텔아비브
와 예루살렘을 잇는 最初의 鐵路가 建設되었다. 예루살렘에
英國
, 프랑스, 러시아, 오스트리아, 美國 領事館이 開設되었다. 1917年에 英國軍이 예루살렘을 占領하게 되면서 오스만의 支配는 終結되었다.
英國 軍隊가 예루살렘을 占領한 뒤 많은 유대人과 아랍人이 예루살렘에 定着하면서 全體 人口數는 1922年 52,000名에서 1948年 165,000名으로 增加했다. 英國은 예루살렘을 首都로 定하고 올드시티 西쪽과 北쪽으로 새로운 居住地域을 建設해나갔다. 유대人의 繼續된 流入과 1917年 英國의
밸푸어宣言
으로 아랍 暴動이 發生하기도 했다. 하지만 1947年
國際聯合
(UN)李
팔레스타인
領土를 유대人地球와 아랍人地區로 分轄할 것을 勸告하면서 葛藤이 커졌다. 1948年 5月 14日 英國委任統治가 終了되면서 이루어진 이스라엘 獨立宣言은 周邊 아랍國家들이 參戰한
아랍이스라엘紛爭
(
第1次 中東戰爭
)으로 이어졌다.
第1次 中東戰爭은 예루살렘의 分離를 招來했다. 國際聯合(UN)은 예루살렘을 UN의 管理 下衣 中立地域이자 國際都市로 計劃했으나, 結局 올드시티와 동예루살렘은
트란스요르단
(
요르단
)에, 서예루살렘은 이스라엘에 分割되었다. 當時 유대人과 아랍人의 住居地 移動이 이루어졌으며, 3萬 名 以上이 難民이 되었다. 이스라엘은 建國과 同時에 예루살렘을 都市로 宣言했으며, 요르단은 1950年에 동예루살렘을 公式 倂合하여 1953年에 요르단의 第2首都로 宣言했다. 1967年 6日 戰爭이라고도 불리는
第3次 中東戰爭
當時 이스라엘이 勝利하면서 동예루살렘을 占領한 뒤 國會議事堂과 大法院 等 主要 政府 機關을 예루살렘으로 移轉함으로써 예루살렘을 首都로 主張하였다.
國際法上 예루살렘은 어느 쪽의 領土도 아니므로 只今까지 論爭거리로 남아 있다. 美國을 除外한 大部分의 나라가 1967年 以前의 서예루살렘 地域만을 首都로 認定하며 이스라엘 駐在 大使館을 텔아비브에 두고 있다. 2017年 12月 美國 트럼프 政府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首都로 認定하고, 大使館을 移轉하겠다는 예루살렘 宣言을 發表하면서 예루살렘 地位에 對한 論難이 再點火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