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門을 열자마자 무언가 잘못됐다고 느꼈다. 先輩는 勿論이고 同僚 에디터 들. 甚至於 恒常 自己 자리에만 앉아 있던 編輯長까지 모두 圓卓에 둘러서 있었기 때문이다. 시끌벅적한 소리는 내가 門을 열고 들어오자 瞬息間에 사라졌다. 그들은 모든 對話를 멈추고 가만히 나를 바라봤다. 마치 綠色 記事를 처음 대면한 圓卓의 騎士들처럼. 先輩만이 눈을 몇番 깜빡이며 어리바리하지 말고 빨리 자리에 앉으라는 信號를 보냈다. 아무렇지 않다는 듯 걸어가면서도 등에서는 식은땀이 흘렀다. 沈默은 깨지지 않는다. 겨우겨우 先輩 옆자리에 到着하고 周邊을 向해 罪悚하다는 意味의 默禮를 몇番 하고 나서야 靜寂이 깨진다. 編輯長은 ‘맛과 料理’ 部署에 어울리는 風采를 지니고 있지만 鈍하거나 무거워 보인다기보다는 듬직해 보인다는 表現이 좀더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그는 먹는 것에도 眞心이고, 먹는 것에 對해 쓰는 것도 眞心처럼 보였다. 에디터들이 가져오는 記事 하나하나 主題를 다시 잡아주고, 表現을 고쳐주고, 內容을
[김민성의 시네마 디스패치] 맛과 料理 섹션: 企劃 會議
‘마음(을) 쓰다’라는 表現을 좋아한다. 大體로 愛情을 가진 어떤 것에 集中하고 애쓰는 狀態를 드러낼 때 꺼내는 말인데 肯定보단 否定的인 狀況에 곧잘 쓰인다. “괜찮아, 마음 쓰지 마.” 오랜만에 만난 親舊는 주름 사이 걱정거리를 새기고 다니는 내 꼴이 안쓰러워 보였는지, 술 한盞에 事緣을 주워 삼키더니 서둘러 對話를 끝냈다. 굳이 對話를 더 이어가지 못한 건 ‘마음 쓰지 말라’는 親舊의 黨部에 담긴 配慮를 알기 때문이다… 라고 멋지게 말하고 싶지만 實은 손가락 하나 까닥할 힘도 없어서다. 마음은 使用하면 닳아 사라지는 消耗品일까. 定해진 總量을 넘어가니 餘裕도 바닥난다. 未安하면서도 차마 마음을 나눌 氣力이 없다. 事實 ‘마음을 쓴다’는 表現보다는 ‘마음이 쓰인다’는 表現이 더 와닿는다. 때론 意志 바깥에서 作動하는 것들이 우리를 있어야 할 자리로 이끌기도 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박박 긁어도 더 남은 게 없었던 마음 한구석에 무언가 샘솟는 걸 느낀다. 親舊에 對한 未安함인
[송경원 編輯長] 마음이 쓰여, 마음을 쓰다
처음 만나는 어린이들에게는 名銜만 한 종이에 내 이름을 써서 준다. 어린이에게도 종이에 이름과 좋아하는 動物을 써달라고 한다. 강아지와 고양이가 斷然 人氣이지만, 다양한 動物이 登場한다. 虎狼이, 도마뱀, 토끼, 코알라, 將帥풍뎅이, 물고기…. 그리고 有機體. 有機體? “저는 科學을 좋아하는데 動物도 科學이라서 좋고, 動物은 모두 有機體니까요.” 다른 것은 몰라도 이 어린이가 한창 有機體 工夫 中인 것만은 알 수 있다. 누군가 特定 用語를 유난히 자주 使用한다면 높은 確率로 그 말을 最近에 배운 거라는 弄談이 있다. 나는 거기에 웃지 못한다.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린이도 아닌데, 새로운 槪念을 알게 되거나 知識을 얻으면 虎視眈眈 그걸 티 내려 한다. 近來에는 ‘포스트휴머니즘’, ‘트랜스휴머니즘’ 같은 말을 신이 나서 자주 썼다. 그래도 글로는 쓰지 않는다. 글로 쓰면 水準이 今方 드러난다는 程度는 알고 있으니까. 그조차도 몰랐던 靑少年 時節에는 ‘패러다임’을
[김소영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새로운 낱말
‘숲속에 들어가 토끼를 잡는 法’에 關한 재미난 萬坪이 있다. 4時間의 搜索을 마치고 나온 CIA는 “모든 情報員들이 수풀 하나하나 돌 구석까지 샅샅이 精密搜索한 結果 토끼는 이곳에 存在하지 않습니다”고 결론짓는다. FBI는 24時間이 지난 뒤 “토끼는 도망쳤습니다. 하지만 멀리 가지 못했을 겁니다”라고 發表한다. 마지막으로 KGB는 20分 만에 滿身瘡痍가 된 곰 한 마리를 끌고 온다. 곰은 自白한다. “저는 토끼입니다. 저희 父母님도 토끼입니다.” 자파르 파나히 監督의 新作 <노 베어스>를 보다가 문득 이 웃기고 섬뜩한 漫畫가 떠올랐다. 때론 조금 떨어져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舊 蘇聯 搜査 機關의 無能과 不條理를 嘲弄하는 이 4컷 漫畫를 只今 다시 보니 恐怖를 動力 삼아 作動하는 權力의 設計圖를 마주하는 氣分이다. 時間은 線形的으로 흐르는 것 같지만 때때로 同時的으로 存在한다. 한 사람, 한 集團, 한 國家의 歷史는 線形的으로 認識되지만 視線을 大陸, 地球
[송경원 編輯長] (이제) 여기엔 곰이 없습니다
家族 같은 會社. 나도 그렇지만, 職場을 다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싫어하는 말일 테다. 家族으로만 構成된 會社는 있을 수 있어도, 家族의 和睦함을 期待할 만한 會社란 없다. 家族조차도 애初에 和睦함만으로 構成되지 않는다. 目的이 있는 企業, 特히나 營利를 追求하는 會社는 和睦함이 아닌 다른 運營 原理에 基礎를 둘 수밖에 없고 그게 훨씬 더 바람직하다. 따라서 家族 같은 會社란 家族보다도 못한 會社의 다른 말이다. 只今으로부터 數十年도 前에 大學이란 곳에 學生이 되어 다닐 때에도, 같은 ‘족’(族)字가 붙는 單語인 民族이란 말이 쓰일 때 거슬린 적이 많았다. 게다가 그 巨大하기만 한 民族을 좁디좁은 家族으로 還元하는 語法은 더욱 싫었다. 國土를 어미나 누이의 몸으로 換喩하고, 侵略者를 그 女性 身體를 蹂躪하는 異民族 男性으로 描寫하는 發言을 들을 때마다 돋아 올랐던 소름. 내가 침략당하는 民族에 屬한 男性‘으로서’ 같이 憤怒해주길 바랐을 것이나, ‘그럼에도 不拘하고’ 내 憤怒는 오
[정준희의 디스토피아로부터] 그들이 그렇게도 밉고 우스워 보이더냐?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다. 이야기를 向한 멈출 수 없는 欲望은 <아라비안 나이트>처럼 죽음마저 미룰 程度로 强力하기에, 오래前부터 이야기에 中毒된 人類는 ‘다음 이야기’를 發掘할 갖가지 手段을 發明해왔다. 이러한 欲望을 實로 資本主義的인 方式으로 具現한 모델 中 하나가 바로 續篇이다. 反復되는 패턴이 주는 安定感 위에 새로움을 더하는 若干의 變奏는 모르는 사람 없는 興行의 基本 패턴이다. 續篇은 産業의 規模가 커질수록 失敗의 危險을 줄이기 위한 裝置로 活用되지만 實은 安靜劑에 가깝다. 무슨 말이냐면, 實際로 成功할 確率을 높인다기 보단 '이렇게 하면 잘 될 거'라는 心理的 慰安에 가까운 境遇가 茶飯事다. 單純히 넘버 링으로 이야기의 生命줄을 이어가던 時代는 지났다. 이른바 ‘世界觀’ 모델이 提示된 以後 이야기를 잇고 擴張하는 方式은 다채로워졌다. 아니 어쩌면 ‘그렇게 보였던 것뿐’이었던 걸까. 安全한 길을 걷겠다고 野心차게 企劃된 後續作들이 줄줄이 外面받는 것을 보니 生
[송경원 編輯長] 人間의 好奇心은 끝이 없고, 이야기는 反復된다
한참 동안 <스트릿 우먼 파이터>를 즐겨봤다. 그前에는 <사이렌: 불의 섬>을 熱心히 봤고 <骨 때리는 그女들>도 좋아한다. 共通點은 ‘움직이는 女子들’을 실컷 볼 수 있다는 것. 그 女子들의 몸은 大體로 마르고 閭里閭里하지 않으며 그들의 움직임은 예쁘고 섹시해 보이는 것을 目的으로 하지 않는다. 이 프로그램들을 보고 나면 解毒 주스를 마신 듯 健康해지는 느낌이다. 많은 이들이 미디어에서 女性의 몸이 지나치게 對象化된다는 點을 批判한다. 많은 챗봇이 女性의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고 많은 안드로이드가 女性의 外形으로 만들어져왔듯이 미디어에서 讚辭를 받는 많은 몸들은 女性의 것이었다. 챗봇이나 로봇을 男性으로 만들고 미디어에서도 男性의 몸만 再現하자는 말이 아니다. 問題는 미디어가 女性의 몸을 보여준다는 事實 自體가 아니라 女性의 ‘어떤 몸’을 보여주는가에 있다. 우리는 女性이 어떤 몸이어야 사랑받는지 알고 있다. 섹시하지만 너무 섹시해서는 안되고 예쁘
[임소연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새해에는, 움직여!
한동안 季節의 變化에 둔감했다. 나는 바람이 차가운 初겨울까지 半바지를 입고 外出했고, 걸으면 땀이 나는 늦은 봄에도 두꺼운 스웨터를 입고 다녔다. 氣溫이 零下로 떨어지거나 에어컨 없이 살 수 없을 程度가 되어야 ‘여름옷’, ‘겨울옷’을 입었다. 그래서 내 房 옷欌엔 언제나 四季節 옷이 함께 걸려 있었다. 엄마는 半팔 티셔츠와 롱패딩이 같은 行車에 걸린 것을 보고 火를 냈고, 동생은 나의 無神經함이 精神的 問題일 수 있다며 相談을 勸誘했다. “게을러서 그래, 未安해.” 나는 나를 걱정해주는 사람들에게 謝過하는 것으로 季節의 變化를 느끼곤 했다. 抑鬱하다. 비록 옷차림 때문에 대충 사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내게도 儼然히 나만의 季節 意識(Ritual)이 있다. 봄에는 두릅을 사서 먹는다. 데쳐서 醋醬에 찍어 먹고 튀겨서 간醬에 찍어 먹었다. 올해는 前에 꽂혀서 두릅展에 挑戰해보았전. 여름에는 恐怖映畫를 본다. 이番 여름엔 끌리는 映畫가 없어서 강태진 作家의 恐怖 웹툰 <社變怪
[卜吉의 슬픔의 케이팝 파티] 너를 만난 건 어느 추운 겨울 날,
(원타임, 2000)
몇番 나가보지도 못하고 期間 終了된 헬스場 門을 겸연쩍게 다시 두드린다. ‘처음은 가볍게’라는 핑계로 運動 같지도 않은 運動을 마치고 市內 나가는 길. 버스에서 괜히 語學園 受講料 한番 檢索해본 뒤 마지막으로 書店 한 바퀴. 새해가 되면 年例行事처럼 도는 코스다. 올해는 헬스場보다 健康檢診을 먼저 받아봐야 할 것 같고, 語學院 代身 語學 앱을 찾아보는 等 해마다 디테일에 變動은 있지만 本質은 變함없다. 새해에는 달라져야겠다는 覺悟 折半. 或是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期待 折半으로 始作하는, 豫定된 배드 엔딩. 꾸준히 失敗에도 같은 失手를 積極的으로 反復하는 건 이거라도 해야 내가 덜 모자란 人間이 될 것 같은 不安 때문이다. 年末이 感謝와 反省에 젖어드는 過去 時制의 單語라면, 새해는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責任感의 未來 時制에 묶여 있다. 더 나은 人間이 되어야 한다는 强迫의 呪術. 오랜만에 書店을 찾았더니 베스트셀러 코너에 온통 쇼펜하우어다. ‘期待가 낮으면 失望도 적다’를
[송경원 編輯長] 배드 엔딩, 새드 엔딩, 해피 엔딩
議員은 任期가 있고 議會에서 ‘n分의 1’에 지나지 않는다. 韓國 以上으로 民主主義가 成熟한 나라들에 國會議員 召還制 따위는 없다(영국에 있다는 건 잘못 알려진 것이다). 끌어내리는 것이 아니라 잘 뽑는 것이 目標고, 選擧에서도 個別 議員이 아니라 議會 全體의 構成에 主眼點을 둔다. 投票로 議員 1名만 定하는 小選擧區制는 國家 體系가 未熟하던 時節 中央 權力과 地域 有力者가 結託한 産物이다. 美國과 英國은 거기서 멈췄지만 民主主義 水準이 더 높은 네덜란드, 스웨덴 等等은 100年 前쯤 大選擧區制와 比例代表制를 導入했다. “우리나라 政治人들은 資質이 떨어져서 選擧制度든 權力構造든 바꿔봤자 所用없다”고 主張하는 市民들이 있다. 構造를 洞察하지 않으면서 人物은 어떻게 가려낼지 궁금하다. 같은 俳優도 劇의 作品性에 따라 달리 보이는 法이다. 나는 只今 韓國 政治人들의 面面이 괜찮다고 斗頓하는 것이 아니다. 왜 나쁜 사람이 政治를 하게 되거나 멀쩡한 사람도 政治를 하면 망가지는가. 韓國은
[김수민의 디스토피아로부터] 對外祕
藝術과 文學 파트에서 맛과 料理 파트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부디 잘 付託드립니다. 部署 移動을 하게 되었다. 計劃된 移動이다. 그래도 데스크에 部署 移動 메일을 보내고 나니 덜컥 걱정부터 났다. 고기를 먹지 않는 菜食主義者가 맛과 料理에 關해 이야기한다니. 조금 우습다. 그래도 正確히는 맛과 料理를 다루는 雜誌에 對한 이야기를 主로 할 테니 상관없을지 모른다. 해보지도 않고 戰戰兢兢하기보다 一旦 해야 할 일부터 차근차근 處理하는 便이 나을지 모른다. 여러 部署에서 일하면서 깨달은 게 있다면 雜誌에서 가장 重要한 건 一旦 時間을 지키는 일이다. 그러니 只今 當場 해야 할 일은 걱정이 아니라 늦지 않게 出勤해야 한다. 새로운 部署로 門을 열고 들어간다. 맛과 料理 部署는 다른 部署와 마찬가지로 正四角形 形態의 房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거 말고는 모든 것이 다르다. 于先 個人 事務 空間이 없는 代身 巨大한 原形 테이블에서 모두가 勤務하고 있다. 唯一하게 分離된 個人 冊床
[김민성의 시네마 디스패치] 4-1. 맛과 料理 섹션: 部署 移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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