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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新聞

[사랑 나눌수록 커집니다] 癌鬪病하며 아르바이트로 生計 이어가는 다섯 食口

20餘 年 前, 釜山에 살았던 이선화(세라避나·50)씨는 週報에서 陰城 꽃동네 奉仕者 募集 消息을 보고 그 길로 音聲으로 向했다. 每週 釜山에서 音聲까지 오가며 奉仕하는 마음씨 고운 處女에게 꽃동네 職員이었던 민영기(요한 보스코·50)氏는 마음을 빼앗겼다. 꽃동네 奉仕者와 職員으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2007年 夫婦의 緣을 맺었다. 經濟的으로 넉넉한 살림은 아니었지만 熱心한 信仰生活은 이들의 家庭을 풍요롭게 만들기에 充分했다. 늘 祈禱하며 하느님과 함께한 父母의 模範은 子女들에게 傳해졌고, 17살, 15살, 12살 세 아이는 淸州敎區 德山本黨(主任 김광현 이냐시오 新婦)에서 複寫團長과 副團長, 團員으로 活動하며 本堂 信者들에게 龜鑑이 됐다. 세 아이를 키우며 閔氏 家庭에 늘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試鍊에 부딪칠 때마다 閔氏는 “主님께서 내게 이런 일을 주신 뜻이 있지 않을까”라며 熱心히 살고자 마음을 다잡았다. 하지만 그런 그가 무너지는 事件이 發生했다. 2021年 大腸癌 3期 診斷을 받은 것이다. 雪上加霜 閔氏의 手術이 끝나고 한시름 덜어낸 瞬間, 夫人 이선화氏가 乳房癌 3期 診斷을 받았다. 男便이 癌 診斷을 받은 지 3年 만이다. 男便이 아프기 始作하면서 가장 役割을 했던 李氏는 아파트 淸掃일을 하는 渦中에도 週日이면 除隊奉仕와 聖歌隊, 레지오 活動을 쉬지 않았다. 模範的으로 信仰生活을 했던 閔氏의 家庭을 잘 알고 있는 信者들은 十匙一飯 도움의 손길을 모았다. 抗癌治療를 받는 1年 동안 閔氏의 몸무게는 10kg以上 줄었다. 免疫力이 弱해져 예전과 같은 體力이 아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夫人이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지난달부터 아픈 몸을 이끌고 꽃동네에서 午後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손에 쥐어지는 月給은 130餘 萬 원에 不過하다. 아끼고 아껴 다섯 食口가 쓰는 한 달 生活費는 250萬 원 程度. 運動神經이 좋아 체대를 가고 싶어하는 첫째가 生前 처음 “學院에서 英語와 數學을 工夫하고 싶다”고 말을 꺼냈지만 “EBS를 보며 工夫하는 게 어떻겠냐”고 말해야 하는 父母의 心情은 찢어졌다. 지난 2月 抗癌治療에 들어간 李氏는 아직 여러 次例 더 治療받아야 한다. 賃貸아파트 貸出金도 600餘 萬 원이 남아있는 狀況에 閔氏의 아르바이트 收入만으로 다섯 家族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漠漠하다. 안타까운 狀況 속에서도 閔氏의 家族은 絶望보다는 하느님이 베풀어 준 恩寵에 對한 感謝함을 記憶했다. 閔氏는 “나와 집사람이 아프고 나서 작은 것이라도 나눠주려고 애써 주시는 本堂 信者분들의 따듯한 마음에 큰 慰勞를 얻었다“라며 “이렇게 가톨릭新聞에서도 저희를 도와주러 오신 것을 보면 하느님께서 우리 家族에게 보내 주신 뜻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夫婦가 健康해져서 그리스도의 香氣를 널리 퍼뜨리는 삶을 살도록 努力하겠다”고 덧붙였다. ◆ 誠金計座 - 預金主 (財)大邱舊天主敎會維持財團 우리銀行 1005-302-975334 國民銀行 612901-04-233394 農協 301-0192-4295-51 ◇ 募金期間: 2024年 6月 12日(水) ~ 7月 2日(火) ◇ 寄附金 領收證 問議 080-900-8090 가톨릭新聞社(寄附金 領收證은 入金者名으로 發行됩니다.)

2024-06-16

[사랑 나눌수록 커집니다] “平生 떠돌이…이젠 ‘故鄕’에 定着했으면”

2022年 러시아-우크라이나 戰爭이 始作됐다. 戰爭 中 러시아 爆擊機가 마리우폴에 떨어트린 爆彈은 高麗人 朴루슬란(67)氏 家族의 집을 直擊했다. 多幸히 집 밖에 있던 家族 모두 無事했지만, 衝擊波에 날아온 鐵門이 朴氏를 덮쳤다. 어깨가 골절되고 허리를 크게 다쳤다. 家族의 보금자리였던 집은 온데간데없고 부서진 建物 殘骸만 凄凉하게 남았다. 朴氏는 元來 우즈베키스탄에서 夫人 金발렌티나(60)氏, 딸 剝製냐(40)씨와 함께 살았다. 무슬림 極端主義者들의 差別과 抑壓을 받던 家族은 結局 20年 前인 1994年 집과 家具를 모두 버리고 우크라이나 마리우폴 外郭으로 쫓겨나듯 移住했다. 그곳에서 孫子 孫女까지 家族은 일곱 名으로 늘었다. 農事를 지어 家族을 먹여 살리며 한때 希望을 품고 살아갔지만, 慘酷한 戰爭은 家族의 日常을 앗아가 버렸다. 口號團體의 도움을 받으며 1年間 집도 없이 우크라이나 도네츠크 地域을 헤매던 朴氏 家族은 親戚의 도움으로 韓國行 飛行機票를 求하게 됐다. 治療받지 못해 惡化된 朴氏는 痛症 때문에 韓國行 飛行마저도 苦役이었다. 迂餘曲折 끝에 2023年 祖上들의 故鄕인 韓國 땅을 밟아 仁川廣域市 延壽區의 한 高麗人 마을에 자리 잡았다. 現在 家族의 生計는 딸 朴제냐氏가 책임지고 있다. 月收入 200萬 원 中 月貰로만 75萬 원이 나가고, 남은 돈으로 일곱 名을 먹여 살리고 있다. 移住民 福祉 自體도 不足한 데다 制度에 對한 情報도 不足해 이미 있는 支援도 못 받고 있었다. 네 名의 손주 中 韓國에 먼저 와 있던 高等學生 孫女는 檢定考試를 봤지만, 이제 커 갈 나머지 세 男妹를 키울 일도 漠漠하다. 朴氏는 爆擊으로 負傷當한 지 約 2年 만인 4月 韓國의 病院에서 허리 手術을 받았다. 當場 手術하지 않으면 平生 걷지 못할 수도 있었다. 手術費는 唯一하게 收入이 있는 朴제냐氏가 割賦로 내고 있어 이제는 家族들 食費마저도 保存하기 힘들어졌다. 게다가 어깨도 骨折돼 앞으로 追加 診斷을 받아야 한다. 그나마 몇몇 團體의 도움으로 生必品을 支援받고 있다. 朴氏 家族은 어딜 가도 ‘이방인’이었다. 夫人 金발렌티나氏는 “우즈베키스탄에서 무슬림 極端主義者들에게는 勿論이고 우크라이나에서도 人種差別을 받았다”며 “그래도 韓國에서 우리를 外面하지 않은 분들 德에 病院도 가고 治療도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朴氏는 “우리의 故鄕은 ‘韓國’이라고 배웠는데, 힘든 狀況에서도 祖父母님의 故鄕에 온 것만은 幸福하다”며 微笑 지었다. 이어 “負傷을 回復해 몸이 健康해지면 어떤 일이든지 始作해 家族에 보탬이 되고 싶다”고 다짐했다. 까리따스移住民文化센터 김은덕(마티아) 修女는 “러시아에 依해 强制로 移住당한 우리 民族의 後孫이 他地에서 戰爭으로 또 苦痛받은 모습이 너무 안타깝다”면서 “어깨 負傷도 남아 있어 懇切한 마음으로 도움을 要請하게 됐다”고 傳했다. ◆ 誠金計座 - 預金主 (財)大邱舊天主敎會維持財團 우리銀行 1005-302-975334 國民銀行 612901-04-233394 農協 301-0192-4295-51 ◇ 募金期間: 2024年 5月 22日(水) ~ 6月 11日(火) ◇ 寄附金 領收證 問議 080-900-8090 가톨릭新聞社(寄附金 領收證은 入金者名으로 發行됩니다.)

2024-05-26

[사랑 나눌수록 커집니다] “手術하면 살 수 있대요…이 아이 살려주세요”

카자흐스탄에서 온 올자스(33)와 알리마(28) 夫婦는 한창 태어날 아기에 對한 期待에 부풀어 있던 妊娠 23週次, 靑天霹靂 같은 消息을 들었다. 産前 檢査 結果 아기의 心臟에 3.6mm의 구멍이 있다는 것이다. 이름도 生疏한 아기의 病名, 心室中隔缺損症은 左心室과 右心室 사이의 中間 壁에 구멍이 있는 疾患이다. 엄마 알리馬氏는 아기 인나야가 처음 病을 診斷받았을 때부터 治癒의 奇跡이 일어나길 바라고 또 바랐다. 하지만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手術이 이어졌다. 올해 2月 3.2kg으로 태어난 인나야는 靑色症도 觀察돼 呼吸을 돕는 手術을 받았다. 알리馬氏는 “아기를 처음 봤을 때 우는 아기를 보고 그저 괴로워할 수밖에 없었다”고 힘들게 말했다. 3.6mm인 心臟의 구멍 크기는 心室中隔缺損이 큰 境遇라 바로 校訂 等의 手術을 하면 心臟에 無理가 갈 수 있었기에, 아기는 태어난 지 보름 만에 心臟의 負擔을 緩和 시켜주는 肺動脈밴딩 手術을 먼저 받았다. 6個月經이 되면 2次 手術인 單心室 矯正 豫定이며, 萬 3세경에는 3次 手術이 必要한 狀況이다. 알리馬氏는 “이 複雜한 手術들을 아기가 견뎌낼 수 있을지도 問題지만, 비자가 없기 때문에 비싼 手術費 걱정으로도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이들을 支援하고 있는 光州移住民支援센터의 虛 발렌티나 修女(미리내 聖母 聖心 修女會)는 “이렇게 어려운 境遇 안타깝게도 所重한 生命을 抛棄하려는 사람들도 있다”며 “하지만 이 夫婦는 아기를 끝까지 책임지려는 모습을 보여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엄마 알리馬氏는 2017年, 아빠 올자스氏는 2018年에 카자흐스탄에서 돈을 벌러 旅行 비자로 韓國에 왔다. 외롭고 힘든 時間, 서로를 만나 依支하며 事實婚 關係로 지내다가 올해 아기를 낳게 됐다. 알리馬氏는 妊娠 後 잦은 病院 檢事로 經濟的인 活動을 中斷해야 했고, 올자스氏는 工事 現場에서 非定期的인 日傭職으로 하루 8~10萬 원 程度씩 月 200餘萬 원을 벌고 있다. 多世帶 住宅 원룸 月貰에 公課金, 生必品과 本國 送金이 固定 支出되기에 아기가 退院 時 告知받은 8800萬 원이 넘는 病院費는 엄두도 못 내고 있었다. 多幸히 光州移住民支援센터를 만나 센터에서 모은 돈과 知人의 도움으로 어느 程度 支拂해 病院費는 8000餘 萬 원이 남은 狀態다. 아기가 6個月이 됐을 때 手術을 받으려면 健康을 維持하고 體重을 늘려야 하는데, 病의 特性上 아기 體重이 잘 늘지 않는다. 숨을 헐떡이며 母乳를 잘 먹지도 못하는 아기를 볼 때면 엄마 알리馬氏는 가슴이 미어진다. 病 때문에 呼吸器 感染, 肺炎 等의 合倂症이 잦아서 아기는 退院 後에도 病院 入院과 退院을 다시 해야 했다. 虛 修女는 “아기가 熱이 안 떨어지고 있을 때 아기 엄마가 앉아 있지도 못하고 많이 힘들어 보였다”고 傳했다. 올봄엔 아기와 家族이 함께 벚꽃놀이度 가는 等 어려움 속에서도 和睦한 家庭을 이루려 努力하고 있다는 올자스氏 家族. 엄마 알리馬氏는 “딸의 빠른 回復을 위해 每日 神께 企圖한다”며 希望을 놓지 않았다. 虛 修女는 “이제 갓 태어난 아기가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면 正말 感謝하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 誠金 計座(預金主 (財)大邱舊天主敎會維持財團) 우리銀行 1005-302-975334 國民銀行 612901-04-233394 農協 301-0192-4295-51 ◇ 募金期間: 2024年 5月 1日(水) ~ 5月 21日(火) ◇ 寄附金 領收證 問議 080-900-8090 가톨릭新聞社(寄附金 領收證은 入金者名으로 發行됩니다.)

2024-05-05

[사랑 나눌수록 커집니다] 雙둥이 함께 重患者室…무너진 엄마 마음

이제 태어난 지 한 달도 안 된 雙둥이가 新生兒 重患者室에서 醫療 裝置들을 몸에 붙이고 治療 받는 모습을 보는 엄마 응웬티흐엉(36)氏의 마음은 무너져 내리는 것 같다. 베트남에서 男便을 따라 韓國에 들어와 어렵게 妊娠한 雙둥이가 지난 3月 7日 低體重 未熟兒로 태어나 病室을 나가면 生命을 維持할 수 없는 狀況이다. 到底히 堪當할 수 없는 治療費를 손에 받아 든 엄마는 덜컥 怯부터 나 雙둥이를 집으로 데려가겠다고 했지만, 病院에서는 아기들 스스로 살아갈 수 있을 때까지는 病院 治療를 받아야 한다고 退院을 許諾하지 않았다. 흐엉씨를 돕고 있는 光州移住民志願센터 허명숙 修女(발렌티나·미리내 聖母 聖心 修女會)는 雙둥이를 只今 집으로 데려가면 生命이 危險하다는 說明을 反復하면서 겨우 흐엉씨를 진정시켰다. 하지만 허명숙 修女도 한 달 入院에 7000萬 원까지 豫想되는 病院費를 마련할 길이 없어 애만 태우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흐엉씨는 21살이던 2009年 베트남에서 男便 荒唐興(41)氏와 結婚할 때만 해도 幸福한 家庭을 꿈꿨다. 傳統的인 베트남 情緖에서 손주를 願하는 媤父母님의 所望을 이뤄 드리고 싶었지만 願하는 아기가 생기지 않았다. 그 사이 男便은 가난한 家族을 扶養해야 했기 때문에 2011年에 韓國에 入國해 全南 地域에서 主로 日傭職으로 일하며 돈을 벌어 最小限의 生活費만 남기고 베트남에 보냈다. 男便이 보내주는 돈을 베트남에서 받아 조금씩이라도 貯蓄하던 흐엉씨는 2015年 男便이 있는 韓國으로 왔다. 아기를 가져야 한다는 마음이 그만큼 懇切했다. 그러나 아기는 繼續 생기지 않았고 2020年에야 어렵사리 難妊을 克服하고 첫딸 황안니엔을 낳았다. 첫딸은 6個月 뒤 養育費를 줄이려고 베트남에 있는 媤父母님께 보냈다. 그 後 3年餘가 지나 雙둥이를 妊娠했지만, 잦은 祖山期로 木浦에 있는 産婦人科에 入院해 2週 동안 治療를 받던 中 3月 7日 빨리 大學病院으로 가야 한다는 醫師 所見을 들었다. 病院費 問題로 떨어지지 않는 발을 이끌고 전남대학교病院으로 갔다가 入院室이 없어 隣近 다른 大學病院으로 移動해 雙둥이를 出産했다. 1kg이 겨우 넘는 未熟兒로 태어난 아기들은 新生兒 呼吸困難症候群에 低血糖까지 同伴돼 태어나자마자 重患者室에서 集中的인 治療를 받는 中이다. 日傭職으로 일하는 男便 荒唐興氏는 일거리가 恒常 있는 것이 아니다 보니 月貰와 基本 生活費, 公課金, 베트남 家族에게 보내는 扶養費를 겨우겨우 負擔해 왔다. 그러던 中 健康保險 適用을 못 받는 흐엉씨에게 祖山期가 있을 때마다 큰 病院費를 支出해야 했다. 갑작스런 出産 當時 發生한 1000餘 萬 원의 病院費는 急한 대로 여기저기서 빌려서 支給했다. 흐엉씨 夫婦는 그토록 願하던 아기를 얻었다는 기쁨은 暫時도 느끼지 못한 채 堪當이 不可能한 雙둥이 治療費 7000餘 萬 원의 무게에 짓눌린 채 눈물만 흘리고 있다. 허명숙 修女도 떨리는 목소리로 “하느님께서 주신 生命은 差別 없이 貴하다”며 “雙둥이가 無事히 治療받을 수 있도록 많은 분들께서 도움 주시기를 懇曲히 付託드린다”고 말했다. ◆ 誠金 計座 우리銀行 1005-302-975334 國民銀行 612901-04-233394 農協 301-0192-4295-51 預金主 (財)大邱舊天主敎會維持財團 ◇ 募金期間: 2024年 3月 27日(水) ~ 4月 16日(火) ◇ 寄附金 領收證 問議 080-900-8090 가톨릭新聞社(寄附金 領收證은 入金者名으로 發行됩니다.)

2024-03-31

[사랑 나눌수록 커집니다] 糖尿合倂症으로 왼쪽 다리 切斷한 이종천氏

이종천氏는 甚한 糖尿合倂症으로 왼쪽 다리가 切斷된 채 家族들과도 連絡이 끊겨 “죽기 前에 家族들 얼굴 한番 보는 것이 所願”이라고 말한다. 모든 家族과 親知들로부터 連絡이 끊기고 甚한 糖尿合倂症으로 한 쪽 다리가 切斷된 채 서울 영등포의 한 療養病院에 누워 있는 이종천(70)氏는 焦點이 흐려진 눈으로 天障만을 바라보고 있다. 走馬燈처럼 지나가는 70年 歲月이 野俗하지만 죽기 前에 家族들 얼굴을 한 番이라도 보고 싶다는 마음이 懇切하다. 하지만 只今은 혼자서는 擧動조차 할 수 없고 손에는 돈 한푼 쥔 것이 없다. 그래서인지 家族과 親知, 知人들이 自身을 避하는 것 같아 野俗하다. 李氏는 1954年 서울에서 5男妹 中 막내로 태어나 5살 무렵 父母님과 釜山으로 移徙했다. 釜山에서 初等學校와 中學校를 다니면서 學級 會長을 맡기도 하고 成跡도 優秀했지만 집안 形便이 어려워 高等學校 進學을 抛棄했다. 이때부터 日傭職으로 일하며 家族들 生計를 도왔다. 軍服務를 마친 뒤 中東에 가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1977年부터 5年間 中東 建設現場에서 일했다. 中東에서 번 돈은 最小限의 生計費만 남기고 모두 家族에게 보냈다. 自身은 힘들게 生活해도 家族은 조금이라도 便하게 살게 하고 싶었다. 中東에 다녀온 後에는 1983年 돈을 벌 생각으로 美國으로 移住한 뒤 택시 運轉士, 샌드위치 장사 等을 하며 돈을 모아 韓國에 있는 家族에게 보냈다. 1988年에는 美國 市民權을 取得하고 當時 다니던 敎會 牧會者 紹介로 韓國人 女性을 만나 結婚해 子女를 하나 낳았다. 그러나 性格 差異로 2000年 離婚 後 전 配偶者가 子女를 養育하게 되면서 關係가 斷絶됐다. 以後 挫折感으로 憂鬱症을 앓았다. 韓國에 있는 家族들과는 가끔 連絡을 주고 받았지만 連絡이 끊어졌고, 4年 前부터는 귀가 잘 들리지 않아 택시 運轉도 할 수 없는 形便이 됐다. 輸入이 거의 없는 狀況에서 겨우 하루하루 生活하느라 持病인 糖尿病 管理를 하지 못한 李氏는 2022年 糖尿合倂症이 惡化돼 왼쪽 엄지발가락을 切斷해야 했다. 아무런 希望도 없이 죽는 게 낫다는 생각마저 들었지만 죽기 前에 家族들 얼굴을 보고 싶다는 그리움이 커져 2023年 10月 觀光비자로 韓國에 왔다. 手中에 있던 200萬 원으로 歸國해 釜山의 허름한 모텔에 居住하며 家族과 親知들을 찾았지만 全혀 連絡이 닿지 않았다. 모텔 主人 할머니가 李氏를 딱하게 여겨 먹을 것을 챙겨주던 中 房 안에서 惡臭가 나 確認해 보니 李氏의 왼쪽 발이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以後 李氏는 釜山백병원에서 왼쪽 다리를 切斷했다. 다리 切斷과 家族과의 連絡 杜絶이 겹쳐 絶望과 憂鬱感이 날로 커졌다. 아무 데서도 받아주지 않던 李氏는 釜山백병원의 도움으로 서울 聲價福祉病院에 全員했지만 追加 治療가 必要하다는 判斷에 따라 서울醫療院으로 다시 電源했다. 該當 病院들에서는 最大限 福祉惠澤을 附與하려 努力했고 現在는 2月 14日부터 영등포의 한 療養病院에서 “診療費 負擔이 있긴 하지만 오갈 데 없는 患者를 우리가 맡겠다”며 保護하고 있다. 이종천氏는 “내가 젊었을 때 生計를 도왔던 家族들에게 外面받고 있는 것이 마음 아프지만 健康을 回復해 죽기 前에 家族들 얼굴을 꼭 보고 싶다”고 말했다. ※誠金計座※ 우리銀行 1005-302-975334 國民銀行 612901-04-233394 農協 301-0192-4295-51 預金主 (財)大邱舊天主敎會維持財團 募金期間: 2024年 2月 21日(水) ~ 3月 12日(火) 寄附金 領收證 問議 080-900-8090 가톨릭新聞社 ※寄附金 領收證은 入金者名으로 發行됩니다.

2024-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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