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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新聞

내 꿈은 農人(聾人) 疏通의 다리이자 ‘해피바이러스’

“件淸人들과 疏通이 어려운 農人들에게 疏通의 仲裁者뿐 아니라 웃음을 傳播하는 ‘해피바이러스’가 되어주는 것이 꿈이죠.” 弄(聾)通譯士 정원철(레오·45·서울 개봉동本堂)氏는 들리지 않고 말할 수 없는 限界를 克服하고 專門 레크리에이션 指導士로 20年째 活動하고 있다. 件淸人들과 아무 差異 없이 受講하고 試驗을 치러 레크리에이션 指導士 1級 資格을 따낸 鄭氏는 지난 2日 韓國가톨릭 聾啞人의 날 行事에서처럼, 敎會 안팎으로 全國 農人 關聯 行事와 모임에서 農人들에게 즐거움을 膳賜하고 있다. “只今까지 農人을 위한 專門 레크리에이션 指導士가 없었기 때문”에 鄭氏는 꿈을 꾸게 됐다. 實際 農人이면서 資格證을 지닌 사람이 極히 드물었고, 件淸人 指導社들이 펼치는 레크리에이션은 農人들과의 웃음 코드에 맞지 않아 그다지 呼應을 얻지 못했다. 視覺的 言語인 數語를 母語로 해 눈에 보이는 情報에 크게 依存하는 農人들의 特性을 件淸人들은 充分히 헤아리기 어렵다. 鄭氏는 “이처럼 웃을 機會에서 疏外된 農人들이 眞情으로 共感하고 웃을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주고 싶다는 熱望이 컸다”고 밝혔다. “文盲이거나 標準 數語를 驅使하지 못하는 等 더 큰 어려움을 겪는 農人들의 말을 알아듣고 標準 手語로 바꿔 手語通譯士에게 傳達하는 弄通譯士의 ‘仲介者’ 役割과 相通한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러한 眞心과 달리 現實은 碌碌지 않았다. 當時 레크리에이션 關聯 資料는 件淸人 中心으로 마련돼 있었고, 韓國語를 第2言語로 하는 農人의 높지 않은 文解力은 學習에 발목을 잡았다. “農人에 맞는 콘텐츠와 게임을 硏究할 때도 혼자서 努力할 수밖에 없었다”는 鄭氏의 回想대로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내게 주신 性格과 才能을 다른 農人들과 함께 共有하고 싶다”는 마음이 克服의 힘이 됐다. “元來 위트를 즐기고 유머러스한 性格이에요. 그러한 탈렌트도 奉獻하고 農人들만의 文化와 方式에 맞게 나름대로 硏究한 걸 바탕으로 레크리에이션을 進行하니까 다들 ‘너무 속 시원하고 좋다’고 反應해 주시더라고요. 하느님께서 저를 이렇게 쓰시려고 ‘재미있는 사람’으로 빚으셨나 싶어요.” 高齡이 無色하게 앞으로 뛰어나와 즐겁게 參與하던 어르신들, 知的障礙까지 있음에도 프로그램을 熱心히 따라와 주던 젊은 親舊들…. “憂鬱했던 雰圍氣가 레크리에이션이 始作되자 신나게 흔드는 몸動作과 歡呼로 밝아지는 걸 보면 나도 生命의 기운을 함께 느끼고 힘을 얻는다”고 鄭氏는 告白했다. 이렇듯 充滿한 보람이 주어지기에 그만의 노하우도 쌓였다. 觀衆이 프로그램을 乾燥하게 느끼지 않도록 제스처와 表情에 익살을 싣는 法, 어떤 膳物을 準備해야 쉽게 興味를 끌 수 있는지 等 件淸人 指導社는 알 수 없는 獨自的 要領이 自然스레 터득됐다. “레크리에이션은 聖堂에서 하느님, 敎友들과 對話하며 무거운 마음을 暫時 내려놓는 信仰生活과도 같다”는 鄭氏. 그는 “레크리에이션의 眞正한 目的은 우리가 함께 웃음으로써 한 共同體에 있음을 느끼는 것”이라며 “우리 社會와 敎會도 레크리에이션처럼 다름과 差別을 딛고 함께 웃으며 連結感을 느끼는 터전이 되길” 希望했다. “非障礙人 中에도 여러 形態의 아픔을 겪는 사람들이 있을 거예요. 差別 없이 서로 어울리며 함께 ‘하하’하고 웃는 共同體를 이뤄 살았으면 좋겠어요.”

2024-06-16

“農人들度 敎會에서 能動的 主體로 參與하길”

農人 私製 서울大敎區 박민서(베네딕토) 神父는 5月 23日 시카고 가톨릭 聯合神學大學院에서 農人 敎會에 對한 博士論文을 쓰고 實踐神學 博士學位를 받았다. 世界 가톨릭 農人 司祭 中 처음으로 實踐神學 博士學位를 받은 것에 對해 朴 神父는 “農人 信者들도 神學者가 될 수 있다는 希望을 준 것이 기쁘다”고 感激을 드러냈다. 2021年부터 美國 워싱턴大敎區에서 聽覺障礙人 司牧을 하게 된 朴 神父는 農人 司祭로서 農人 信者들을 위한 神學的 硏究를 勸誘한 한 敎授의 뜻대로 그해 司牧과 學業을 竝行했다. “敎會가 農人들에게 보다 열린 곳이 되길” 希望하는 마음을 담아 쓴 論文 題目은 ‘에파타! 侍奴달리타스에 關한 시노드에 應答하는 農人 敎會’(Ephphatha! Deaf Church Responds to Synod on Synodality)다. ‘에파타’는 ‘열려라’라는 뜻이다. 淸人 中心 環境 어려움 속에도 ‘열린 敎會’ 꿈꾸며 刻苦의 努力 같은 하느님 子女로 함께했으면 淸人 中心的인 學業 環境에서 朴 神父는 刻苦의 努力을 기울여야 했다. 畫像對話房에서 手語 通譯士 2名의 도움으로 講義를 들어야 했다. 數語를 主로 쓰는 農人으로서 淸人의 言語로 論文을 쓰는 것도 매우 어려웠다. 하지만 “農人들이 能動的으로 參與할 수 있는 敎會를 꿈꾸기에” 朴 神父는 熱情을 잃지 않았다. “自身의 學問的 硏究가, 農人들이 淸人과 아무 差異 없이 參與할 수 있는 敎會를 가꾸는 데 이바지할 수 있다면 기꺼이 하느님의 道具가 되겠다”는 順命의 態度였다. “數語를 모르는 淸人을 農人들이 障礙人 取扱하지 않듯, 農人들과 淸人들도 서로 手語로 對話하면 할수록 서로 障礙人으로 보지 않을 것입니다.” 많은 農人 神學者와 農人學者가 農人을 數語를 母語로 쓰는 言語的 少數集團으로 봐야 한다고 主張하듯, 朴 神父도 “農人들이 敎會에서 主體로 함께하길” 바란다. 그는 “農人들이 手語通譯이 있는 淸人 本堂보다 能動的으로 前例에 參與하고 信心 活動, 敎理敎育을 스스로 펼치는 農人 本堂을 選好한다”는 것을 들며 “農人을 障礙人이자 司牧的 돌봄 對象으로만 보는 敎會의 視線도 언젠가 變化할 것”이라고 期待했다. “聖公會와 監理敎 農人 私製·牧會者가 農人敎會에 對한 博士論文을 直接 쓴 적은 있지만, 가톨릭 司祭가 農人敎會에 對한 博士論文을 쓴 것은 最初이기에 더욱 感動이 뜨겁다”는 朴 神父. 그는 끝으로 “農人과 淸人의 經驗은 많이 다르다”며 “農人들度 淸人들과 同等한 하느님의 子女로서 自己 생각과 經驗을 共有하면서 敎會에 能動的 參與者가 될 수 있길 바란다”고 傳했다.

2024-06-16

宗敎 뛰어넘어 활짝 피어난 예수의 ‘작은 꽃들’

“宗敎를 超越해 특별한 賞을 주신 財團法人 雪嶽·萬海思想實踐宣揚會(理事長 권영민 敎授)에 깊은 感謝를 드립니다. 예수의 消化 修女會 創設者인 故(故) 金俊昊(레오) 先生과 故(故) 조철현(비오) 몬시뇰께서 오래前에 착한 사마리아人의 精神으로 뿌린 씨앗들이 이제 꽃 핀 것이 아닌가 싶어 경이롭기만 합니다.” 雪嶽 霧散 大宗師 조오현 是認(1932年~2018年)의 뜻을 기리는 財團法人 雪嶽·萬海思想實踐宣揚會는 5月 31日 그랜드 하얏트 서울 호텔 그랜드 볼룸에서 第1回 霧散文化大賞 施賞式을 열었다. 受賞者는 社會文化 部門 光州大敎區 예수의 消化 修女會(以下 修女會), 藝術 部門 박찬욱 監督, 文學 部門 문태준 詩人이다. 受賞者 中 修女會가 特히 눈에 띄었다. 霧散文化大賞은 佛敎 曹溪宗 團體에서 制定한 賞이기 때문이다. 他 宗敎 團體에서 賞을 받은 所感을 修女會 總院長 이영희 엠마누엘 修女는 차분히 答했다. “修女會 創設者 고(故) 金俊昊 先生이 오래前부터 佛敎, 儒敎, 改新敎 等 宗敎 間의 對話를 꾸준히 해 오셨기에 저희에겐 친숙해요.” 1956年 共同體 生活을 始作으로 1999年 設立된 修女會는 現在 15名의 修女와 120名의 職員이 社會福祉法人 消化姊妹院(代表理事 조영대 프란치스코 神父)을 통해 240餘 名의 障礙 家族을 돌보고 있다. 消化姊妹院은 精神 障礙인 療養 施設 消化누리, 發達障礙人 居住 施設 消化天使의집·소화성가정·소화진달네집, 障礙人 職業 再活施設 消化아람일터, 精神 障礙인 社會 復歸 施設 消化햇살둥지 等을 運營하고 있다. 障礙人 自立 支援을 하고 있지만 症狀이 再發하거나 就業에 失敗하고, 不適應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成功的인 事例도 드물지 않다. 이 修女는 “어떤 분은 37年 前 甚한 憂鬱症으로 入所했다가 好轉돼 職場生活을 오래 하다 5年 前 自立했다”면서 “그림 大會에 入賞한 後 싱가포르에서 展示會도 열고 最近 커피 바리스타 資格證과 運轉免許도 取得했으며 산티아고 巡禮길度 다녀왔다”고 希望을 담아 말했다. 現在까지 障礙人 80餘 名이 就業해 自立했다. 이 修女는 적지 않은 賞金인 1億 원을 “社會福祉 惠澤마저 받기 어려운, 疏外되고 絶望하는 분들이 남은 삶을 幸福하게 살다가 主님께 돌아갈 수 있게 하는 데 쓰이기를 祈禱한다”고 말했다.

2024-06-09

“外國人 船員 ‘人身賣買’ 被害 深刻, 人格 主體로 尊重해야”

“프란치스코 敎皇님께서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이들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장 작은 이들에게 해 준 것이 나에게 해 준 것’이라고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食卓에 올려지는 食單에 勞動力 搾取나 人權 蹂躪, 外國人 勞動者들의 피와 땀이 들어 있지 않는지 생각해 볼 때입니다.” 仁川敎區 海洋司牧部 擔當 김현우(바오로) 神父는 5月 13~17日 臺灣 타이중敎區에서 열린 ‘海洋司牧 國際硏修’에 參加해 5月 15日 타이중 에버그린호텔 콘퍼런스룸에서 ‘韓國의 漁船員 現況’을 發表했다. 臺灣主敎會議와 臺灣 勞動部가 共同으로 進行한 海洋司牧 國際硏修에는 全 世界 各國에서 海洋司牧에 從事하는 司祭 120餘 名이 參席해 김현우 神父의 發表에 큰 關心을 보였다. 金 神父는 예수님도 한때 異邦人이었고 예수님의 弟子 中에도 漁夫들이 있었지만 韓國人들은 韓國에서 일하는 外國人 漁船員들이 얼마나 힘든 與件에서 일하는지 關心이 不足하다는 點을 指摘했다. “漁船員은 힘든 職業群에 屬해 있어 韓國의 젊은이들은 바다에서 배를 타고 일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바다에는 移住 勞動者들이 늘고 있지만 이런 事實을 아는 韓國人은 많지 않습니다. 韓國人 船主나 船長 밑에서 일하는 外國人 漁船員들이 人間的이고 人格的인 待遇를 받고 있는지 關心을 기울여야 합니다.” 金 神父 發表 資料에 依하면 2021年 基準, 韓國 遠洋漁船에서 일하는 漁船員 5475名 가운데 韓國人은 1151名, 外國人은 4324名으로 外國人 漁船員 比率이 79%나 된다. 外國人 漁船員들은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 等에서 故國에서보다 經濟的으로 잘살고 싶은 생각에서 韓國에 온 勞動者들이다. 金 神父는 韓國 船主나 船長에 雇用돼 있는 移住 漁船員들이 船舶 內에서 받는 人權侵害 狀況을 ‘人身賣買’로 指稱했다. “제 發表의 主要 主題가 ‘人身賣買’였습니다. 人身賣買라고 하면 後進國에서 사람을 拉致해 사고파는 行爲를 먼저 떠올리지만, 美國 國務部에서 每年 發行하는 ‘人身賣買 報告書’(Human Trafficking Report)를 보면 人身賣買의 國際的인 槪念을 알 수 있습니다. ‘바다 위의 監獄’이 될 수도 있는 배에서 旅券과 通帳을 押守당하고, 인터넷 使用 禁止와 言語 및 身體的 暴行, 離脫防止 名目의 月給 未支給을 當하는 外國人 漁船員들은 人身賣買의 被害者입니다. 그럼에도 加害者에 對한 法律的 處罰은 微微합니다.” 美國 國務部 ‘人身賣買 報告書’는 本來 1그룹에 屬해 있던 韓國을 2022年에 2그룹으로 떨어뜨렸다. 全體 1~3그룹 中 1그룹의 人權 水準이 가장 높고 3그룹이 가장 낮다. “外國人 漁船員은 이제 國家的 次元에서 必要한 勞動力인데도 그들의 人權은 法의 테두리에서 充分한 保護를 못 받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收益과 韓國 消費者를 위해 勞動하고 있는 外國人 漁船員들이 우리보다 덜 所重한 外國人이 아니라 人權을 지닌 사람으로 우리와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事實을 仁川敎區 海洋史木部가 韓國 信者들에게 꾸준히 알리겠습니다.” 外國人 漁船員들을 向한 사랑이 각별한 김현우 神父는 最近 유튜브 收益金과 講師料를 合한 4800萬 원으로 미니버스를 購入해 外國人 漁船員들이 空港에 往來하는 等의 用途로 使用하기로 했다.

2024-06-02

愉快한 나눔 文化 造成 앞장, 韓國가위바위보協會 壯勇 會長

“無條件 돈만 내면 된다는 式의 寄附는 나눔의 本質을 잃었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은 ‘나누는 사람에게도 즐거운 일’이어야 하지 않겠어요?” 放送人 壯勇(스테파노·仁川 서운洞本堂)氏는 이렇듯 “나누는 사람도 웃을 수 있는 愉快한 寄附 文化를 造成하고자” 2020年 韓國가위바위보協會(以下 協會)를 세웠다. “놀이 文化와 합쳐진 寄附 文化”를 强調한 張 會長은 協會 設立 趣旨에 對해 “사람들이 社會的 視線, 道德的 義務感에 쫓기듯 돈을 내는 데만 汲汲하지 말고, 나누는 즐거움을 充分히 滿喫하길 바랄 따름”이라고 밝혔다. 放送人으로서 웃음과 재미를 傳한 지 40餘 年, 張 會長은 이제 나눔이 膳賜하는 本質的 웃음을 일깨워 주는 일에 나섰다. 지난 팬데믹으로 因해 計劃이 두 次例 霧散되며 本格的 協會 活動은 아직이지만, 張 會長은 會社 워크숍이나 體育大會 等 各種 行事에서 進行者를 맡아 가위바위보 大會를 열며 始動을 걸고 있다. “參加者 한 사람 黨 1萬 원씩 내고 다 같이 가위바위보 試合을 펼칩니다. 最終 賞金 1萬 원을 除外한 募金 全額은 最終 優勝者의 이름으로 도움이 必要한 곳에 寄附한다는 發想이에요.” 여러 재미있는 놀이 中 가위바위보를 擇한 理由는 “누구에게나 쉽고 재미있기 때문”이다. “規則이 明確하고, 財閥이든 天下壯士든 差別 없이 깔끔한 勝負가 나는 公平함”도 魅力이기에 15年 前부터 가위바위보를 웃음 아이템으로 硏究했다. 입 模樣이 바지락을 닮았다는 데서 着眼한 ‘바지락 가위바위보’도 張 會長이 開發했다. 바지락처럼 입을 다물면 ‘주먹’, 입을 벌리면 ‘褓자기’, 혀를 보이면 ‘가위’가 된다. 손이 없는 사람도 함께할 수 있고, 相對의 익살맞은 表情을 보자마자 直觀的으로 터지는 웃음은 句句節節 說明을 必要로 하지 않기에 더더욱 普遍的 재미를 膳賜한다. 寄附가 왜 꼭 즐거워야 할까. 張 會長은 “同情이 아닌 나눔이 寄附의 本質이기 때문”이라고 答했다. “누군가가 불쌍하다며 善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當身을 도움으로써 어울려 재미있게 놀고 웃게 돼 고맙다’는 眞心이 核心”이라고 力說했다. 사람들도 가위바위보 競技를 통해 寄附의 愉快한 本質에 다가간다. 最終 賞金을 탔을 때 內心 느껴지는 人間的 안타까움보다 보람이 더 큼을 體驗하는 것이다. “돈을 차지하는 一時的 僥倖이 아니라, 사람들과 함께 재밌게 놀던 追憶에 集中하게 되기 때문일 거예요. ‘그 돈이 더 切實한 누군가에게 단비처럼 내렸으리라고 생각하니 웃음이 더 오래 갈 것 같다’고 말한 사람도 있었어요.” “누구나 하느님의 本質을 닮아 나눔 自體에서 기쁨을 느낀다”는 張 會長. 그는 “單純한 재미를 傳하는 放送과 달리 餘韻이 오래 가는 웃음을 傳하는 活動에 새로운 보람을 느낀다”면서 “웃음을 잃은 모두를 웃게 하는 協會 活動을 應援하고 지켜봐 달라”고 傳했다. “協會 次元에서 첫 가위바위보 大會를 열게 되면 먼저 未婚母들을 도와주고 싶어요. 그 自體만으로 웃음이어야 할 孕胎를 苦痛처럼 떠안은 그들에게 웃음을 되찾아 주고 싶습니다.” 壯勇 회장은 “義務感이 아닌 즐거움이 原動力이 되는 愉快한 寄附 文化를 꿈꾸며 韓國가위바위보協會를 세웠다”면서 “사람들이 놀이와 어우러진 寄附 活動을 통해 나눔의 즐거움에 눈뜨길 바란다”고 말한다. 寫眞 박주헌 記者

2024-05-26

“診療室 밖 볼 줄 아는 醫師 되고 싶습니다”

가톨릭관동대學校 國際聖母病院에서 癡呆 患者를 診療하는 神經과 醫師 구본대 敎授(마태오·서울 개포동本堂)는 3月 9日 第23回 韓美隨筆文學賞에서 地域社會 癡呆 돌봄터에서 患者들과 함께하며 느낀 感動을 담은 隨筆 ‘우리들의 블루스’를 出品해 奬勵賞을 받았다. 韓美隨筆文學賞은 患者와 醫師의 敦篤한 關係와 信賴 回復을 趣旨로 한다. 隨筆을 쓴 契機에 對해 舊 敎授는 “癡呆 돌봄터에서의 經驗을 바탕으로, 診療室 밖에서 마주한 患者들에게서 받은 比較할 수 없는 感動을 나누고 싶었다”고 밝혔다. 病院 診療와 講義로도 빠듯한 스케줄이지만, 舊 敎授는 每週 仁川 地域 癡呆 돌봄터와 癡呆安心센터 4곳에서 癡呆 患者와 保護者 面談, 診療 等 活動을 하고 있다. 診療室에서의 關係에만 充實할 수 있음에도 患者들과 診療室 너머의 同伴을 펼치는 理由는 무엇일까. 舊 敎授는 “患者이기 前에 사람이라는 側面에서 바라보게 되는 것이 가장 큰 差異”라고 力說했다. “30年 前 醫師가 된 後 늘 患者를 診療하는 現場에만 있어야 했어요. 지난 3年間 癡呆 돌봄터에서의 經驗은 癡呆라는 疾病을 診療室에서와는 다른 觀點에서 돌아보게 했습니다.” 舊 敎授는 “診療室에서는 患者를 診療 對象으로만 바라보게 된다”고 말했다. 여러 患者를 봐야 해 初陳 境遇 15~20分, 再診은 5分이라는 아주 짧은 時間 안에 診療가 이뤄진다. 또 診療室에서는 原因 疾患을 鑑別하기 위한 檢査를 施行하고 藥劑를 處方하는 데 重點을 두게 된다. 症狀에 對해 患者나 保護者의 呼訴가 있으면 行動 調節 藥劑를 追加해서 處方하는 程度다. 患者들 또한 이야기를 꺼내는 일이 없다. “돌봄터에서의 經驗은 患者에게서 마음과 마음으로 이어진 어르신의 모습을 바라보게끔 했다”고 舊 敎授는 밝혔다. 노래 부르기 等 돌봄터 活動 三昧境 中에도 舊 敎授가 나타나면 먼저 나와서 반갑게 손잡고 人事하는 어르신도 있다. 舊 敎授는 “잠깐 머물다 가는데도 늘 歡待하는 어르신들 眞心은 診療室에서는 볼 수 없는 뭉클한 溫氣이자 醫師의 보람”이라고 傳했다. “檢事와 處方 爲主 診療의 限界를 克服할 수도 있어요. 仔細히 面談하면 여러 가지를 알게 돼 더 나은 治療를 할 수 있죠.” 隨筆 內容이 되기도 한 지난해 年末 돌봄터에서 열린 癡呆 安心 노래자랑은 舊 敎授에게 “靈魂이 淨化되는 感動”으로 다가왔다. 患者인 어머니 記憶을 되살리고자 歌辭와 關聯된 小品을 準備한 딸, 初老期 癡呆 患者인 아내 손을 꼭 잡고 ‘사랑해’ 하며 노래를 부르던 男便, 歌詞를 까먹어 눈물을 못 감추는 患者인 어머니를 위해 함께 노래 불러주던 家族들…. 舊 敎授는 “이렇듯 하느님 模相의 面貌를 보여주는 患者들과 人間的 信賴를 맺는 靈的 治癒도 醫療人의 使命임을 되새겼다”고 말했다. “物質 너머 靈的인 것을 想像할 줄 아는 것이 가톨릭信者다운 삶”이라는 그의 告白대로다. “感動이 더 많은 이에게 퍼지길” 希望하며 賞金 全額 300萬 원을 바보醫나눔에 寄附한 舊 敎授. 그는 끝으로 “醫師와 患者의 關係에서 가장 基本이 되는 것은 믿음”이라며 “信賴 위에 돌봄터 活動을 繼續해 갈 것”이라고 傳했다. “醫師가 내게 가장 좋은 處方을 했다는 患者의 믿음이 있어야 그다음 만남이 이뤄집니다. 患者에게서 사람을 發見하는, 診療室 밖을 볼 줄 아는 醫師로 所任하고 싶습니다.”

2024-05-19

“平信徒 立場 代辯·力量 强化 위해 努力합니다”

1994年 平信徒 神學運動을 志向하는 이들이 힘을 모은 가톨릭 平信徒 硏究所, ‘우리神學硏究所’(以下 우신年)가 設立됐다. 平信徒 神學者로 養成되고 活動하려는 가톨릭 靑年 硏究者들 中心으로 이들의 活動을 支持하는 平信徒와 司祭, 修道會와 團體 等이 組合 方式으로 함께한 結果였다. 當時 創立 會員 大部分은 1970~80年代 天主敎 社會 運動에 어떤 形態로든 몸담은 履歷을 지니고 있었다. 때문에 敎會 刷新과 社會 變化를 同時에 追求하는 데 關心이 많았다. 特別히 現場 運動을 支援하는 學術 運動의 必要性을 切感했다. 우신年 出帆은 이런 背景 속에서 平信徒가 始作한 韓國敎會의 자랑스러운 傳統을 이어가는 것도 重要한 動機로 作用했다. 지난 2月 末 우신年 總會에서 새 所長으로 選出된 박문수(프란치스코) 博士는 “30年의 歲月은 創立 目的을 實現하는 過程이었지만 資源이 貧弱한 硏究所로서 어려움이 많았다”면서 “最大의 成果와 보람은 그 時間을 버텨내며 經濟的 어려움, 敎會 內 反對 陣營의 妨害에도 平信徒 神學 硏究所로 우뚝 선 것”이라고 말했다. 敎會에서 우신年 役割의 가장 큰 意味를 “平信徒 立場을 代辯하고 平信徒가 敎會와 世上에서 제 役割을 다할 수 있도록 力量을 强化하는 것”으로 꼽은 그는 또 “時代의 徵標를 먼저 읽고 敎會가 關心 기울이지 못한 領域에 있는 이들 목소리를 代辯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朴 所長은 “宗敎, 敎會 모두 어려움에 直面한 때에 所長에 就任하게 돼 마음이 무거우면서도 覺悟가 새롭다”고 就任 所感을 말하며 “宗敎와 敎會가 모두 本來 役割을 다함으로써 다시 活力을 찾고, 그 일에 禹신연이 寄與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創立 때 會員들은 經濟的 安定보다 생각의 自由를 選擇하자고 決意했고, 이에 따라 敎會와 다른 목소리를 내야 할 때가 많다 보니 批判과 牽制도 많았습니다. 平信徒 목소리를 代身하는 것이 때로 聖職者를 攻擊하는 것으로 비칠 때도 있었습니다.” “第2次 바티칸公議會의 敎會論과 프란치스코 敎皇님의 侍奴달리타스를 敎會가 實現해야 할 모습으로 생각한다”고 말한 朴 所長은 “이를 거스르는 흐름과는 앞으로도 斷乎히 맞설 것이고 그러면서도 禹신연이 이를 사는 模範이 되려 努力할 것”이라고 했다. 우신聯銀 始作부터 未來를 내다보는 硏究 主題를 選定하고 이를 통해 敎會가 나아갈 方向을 提示해 왔다. 이런 側面에서 朴 所長은 “硏究所가 現在 優先的으로 準備해야 할 것이, ‘加速化하는 脫敎會 現象을 멈추는 것'과 떠났던 信者가 다시 돌아올 수 있는 ‘魅力 있는 敎會’를 만드는 方案을 提案하는 것”이라며 “여러 硏究 團體와 連帶하는 가운데 그 解決策을 調査하고 마련할 것”이라고 傳했다. 우신聯銀 올가을 30周年 記念 심포지엄을 準備하고 있다. 이와 함께 다음 30年의 方向과 課題를 論議하는 會員 對象 세미나를 여러 次例 열 豫定이다.

2024-05-12

“醫師이자 奉仕者로서의 삶, 主님께서 이끌어 주셨죠”

“돈 몇 푼 더 받는 것보다 疏外된 이들을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게 더 重要하죠. 後輩들도 他人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患者를 만나는 醫師가 되길 바라요.” 지난 4月 5日 保健福祉部가 主催한 第52回 保健의 날 行事에서 大統領 表彰을 받은 요셉의원 신완식(루카·74) 前 義務院長은 疏脫한 웃음과 함께 始終一貫 謙遜했다. 申 前 院長은 지난해 隱退했지만 每週 月曜日과 水曜日 如前히 요셉의원으로 診療 奉仕를 나오고 있다. 普通은 診療室에 있지만 擧動이 不便한 患者가 있으면 直接 訪問 診療를 가기도 한다. 그는 鏢槍에 對해 “只今껏 받았던 床에 ‘大統領’像이 없어서 주신 것 같다”며 웃어 보였다. 이어 “요셉의원에서 16年째 奉仕하는 勞苦에 對해 좋게 봐줬다고 생각한다”면서 “醫師이자 奉仕者로서의 삶은 그저 主님이 이끄시는 대로 왔을 뿐”이라고 말했다. 感染內科 權威者로서 가톨릭大學校 醫科大學 敎授로 在職하던 申 前 院長은 停年을 6年 앞둔 2009年 3月 요셉의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줄곧 언젠가는 꼭 奉仕하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다던 그는 “敎授 時節 隱退한 先輩를 찾아뵀는데, 奉仕하고 싶어도 몸이 너무 힘들다는 말을 듣고 奉仕에도 다 때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요셉의원에서의 生活은 大學病院과 사뭇 달라 適應하기 어려웠다. 申 前 院長은 “一般 病院과 가장 달랐던 건 몸과 마음을 모두 治癒해야 하는 ‘全人的 治療’를 한다는 것”이라며 “世上에서 賤待와 冷笑를 받던 患者들은 마음의 門을 굳게 닫아 처음엔 내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고 傳했다. 하지만 어르고 달래며 患者들을 眞心으로 對하자 닫혔던 門이 徐徐히 열렸다. “막상 信賴를 얻자 깨달은 건, 患者들이 마치 겉은 딱딱한 甲옷을 입은 것 같지만 속은 正말 여리다는 것입니다.” 申 前 院長은 “투덜대며 쌀쌀맞게 굴던 어느 할머니께서 다음 診療에는 머리핀까지 꽂고 해맑은 微笑를 보였던 때 正말 큰 幸福을 느꼈다”고 記憶했다. 이런 小小한 幸福은 그가 끝까지 奉仕하는 醫師로 남게 해 준 原動力이었다. 申 院長은 “이곳의 많은 患者가 무시당할까 봐 一般 病院 가기를 꺼려했다”며 “여기는 그래도 나를 ‘人間’으로 對한다고 느껴 마음 便히 診療를 받으러 오신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只今도 조심스럽고 따뜻하게 患者를 對하고 있다. 그는 “奉仕者들에게서 오히려 내가 배우는 게 더 많다”며 “다들 時間을 쪼개가며 奉仕하러 오시는 모습을 보면 나도 더 熱心히 해야겠다고 다짐했다”고 回想했다. 隱退한 只今도 마찬가지다. 그는 “나이가 나이인지라 옛날 같지 않지만 奉仕者들을 보면 얼른 診療하러 가야겠다는 생각뿐”이라고 말한다. 申 前 院長에게 醫師라는 職業은 ‘사랑’을 傳해야 하는 使命을 가진다. 그는 “醫大生들에게 講義를 하던 때 恒常 왜 醫師가 되고 싶은지, 어떤 醫師가 되고 싶은지 스스로 끊임없이 質問하라고 助言했다”고 傳했다. “後輩들이 먼 後날 ‘나는 他人을 얼마나 사랑하고 살았는가’라는 質問에 떳떳하게 對答할 수 있는 醫師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2024-05-05

“브뤼기에르 主敎 알아가면서 우리 信仰 成長할 것”

“작은 點들이 모여 線을 이룬다는 말이 있습니다. 初代 朝鮮敎區長 브뤼기에르 主敎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旅程이 한 番으로 完成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도 韓國敎會 信者들의 발걸음이 中國에 남겨진 브뤼기에르 主敎님의 발자취를 따라 持續돼야 할 것입니다.” 서울大敎區 殉敎者顯揚會 조화수(바오로) 會長은 4月 16~21日 5泊6日 동안 서울 殉敎者顯揚委員會가 中國에서 마련한 ‘初代 朝鮮敎區長 브뤼기에르 主敎님 발자취를 따라서’ 巡禮에 參與한 뒤 아쉬움과 期待를 同時에 드러냈다. 이番 巡禮는 中國 內 微妙한 宗敎 政策에 依해 本來 巡禮하기로 定했던 目的地를 訪問하지 못한 事例도 있었지만 迂餘曲折 속에서 希望도 찾을 수 있었다. “巡禮를 마치고 받은 所感을 말한다면, 信仰人으로서 모든 일은 하느님의 부르심과 主導 下에 始作되고 끝난다는 것을 切實히 느꼈습니다. 中國의 複雜한 宗敎 狀況으로 인해 이番 巡禮의 重要 巡禮地를 訪問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안타깝기도 하지만 그 안에는 하느님의 ‘시그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番 巡禮가 끝이 아니라 새로운 始作이라는 暗示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이番 巡禮를 通해 ‘불쏘시개’를 주신 것 같습니다.” 조 會長은 브뤼기에르 主敎가 韓國敎會史에서 차지하는 位置에 對해 새로운 깨우침을 얻었다는 點을 强調했다. “‘하느님의 種 브뤼기에르 初代 朝鮮敎區長 諡福諡聖 祈禱’를 바치다 보면 ‘朝鮮 宣敎를 自請한 뒤 온갖 苦難과 疾病을 克服하면서 오로지 朝鮮에 들어가 宣敎하겠다는 굳은 信念으로 온 삶을 奉獻한 브뤼기에르 主敎’라는 部分이 나옵니다. 基 祈禱文에 브뤼기에르 主敎가 어떤 聖職者인지를 알려주는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그동안 브뤼기에르 主敎에 關해 1831年에 任命된 初代 朝鮮敎區長이라는 事實만 鸚鵡새처럼 反復했던 저 自身이 부끄럽습니다.” 조 會長은 브뤼기에르 主敎에 對해 하느님의 부르심에 “예”하고 應答한 模範을 보인 司祭라는 點을 再次 强調했다. “우리 韓國敎會 信者들이 브뤼기에르 主敎님을 忽待하지 않았나 反省합니다. 이 분에 對해 너무 모르고 있었습니다. 브뤼기에르 主敎님이 初代 朝鮮敎區長으로 부름 받았을 때 殉敎까지 覺悟하고 ‘예’라고 應答했기 때문에 韓國敎會 歷史가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이番 中國 巡禮는 앞으로 持續해야 할, 브뤼기에르 主敎님 발자취를 찾기 위한 긴 旅程의 豫行演習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조화수 회장은 “信者들이 韓國敎會史를 工夫할 때 이승훈(베드로)李 첫 洗禮를 받은 뒤 平信徒들의 主導로 韓國敎會가 始作됐다는 事實은 大部分 알더라도 初代 朝鮮敎區長이 브뤼기에르 主敎라는 點과 朝鮮敎區 設立 過程을 모른다면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며 “韓國敎會의 礎石이며 한 軸이 된 브뤼기에르 主敎님을 알면 알수록 우리의 信仰도 더 成長할 것”이라고 말했다.

2024-04-28

“地球 毁損에 責任있는 老年이 앞장서 共滅 막아야”

“우리 베이비붐 世代는 豐饒와 便利를 理由로, 開發과 成長이라는 이름으로 地球를 毁損하고 젊은이들의 未來를 빼앗아 왔습니다. 이를 悔改하며 人間과 自然의 攻滅을 막는 데 우리가 나서야 한다는 마음뿐이에요.” 불타는 地球의 火災 現場으로 緊急出動하는 消防隊員의 마음, ‘老年이 달라져야 未來가 달라진다’는 覺悟로 老年 氣候運動團體 ‘60+ 氣候行動’(以下 氣候行動)은 2022年 1月 19日(119) 創立 發隊式을 올렸다. 민윤혜頃 運營委員(아녜스·67·서울 청담동本堂)은 創立 때부터 氣候行動 一員으로서 三陟 火力發電所 反對, 國民年金의 石炭投資 反對 等 피케팅 및 세미나를 비롯한 活動에 꾸준히 함께해 왔다. 민윤 委員은 “손주들이 살아갈 地球를 어떻게든 나은 모습으로 물려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니어 氣候 活動家로 나서게 됐다. 正義平和民主 가톨릭行動 會員으로도 活動했던 그는 “民族 和解, 社會正義 實現 等 다른 問題도 重要하지만 氣候危機 對應이 特히 重要하다”고 强調했다. “正義를 實現할 社會도, 平和를 되찾을 民族도 結局 먼저 地球가 살아 숨 쉬어야 存在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민윤 委員은 2020年 美國 西部를 집어삼킨 超大型 山불을 現地에서 接하고 氣候危機의 深刻性을 切感했다. 專門家들은 氣候變化로 因한 記錄的 暴炎이 山불을 일으킨 것으로 診斷했다. “파란 하늘이 漸漸 어두워지더니 霎時間에 붉고 검은 밤이 깔렸습니다. 映畫에서나 볼 법한 災殃이 居室 窓門 밖에서 펼쳐지고 있었죠. 氣候危機는 누구에게나 例外가 없다는 衝擊으로 눈뜨게 됐어요.” 그는 “그런 災殃을 앞당긴 것이 젊은 날 無分別한 開發主義 一邊倒로 달려왔던 우리 베이비붐 世代였기에 다른 世代보다 老人 世代가 나서야 한다”고 力說했다. “生態的 悔改를 바탕으로 後孫들을 보살피는 어른으로 模範을 보여야 다른 世代가 氣候危機를 自身의 問題로 받아들이도록 이끌 수 있다”는 것이다. 민윤 委員은 “老年 世代만이 가진 固有한 價値들은 氣候危機에 맞서는 젊은 世代에게 든든한 뒷받침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랜 歲月 살아오며 蓄積된 經驗과 省察을 바탕으로 막다른 길에 빠진 靑年들을 트인 길로 案內하고, 安定된 老年의 時間·經濟的 餘裕를 바탕으로 氣候危機 對應 活動을 積極 支援할 수 있다는 것이다. 脫石炭法 制定을 促求하는 國會 앞 피케팅, 三陟 孟芳海邊을 巡禮하며 바치는 生態的 悔改 祈禱…. 아랑곳하지 않는 巨大 資本을 沮止하려는 이 작은 움직임들이 “곧 信仰告白이자 生態的 殉敎”이기에 價値를 갖는다고 민윤 委員은 말했다. 單番에 地球를 푸르게 만들 수는 없더라도, “작은 靈的 獻身이 모여 하느님 創造 秩序를 世上에 외친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矜持를 가져다준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어떠한 道具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민윤 委員. 그는 끝으로 “老年의 自身에게 주어진 ‘創造 秩序 保全’의 職務를 使命感으로 遂行할 것”이라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우리 손주들을 爲해 老年을 價値 있게 奉獻할 것”이라고 傳했다.

2024-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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