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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여는 詩] 迸散 郵遞局 / 서일옥(1951~ )
이름 곱고 담도 낮은 迸散 郵遞局은
海邊 길 걸어서 탱자 울을 건너서
꼭 傳할 祕密 생기면
몰래 門 열고 싶은 곳.
어제는 봄비 내리고 바람 살푼 불더니
햇살 받은 郵遞筒이 칸나처럼 피어 있다.
누구의 애틋한 事緣이
저 속에서 익고 있을까.
-詩集 〈迸散 郵遞局〉(2016) 中에서
가고 싶어라 ‘迸散 郵遞局’. 보고 싶어라 ‘칸나 郵遞筒’. 내 마음의 깊은 曲折을 封印해 두고 싶은 곳. 그곳에 ‘애틋한 事緣’을 넣어 두면 曲折은 저 홀로 ‘익어’ 내 사랑의 切切함을 보여주리라. 그대에게 가기 위해 ‘海邊 길 걸어서 탱자 울을 건너서’ 설레며 걷던 길들, 늘 손끝에 따뜻하고 정겹게 맴돌던 ‘祕密’의 글들. 만나기까지 마음 절로 향기로워져 끝내 닿게 되는 時間!
그 모든 것이 ‘迸散 郵遞局’에 있다. 풋풋한 내 젊음의 푸른 約束이 잠들어 있다. 歲月을 거슬러 ‘몰래 門 열고 싶은 곳’의 모습으로, ‘담도 낮은’ 낯익은 風景으로 서 있는 내 그리움의 祕境(秘境). 그곳은 映畫 ‘화양연화’ 속의 主人公이 홀로 앙코르와트 城壁 속에 제 사랑의 祕密을 封印해야 했던 것처럼 돌이킬 수 없는 사랑을 제 ‘案’에 密封해 둘 수밖에 없음을 證明해 준다. 홀로 된 사랑도 저 홀로 醱酵하여 쓸쓸한 香氣로 무르익어 가야 함을 말해주는 것처럼. 김경복 評論家
2024-05-21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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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여는 詩] 枯死(古寺) 1 / 조지훈(1920~1968)
木魚(木魚)를 두드리다
졸음에 겨워
高五運 上佐 아이도
잠이 들었다.
부처님은 말이 없이
웃으시는데
西域(西域) 萬里 길
눈부신 노을 아래
牡丹이 진다.
-詩集 〈청록집〉(1946) 中에서
마음이 고요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가운데 世上은 밝고 환하게 켜졌다가 漸次 어슴푸레하게 기울어 간다. 오늘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눈부신 노을 아래 牡丹이 지’듯, 그냥 하루가 영글었다가 이울어 간다. 世上도 고요할 뿐이다.
슬픔인가? 아니면 기쁨인가? ‘말이 없이 웃는’ 것은 무슨 感情일까? 精密(靜謐), 고요하여 便安함! 누구는 이를 心心相印(心心相印)이라 말할지 모르겠다.
부처님은 우리들의 純眞하기만 한 ‘졸음’을, 어리석고 柯葉機만 한 ‘잠’을 지긋이 바라보고 ‘웃으시는데’, 오늘은 釋迦誕辰日, 어디로 ‘꿈’의 머리를 두어야 할까? 고요하여 빽빽한 하루, 외로운 한낮, 낮잠을 자다 흠칫 깨어보면 世上은 朦朧한 꽃잎, 꽃잎, 붉게 물든 黃昏이 되어 낱낱이 떨어지고 있다.
김경복 評論家
2024-05-14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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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여는 詩] 팬지꽃으로
하루하루 눈물방울로 꽃을 피우는 月貰房 우리 집이 얼음덩이 속에 사는 에스키모보다는 더 幸福할 거라고 딸애는 잠 못 드는 밤이면 울면서 祈禱하였어요.
때로는 거지옷 입은 개그맨과 신데렐라 公主가 함께 出演하는 黑白 TV에 나온 적도 없는 아빠는 〈바본가 보다, 바본가 보다〉며 까르르 놀려대더니 딸애는 風船을 불며 뒷山으로 가 버렸어요.
세모꼴 다섯모꼴의 찌그러진 별들과 나뭇잎과 흙, 볏짚으로 쏘아올린 꿈 속의 우리 집 그리고 몇 年째 돌아오지 않는 엄마의 젖가슴과, 또 그런 것들이 꽃바구니에 가득 그려진 빨간 風船을 하나 들고, 심심한 아홉 살 딸애가 떠나버린 자리에는 딸애 얼굴 같은 팬지꽃 한 송이가 저 혼자 피어 있었어요. 그것도 목이 쉬어 피어 있었습니다.
-詩集 〈팬지꽃으로〉(1987) 中에서
슬픔이 맑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은 참 놀라운 일이다. 詩라서 그럴까? 아니다. 좀 더 嚴密히 들여다보면 어린아이의 슬픔이 天眞爛漫하면서도 애잔하게 느껴져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서 그렇다. 슬픔은 하염없는 눈물로 우리의 흐린 마음을 씻어 낸다.
엄마를 잃고 아빠와 가난하게 사는 어린아이는 무슨 마음으로 살아갈까? 그 아이의 하루하루는 ‘신데렐라’, ‘개그맨’ 等이 나와 노래하고 이야기해 暫時 서러움을 잊기도 하겠지만, 아빠의 우스꽝스러운 몸짓에 ‘까르르 놀려댈’ 웃음을 짓기도 하겠지만, 슬퍼라, 채울 길 없는 虛飢에 늘 그늘이 져 있었으리라. 그것을 보는 아빠 또한 여린 ‘팬지꽃으로’ 시들어 가는 딸의 모습을 처연히 바라보아야만 下였으리. 하여 ‘목이 쉬어 피어 있는’ 팬지꽃은 얼마나 눈물 나는 아픔이랴, 얼마나 눈물 나는 그리움이랴!
김경복 評論家
2024-05-0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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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여는 詩] 윤사월(閏四月)
松花가루 날리는
외딴 봉오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山지기 외딴집
눈먼 處女社
門설柱에 귀 대이고
엿듣고 있다.
-詩集 〈청록집〉(1946) 中에서
슬픔이 깊어지고 깊어지면 맑아진다. 해맑은 웃음 속엔 언제나 슬픔의 香臭가 隱隱하게 풍긴다. 봄의 어여쁨 속엔 겨울의 索莫한 寒氣가 보글댄다. 生動하는 新綠 너머로 어룽대는 저 아지랑이는 아픈 날들을 淨化하는 表紙일 것이다.
‘눈먼 處女’가 듣는 ‘꾀꼬리 울음’ 소리가 그러하지 않을까? 맑고 고요하여야 들려오는 봄의 소리는 오직 한 길로 傳해오는 生命의 神祕다. 아니 깊고 깊은 외로움 속에서야 沈澱되는 靈魂의 波長이다.
‘門설柱에 귀 대고 엿듣는’ 사람은 都大體 얼마나 넓고 깊은 可聽(可聽) 世界를 가지고 있을까? 해가 길어져 가는 ‘윤사월’, 제 그림자와 혼자 노는 날들이 많아진다. 슬픔이 氣盡하여 透明해진다. 아픔이 다하여 고요해진다. ‘고요한 외로움’李 天地의 아름다움으로 變하는 瞬間이다. 김경복 評論家
2024-04-30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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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여는 詩] 訪問客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過去와
現在와
그리고
그의 未來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一生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畢竟 歡待가 될 것이다.
-詩集 〈光輝의 속삭임〉(2008) 中에서
運命의 女神이 짓는 因緣의 實은 얼마나 덧없는가! 쉽게 올이 풀려 잘려 나간다. 宇宙의 觀點에서 보면 죽음의 神이 가위질한 사람의 生涯는 暫時 번득이다 萬 閃光에 不過할 뿐이다. 運命은 迷妄(迷妄)의 어둠을 질러가는 번개 같다.
그러나 그 閃光이 地上의 나에게 쏟아져 내리는 것은 참으로 ‘어마어마한 일’李 된다. 그 까닭은 閃光이 이 캄캄한 宇宙를 暫時만이라도 환하게 밝혀 나를, 나의 全 生涯를 意味로 充滿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서로의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을 이어 붙여 향기로운 存在로 暫時 서게 하기 때문이다. 그런 莊嚴함으로 오는 因緣이기에 ‘訪問客’은 單純히 한 ‘사람이 오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一生’李, ‘하나의 世界’가 오는 宇宙的 大事件이다. 그러니 어찌 그 빛을 多情하게 ‘歡待’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김경복 評論家
2024-04-23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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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여는 詩] 遠視(遠視) / 오세영(1942~ )
멀리 있는 것은
아름답다.
무지개나 별이나 벼랑에 피는 꽃이나
멀리 있는 것은
손에 닿을 수 없는 까닭에 아름답다.
사랑하는 사람아.
離別을 서러워하지 마라.
내 나이의 離別이란
헤어지는 일이 아니라 但只
멀어지는 일일 뿐이다.
네가 보낸 마지막 便紙를 읽기 위해선
이제
돋보기가 必要한 나이,
늙는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멀리 보낸다는 것이다.
머얼리서 바라다볼 줄을 안다는 것이다.
-詩集 〈꽃들은 별을 우러르며 산다〉(1992) 中에서
애틋함은 멀어지기에 發生하는 感情이다. 애틋함을 알게 될 때 비로소 生의 成熟을 맛보게 된다. 아련함도 마찬가지다. 時間的으로든 空間的으로든 먼 것들은 아득하고 그윽하여 사람의 마음을 울린다. 그리하여 ‘멀리 있는 것은 아름다울’ 수밖에 없게 된다.
한때 내 것이었던 것이 내 것이 아닌 것이 되었을 때 느끼는 難堪함과 當惑感은 아련함의 다른 이름이다. 늙어가는 것이 그런 境遇다. ‘이제 돋보기가 必要한 나이’가 이를 말해주는 것일 텐데, 그것은 意欲과 誇示의 삶의 方式에서 諦念과 謙虛의 삶의 方式으로 轉換하는 것을 가리킨다. 特히 사랑의 問題는 더욱 그러하다. 設令 죽을 程度로 사랑하였던 사람일지라도 이제는 ‘멀리 보내고’, ‘머얼리서 바라다보’며 살아가야 함을 깨우쳐야 한다. 그것이 生의 本質임을 攄得해야 한다. 成熟은 自身에게 주어진 슬픈 運命을 처연히 받아들이는 일이다. 김경복 評論家
2024-04-16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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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여는 詩] 푸른 밤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無數한 길도
實은 네게로 向한 것이었다
까마득한 밤길을 혼자 걸어갈 때에도
내 應試에 날아간 별은
네 머리 위에서 반짝였을 것이고
내 한숨과 입김에 꽃들은
네게로 몸을 기울여 흔들렸을 것이다
사랑에서 恥辱으로,
다시 恥辱에서 사랑으로,
하루에도 몇 番씩 네게로 드리웠던 두레박
그러나 매양 퍼올린 것은
數萬 갈래의 길이었을 따름이다
銀河水의 한 별이 또 하나의 별을 찾아가는
그 數萬의 길을 나는 걷고 있는 것이다
나의 生涯는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單 하나의 에움길이었다
-詩集 〈그곳이 멀지 않다〉(2004) 中에서
사랑은 張力(張力)이다. 두 存在가 偶然히 부딪쳐 서로 끌리는 마음을 갖게 되면서 사랑의 波長은 始作된다. 그런데 사랑의 存在들은 各自 ‘하나의 별’로 誕生된 것과 같아 제 안의 因緣과 運命으로 인해 重力을 지닌다. 두 重力이 서로 밀고 당기게 될 때, 사랑은 必然的으로 直線이 아니라 曲線, 卽 ‘네게로 난 單 하나의 에움길’을 밟을 수밖에 없게 만든다.
直進으로 가닿기 위해 ‘하루에도 몇 番씩 네게로 두레박을 드리우’지만 重力은 그리움마저 휘게 하여 ‘數萬 갈래의 길’을 퍼뜨릴 뿐이다. 사랑의 苦痛으로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어도 사랑의 壯力으로 運命의 指針은 ‘네게로 向해’ 있다. 그 苦痛과 悅樂의 時間들은 모두 너에게 가는 길, 사랑의 人力이 이끄는 ‘에움길’李 實은 가장 빠른 ‘지름길’임을 알게 하는 鍛鍊의 瞬間들이다.
김경복 評論家
2024-04-09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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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여는 詩] 벌레 먹은 나뭇잎
나뭇잎이
벌레 먹어서 예쁘다
貴族의 손처럼 傷處 하나 없이
매끈한 것은
어쩐지 베풀 줄 모르는 손 같아서 밉다
떡갈나무 잎에 벌레구멍이 뚫려서
그 구멍으로 하늘이 보이는 것은 예쁘다
傷處가 나서 예쁘다는 것은
잘못인 줄 안다
그러나 남을 먹여가며 살았다는 痕跡은
별처럼 아름답다
-詩集 〈詩人과 갈매기〉(1999) 中에서
傷處는 아름답다. 傷處는 그 存在의 辛酸한 履歷과 거기에 對應하여 애쓴 몸짓을 壓縮的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언뜻 傷處는 凶測한 무늬로 보일지 몰라도, 찬찬히 들여다보면 아직도 力動的으로 움직이는 生의 意志와 그것의 價値를 證明하는 標識로 浮刻된다.
그 傷處가 自己를 위해 만든 것에 그치지 않고 ‘남을 먹여가며 살았다는 痕跡’으로 남게 되었다면 ‘별처럼 아름답다’는 讚辭를 받아 마땅하다. 이때 傷處는 自身의 삶을 救援하는 行爲에서 世界를 救援하는 意識(儀式)으로 格上된다. 모든 存在들이 서로 傷處의 關係로 이어져 救援의 인드라網을 짜고 있는 이 華麗莊嚴의 世界! 그런 點에서 ‘傷處’야말로 이 宇宙의 無定形과 無意味에 定型의 아름다운 秩序와 存在의 價値를 附與하는 徵標다.
김경복 評論家
2024-04-02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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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여는 詩] 봄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 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多急한 事緣 듣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詩集 〈우리들의 樣式〉(1974) 中에서
懇切히 바라는 것은 얼마나 눈물 나게 하는가! 쉽게 이루어지지 않기에 切切함은 增幅되고 가슴은 바싹 타 버석거린다. 오랜 苦痛의 時間을 보냈기 때문에 懇切한 對象이 찾아오면, 너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 없’고,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말도 할 수 없을 地境에 이른다. 懇切한 對象이, 아니 懇切함 自體가 내 生命을 左右하는 關鍵으로 作動하는 것이다.
그런데 詩人은 이 懇切함을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오’는 形象이라고 말하고 있다. 더딜지라도 마침내 오고야 말 對象이 懇切함이라면 이는 運命이기에 決코 抛棄해서는 안 된다. 때문에 ‘너, 먼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라는 表現은 懇切함의 追求를 運命으로 實踐하는 사람들에 對한 賞讚이다. 하여 ‘봄’은 苦痛에 빠진 民衆이 懇切히 바라는 救援의 象徵이다. 김경복 評論家
2024-03-26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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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여는 詩] 生薑나무 / 정우영(1960~ )
마흔여섯 해 걸어다닌 나보다
한곳에 서 있는 저 여린 生薑나무가
훨씬 더 많은 地球의 記憶을
時間의 그늘 곳곳에 켜켜이 새겨둔다.
忽然 어느 날 내 길 끊기듯
땅 위를 걸어다니는 것들 모든 자취 사라져도
生薑나무는 노란 털눈 뜨고
如前히 느린 時間 걷고 있을 것이다.
地球의 旅行者는 내가 아니라,
生薑나무임을 아프게 깨닫는 瞬間에
내 그림자도 키 늘여 슬그머니
生薑나무 時間 속으로 접어든다.
-詩集 〈집이 떠나갔다〉(2005) 中에서
움직이지 않는 것이 더 크게 움직이는 것이다. 움직이지 않고 더 크게 품을 수 있다. 나무의 運命이 그러하다. 詩에서 보인 ‘한곳에 서 있는 生薑나무가/ 훨씬 더 많은 地球의 記憶을/ 켜켜이 새겨두’고 있는 것이 그런 境遇다. ‘生薑나무’는 움직이지 않고도 ‘느린 時間을 걸을’ 수 있다.
逆說은 次元을 넘고자 하는 意志다. 그 點에서 詩人은 랭보의 말처럼 人間의 觀點으로 理解할 수 없는 現象을 꿰뚫어보는 見者(見者)다. 眞理를 追求하므로 ‘아프게 깨닫는 瞬間에/ 내 그림자도 키 늘여/ 生薑나무 時間 속으로 접어드’는 놀라운 共感을, 다시 말해 宇宙的 靈性을 獲得할 수 있다. ‘地球의 旅行者’에서 三千大千世界의 修行者로 電話해 갈 수 있는 것이다. ‘生薑나무’가 뿜고 있는 德性이 우리로 하여금 宇宙的 次元의 眞實로 눈을 돌리게 한다. 김경복 評論家
2024-03-1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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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여는 詩] 中心의 괴로움
봄에 가만 보니
꽃대가 흔들린다
흙밑으로부터 밀고 올라오던
熾烈한 中心의 힘
꽃피어 퍼지려
四方으로 흩어지려
괴롭다 흔들린다
나도 흔들린다
來日 시골 가
비우리라 피우리라.
-詩集 〈中心의 괴로움〉(1994) 中에서
하나의 世界가 誕生하기 위해서는 世界 그만한 에너지가 所要된다. 하나의 生命이 태어나기 위해서도 生命 그만한 힘이 뒤따른다. 봄에 ‘꽃피어 퍼지려’는 ‘꽃대’의 몸짓엔 ‘熾烈한 中心의 힘’이 必要한 것은 當然하다. 죽음이었던 겨울을 밀어내고 生命인 봄을 맞이하기 위해 꽃은 死活을 건 싸움을 제 中心에서부터 벌일 수밖에 없다. 그 싸움은 ‘怪롭’게 ‘흔들리’는 모습으로 나타나 고통스럽지만, 눈물 나게 莊嚴한 場面이다.
誕生은 熾烈함이다. 온 힘을 다해야 爭取할 수 있기에 삿된 것들은 ‘비워’야 한다. 비우는 것이 生命을 꽃피우는 莊嚴함으로 昇華될 때, ‘피우리라’의 意志는 地上의 모든 存在들로 하여금 아름다운 몸을 갖게 한다. 存在는 늘 흔들리고 흔들려 괴롭지만, 이를 通해 ‘中心의 힘’을 얻어 天分을 이루게 된다.
김경복 評論家
2024-03-12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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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여는 詩] 餘白
언덕 위에 줄지어 선 나무들이 아름다운 건
나무 뒤에서 말없이
나무들을 받아 안고 있는 餘白 때문이다
나뭇가지들이 살아온 길과 細細한 잔가지
하나하나의 흔들림까지 다 보여주는
넉넉한 虛空 때문이다
빽빽한 숲에서는 보이지 않는
나뭇가지들끼리의 均衡
가장 자연스럽게 뻗어 있는 生命의 손가락을
一一이 쓰다듬어주고 있는 빈 하늘 때문이다
餘白이 없는 風景은 아름답지 않다
비어 있는 곳이 없는 사람은 아름답지 않다
餘白을 가장 든든한 背景으로 삼을 줄 모르는 사람은
-詩集 〈슬픔의 뿌리〉(2002) 中에서
비어 있어야 채울 수 있다. 老子의 말이다. 아름다움에 對한 생각에도 이 말을 適用해 볼 수 있다. ‘나무들이 아름다운 건/ 나무 뒤에서 말없이/ 나무들을 받아 안고 있는 餘白 때문’이란 表現은 비움이 갖는 意味를 形象的으로 表現한 것이다. 虛空 속의 나무가 아름다운 것은 채움을 감싼 텅 빔의 價値에서 비롯된다.
그렇기에 ‘비어 있는 곳이 없는 사람은 아름답지 않다’는 말은 사람살이의 核心을 찌르는 警句다. 비어 있는 사람은 自身을 낮추고 關係를 두텁게 하여 生命을 살린다. 스스로 그늘이 되고 餘白이 되는 사람들이야말로 隱隱한 餘韻의 아름다움을 풍긴다. 김경복 評論家
2024-03-05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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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여는 詩] 고추씨 같은 귀울음소리 들리다
뒤척이는 밤, 돌아눕다가 우는 소릴 들었다
처음엔 그냥 귓밥 구르는 소리인 줄 알았다
고추씨 같은 귀울음소리,
누군가 내 몸 안에서 울고 있었다
부질없는 일이야, 잘래잘래
고개 저을 때마다 고추씨 같은 귀울음소리
마르면서 젖어가는 울음소리가 明明하게 들려왔다
고추는 매운 물을 罪 빼내어도 맵듯
마른 눈물로 얼룩진 그女도 나도 맵게 우는 밤이었다
-詩集 〈가뜬한 잠〉(2007) 中에서
사랑의 傷處는 時間이 흘러도 아물지 않는다. 다 잊었다고 생각한 사람이더라도 잠을 설치는 날이 많아지고, 그러다 ‘뒤척이는 밤, 돌아눕’는 귓가에 불현듯 ‘고추씨 같은 귀울음소리’를 듣게 된다. 나도 모르게 오래도록 ‘내 몸 안에서 울고 있었’던 것을 알게 된다. ‘마르면서 젖어가는 울음소리’는 홀로 쓸쓸히 낡아가는 靈魂에게 사랑이 끝나지 않았음을, 끝날 수 없음을 부르짖는 證票로 나부낀다. 悔恨이 물결처럼 차오르는 밤!
傷處는 刻印이다. 홀로 내는 고추씨 같은 울음소리는 얼마나 깊은 傷處의 痕跡인가! 잴 수 없는 아픔의 깊이는 ‘맵게 우는’ 것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 가슴의 深層에 담긴 사랑은 온몸을 울림筒으로 만들어 現(絃)을 켠다. 하여 잠 못 드는 밤, 이名처럼 울리는 ‘고추씨 같은 귀울음소리’는 決코 잊을 수 없는 사랑을 靈魂에 새기는 소리다. 김경복 評論家
2024-02-27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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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여는 詩] 달北
저 滿月, 滿開한 沈默이다.
소리가 나지 않는 먼 어머니,
아무런 內容도 적혀 있지 않지만
古今의 베스트셀러 아닐까
덩어리째 유정한 말씀이다.
滿面 환하게 젖어 通하는 달,
北이어서 그 邊두리가 限없이 번지는데
괴로워하라, 匕首 댄 듯
暗黑의 밑이 투둑, 타개져
천천히 붉게 머리 내밀 때까지
억눌러라, 오래 걸려 낳아놓은
對答이 두둥실 滿月이다.
-詩集 〈쉬!〉(2006) 中에서
大보름이 다가오고 있다. 中天의 달이 빛을 흐뭇하게 뿌려준다. 달빛이 따뜻한 물결로 몸을 감싸주어 ‘滿面 환하게 젖어 通하는’ 어머니 얼굴 같다. 大보름날 분주하게 飮食을 準備하며 한 해의 豐年을 빌던 어머니의 마음이 저와 같았을까? 달은 이제나저제나 어머니의 얼굴을 하고 女神처럼 世上을 내려다본다. 아니 어머니가 하늘로 鬼薦한 뒤 子息들이 보고 싶어 地上을 向해 얼굴을 내밀고 있다. 죽음마저 건너뛴 靈魂으로 환하게 웃는 빛 한 덩어리!
그래서 달빛은 ‘덩어리째 유정한 말씀’이다. 어머니의 사랑이 절절히 퍼져 내리는 소리가 되기에 ‘달北’이다. 그리운 마음에 쳐다보면 달은 어룽어룽 形象이 흔들리는데, 그 까닭은 ‘北이어서 그 邊두리가 限없이 번지는’ 波長 때문이다. 어머니의 마음을 안 子息의 마음도 떨릴 터이니, 온 宇宙가 때아닌 共鳴을 일으킨다. 하여 달은 사랑의 울림이다. 김경복 評論家
2024-02-20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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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여는 詩] 겨울밤
잠 이루지 못하는 밤 故鄕 집 마늘밭에 눈은 쌓이리.
잠 이루지 못하는 밤 故鄕 집 추녀밑 달빛은 쌓이리.
발목을 벗고 물을 건너는 먼 마을.
故鄕 집 마당귀 바람은 잠을 자리.
- 詩集 〈싸락눈〉(1969) 中에서
설을 보낸다. 父母님이 그립다. 故鄕도 생각난다. 그러나 父母님은 다 돌아가시고, 故鄕도 떠난 지 오래라 낯설다. 記憶 속의 草家집 처마, 외양間, 섬돌, 마당귀 감나무, 아, 흰 눈을 소복이 담고 있던 댓잎, 그 대나무 울타리 밑에서 기침하던 아버지, 부엌 門間에서 그것을 내다보던 어머니, 왜 그것들이 더 푸르게 사무칠까? 갈수록 ‘잠 이루지 못하는 밤’이 많아지면서 애끓는 마음에 ‘故鄕 집 마늘밭에 눈은 쌓이’고, ‘故鄕 집 추녀밑 달빛’도 하염없이 쌓인다. 月白雪백천지백의 환한 꿈길! 혼자 앓아누워 그리는 저 눈부신 政經!
이제 다시는 故鄕에 돌아가지 못하리. 故鄕은 이미 ‘발목을 벗고 물을 건너는 먼 마을’이 되었고, 追憶 속에서만 ‘故鄕 집 마당귀 바람은 잠을 자’게 될 뿐이다. 永遠한 이데아의 그림자가 된 故鄕, 이제 물속의 달처럼 그려볼 수는 있으나 만져 볼 수는 없게 된 것. 이것들을 느끼게 하는 ‘겨울밤’은 刑罰인가, 祝福인가! 김경복 評論家
2024-02-13 [1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