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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年 만에 演技活動 再開한 탤런트 강문영|여성동아

반가운 얼굴

8年 만에 演技活動 再開한 탤런트 강문영

“그동안의 나쁜 記憶은 다 잊고 이제는 幸福해지고 싶어요”

글·민선화 / 寫眞·홍중식 記者

2005. 12. 09

MBC 史劇 ‘辛旽’으로 8年 만에 演技活動을 再開해 關心을 모으는 탤런트 강문영. 97年 歌手 이승철과 離婚한 後 間間이 短幕劇에만 얼굴을 비쳤을 뿐 演藝活動을 中斷한 채 살아온 그가 오랜만에 브라운管에 돌아온 所感과 그동안 自身을 둘러싸고 떠돈 所聞의 眞相, 前 男便 李承哲에 對한 追憶, 人生 計劃까지 처음으로 率直하게 털어놓았다.

8년 만에 연기활동 재개한 탤런트 강문영

最近 放送活動을 再開해 關心을 모은 탤런트 강문영(38). MBC 史劇 ‘辛旽’에서 初選 役을 맡은 그는 요즘 드라마 撮影地인 京畿道 龍仁과 全南 寶城 等地를 오가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劇中 初選은 장사를 해 모은 莫强한 資金力을 武器로 政界와 財界를 뒤흔드는 큰손으로, 辛旽(손창민)을 도와주는 人物이다. 그가 드라마에 出演하는 것은 97年 放映된 MBC 史劇 ‘미망’ 以後 8年 만이다. 그동안 MBC ‘베스트극장’, SBS 오픈드라마 ‘남과여’ 等의 單幕劇을 통해 間間이 얼굴을 비치기는 했지만 連續劇 出演은 이番이 처음.
“오랜만에 드라마 出演을 해서인지 처음에는 演技의 感도 잘 안 잡히고 撮影場 雰圍氣도 낯설어서 ‘괜히 일을 始作했나 보다’ 하고 잠깐 後悔하기도 했어요(웃음). 더군다나 드라마 中間에 出演하게 되니까 남의 집에 놀러간 것처럼 語塞하더라고요. 하지만 只今은 이런 제 마음을 알고 먼저 다가와 이것저것 챙겨주는 손창민氏를 비롯해 어린 後輩 演技者들과도 많이 親해졌어요.”
그는 “열흘間 繼續 밤샘 撮影을 하느라 잠을 못 자서 疲困하고 살도 3kg이나 빠졌다”면서도 “다시 演技를 하게 돼 幸福하다”고 所感을 밝혔다. 또한 그는 “오랜만의 外出이 부담스러웠지만 現代物이 아닌 史劇이라서 勇氣를 낼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現代物은 誇張되게 演技를 하거나 未熟하면 금세 눈에 띄지만 史劇은 그런 點들이 많이 가려진다는 것.
그의 外貌에서는 8年의 空白이 느껴지지 않았다. 代身 곱게 丹粧하고 어딘지 모르게 홀가분해 보이는 얼굴에서 成熟美가 느껴졌다. 얼굴이 前보다 한결 便安해 보인다고 하자 그는 “나이가 들어서겠죠?”라고 말하며 愛嬌 있게 웃었다.
“지난 8年의 空白을 한瞬間에 뛰어넘어온 氣分이에요. 撮影場에 갈 때마다 ‘내가 벌써 이렇게 先輩가 됐나’ 하고 깜짝 놀라죠. 하지만 이제는 挑發的이고 도회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多幸히 요즘은 周邊에서 便安하고 여유로워 보인다고들 해요. 나이가 들어서인지 화낼 일도 漸漸 없어지더라고요(웃음).”
“어쩌면 그동안 놀랄 일을 많이 겪어서 鍛鍊이 돼 그런지도 모르겠다”며 餘裕롭게 웃는 강문영. 그는 지난 97年 歌手 이승철과의 離婚 後 지난해까지 갖가지 루머와 事件, 事故 等으로 적지 않은 마음苦生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離婚 後 서로를 깎아내리고 傷處 주는 일들이 벌어지는 게 싫었어요. 周圍의 곱지 않은 視線도 부담스러웠고요. 그래서 一切의 放送活動을 접고 뒤로 숨은 거예요. 어떻게 보면 매스컴이 저를 밀어낸 거죠. 率直히 ‘그때 도망가지 않고 숨지 않았으면 只今 더 좋지 않았을까?’ 하고 後悔하기도 해요.”

”展 男便 李承哲에 對해 좋은 記憶만 남아 …그가 잘되길 바래요”
“離婚은 모두 지나간 이야기고 아련한 追憶일 뿐”이라고 말한 그는 前 男便 李承哲에 對해서도 “20代에 가장 좋았던 時節을 함께 보낸 사람이고 只今은 그와의 좋은 記憶만 남았다. 이제는 서로 安否人事 程度 나눌 수 있는 親舊처럼 지내고 싶고 歌手 이승철의 팬으로서 그가 잘되길 멀리서나마 應援하고 있다”며 속내를 내비쳤다.
事實 그는 지난 2003年에 放送 復歸를 準備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運動을 하다가 眩氣症으로 쓰러져 코뼈가 부러지는 事故를 當하는 바람에 不得已 復歸 時期를 뒤로 미뤘다. 當時 조각난 코뼈를 붙이는 再建手術을 받았는데 巷間에는 코 成形手術을 했다고 所聞이 나 또 한次例 마음苦生을 했다고 한다.
“쉬는 동안 엉뚱한 所聞이 참 많았어요. 特히 술집에서 마담으로 일한다는 所聞은 正말 어이가 없더라고요. 너무 火가 나서 사이버搜査隊에 依賴해 올 初에 인터넷을 통해 所聞을 流布시킨 두 사람을 잡아 名譽毁損으로 告訴를 했다가 正式으로 謝過를 받고 取下해줬어요. 또 얼마 前에 離婚한 財閥婦人이 썼다는 自傳小說에 나오는 ‘고양이上의 K孃’이 바로 저라는 所聞도 있더라고요. 저 아니거든요. 그분이 ‘K孃’李 강문영인지 아닌지만이라도 말해줬으면 좋겠어요.”

8년 만에 연기활동 재개한 탤런트 강문영

겉보기엔 豁達해 보이지만 實際 그는 다른 사람 앞에 나서는 걸 싫어하고 낯가림도 甚한 性格이라고 한다. 그래서 演藝界 生活을 오래 했어도 演藝人 親舊들이 거의 없으며 平素 外出을 잘 안 하고 늘 집에만 있어 別名이 ‘집순이’라는 것. 그는 그런 性格 때문에 異常한 所聞이 나도 가만히 있다 보니 漸漸 强度가 甚한 所聞이 나도는 것 같다며 하소연을 했다.
그는 지난 2003年 12月 放映된 SBS 오픈드라마 ‘남과여-아름다운 選擇’을 통해 잠깐 放送活動을 再開한 적이 있다. 新人으로 돌아가 다시 始作하자는 마음으로 매니지먼트 契約도 하고 홍콩 映畫界 進出을 摸索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만 計劃에 蹉跌이 생겨서 다시 또 1年 넘게 쉬게 됐다는 것.
그에게 “演藝活動을 하지 않는 동안 어떻게 지냈냐”고 묻자 “남들처럼 똑같이 平凡하게 지냈다”고 對答한다. 어린나이에 데뷔해 탤런트 강문영으로만 살았기 때문에 쉬는 동안에는 平凡하게 살고 싶어 일부러 化粧도 안 하고 다녔다고 한다.
“그냥 놀면서 보냈어요. 特別히 무언가를 배웠다거나 副業을 한 적도 없고요. 元來 장사 體質이 아니거든요. 主로 집안에서 뒹굴거리면서 冊도 보고, 가끔 뜨개질도 하면서 지냈어요. 제가 손재주가 좀 있어서 손으로 하는 건 뭐든지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流行 지난 옷을 꺼내서 리폼度 하고 料理하는 것도 즐겨요. 親舊들을 집으로 불러서 飮食을 해주곤 하는데 主로 수프 種類나 달팽이 料理 같은 樣式을 잘 만들어요.”
그의 말대로 特別한 副業도 없이 8年間 지내면서 經濟的인 問題는 어떻게 解決했는지 궁금했다.
“高等學校 때부터 演藝活動을 始作해 그동안 貯蓄해 놓은 돈으로 지냈어요. 平素에 外出도 잘 안 하고 親舊들도 집으로 불러서 만나니까 돈을 쓸 일이 別로 없어요. 離婚 後 제가 直接 돈 管理를 하면서 아무래도 씀씀이가 줄었어요. 예전에는 예쁜 옷을 보면 無條件 샀는데 只今은 안 그래요. 이제는 예쁘고 튀는 옷을 입으면 ‘어머, 나 너무 演藝人스럽지 않아?’하는 말이 절로 튀어나올 程度예요.”

”얼굴만 예쁜 俳優가 아니라 演技로 感動週는 俳優 되고 싶어요”
演藝活動을 하지 않는 동안 그는 마음苦生을 겪고 잃은 것도 많지만 혼자만의 時間을 통해 俳優로도, 個人的으로도 많은 것을 느끼고 깨달았다고 한다. 特히 家族의 所重함을 깨달은 게 가장 큰 收穫이라고. 그가 힘들어할 때마다 父母님은 든든한 後援者로 나서 慰勞와 激勵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父母님과 함께 맛있는 집을 찾아다니는 것은 그에게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고.
그와 어머니는 一年에 4~5番씩은 함께 海外旅行을 다녀올 만큼 親舊 같은 母女 사이. 하지만 데뷔 때부터 그의 매니저 役割을 해 어머니는 일에 關해서는 冷徹하게 모니터를 해주는 便이라고 한다. 反面에 새아버지人 有名 曆術人 백운산氏는 自信感을 잃지 않도록 配慮를 많이 해준다고.
“‘辛旽’에 出演하게 된 것도 事實 아버지가 積極的으로 나서서 推進하신 거예요. 出演 提議를 받고 망설이고 있는 저한테 ‘無條件 해야 된다’고, ‘잘될 거니까 걱정 말라’고 하시면서 勇氣를 북돋워주셨어요. 얼마 前에는 地方 撮影場까지 直接 오셔서 새벽까지 撮影하는 것을 지켜보셨어요.”
有名 曆術人 아버지가 그의 컴백에 積極 介入한 데는 ‘그만한 理由’가 있을 터. 그래서 “해마다 身手나 안 좋은 일들은 미리 얘기해주지 않냐”고 물었더니 그는 “家族이라서 더 안 봐준다”며 볼멘소리를 한다.
“‘올해 어때요?’ 하고 여쭤보면 그냥 ‘응, 좋아 좋아! 무슨 일이든 마음먹기에 따라 天堂도 있고 地獄도 있는 거야’라고만 하시는걸요. 그래서 저도 그동안의 試鍊을 잘 참고 이겨냈으니까 이제는 좋은 일만 생길 거라고 그냥 믿으려고요.”
한때 一部 言論에서 그가 새아버지 백운산氏의 紹介로 만난 在美辯護士와 結婚 말이 오간다고 報道된 적이 있다. 하지만 이에 對해 그는 “結婚 얘기는 新聞記事가 너무 앞질러 간 것”이라고 했다.
“그 男子 분이 韓國에 나왔을 때 딱 한 番 만나서 食事를 했어요. 그 後 서로 電話通話를 몇 番 하긴 했는데 共通 關心事도 別로 없고 따로 떨어져 있으니까 發展이 안되더라고요. 사람은 서로 부대끼면서 程度 들고 자주 만나야 할 얘기도 많아지는 法인데 그렇지 못하니까 그냥 흐지부지됐죠.”

8년 만에 연기활동 재개한 탤런트 강문영

강문영은 “그동안의 試鍊을 잘 참고 이겨냈으니 이제는 좋은 일만 생길 거라고 그냥 믿으려 한다”고 말한다.


그 後 “男子를 만날 機會조차 없었다”는 그는 “어머니가 因緣을 찾으려면 努力을 해야 한다”며 “제발 집 밖으로 좀 나가라고 哀願한 적도 있다”고 어린아이처럼 웃었다. 그는 이제 외로움을 즐길 만큼 혼자 지내는 데 익숙해져 아직은 結婚할 생각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사이좋은 父母님이 相對에게 닭살스런 愛情表現을 하는 모습을 볼 때면 마음이 흔들린다고.
“두 분이 多情하게 계시면 샘나서 ‘나도 男子親舊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무래도 두 분이 저를 刺戟해서 시집보내려고 일부러 더 그러시는 것 같아요(웃음). 좋아하는 男子스타日曜? 무엇보다 착해야 돼요. 눈이 예쁘고 性格은 털털했으면 좋겠어요. 말끔하게 차려입고 端正하게 빗어 넘긴 헤어스타일을 한 男子는 人間味가 없어 보여서 싫어요. 또 키 큰 男子도 싫어요. 異常하게 저는 키가 175cm가 넘으면 싱거워 보이고 拒否感이 생기더라고요.”
그는 結婚은 누군가를 充分히 사귄 다음에 천천히 생각해볼 거라며 신중한 態度를 보였다.
지난 8年의 空白을 딛고 “演技를 다시 始作하는 게 두려웠다”는 탤런트 강문영. 무엇보다 新人 演技者도 아닌데 延期를 ‘저것밖에 못하나!’라는 소리를 들을까봐 너무 걱정되고 두려웠다고 한다.
“오랫동안 放送活動을 쉬면 다른 演藝人들은 ‘사람들이 날 잊어버리면 어떡하나’ 하고 不安하다는데 저는 그렇지 않았어요. 예전에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스타 강문영이 잊혀지는 건 두렵지 않아요. 그보다 다시 演技活動을 始作했을 때 視聽者들에게 제 演技가 어떻게 받아들여질지가 궁금하고 두렵더라고요. 新人 때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只今은 다르잖아요. 김희애, 이미숙氏처럼 30~40代의 成熟美를 갖춘 女俳優가 되고 싶어요. 但只 예쁜 俳優가 아니라 演技로 感動을 줄 수 있는 俳優가 되고 싶고요.”
그는 “그동안의 나쁜 記憶은 다 잊고 이제는 幸福해지고 싶다”며 “機會가 되면 撮影 내내 웃고 즐길 수 있는 코믹한 시트콤에 挑戰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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