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運命을 읽는 男子, 音樂評論家 강헌|週刊東亞

週刊東亞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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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運命을 읽는 男子, 音樂評論家 강헌

“니 쪼대로 살아라”

  • 송화선 記者 spring@donga.com

    入力 2016-01-11 14:5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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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헌(54·寫眞) 氏는 이름난 글쟁이다. 1990年代부터 音樂, 映畫, 美食 等에 耽溺해 수많은 글을 썼고 名聲을 얻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入學 點數가 높은 大學을 卒業했으며, 같은 學校에서 碩士學位도 받았다. 번듯한 職場에 들어간 적은 없지만, 글을 쓰기 始作한 뒤 배를 곯은 적도 없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萬락을 누린 삶. 이만하면 꽤 成功한 人生이라 여길 만하다.? ?
    그러나 다른 한便은 어떤가. 그는 두 番 離婚했고, 나이 마흔둘에 갑자기 ‘死亡確率 98%’ 診斷을 받았다. 平素와 다를 바 없이 지내던 어느 날 밤, 理由도 없이 動脈이 70cm나 찢어진 것이다. 應急室에 실려가 艱辛히 목숨을 건졌을 때 醫師는 “當身에게 남은 날은 길게 봐야 2年”이라고 알렸다. “조금씩 周邊을 整理하라”는 얘기를 들은 그날 以後 平生 즐기던 燒酒를 한 방울도 입에 대지 못하게 됐지만, 사내는 어찌어찌 살아남았다. 그 德에 11年도 더 지난 어느 午後, 記者 앞에 앉은 것이다.
    如前히 ‘이름난 글쟁이’이면서 이제는 ‘四柱쟁이’이기도 한 男子. 죽음을 눈앞에 두고 ‘命理學(命理學)’의 世界에 빠져들어 自稱 ‘左派命理學者’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된 人物. 姜氏와의 인터뷰는 담배 煙氣가 자욱한 그의 書齋에서 進行됐다. 四方을 둘러 冊이 빼곡히 꽂힌 空間에서 姜氏는 人文과 藝術을 耽讀하던 姿勢 그대로 命理學을 工夫하고 있었다. 그 앞에 ‘左派’라는 修飾語를 붙인 건, 이 硏究를 통해 얻으려는 것이 ‘名利(名利)’가 아니라 ‘公共善(公共善)’이기 때문이다.
    姜氏는 “命理學은 普通 立身揚名의 道具로 여겨진다. 내가 돈을 벌 수 있을까, 官職에 나아갈 수 있을까, 大學에 合格할 수 있을까 궁금할 때 사람들은 命理學者를 찾는다. 하지만 眞짜 命理學은 사람을 理解하는 것이다. 生老病死의 苦痛 앞에 모든 人間은 平等하다. 命理學은 個人이 가진 氣質과 特性을 把握해 各各의 사람이 그것을 어떻게 克服할 것인가를 알려준다”고 했다.



    “나쁜 四柱는 없다”

    “제가 命理學을 工夫했다는 얘기를 듣고 사람들이 제법 많이 찾아옵니다. 四柱를 건네준 뒤 한 10秒 지나면 열이면 열 다 이렇게 물어요. ‘제 四柱가 그렇게 나쁩니까.’ 그런데 世上에 좋은 使嗾, 나쁜 四柱라는 件 없거든요. 아니, 宇宙 全體에 좋은 것, 나쁜 것이라는 게 없습니다. 陰과 量, 五行처럼 서로 다른 性質이 어우러져 있을 뿐이죠. 그걸 理解하는 게 命理學의 出發點입니다. 모든 人間이 本質的으로 不完全하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調和를 追求하는 거예요.”
    姜氏는 “그래서 命理學을 제대로 工夫하면 自身과 더불어 다른 사람도 理解하고 尊重하게 되며, 相生을 꾀하게 된다. 저절로 우리 憲法 第1條 1項의 ‘공화(共和)’가 實現되는 것”이라고 했다. “요새는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左派라고 하기에 나도 ‘左派命理學’이라는 이름을 만들어봤다”며 웃는 그의 表情에서 最小限 命理學을 통해 ‘惑世誣民’하고 ‘恥部’하지는 않겠다는 意志가 읽혔다.
    “저는 元來 宗敎를 비웃던 사람이에요. 點이나 굿은 말할 것도 없고요. 意志薄弱하고 主體性 없는 사람이나 그런 데 기댄다고 여겼죠. 命理學을 工夫한 只今도 宿命論(宿命論)에 同意하지 않습니다. 우리 삶이 미리 定해진 프로그램에 따라 움직이고, 사람의 意志로는 이에 決코 抵抗할 수 없다는 主張은 잘못된 거예요. 社主 몇 字 풀어보고 ‘當身은 이렇게 된다, 안 된다’ ‘符籍 써라’ ‘굿을 해라’ 하는 사람은 100% 詐欺꾼이죠.”
    姜氏는 그런 이를 ‘四柱쟁이’라고 稱했다. 그러니 姜氏에게 그 呼稱은 적합하지 않겠다. 그렇다면 ‘命理學者’는 그들과 뭐가 다를까. 姜氏는 “命理學者는 다른 모든 學者처럼 ‘大體 人間의 삶은 왜 이러閑暇’를 理解하려는 切迫한 欲望에서 出發해 바로 그 問題를 硏究한다”고 說明했다. 이때 키워드가 ‘운명(運命)’이다.
    姜氏에 따르면 運命은 宿命과 完全히 다른 意味를 갖고 있다. 두 單語의 ‘名(命)’이 날 때부터 주어진 要素, 卽 타고난 年月日時(四柱)에 따라 定해진 것을 뜻한다면, ‘운명’의 ‘運(運)’은 이를 運用하는 것을 意味한다. ‘名’을 固定不變한 것으로 여기면 命理學은 成立부터 不可能해지는 셈이다. 姜氏는 “命을 달리 말하면 遠國(原局)이라고 하는데, 나를 찾아와 相談하는 사람 10名 中 遠國대로 사는 사람은 3名 程度에 不過하다. 社會 안에서 수많은 사람과 다양한 影響을 주고받으며 삶의 方向이 달라지기 때문”이라며 “命理學者는 사람의 遠國을 읽고 그의 氣質과 特性을 把握해 끊임없이 變化하는 世上 속에서 어떻게 포지셔닝해야 할지 助言해주는 一種의 카운슬러”라고 했다.
    그는 命理學에 對한 一部 宗敎界의 否定的 視角에 對해서도 “모든 宗敎의 窮極的 目標는 救援 아닌가. 命理學은 救援과 아무 關係가 없다는 點에서 信仰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命理學은 人間이 태어나 죽을 때까지 直面하는 具體的이고 世俗的인 모든 事案에 對해 解法을 찾는 하나의 理論 體系일 뿐”이라는 說明이다.
    “프로이트가 精神分析學에 入門한 動機가 ‘나를 알고 싶어서’라고 합디다. 스스로에 對한 好奇心은 모든 人間이 本質的으로 갖고 있는 거죠. 저도 그랬어요. 마흔두 살에 갑자기 쓰러져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됐을 때 ‘내 人生이 왜 이럴까’ 알고 싶어졌어요.”
    그때 문득 20餘 年 前 記憶이 떠올랐다. 1980年 1月 大學入試에 失敗하고 ‘이리저리 쏘다니던’ 時節 얘기다. 親舊 집에 놀러갔는데 親舊 아버지가 불쑥 ‘四柱를 한番 불러보라’고 했다. 알고 보니 曆術家였다.
    “사흘 뒤에 오라 하셔서 다시 갔더니 ‘來年에 이番에 떨어진 그 學校, 그 科에 붙을 테니 걱정 마라. 너는 마흔두 살까지는 글 쓰는 걸로 먹고살겠다. 그런데 그 무렵 宏壯히 큰 危機가 온다. 잘 넘기면 오래 살겠지만 거기서 삶이 끝날 수도 있다. 特히 健康을 操心하라’고 줄줄 말씀하시더군요. 그러고는 잠깐 쉬었다 ‘그리고 너, 結婚 세 番 하겠다’ 하셨어요.”
    채 스물도 안 된 ‘소년’에게 마흔 너머의 健康 危險 따위는 別로 重要한 問題가 아니었다. 그러나 ‘結婚 세 番’은 얘기가 달랐다. 姜氏가 깜짝 놀라자 ‘아저씨’는 껄껄 웃으며 ‘세 番 하기 싫으면 처음 結婚할 때 나를 찾아오라’ 했다고 한다. 하지만 姜氏가 이 記憶을 떠올렸을 때 그는 이미 한 番 離婚을 하고, 두 番째 離婚을 앞둔 참이었다.
    “當時 全南 海南에서 療養하고 있었는데 바로 後輩한테 連絡해 서울 書店에 있는 曆術 關聯 冊은 모조리 보내달라고 했어요.”
    그때부터 닥치는 대로 읽어나갔다. 삶과 죽음의 境界에 놓인 몸은 無力했지만 머리만은 그 어느 때보다 눈부시게 돌아갔다. 冊에서 글씨 한 字 한 者가 날아 들어와 그대로 腦에 박히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얼마間 工夫하자 ‘文吏(文理)’가 트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命理學적 用語와 풀이가 滯貨된 것이다. 自身의 四柱를 들여다보자 비로소 왜 自己 삶이 이러한지가 읽혔다.



    “自身의 四柱를 읽어라”

    “命理學은 엄청난 道力을 지녔거나 至難한 修鍊을 거친 사람만 攄得할 수 있는 ‘祕記’가 아니에요. 命理學에서 主로 使用하는 漢字는 天干 10者와 支持 12字 합쳐서 22字밖에 안 됩니다. 알파벳보다 오히려 적죠. 이것을 익히고 외워야 할 몇 가지만 머리에 넣으면 누구나 쉽게 命理學을 始作할 수 있습니다.”
    姜氏의 말이다. 勿論 이것이 누구나 그의 ‘親舊 아버지’ 같은 命理學의 大家가 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라고 한다. 그에 따르면 좋은 命理學者가 되려면 文理가 트인 뒤 命理學 知識이 人間의 삶에 어떻게 適用되는지 實際 人間을 통해 確認하는 通辯(通辯·依賴人의 遠國을 解釋해 依賴人이 理解할 수 있게 說明하는 일) 段階에 들어서야 한다. 적어도 3萬 名의 遠國은 解釋해야 到達할 수 있는 境地다. 以後에는 세 番째 段階, 靈性(靈性)이 必要하다고 한다. 命理學의 마지막 段階가 ‘入山修道’인 理由가 여기 있다.
    “그러나 저처럼 ‘내 삶을 理解하고 싶다’는 程度의 바람을 이루는 데는 오랜 時間, 많은 努力이 必要치 않습니다. 이미 우리는 스스로를 매우 잘 알고 있거든요. 世上 어떤 代價(大家)도 나에 對한 情報를 나만큼 갖고 있지 않아요. 또 내 父母, 내 子女, 내 配偶者에 對해, 그들과 내가 주고받는 影響에 對해 나만큼 잘 把握할 수 있는 사람이 世上 어디에 또 있습니까. 그래서 命理學을 조금만 工夫해도 自身의 現在와 未來를 分析하는 일만큼은 얼마든지 해낼 수 있습니다.”
    姜氏가 ‘萬人의 命理學者化’를 主張하는 理由가 여기 있다.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初等學校 敎育課程에 命理學을 包含시켜야 한다는 主張도 했다. “수많은 사람이 自己 自身에 對해 알기 위해 다른 사람을 찾아가 費用을 支拂하는 건 너무 消耗的인 일”이라는 것이다.
    “周圍에 보면 많은 財産, 높은 地位를 갖고도 不幸한 사람이 있죠. 反面 내 눈엔 別 볼 일 없어 보이는데도 幸福한 사람이 있고요. 後者의 境遇는 自己 遠國대로 사는 사람일 確率이 높습니다. 그러니 自身의 삶이 고민스럽다면 遠國을 한番 들여다보는 게 좋아요. 重要한 決定을 앞뒀을 때도 自身의 遠國을 놓고 스스로와 깊은 對話를 나누면 直接 解答을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
    姜氏는 最近 이런 깨달음과 遠國을 풀이하는 데 必要한 基本 情報 等을 담아 命理學 入門書 ‘命理, 運命을 읽다’(돌베개)를 펴냈다. 生年月日時를 利用해 遠國票를 만든 뒤 그 안에 담긴 陰陽과 五行, 天干과 支持, 盒과 衝 等을 풀이해 ‘나’를 읽는 데 도움을 주는 資料다. 10個로 構成된 各 張의 끝에는 姜氏 本人과, 故(故) 盧武鉉 前 大統領, 歌手 조용필 氏 等의 四柱 풀이를 곁들여 參考가 되게 했다.
    이 冊을 통해 窮極的으로 그가 말하려는 것은 “니 쪼대로 살아라”다. 世上의 視線이나 父母 欲心, 配偶者의 바람 等에 汚染되지 않은 純粹한 自身의 欲望대로, 무엇이 더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이 宇宙의 秩序 안에서 마음껏 사는 것이 바로 幸福의 지름길이라는 얘기다. 姜氏가 10餘 年 命理學 工夫에서 攄得한 것이 바로 그 自由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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